철학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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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논쟁

주제: 자유의지, 처벌, 응분의 대가

리뷰 총점 9.7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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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철학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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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도덕적 책임 능력에 대한 자유의지 논쟁 평점10점 | k**u | 2022.08.04 리뷰제목
‘자유의지, 처벌, 응분의 대가’를 논의의 중심으로 하는 두 철학 거장의 논쟁이다. 한 사람은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양립할 수 없다고 보는 자유의지 회의론자인 ‘그레그 카루소(이하 카루소라 함)’이며, 인지 심리학자로 국내에 잘 알려진 ‘대니얼 데닛(이하 데닛이라 함)’은 자유의지와 결정론이 양립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자유의지 양립가능론자이다. 사실 이렇게 단순 명쾌하
리뷰제목

 

자유의지, 처벌, 응분의 대가를 논의의 중심으로 하는 두 철학 거장의 논쟁이다. 한 사람은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양립할 수 없다고 보는 자유의지 회의론자그레그 카루소(이하 카루소라 함)’이며, 인지 심리학자로 국내에 잘 알려진 대니얼 데닛(이하 데닛이라 함)’은 자유의지와 결정론이 양립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자유의지 양립가능론자이다. 사실 이렇게 단순 명쾌하게 논쟁자들의 신념을 범주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이 논쟁의 첫 번째 주제인 자유의지조차도 하나의 의미로 정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 특히 관념적 언어의 경우 어쩌면 십인십색의 이해를 가지고 있다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는 이 두 논쟁자의 경우에는 언어의 해석과 정의의 문제에서부터 논증 내용의 작은 모순이나 흠결(欠缺)조차도 그저 넘길 수 없는 첨예한 논의의 대상이 되곤 한다. 3부로 구성되어 각 주제별 논의를 심화하고 있는데, 그 격렬함으로 인해 각자의 논증 중에 비웃음과 경멸, 모욕이 점잖음 속에 예리한 칼날처럼 상대의 심중을 헤집는다. 상대의 주장에 대한 빈정거림과 자기주장을 강변하는, 이를테면 내 견해는 뼛속까지 결과주의적이라는 식으로 혐오의 반론을 전개하기까지 한다.

 

사실 실질적 논쟁에서 두 토론자가 어떤 합치된 견해로 수렴하는 일은 결코 발생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책을 읽기 전부터 예견되었던 것이다. 자유의지의 존재를 굳건히 믿는 자가 자유의지가 없다고 설득되거나 그 반대의 상황이 발생하는 일은 어쩌면 불가능한 것일 게다. 책의 전체적 논지를 단순화하여 정리한다면 인간 개인의 도덕적 책임의 소유 여부에 따라 제도적 규범, 즉 법에 의한 단죄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격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판단도 분명 양분될 것이며, 이로부터 그 감상의 글도 전혀 다른 결과를 보일 터이다.

 

데닛의 주장은 과거의 사실과 자연법칙이 하나의 미래를 가져온다결정론자연, 사회, 환경에서 주어지는 자극에 합리적으로 반응하는 능력으로서 자유의지가 양립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카루소는 사람은 자유의지를 지니지 않거나 적어도 그 존재를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없으며, 행위자가 통제할 수 없는 인과적 결정인 결정론은 절대 양립 불가능하다는 강한 양립 불가능론을 주장한다. 이 논쟁의 초석적인 두 입장에서부터 자유의지에 대한 정의는 서로 다르다. 데닛은 대개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자극에 대한 합리적 반응의 주체로서 사람을 보는 것이며, 카루소는 기본적인 응분에 따른 칭찬과 비난, 보상과 처벌을 받기위해 갖춰야하는 행동 통제력을 자유의지로 보고 있다. 사실 개인의 도덕적 책임과 관련하여서는 카루소의 정의가 내겐 더 합리적으로 다가온다.

 

카루소의 정의를 지지하는 까닭은 이후 도덕책임의 발생과 관련한 결과주의와 계획주의 논의는 물론 사법제도와 형벌에 대한 정당성 문제를 거론하기 위해서는 ‘기본적 응행동 통제력이 중대한 철학적, 윤리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데닛은 이 정의에 이의를 제기하는데, 응분과 통제력 개념을 거부하는 것이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목적으로 타당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겐 데닛이 도덕적 책임 부과에 대한 가장 악질적 이념인 응보주의라는 낙인을 사전에 회피하려는 것으로 의심을 갖게 했다. 응보주의란 오직 범죄자가 저지른 행동에만 관심을 지니는 응분의 책임이라는 처벌 정당화 이론이다. 이것은 미래의 좋은 결과를 극대화하거나 사회 안전 강화, 도덕적 교화를 통한 선()의 확대는 무시하고 응분에 따른 처벌만을 주장한다. 이러한 의심은 카루소도 데닛으로부터 거듭 발견하게 되는데, 완화하여 준()응보주의자가 아니냐고 확인하지만 데닛은 이에대해 불쾌함을 노골적으로 표시한다.

 

데닛은 모든 인간은 자신의 판단과 분별력이 침해되거나 조작되지 않도록 주의할 책임을 져야하며, 이것은 성장 과정에서 충분히 자질을 배양하여 마땅한 도덕적 책임을 지는 인간이 되어야 하며, 또한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신의 한 행위에 대해서는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하며, 사회적 합의라는 계약주의에 의해 성립된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응보주의에 근접한 논리로 보이지만 데닛은 이를 부정한다. 이것은 결과주의라는 회고적 비난과 처벌의 개념으로 설명 가능한 것이지 응보주의에 의한 주장이 아니며, 더구나 긍정적 부가 효과 없이 처벌하는 응보주의와 달리 자신은 범죄자의 긍정적 개정을 상정하고 있으므로 같지 않다는 것이다.

 

운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킨다.” -39

 

카루소는 데닛의 이러한 주장, 즉 주체적인 사람은 자신이 한 일에 마땅히 책임을 져야한다는 논리를 거부한다. 모든 인간은 구성적 운현재적 운에 지배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구성적 운이란 어떤 가정에 태어날지, 어떤 장점과 재능, 성향, 신체적 특성을 타고날지 알 수 없는 운을 의미하며, 현재적 운이란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간주되는 행동이나 결정을 할 때 행위자의 기분, 우연히 든 생각, 주변 환경의 상황적 특성 등에 영향을 받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행위를 선택 결정하는 것은 자유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개체마다의 불평등성에 기초하여 인간 개체에게 도덕적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부당하며, 따라서 이는 도덕적 책임이 들어설 자리를 허물어뜨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카루소 주장의 배경에는 운에 의해 조성된 인간 개체의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에 기초하여 응분이라는 도덕적 책임을 씌워 징벌을 정당화하는 것과, 인간을 가혹하게 모욕하는 방식으로 다루고 그 불평등을 항구화하는 일을 합리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반박의 논리가 있다. 이에 더해 카루소는 당신이 성공을 거두었다면 당신은 혼자 힘으로 그 자리까지 오른 게 아닙니다.”고 하는데, 데닛은 이 발언이 위협적이라고 비난한다(60). 여기서 두 논쟁자의 신념의 커다란 차이를 목격하게 된다. 공정성을 주제로 담론계를 달궜던 능력주의에 대한 불평등성의 문제에서 데닛은 능력주의가 대체 무슨 문제란 말인가를 대변하고 있다 할 수 있다.

 

 

 

논쟁점을 모두 거론하는 것은 감상문의 목적도 아니기에 가장 치열한 논쟁 부분인 처벌과 도덕, 응분의 대가와 관련한 논의에 대한 소감으로 맺어야 할 것 같다. 아마 이것을 이렇게 정리해도 될 것 같다. 동일한 인간의 동일 범죄에 대한 처분, 격리와 감금의 좁혀지지 않는 차이의 논쟁이라고. 카루소는 기본적 응분이라는 개념에 의존하지 않는 자유의지회의론에 기초한 공중보건격리모형을 제시하며, 자유의지 없이도 사회의 도덕적 질서 유지와 안전, 나아가 선의 지향이 가능함을 역설한다. 이 모형의 주요 내용은 기본적 응분에 따른 도덕적 책임부과는 있을 수 없으며, 전염병 보균자가 병에 걸린 것이 걸린 자의 책임으로 물을 수 없듯 범죄자 또한 기본적 응분에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토대위에 피해 예방 차원으로 범죄자를 무력화하는 일과 격리는 정당한 것이며, 이를 시행할 때 사회 안전을 지키기 위한 침해원칙을 준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갱생과 사회복귀에 초점을 맞춘 격리 등과 같은 무력화 방법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응분이라는 관념이 형사사법제도의 과도한 징벌성을 정당화하여 불평등에 기초하여 인간을 고통에 빠뜨리는 오늘의 처벌 체계에 대한 전면적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데닛은 이러한 카루소의 근본적 열망은 적극 지지하지만, 인도적 개혁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처벌이 필요하다고 현실의 실제성을 들어 반대한다.

 

특히 범죄 행위가 없음에도 사회일원에게 일종의 도덕적 엄벌의 경고를 위해 강력한 징벌을 가해도 된다는 결과주의적 이론을 데닛은 강력하게 주장하며,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이용한들 무엇이 문제냐고 항변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 효용을 위해 인간을 수단으로 이용하여 범죄를 억제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주장이며, 여기에는 도덕이란 사회적 활동의 산물이며, 인류의 오랜 문명적 진화에 의한 위대한 발명의 설득의 장이라는 제도적 수호를 위한 당위성이라는 배경이 있다.

 

데닛은 사회의 안정적 질서의 존속을 위해 점진적인 형사 사법제도, 즉 처벌의 형식에 대한 개선을 주장한다. 또한 처벌이 없는 공중보건격리모형에 의한 격리와 무력화 제도에 반대하며 공상적인 유토피아에 불과한 헛소리라고 경멸한다. 반면 카루소의 주장에는 인간 존재에 내재된 불평등성을 불식시키기 위한 집요한 노력이 있다. 그는 개인적 요인보다는 사회 구조적 요인을 중시하며, 인간에 대한 도덕적 신뢰가 바탕을 이루고 있는데, 데닛은 이를 거부하는 것이다.

 

사실 인류의 모든 도덕적 규범이나 정치 제도는 끊임없이 변화되어 온 것이다. 19세기에 여성 참정권을 주장하고 노예 해방을 주장하는 사람은 급진적 이상주의자로 내몰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오늘날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도덕적 질서일 뿐이다. 무엇이든 기존 질서에 변화를 요구하면 그 낯섦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항과 부정, 혐오의 시선을 보내곤 한다. 18세기까지 도심의 한복판에서 죄수의 목을 공개적으로 자르는 것이 하등 도덕적 문제가 아니었지만 오늘날 국가가 이러한 행위를 한다면 그 야만적 퇴행행위에 대한 비난을 버텨내기 어려울 것이다.

 

도덕적 이상주의라거나 현실적 실현 가능성이 없다거나, 사람들이 강제 없이도 국가의 지시만으로 자율적으로 격리를 지킬 것이라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다. 한국 사회의 경우 대다수의 시민은 스스로 자가 격리에 임했으며, 불응자의 경우 적절한 전향적 무력화의 행사를 한 사례가 있듯이 극한적 개인주의화된 서구사회의 모델에 경도되어 수구적인 가치에 구태여 집착할 이유는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물론 두 논쟁자 어느 한 쪽의 견해가 모두 옳지 않거나 옳은 것은 아니다. 반드시 자유의지의 존재 유무를 판단치 않아도 도덕적 책임과 그에 대한 처리는 결정론이나 비결정론적 회의주의든 모순 없이 수행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데닛의 제도 수호론적 주장의 일부를 참조하여 카루소의 이상적 신념을 위한 개혁이 우리 인류의 바람직한 도덕 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논쟁이 격화될수록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 '그게아니라(rathering)'의 기만이라는 둥 논증을 벗어나는 비난과 상대 의견을 격하시키려는 수사법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러한 생동감있는 논쟁의 현실성이 독자를 그 격전장으로 몰입케 하여 어느 한 쪽의 입장에 서게 하지만, 논쟁자들의 사유와 논거로부터 발견하게 되는 도덕적, 정치적, 윤리적 지식들은 실로 많은 삶의 유익을 제공한다. 단지 철학적 논쟁을 담아낸 책으로 대하기보다는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어떻게 모든 구성원이 함께 행복을 증진시키고 차별없는 평평한 세계를 만들어 낼지를 생각하는 모처럼의 흐뭇한 자기 충전의 기회가 되어 주는 간결 명쾌하면서도 전문성을 지닌 윤리학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가히 진짜배기 논쟁의 정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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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철학 논쟁』 - 대니얼 데닛 등 2인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c**********1 | 2022.09.30 리뷰제목
『철학 논쟁』은 과거부터 뜨거운 논쟁거리였던 '자유의지론이냐 결정론이냐'에 대해 두 명의 철학자가 토론한 것을 실은 책이다. 대니얼 데닛은 자유의지론과 결정론이 양립할 수 있다는 양립가능론자로, 인간은 주체적인 행위자로서 성장하면서 통제력을 가지므로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본다. 반면 양립불가능론자이자 자유의지회의론자인 그레그 카루소는 운이 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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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 논쟁』은 과거부터 뜨거운 논쟁거리였던 '자유의지론이냐 결정론이냐'에 대해 두 명의 철학자가 토론한 것을 실은 책이다. 대니얼 데닛은 자유의지론과 결정론이 양립할 수 있다는 양립가능론자로, 인간은 주체적인 행위자로서 성장하면서 통제력을 가지므로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본다. 반면 양립불가능론자이자 자유의지회의론자인 그레그 카루소는 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이상 인간에게 응분에 따른 도덕적 책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가지의 개념을 가지고?특히 법적 처벌의 근거로써 응분의 몫에 대하여 치열하게 토론한다.

 

 이 책의 쟁점은 인간의 의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에 대한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인식하는 작용 자체가 온전히 우리의 자유의지로 이뤄지는지 아니면 통제할 수 없는 요소에 의해 인과적으로 결정되는지를 따지는 문제 말이다. 만일 의식이 행위자의 자율에 의한 것이라면 데닛의 말대로 인간은 응분의 몫을 질 필요가 있겠고,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다른 근거?예방 차원의 구금 등?를 들어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이 맞다. 그러므로 인식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어떤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올지도 정해지겠다.

 

 영국의 저명한 행동과학자 닉 채터에 따르면 의식이란 현재 지각한 것을 예전에 축적해 놓은 경험과 연결하고 재구성한 다음 우리가 새로운 것을 산출해내는 과정이다. 여기서 지각과 경험이라는 두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지각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로 구성된 감각기관을 이용해서 하는 것이니 카루소의 말마따나 구성적 운에 의해 정해진다고 볼 수 있다. 경험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느 나라에서 태어날지 어떤 집안에서 자라게 될지와 같은 현재적 운에 맞닥뜨리므로, 마찬가지로 이미 결정된 것이다. 그래서 의식은 '운에 의해 정해진 것 두 개를 조합해서 새로운 것을 산출해내는 과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므로, 의식이 우리의 자유의지가 아닌 운에 의해 정해진 결과물로 여겨진다.

 

 이 관점에서 토론을 바라보면 데닛의 손을 들어 주기 어렵다. 그는 과거는 행위자가 아니므로 나를 통제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과거의 경험은 앞서 언급했듯 현재 지각한 것만큼이나 의식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이므로 인간에게 족쇄로써 통제 기능을 한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그래서인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들 중 일부(어쩌면 대다수)는 어린 시절을 겪은 고생과 부당한 상황으로 인해 남들보다 일찍 자기 통제력과 책임감을 갖춘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라는 대목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오히려 부조리한 운을 인과적인 요소로 설명하고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카루소의 의견이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통제로부터 전혀 구애받지 않는 자유의지는 인간에게 없지만, 각자 어느 정도의 주체성은 분명 가질 수 있다. 데닛이 인간은 교육 등을 통하여 변화하고 성장하면서 주체성을 가진 존재가 되어 간다고 주장한 것에는 동의한다. 세상과 사회를 이해하면서 자기 자신이 통제되고 있음을 깨닫고 이에 순응하거나 저항하기를 선택할 수 있어서이다. 다만 그마저도 적정 수준의 두뇌나 좋은 학군과 같은 교육환경 등을 요한다는 점에서 운의 영향 아래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즉 주체자로서 실존하는 우리는 정말 큰 행운을 갖고 살아가는 셈이다. 그러므로 미국 공화당처럼 ‘(전부) 우리가 일구었다!’라는 당찬 말보다는 겸손한 태도를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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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철학논쟁 평점10점 | i******y | 2022.09.05 리뷰제목
철학 논쟁은 인간이 가진 도덕적 책임에 따라 법적 제도에 의한 처벌이 사회에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가에 대한 입장 차이를 통해 서로의 견해를 알아가고 더 넓은 시야로 사고를 확장하는 자리였다. 나는 카루소의 입장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석하려는 태도를 취하다보니 상대입장인 데닛의 정의들로 반격을 받을 때마다 생각보다 나의 근본적인 개념이 정말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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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논쟁은 인간이 가진 도덕적 책임에 따라 법적 제도에 의한 처벌이 사회에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가에 대한 입장 차이를 통해 서로의 견해를 알아가고 더 넓은 시야로 사고를 확장하는 자리였다.
나는 카루소의 입장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석하려는 태도를 취하다보니 상대입장인 데닛의 정의들로 반격을 받을 때마다 생각보다 나의 근본적인 개념이 정말 빈약하다는 걸 느꼈다.
그런 면이 아쉽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내 안에 무엇을 새롭게 정립하고 더 사고해야 하는지 또한 얻어지는 열매였다.
 
사회계약설에 의한 사법 제도와 형벌에 대한 논의를 위해선 응분과 행동 통제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중요했다. 실질적으로 이 개념들을 정립하고 논의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역시 나의 내공이 부족한 탓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응보주의적 관점이 내겐 회의적이었다는 것이다.
응보주의자는 '범죄자가 저지른 부도덕한 행동에 기본적인 응분의 책임을 지운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정당화'한다. 그렇다면 처벌만이 최선의 대안이기에 이것은 나를 변호하고 나를 지켜낼 수 있는 자유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인에게 나의 생명과 존엄을 맡기는 꼴이 된다. 미래 사회 재구성원의 역할을 위한 교화나 갱생의 여지는 현저히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필로어스에서 나눈 철학 논쟁은 다음 문제에서 출발했다.
Q. 어떤 외딴섬에서 한 사람이 모든 주민을 잔혹하게 살해했는데 이 살인자는 증오와 분노 때문에 도덕적으로 개심할 여지가 없는 인물이다. 섬은 너무나 외진 곳에 있어 살인자가 섬 밖으로 나갈 수도, 외부에서 섬을 찾아올 수도 없다. 사회가 해체된 이상, 섬에는 바람직한 결과를 위해 사회 계약을 맺고 이를 근거로 규칙을 세울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의 직관에 따르면 살인자는 이 상황에서도 처벌을 받아야 마땅한가? 그 이유는?
1) 처벌 받아야 마땅하다.
2) 처벌 받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직관적으로 어떤 답을 선택하게 되는가? 
내 눈에 들어온 단어들은 잔혹한 살해, 증오와 분노, 도덕적 불개심이었다. 사회가 해체되었고, 고립된 살인자는 이 상황에서도 처벌에 응해야 하는가였다.
흥미로운 것은 토론에 참여한 모두가 어떤 사상과 제도에 더 무게를 두고 어떤 세상을 꿈꾸는 가에 따라 자신의 신념이 기우는 교착점이 달랐다. 찬성과 반대 안에서도 그 의견들은 건강하고 첨예하게 분분했다. 

여럿이 자유롭게 사유와 논거를 들어 자신의 지식을 털어놓는 논의의 쟁은 정말 유익했다. 철학은 함께 나눌 때 더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우리는 국가로부터 그리고 사회로부터 법 제도에 따라 제대로 보호 받고 있는지, 우리는 사회 안에서 우리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자유를 제대로 누리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행복할 권리, 평등할 권리, 자유로울 권리를 도덕적 책임 하에 제한적으로 이루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지, 행동적 통제를 벗어나 진정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지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 볼 문제들이 나를 이끌었다.



#철학논쟁 #책세상 #필로어스철학세미나  #필로어스 #독서모임 #대니얼데닛 #그레그루카소
#자유의지 #처벌 #응분의대가 #응보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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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철학 논쟁 평점9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n******8 | 2023.01.21 리뷰제목
다니엘 대닛의 책은 쉽지가 않다. 게다가 이번에는 언제나 논쟁적인 자유의지다. 읽다가 포기할 것을 각오하고 시작했는데 마치 웬만한 소설보다 흥미로워서 거의 단숨에 읽게 되었다. 자유의지의 문제는 항상 논쟁적이였는데 사실 왜 그렇게 큰 문제거리가 되는 것인지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서 이해가 되었다. 죄의 응분, 처벌, 즉 사회에서 죄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의 밑바탕에 결
리뷰제목

다니엘 대닛의 책은 쉽지가 않다. 게다가 이번에는 언제나 논쟁적인 자유의지다. 읽다가 포기할 것을 각오하고 시작했는데 마치 웬만한 소설보다 흥미로워서 거의 단숨에 읽게 되었다. 자유의지의 문제는 항상 논쟁적이였는데 사실 왜 그렇게 큰 문제거리가 되는 것인지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서 이해가 되었다. 죄의 응분, 처벌, 즉 사회에서 죄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의 밑바탕에 결국에는 자유의지의 논쟁이 있어왔던 것이다. 여전히 쉽게 이해될 수는 없고 다루는 주제가 상당한 무게감이 있지만 두 뛰어난 철학자의 설명, 핵심 논쟁들이 요약, 적절한 예시등으로 거의 모든것을 이해했다는 착각까지 들게한다. 작지만 위대한 책이 또하나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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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철학 논쟁』 : 자유의지와 운명론은 공존할 수 있을까? 평점9점 | l********6 | 2022.10.10 리뷰제목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진정 존재하는가? 자유의지 vs 운명론 기독교 세계관이 익숙한 나에게 자유의지는 진정으로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낳는다. 신은 인간에게 선악과를 따먹을 수도, 순종하며 신을 사랑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주었지만 하나님은 미래를 다 알고 계신다 한다. 알고 계신다는 것은 예정되어 있는 것이고, 운명이 결정지어진 것과 자유의지는 성립이 가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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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진정 존재하는가?

자유의지 vs 운명론

기독교 세계관이 익숙한 나에게 자유의지는 진정으로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낳는다.

신은 인간에게 선악과를 따먹을 수도, 순종하며 신을 사랑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주었지만 하나님은 미래를 다 알고 계신다 한다.

알고 계신다는 것은 예정되어 있는 것이고, 운명이 결정지어진 것과 자유의지는 성립이 가능할 것인가? 에 대한 의문이었다.

철학에서는 이를 어떻게 설명할까?

그에 대한 흥미로운 대답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이 책 『철학 논쟁』이다.



 

이 책에서는 운명론(이 책에서는 결정론으로 표현)과 관계하여 자유의지에 대한 대표적인 주장을 제시한다.

양립가능론 : 자유의지와 결정론은 양립할 수 있음 (자유의지는 참)

양립불가능론 : 자유의지와 결정론은 양립할 수 없음 (결정론이 참이라면, 자유의지는 거짓)

자유의지론 : 양립불가론은 참이며 결정론은 거짓 (자유의지는 참)

자유의지회의론 : 인간은 자유의지를 지니지 않음

강한 결정론 : 양립불가능론과 결정론은 참 (자유의지 거짓)

 

철학 논쟁의 전체적 구성은 철학자인 데닛과 카루소의 논쟁식으로 글을 주고받는 구조다.

여기서 데닛은 양립가능론자로 자유의지와 운명론의 참을, 카루소는 양립불가능론자로 운명론의 참과 자유의지의 거짓을 주장한다.

정말 간단히 맛보기로 이야기하자면 카루소는 모든 일이 행동을 하기까지의 앞선 무언가가 영향을 끼치고 결정을 최선으로 만들었음으로, 자유의지가 아닌 인과관계의 필연적인 행동으로써 본다. 그에 반해 데닛은 행동을 하기까지 그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은 너무 많고, 그걸 추적할 수 없기에 (사람에 따라 행동에 영향끼치는 요소들의 순위를 자유의지에 따라 여긴다고 보는 것이 아닐까) 자유의지는 참이라고 한다.

행위자의 내적 심리 상태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에 의해 인과적으로 결정'되는지는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죠. (145p.)

 

책의 구성과 Point.

단순하게 하나의 이론을 따라가는 것보다 반박에 반박이 오가는 과정 속에서 탄탄해지는 입장을 살펴보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우면서도 (마치 교수님이 다른 교수님한테 반박당하는 상황..) 반대 의견을 어떻게 보완하면서 견고해지는 입장이 감탄스러웠다.

그 과정에서 두 학자들의 태도 또한 배울 점이 많았다.

우선 내가 자유의지와 책임을 설명하는 방식을 따랐을 때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염려하는 군요. 옳은 지적이지만, 이건 하나의 특성이지 오류가 아니에요. (167p.)

당신의 이런 주장에는 무릎을 쳤습니다. (169p.)

고맙습니다, 댄. 여러모로 유익한 예시들이로군요. (113p.)

자신의 의견에 반기를 드는 반대편의 사람에게 이렇게 우아하게 반응할 수 있다니.

당신은 당연히 동의하지 않겠죠, 그런데 어떤 근거로요?(166p.)

천만에요, 당신이 지금 강조한 문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135p.)

한편, 아주 예리한 말들도 오간다. 이 온도차이를 넘나드는 것도 재밌는 point...

 

N의 상상력 끝판왕 : 여러가지 예시들

나는 '만약에' 게임을 너무 좋아한다.

만약으로 가정하는 상황 속에서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현실사회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재밌다. 이 책에서는 너무나 흥미로운 가설들이 등장한다. 예컨대 두뇌를 조작당한 사람이 살인을 저지른다면? 철학적 좀비에 대한 가설 또한 너무 웃긴다 ㅋㅋ

 

책을 읽고...

자유의지의 유무는 양쪽 모두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자유의지가 거짓인 카루소의 의견은 구조와 태생적인 운의 불평등을 고발하는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시스템 속 사람들을 얼마나 손가락질해왔나 하는 반성이 들었다. 참인 데닛의 의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주체성과 우리가 어떠한 옵션에 처해있더라도 옳바르게 살아가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했다.

사실, 내 의견은 읽는 컨디션에 따라 계속 달라졌다. 세상을 희망적으로 보고 주체적인 확신이 필요했던 때에는 데닛의 의견에 공감했고, 하루가 힘들어 내 일을 후회하게 되었을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외치는 카루소의 말이 큰 힘이 되었다.

어차피 적어도 죽을때까지 인간의 자유의지 여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필요하고 알아가야 하는 이유는 다각도의 차원에서 삶을 바라볼 수 있다는 측면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고정된 상황에서도 옳은 일이 무엇인지를 계속 묻는 필요를 느끼게 하기에, 동시에 자유의지라는 이름으로 선택권 없이 지금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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