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페르시아의 철학자이기도한 조로 아스터는 이원론적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창시했는데, 유일신인 아후라 마즈다를 숭배하고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현대 그리스도교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예수가 일으키는 자연의 기적이나 동방박사 이야기는 원래 조로아스터의 신화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원형을 제시한 종교로서 굉장히 큰 세력을 가진 종교였으나, 이슬람교에 밀려 세력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15만명의 신자를 보유하고 있어서 현재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다. 니체의 유명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 바로 조로아스터의 현대식 발음이라고 한다. 물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름만 빌려온 수준이라 조로아스터 교와 큰 관련이 없다고 한다.
이렇듯 종교는 교리가 옳거나 뜻이 깊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승자의 종교가 살아남는 것이다.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역사를 보면 그렇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차이도 모르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두 종교의 차이를 알 것이다. 유대교는 현재 세계 3대 종교로 세력이 커버린 크리스찬과는 다르다. 다신교였던 로마를 천주교로 통합한 것은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못할 것이다. 실제로 하나의 로마로 통치하는데 큰 효과를 거두었고, 로마 덕분에? 세력이 아주 작았던 그리스도교는 주류 종교로 급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신교라는 특성이 다른 종교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거대국가를 이끌어가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이렇듯 강대국의 역사 이면에는 종교가 있다. 중국의 유교도 중화사상과 결합시켜서 중국을 이끌어 왔고 현재도 하나의 중국이라는 명분 만들기에 중화사상적 유교가 있다. 중국이 티베트불교에 탄압을 가하고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일본도 일개 평범한 인간일 뿐인 천왕을 신격화 시켜 그것을 매개로 동북아공정에 열을 올렸던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종교는 공작과 지배의 도구이며, 통치자의 지배를 위한 편리한 도구이다. 이 책에서는 각 종교의 역사적 공방과 지정학적 전개를 살펴보면서 종교의 본질(특히 일신고)은 어디까지나 교묘한 속임수와 강탈의 패권 역학으로 가득하다는 점을 폭로하고자 한다. '종교는 구원' 이라는 기존의 성선설에서 벗어나야 한다. 종교에 내재된 훙악성을 직시 할 때, 비로소 대외적인 종교 패권에 대응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17p 중-
나는 개인적으로 기독교 환경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할머니 더 윗대부터 그랬단다. 대형교회 목사인 친척도 있고 중 소형 교회의 친척은 더 많다. 부모님 양가 모두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라 제사지내는 방법도 모른다. 나도 자연스럽게 종교를 접하고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현재는 무신론을 선택했다. 아직도 가족들은 기독교이지만 나의 신념은 굳건하다. 내 자유의지로 믿은 종교도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당연시 하면서 지내왔지만 어느샌가 종교의 더러운 이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종교를 버린 것은 아니다. 그런 개인적 경험이나 에피소드적 사건 때문에 종교를 믿고 안믿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본다.
이슬람교에서는 이교도보다 더 큰 죄인이 나같은 무신론자들이라고 한다. 차라리 이교도를 믿는 것이 낫지 신 자체가 없다고 하는 것이 불경한 죄악이다. 내가 이슬람에 간다면 사형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참으로 흉악하고 오만한 관점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종교가 세계 인구의 25%를 차지한다고 하니 정말 끔찍하다. 사실 나에게는 거시적으로 보면 기독교나 이슬람교나 유대교등 일신교 계열 종교 자체가 그렇게 느껴진다. 배타성과 강요만 없다고 해도 이렇게 까지 얘기하진 않을텐데, 일신교는 근본적으로 그것과 떼어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만의 리그를 곳곳에서 더 확장시키는 요인이 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종교는 그저 역사의 산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국교가 있는 나라에서 태어나면 어릴 때부터 선택의 기회는 차단되고 당연한 진리로만 세뇌교육을 받고 자라고, 그 교리속에 선택의 자유를 잃어 버린다.
내 관점에선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든 것인데, 인간이 만든 신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현상이 근본적으로 싫기도 하고 어리석어 보인다. 특히 나 이외에 것은 인정하지 않는 일신교의 근본적 배타성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컸다. 물론 친인척이나 가족들은 아직 기독교인이고 서로를 존중하고 있다. 교인들이 하는 것 마냥 나는 무신론을 전파할 생각도 없고, 전도 당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뻔하디 뻔한 일차원적인 논리에 설득도 되지 않을 뿐더러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런 행위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에 둘 다 원하지 않는다. 그저 무신론자의 관점에서 종교에 관심이 많은 일개 개인일 뿐이다. 대부분의 교인들 보다 성경에 더 관심이 많고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관점은 나에게 딱 맞는다. 그저 인간의 역사와 함께한 종교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특정 종교인의 관점에서 보는 여러 종교는 편향적이기 쉽다. 저자가 일본인이라서 일본에 대해 다소 우호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처럼, 종교인들도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관점은 편향적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종교적 관점에 매우 동의하는 바지만 국가적 관점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한국의 유교나 기독교에 대한 평가가 맞기는 하지만, 일본의 부정적인 면은 생략을 하다시피 하고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을 은근히 내세우고 있다. 그래봤자 영국의 제도를 따라했을 뿐이면서. 게다가 기독교가 1%미만이라고 내세우면서 (그건 사실 개인적으로 부럽다) 일본의 사이비 종교에 대한 언급은 없다. 종말론을 주장했던 오움진리교 같은 사이비 종교가 득세를 했고 한 때는 신자가 1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일본에 사는 지인에 의하면 지금도 각종 이상한 종교이 판을 치고 있으며, 최근에도 사이비 종교를 권유당했다고 한다. 그런 사례가 궁금한 사람은 인터넷에 경험담을 찾아보자.
이 책은 종교의 시각으로 보는 세계사이기도 하다. 요즘의 주류 종교인 일신교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인도.동남아시아, 유럽, 중동.중앙아시아.아프리카의 종교에 대해서 폭넓게 다루고 있다. 종교에 대해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모두 사실을 다루고 있다. 종교 대립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전쟁의 명분으로 이용 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세계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종교인으로서 그것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다. 그저 언급 자체를 안하고 넘어갈 뿐이다.
세계 역대의 패권국가들은 종교가 가진 힘을 파악했다. 로마는 물론 이고 미국과 영국의 청교도, 스페인의 천주교도 그랬으며 중국도 유교에 공산주의를 짬뽕시킨 중화사상을 현재도 자국인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종교는 사상이며 규율이 되고 질서가 되기 때문에 유교 또한 신의 교리가 아니지만 종교나 다름없다.
베트남은 우리와 문화와 역사가 아주 다른 국가이고 피부색 또한 다르지만, 좀 자세히 알게 되면 비슷한 점이 굉장히 많다. 나는 10회이상 베트남을 방문했고 언어도 조금 알고 있는데, 토테미즘적 신념이나 운명론, 어른을 공경하는 상하구도, 단어까지 비슷하다. 기숙사를 '기둑사' 학생을 '학씽', 전통을 '쭈엔통' 이라고 하는 식이다. 우리나라나 베트남이나 유교사상에 깊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동남아 국가에 비해 유독 베트남이 그런 이유는 태국이나 미얀마는 땅이 비옥해 교역이 많이 필요가 없었으나 베트남은 일찌감치 중국과 교역을 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자주성이 강한 나라이다. 유일하게 전쟁에서 미국을 이긴 나라이다. 물론 미국 자체를 이겼다고 할 수는 없다. 독립 이후로 미국은 외국과 본토에서 전쟁을 한 적이 없고 늘 출장전쟁? 을 해왔으니. 그런 기질과 고집이 현재의 베트남 사람들에게도 남아 있는 것처럼 가끔은 답답할 정도로 고집이 세다. 마찬가지로 중국에 굴복하지는 않았지만, 문화는 깊이 침투해있다. 미국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베트남의 근대가 배경인 베트남 영화 '디자이너' 나 ' 막비엇(dream eye)를 보면 미국 문화를 좋아하는 베트남인들의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내가 겪은 바로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자존심이 강해서 인정하지 않을 지언정.
이슬람과 카톨릭으로 대변되는 그리스도교들의 역사는 정치와 돈이 뗄레와 뗄 수 없는 유착관계가 있어왔다. 나 이외의 신을 배척하고 이교도와 무신론을 배척하는 것 자체가 배타적인 속성이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 세력을 확장하고 지배해왔다. 지배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치를 위해 교리를 수정하고 이용하는 것은 보통이다.
같은 종교라 해도 종교는 각 국가의 토테미즘적 영향을 받는다. 신령님께 물을 떠놓고 기원을 하던 식으로 예수에게 기도를 하는 것은 외국인에게는 낯선 풍경으로 보일 것이다. 태국에 가면 불교가 우리가 믿는 불교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신교도 원래는 하나의 뿌리에서 파생된 것인데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매우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현대의 기독교는 그들의 뿌리인 유대교와 또 많이 다르다. 천주교와 예수교가 많이 다르듯이. 그들은 서로 자기들이 원조라고 부르짖는다. 무슨 원조 국밥집도 아니고.
서구권에 깊이 뿌리내린 기독교에 대한 책은 많이 있지만 동양의 종교를 다룬 책은 별로 보질 못했다. 이렇게 세계 각 국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서 굉장히 재미도 있고 종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해준 책이다. 종교인이든 아니든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은 종교와 인간문제를 들여다 보는데 객관적 시각을 갖게 해줄 것이다. 우물안에서 내것만 옳다고 하는 태도는 분쟁만 일으킬 뿐이니까 개인적인 신념을 저버리지 않더라도 세계 각국의 종교적 관점이 어떤지 알아보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종교인이든 아니든 읽어볼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은 네이버 카페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아 제 마음대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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