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고래는 영어로 ‘killer whale’이다. 이름만 들으면 야생의 잔인한 살인마 같은 존재로 보인다. 정말 그럴까? 하지만 영화 <프리 윌리>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범고래는 바다에서 사람을 공격한 적이 거의 없다. 물론 인간에게 학대당한 범고래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공연 도중 조련사를 공격해 숨지게 한 일이 있었지만 이는 예외적 상황에 속한다. 본래 그들은 야생에서 엄격한 사회 집단을 이루고 연대하며 살아간다. 최상위 포식자이지만 생존이 아닌 목적으로 다른 생명체를 죽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한 번 지어진 부적절한 이름으로 인해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생물학자인 저자가 유쾌한 필치로 부적절한 이름을 받은 생물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등장인물로 네오팔마 도널드트럼피라는 야행성 나방이 있다. 머리에 노랑색 비늘이 있어 마치 트럼프 대통령을 닮아 그렇게 지어졌다고 하는데, 그 나방이 이 사실을 안다면 당장 그렇게 부르는 것을 멈춰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말벌이 공격적이고 성질이 급하다는 편견에 대해서도 고발한다.
저자는 열정적인 바다거북 보호 활동가로 널리 알려진 멕시코 출신의 생물학자이다. 그는 이 책에서 17개의 동식물을 등장시켜 놓고 야생 동식물들의 뒷이야기를 전한다. 책장 깊숙한 곳에 사는 좀벌레부터 바다속에 사는 진정한 천재 문어까지 야생의 다양한 동식물을 관찰하고 쓴 엉뚱하고 유쾌한 자연 에세이라고 하겠다. 특별한 과학적 지식을 전하기보다는 동식물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인간과의 관계와 특성을 가벼운 필치로 다루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이야기 중에서 바다거북의 삶이 가장 놀랍고 신비롭게 다가온다. 새끼들은 모래 밑에서 부화한 뒤 팝콘처럼 쏟아져 나와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그들은 10년 이상이 지나야 어른 거북이 되는데, 그 동안 해류에 휩쓸려 다닌다는 점 외에 특별히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알을 낳을 때가 되면 수천 킬로미터를 헤엄쳐 자신이 태어난 해변으로 돌아온다. 남대천으로 회기하는 연어 이야기를 닮았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고향을 기억할 수 있는지, 그 엄청난 거리를 헤매지 않고 찾아올 수 있을까? 생명의 신비와 함께 자연이라는 소중한 존재를 느끼게 만든다.
저자는 야생의 동식물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왜곡된 시선이 아닌, 그들의 입장에서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상관없이 나름대로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런 동식물과 인간간 교감의 순간들을 포착해 전해준다. 결혼식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찾아왔던 부상당한 갈매기와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눈빛”으로 교감하는 순간의 느낌을 전하기도 한다. 또한 훨훨 날아다니며 노는 듯한 나비가 사실은 격렬한 영토 싸움을 벌이는 중이라고도 알려준다. 담담하게 읽어가면서도 자연이 주는 교훈을 배우는 재미가 있다.
『누가 내 이름을 이렇게 지었어』
오스카르 아란다(지음) | 김유경(옮김) | 동녘(펴냄)
인간만큼 잔인한 동물이 있을까? 다큐멘터리에서 우연히 돌고래 사냥을 본 적이 있다. 충격적인 온통 붉은 바다 장면 도대체 무슨 일인가 했더니 돌고래들의 피였다. 돌고래들은 영리하고 연대감이 좋아서 가족이 잡히면 혼자 도망가지 않는다. 가족이 죽는 것을 감정적으로 안다고 한다. 현재 자료를 찾아보니 일본에서는 돌고래 사냥이 합법화되어 있다고 한다. 아직도 돌고래 사냥은 피바다가 되는 방식에서 척수를 찔러 단번에 죽이는 방법만 바뀌었을 뿐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 한 해 도살되는 돌고래의 수가 1288마리라고 한다. 자그마치 1288마리!! (2017년 기준) 수요가 있으면 시장이 있기 마련 잡힌 돌고래는 어디로 가는가?
그 돌고래는 우리나라 수족관으로 팔려온다. 결론은 돌고래 쇼를 보러 가면 안 된다. 돌고래 쇼는 중지되어야 한다. 엄마를 죽인 후 아기 돌고래는 일주일 굶겨서 훈련시켜서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입장 바뀌서 내가 돌고래라면 어떻겠는가! 이 책의 저자 역시 모든 생물에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분이다. 책을 읽으며 종말 존경스러웠다. 저자가 말하듯이 바다 거북도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얼마 전 코에 플라스틱 빨대를 찔린 채 바다를 떠돌다 구조된 바다 거북의 영상이 세계인을 부끄럽게 했다. 한동안 플라스틱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보려고 노력 중이다. 우리 모두가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면 그다음에는 바로 우리 인간이 당할 차례이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는 어릴 때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하게 서술해서 무척 흥미로웠다. 거북알이 최음제라는 멍청하고 근거 없는 믿음 떄문에 바다거북의 알과 고기가 은밀하게 불법된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불법이므로 희소가치가 높은, 부의 상징으로써 바다거북 요리를 제공하고 정원에서 재규어를 펼쳐놓고 전시한다. 경찰까지 바다거북 알을 훔치는 일에 관여했다는 사실에 충격이었다. 이 불법적인 행위를 다큐로 제작하는 일에 CNN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의 MBC도 참여했다고 한다.
바다거북뿐 아니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문어, 범고래 이야기, 해마다 급속도로 줄어드는 곤충 이야기까지 다양한 생물들을 소개한다. 우리 인간들에게는 쓸모없는 동물로 여겨지는 갈매기, 말벌 심지어 파리까지 책의 저자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 생물들과 직접 함께 체험하고 공감한 내용을 옮겨왔다. 영장류 연구를 위해 침팬지 똥 치우는 자원봉사에서 구출된 새끼 곰 돌보는 일까지 다양한 체험을 했다. 책의 마지막에 저자는 말한다. 사람과 동물이 뭐가 다르며 거대한 나무들과 인간이 뭐가 다르냐고! 자연보다 더 위안이 되는 것이 또 있을까? 저자에게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자연은 위안이자 쉼터이다. 그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구의 모든 것은 순환한다. 한 종이 인간에 의해 멸종하고 난 파급 효과가 과연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나 역시 고기를 먹는다. 돼지고기 닭고기 먹으면서 무슨 동물 보호의 말을 하는가 싶을 때가 있는데, 비건을 실천하지는 못하지만 최대한 줄여보려 노력 중이다. 한 종이 아프면 결국 인간도 아프게 될 것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 들여다본 열일곱 가지 생물들 그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이 책을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 독자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 지원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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