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조금 울었다
권미선
허밍버드/ 2017.7.15.
sanbaram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들과
막스 리히터의 음악들을 좋아한다.
고골, 도스토옙스키, 찰스 디킨스,
로앙드 달, 어술러 르 귄, 제임스 설터의
책들을 좋아한다.
라디오 프로그램 <푸른밤 정엽입니다>, <오후의 발견 스윗소로우입니다>, <굿모닝 FM 오상진입니다>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글을 쓰고 있는 작가는 “잘 우는 엄마를 둔 나는 울지 않는 아이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눈물이 차오르는 섬으로 자박자박 걸어 들어가게 된 것은 사랑 때문이다. 거기엔 음악과 풍경이 있었으며 나 혼자 였다. 혼자이던 시간, 상자 속에 차곡차곡 쌓인 추억과 여름 원피스 주머니에 들어 있던 그리움과 낡은 가방 속에 웅크리고 있던 아픔을 문득 발견하고는 나는 조금, 울었다. 그리워서, 미안해서, 외로워서, 보고 싶어서 나는 조금, 울었다.” 그 사연들을 <아주, 조금 울었다>에서 ‘비로소 혼자가 된 시간, 아주, 조금 울었다/ 오직 마음에 충실했던 순간들/ 두고 온 것은 늘 그립다/ 눈물을 닦으니 보이는 것/ 혼자인 시간에만 가능한 나의 고백’ 등 5개의 주제로 묶어 에세이집을 내었다.
‘차곡차곡 모아두고 싶은 추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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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하는 인생의 순간은
깜짝 놀랄 만한 명장면이 아니라,
소박한 시간들이 많다.(p.24)
살아 있는 것들은 흔적을 남기고 간다. 어떤 것들은 상처가 되고, 어떤 것들은 추억이 된다고 저자가 말한다. 이런 소박한 시간들이 모여서 인생을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상실의 아픔’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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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순간,
우리의 영혼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평생 메워지지 않는 이 구멍에는
‘상실의 아픔’과 애틋한 그리움‘이 조용히 머문다.(p.39)
이런 것을 인생의 한 단면인 추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기울어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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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가을, 그녀는 누군가에게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 사람 때문에, 마음은 봄이 됐다가 여름이 됐다가
때론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계절이 바뀌었고,
따뜻했다가 추웠다가 밝았다가 어두웠다가 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그 사람에게 기울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기울어지지 않고 뻣뻣하게 사랑할 순 없다고.
더 많이 기울어진 사람이 더 많은 변화를 겪기 마련이라고.
그땐 그랬었다.
그녀는 잠시 멈추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구는 여전히 기울어져 있고, 계절은 수없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사이 그녀의 마음은
점점 뻣뻣해지고, 꼿꼿해지고 있었다.(p.62)
처음에는 부드럽고 연하여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 하다가, 점점 부드러움을 잃고 뻣뻣해지며 자기 안에 갇혀서는 결국 변화할 수 없게 되자, 기울어지지 못하고 자기로만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좀 더 부드럽게 변화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었다.
‘알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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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고유명사가 된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래서 소중한 사람.
하지만 헤어지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
우린 서로에게 보통명사가 된다.
예전에 알았던 사람들 중 하나로.(p.123)
같은 사람이지만 마음의 상태에 따라 고유명사가 되었다가 보통명사가 되는 것, 그것이 그 사람과의 관계를 나타내주는 현주소가 된다.
‘시간과 공간이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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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우디 앨런’이 이런 말을 했어.
이 세상에 ‘시간’이 있는 이유는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이고,
이 세상에 ‘공간’이 있는 이유는
모든 일이 나에게만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라고. p.214
영화감독의 말을 빌어 이 세상에 시간이 존재하는 이유와, 공간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이 동시에 존재하기에 우리가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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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간다고 말했을 땐,
정말로 꼭, 가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지금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일 것이다.(p.240)
비단 그녀뿐이겠는가? 이 세상 모든 것이 필요로 하는 것은 상처를 치유할 시간인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마음속의 감정을 숨기지 말고, 때로는 조금씩 꺼내어 발산해 버림으로써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아주, 조금 울었다’고 독자들에게 선포하는 것 같다. 혼자서 외롭다고 느끼거나 울적해질 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떠나보내고 나서, 이 에세이집을 읽으면 저자는 조용히 위로의 말을 건넬 것이다.
(이 리뷰는 허밍버드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