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이라는 이름은 뭔가 굉장히 익숙한 단어이다.
뭐랄까 컬러링북이 생각나는 이름이랄까.
그리고 언젠가 들었던것 같은, 봤던 것 같은 그런 책이다. 비록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들어본적 없는 세계문학책들을 읽으면서 약간은 가벼운 분위기로 전환하고 싶어서 비밀의 화원을 보았다. 어디선가 들어본 익숙한 이름에 , 생각보다 두껍지 않는 두께, 그리고 뭔가 어려워보이지 않는 책 모양도. 과연 생각만큼이나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뭐랄까 굉장히 재밌던 책이다.
나는 비밀의 화원이라는 제목에 어릴적 나만의 숨겨진 비밀아지트 같은 정원같은 것이 있었으면 했던 작은 바람이 떠올랐다. 아무도 알지 못하고, 나만 알고 있는, 그리고 정원에서 꽃이랑 나무를 심고 가꾸는 뭐랄까 한폭의 그림같았던 생각이었다. 참고로 나는 그다지 식물을 잘 키우는 편도, 그리고 뭔가를 잘 꾸미는 편도 아니라 작은 소망 바람에서 그대로 끝났다. 시도는 했지만...결국은 엄마일이 되었었다는것은 지금 생각해도 좀 씁쓸하다.
책의 첫 장면으로 한 소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무덥고 습하고 붉고 뜨거운 인도의 어느 곳 아주 여쁘고 상냥했던 한 여인이 있었고, 그 여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여인은 그 딸을 굉장히 싫어했기에 아이는 갓난쟁이 시절부터 인도인 하녀의 손에서 자랐다. 아이는 부모의 방치로 제멋대로에 이기적이고, 방안에만 있어서 파리하고 약하고, 못된 성질을 가진 못생긴 아이로 자라났다. 아이는 항상 혼자였다. 심지어 아이가 피곤하여 자는 사이 페스트병이 발병하여 가족이 죽고, 가족, 하인이나 하녀들도 모두 아이에 대한 것은 그 어느누구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떠날만큼. 사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서 배운 적도 없었다.
혼자가 된 아이는 인도를 떠나 부모를 아는 지인의 집과 친척집을 떠돌다 있었다는 것도 알지 못하던 괴팍한 곱사등이 고모부의 집에 맡겨진다.
여기까지가 심술궂은 메리양의 이야기다. 단순한 인물소개를 위한 내용이지만 메리는 그다지 사랑스럽지도 그렇다고 뭐랄까 화원이라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이다. 이런 아이라면 그다지 함께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로. 다른 사람을 고려할지도 모르고 오직 나만 세상에 있는 것 같은 아이.
"난 친구가 아예 없어요."메리가 말했다.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아야는 날 좋아하지 않았고 난 누구랑도 같이 논 적 없어요."55
그런데 그러던 중 하녀같지 않은 시골처녀인 하녀 마사와 만나 다른 사람을 '인식'하고
아이다움을 배워나간다. 그렇지만 메리에게 마사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하녀였다.
정원을 걷던중 메리는 정원사 할아버지와 울새 한마리를 만난다. 그리고 그 정원사에게 10년간 누구도 들어가지 못한 비밀의 화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왜 저러는 거예요?" 메리가 물었다.
"아씨랑 친구가 되기로 한 모양인갑네." 벤이 대답했다. "아씨가 저 녀석 마음에 든 게 확실혀. 아니면 내 장을 지지지."
"내가요?" 메리는 작은 나무로 살며시 다가가 올려다보았다.
"나랑 친구가 되어줄래?" 메리는 사람에게 말을 걸듯 울새에게 말했다."되어줄거야?"
이말을 할 때 메리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딱딱한 작은 소리도 아니었고 인도식으로 거만한 목소리도 아니었다. 참으로 부드럽고 열심스럽고 살살 달래는 목소리라 벤 웨더스태프는 아까 메리가 그의 휘파람 소리를 들었을 때만큼 놀랐다. 56
울새가 등장하면서 숨막히던 붉은색과 무감각하며 의미없던 회색깔의 세상이 화려하게 물들기 시작한다. 우리는 수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시간을 보내지만 그들이 나에게 변화를 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친다거나 혹은 내가 어떤 이들에게 변화를 만들어낼 정도로 영향을 끼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비밀의 화원에 대한 비밀과 울새 한마리는 메리의 세상을 뒤집을 만한 큰 계기를 준다.
나는 누군가의 인생을 좋은 쪽으로 바꿀만한 사람이 되길 원한다. 또한 나를 바꿔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기를 꿈꾼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이미 그런 사람을 만났지만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아직 그런 이들을 만나지 못한 것일수도 있다. 혹은 내가 심술궂은 메리처럼 그렇게 살고 있을 수도.
메리는 한가지씩 바꾼다. 마사와 대화를 하고 야생 동물도 길들이는 능력자 디컨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을 배우며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디컨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디컨은 어디든 싸돌아다니거든. 블랙베리도 히스도 갤 알텐데. 여우들도 걔한테는 자기 새끼를이 어디서 자는지 알려 주고 종다리도 둥지를 감추지 않는다고 내 장담혀."57
"우리 디컨을 벽돌 길에도 꽃을 피울 애여요. 엄니 말로는 걔는 땅에서 솟아난 것들에게 속삭인다나?"105
비밀의 화원은 앙상하게 말라붙은 회색에서 새싹이 움트는 것처럼 회색빛의 메리의 삶에 푸른 새싹을 피게한다. 이런 느낌은 컬러링 북을 칠할 때와 느낌이 비슷한거 같다. 빼곡하게 선으로 그려져 색이라고는 하얀색 면과 검은색 선 뿐이었던 복잡한 페이지에 색연필로 하나 하나 색을 칠할때처럼 하나하나 색을 채워나간다. 나는 이전에 한참 네이처라는 컬러링북을 했었는데 색을 하나하나 넣을 때마다 살아나는 꽃들과 마침내 색색의 향연이 펼쳐져 있는 페이지를 완성한후 그것을 봤을 때의 희열이란. 뭐랄까 그게 이 책을 읽으면서 느껴졌다. 주인공 메리의 삶에 하나하나 색이 칠해지며 화사해지는 것이 마치 컬러링 북을 칠하는 느낌이다.
"나도 도울 수 있을 거야. 땅도 파고 잡초도 뽑고, 하라는 거 뭐든지 할게, 아! 제발 와줘, 디컨!"135
"황야 공기가 진즉부터 아씨 몸에 좋았는가 보네요. " 마사가 말했다.
"이제 그렇게 누리끼리하지 않고 삐쩍 마르지도 않았구먼요. 머리카락도 머리에 축 늘어져 붙어 있지 않고. 머리에 힘이 생겨서 약간 바깥으로 뻣게 되었는디요."193
메리의 변화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메리와 비슷한 처지였던 콜린에게 까지 그 변화를 전달한다.
콜린은 메리가 머무는 집의 숨겨진, 악마같은 심술궂은 메리와 다를것 없는 응석쟁이 도련님이다. 항상 방안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며, 낯선이에게는 얼굴도 보이지 않는.
난 얼마 살질 못할 거야. 난 곧 아버지처럼 곱사등이 되고 말거야. 아무도 날 막을 수 없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거야. 난 곧 죽을거야...
"확실해요? 아씨는 도련님이 짜증이 나면 어떤지 몰라 그려요. 그렇게 큰 도련님이 아기처럼 운다니께요. 하지만 역정이 나시면 그냥 우리 겁주려고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기도 하지요. 우리가 감히 거역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니까."174
"도련님은 정말 세상에서 제일 버릇없는 애여요!"177
그런 콜린에게 메리는 아름다운 황야의 이야기, 디컨의 이야기, 숨겨진 비밀의 화원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사람간의 관계에서 빗장을 굳게 잠근 콜린의 문을 두드린다.
"그렇게 거대하고 메마르고 쓸쓸한 곳인데도 어떻게 황야를 좋아할 수 있어?"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메리가 반박했다. "수천가지 아름다운 것들이 자라고 수천 마리 작은 동물들이 바쁘게 둥지를 짓고 구멍과 굴을 파고 있어. 서로 짹짹거리고 노래하고 꺅꺅 얘기를 해. 다들 무척 바쁘고 땅 밑이나 나무 속, 히스 덤불 속에서 재밌게 놀아. 거긴 동물들의 세계야"183
사실 이 비밀의 화원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바로 디컨이다. 디컨은 메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처음으로 메리의 사람친구가 되면서, 동시에 모든 식물과 동물에게, 그리고 황야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조금은 엉뚱하고 귀여운 소년이다. 가끔은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아는 현자처럼 또 가끔은 울새의 친구로, 이상한 것같지만 매력있는 디컨은 꽤나 매력적인 인물임에 틀림없다.
사실상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낸 이는 디컨이다. 디컨에 대한 마사의 이야기, 디컨과의 만남, 디컨의 이야기, 디컨을 동경하며 신기해하는 메리와 콜린. 디컨이 변화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것은 그의 모습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이든 동물이든 조심스레 그 대상을 고려하는. 디컨의 모습을 배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