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대선 후보였을 때부터 함께 한 초대 정책실장 이정우 (명예) 교수가 저술한 참여 정부 회고록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다크호스 노무현 후보가 절대 우위로 점쳐졌던 이회창 후보를 이기고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만큼 강렬한 사건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 정부는 지독히도 사랑받거나 지독히도 미움받았다. 그럼에도 당당하게 소신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분은 아름다웠다.
요즘 들어 인간미 넘치고 소탈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쩍 그리웠는데 이렇게 회고록으로 그 시절을 돌아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리고 비통했다.
이정우 전 정책실장이 담은 참여 정부의 1000일은 기억 속 노무현과 알지 못하는 노무현을 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래서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 어느 쪽에서도 끈끈한 지지와 신임을 받지 못했던 외로운 싸움꾼 노무현을 좀 더 입체적으로 생생하게 새길 수 있다.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에 진심이 녹아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공격과 비난을 무던히도 받았다. 하지만 기억 속 그분은 밀짚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탄 채 쌍꺼풀 수술해서 커진 두 눈으로 있는 힘껏 웃어주신다.
노무현 대통령이 첫 장관 연수회에서 국정 철학을 전달하기 위해 한 기조연설이 기억에 남는다. 개혁 정부가 되기 위한 과제들 - 정치 개혁, 정부 개혁, 언론 개혁, 교육 개혁, 권력 기관 문제 -을 하나하나 거론하였다. 그리고 장관 ·위원장 ㆍ 수석들에게 "38명의 대통령이 되어"달라고 했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 한다. 하지만, 선거로 국민의 주권을 행사한 이후에는 대통령에게, 국회의원에게 그 힘을 위임한다. 대표들이 그 역할을 잘 수행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보를 쫓다 보니 그분이 짊어진 국민의 염원과 안녕이 잘 보였다. 얼마나 치열하게 나라와 국민을 위해 싸워왔는지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욕먹어도 좋으니 다음 정권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 "
출범부터 쉽지 않았던 참여 정부는 언제나 정공법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품을 알 수 있었다. 대북 송금 특검법, 화물연대 파업과 노사 갈등, 철도 구조개혁, 교육 개혁, 한미 간 BIT, 신행정수도, 부동산 개혁 등 결정적 순간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모진들의 대화가 육성으로 지원될 만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눈앞의 성과와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펼치고자 한 진정한 대한민국의 대통령 노무현과 그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1000일의 기록이었다.
"경기는 나쁘다가도 살아난다.
근본과 원칙을 잃지 않고 꾸준히 가야 한다.
3개월, 1년, 총선으로 결판나지 않는다."
역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귀한 자산이다. 특히나 현대사는 지금을 이해하고 풀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정우 회고록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또한 그 길 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겨레 하니포터8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노무현과함께한1000일, #이정우,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8기노무현 대통령은 이익보다 정의를 추구했다. 맹자가 양나라 혜왕을 찾아가자 혜왕이 물었다. "선생께서 불원천리 찾아오셨으니 우리나라에 큰 이익을 주시겠지요?" 맹자가 답했다.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 노무현은 평생 이익 대신 정의를, 약자에 대한 배려를 앞세웠다. 늘 손해 보고 지는 길을 갔다. 3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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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저자 이정우(특히 후반부에 짧게 정리된)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그 시대의 독자들이라면 공감하면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포인트가 많다. 그의 인생사를 읽으면 세상은 언제나 역동적이고, 나는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 그가 글을 마치며 하는 말이다. 나에겐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행동하고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고백할 용기가 있을까.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에 대한 이야기도 간간이 나온다. 문재인 수석이 언론에 노출될 때 스스로도 그렇고 주변 인물도 그가 나서는 걸 꺼려했지만 당시엔 현안을 잘 알고 다양한 사람들도 알고있는 사람이 문재인이었기에 이후에 그가 노무현의 후예를 자처해서 나설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그가 노무현 정신을 실현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노무현이 뿌린 씨앗은 대중에게도, 정치권에도 상당함을 보여준다. 더불어 그 아래서 일했던 참모들의 노력 또한 상당했음을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을 읽으며 느낄 수 있다.
참여정부는 5년 내내 보수 언론의 공격에 시달렸다. 공격받은 횟수에서 압도적 1위는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다. 2위는 누구일까? 아마 나일 것이다. 나는 대통령보다 훨씬 적지만 다른 참모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은 공격을 받았다. 그 정도 공격을 받으면 대게 대통령은 참모를 교체한다. 잘못이 없어도 교체하는 게 불문율이자 관례다. 내가 그토록 공격받으며 2년 반 동안 일한 건 예외 중의 예외다. 이건 오로지 노무현 대통령이 지켜 준 덕분이다. 언론의 압력에 굴하지 않은 이런 대통령은 일찍이 없었다. 그런 대통령 밑에서 일한 나는 행운아였다. 290p
한겨레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