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 한마디
[드디어 미야베 월드에 좀비가 나타나다!] 미미여사만이 쓸 수 있는 에도시대의 괴담 여행. 주머니 가게에서 손님들이 “이야기하고 버리고, 듣고 버리고” 규칙에 따라 누나를 위해 대신 저주받은 소년, 죽여도 죽지 않는 인간이 아닌 자 등 여러 괴담을 풀어놓는다. 시대를 막론하고 지켜야 할 것에 관한 작가의 통찰이 빛나는 역작. - 소설/시 PD 김유리
에도 간다 미시마초의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에는 흑백의 방이 있다. 객실에 손님을 초대해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꾼은 이야기를 하며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듣는 이는 흑백의 방에서만 듣고 잊는다. 별난 괴담 자리는 조카딸 오치카가 시집을 간 후, 차남 도미지로가 이어받았다. 그림에 재주가 있는 도미지로는 이야기꾼의 이야기가 끝나면 이야기를 바탕으로 묵화를 그린다.
기이한 이야기 세 편이 있다. 일본의 괴담은 우리 옛이야기처럼 다양한 신들의 이야기가 많다. 먼저 열한 살 때 웃는 법을 잃어버린 한 소년의 이야기 「주사위와 등에」, 수신과 사랑에 빠진 오라버니의 이야기 「주사위와 등에」, 죽여도 죽지 않은 ‘인간이 아닌 자’들의 이야기 「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다.
「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는 미야베 미유키의 좀비물이다. 좀비물은 다양한 주제로 우리의 두려움을 자극한다. 입동 즈음, 연못에 얼음이 얼었는지 궁금해 막대기로 연못을 휘젓던 소년은 익사체 한 구를 발견한다. 시체를 건져 처리 방법을 논의하던 중 시체가 일어나 사람을 덮쳤다. ‘인간이 아닌 자’에게 물린 사람은 눈빛이 흐려지고 몸에서는 시체 썩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익사체와 똑같은 괴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익사체는 과연 어디에서 왔는가, 그 궁금증을 해결할 괴담이 한 부부에 의해 펼쳐진다.
‘우렁이 각시’라는 전래 동화가 있다. 「질냄비 각시」라는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구메가와 강에서 나루터지기로 일하는 오토비의 오라버니는 혼담이 들어와도 늘 거절해왔다. 밤에 자고 있는데 오라버니가 누군가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을 내다보니 아무도 없었다. 오라버니는 누구와 이야기했던 것일까. 「주사위와 등에」는 미신의 결정체인 것 같다. 주사위 신이라고 들어봤는가. 신들이 모여 주사위로 노름을 한다. 주사위 신인 육면 님이 등에 신과의 노름에서 졌다. 사람들은 저주하기 위해 등에 신에게 빈다. 혼인을 위해 떠났던 누이를 누군가 저주했던 모양이다. 등에가 씌어 돌아온 누이를 대신한 소년이 등에를 타고 신들의 도박장으로 날아가 더부살이한다. 신들의 도박장에 화재가 발생해 다시 고향 마을로 돌아온 소년은 뜻밖의 사건을 목격한다. 도미지로를 지키는 오카쓰의 말이 인상적이다. ‘사람을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거다. 신과 사람의 역할에 대하여 고민해 볼 수 있었다.
기이한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우리는 이야기에 목말라 있는 모양이다.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에 책장을 들춘다. 흑백의 방에 들어온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이끌기 위해 도미지로는 추임새를 넣듯 질문을 하고 귀를 기울인다. 미야베 미유키의 이야기에서 에도 시대의 삶과 정치를 알 수 있게 한다.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작가의 바람이 그대로 드러난다. 작품에서 도미지로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며 가문의 대를 이룰 일이 없는 차남이다. 남의 가게에 고용살이를 떠났던 형이 돌아오며 소설은 끝나는데, 미시마야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듯하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항설백물어’ 시리즈처럼 계속될 백 가지 이야기가 궁금한 이유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미야베 미유키는 시대물에 특화된 작가다. 에도 시대의 사람 냄새나는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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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이 시리즈 소설은 추리 쪽보다는 괴담 쪽으로 보는 게 적절하지 않나 혼자 생각해 본다. 읽는 동안 무슨 머리를 굴릴 것도 없고(굴리지도 못하지만)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나오는 대로 귀신이든 요괴든 유령이든 좀비든 등장하는 이야기 모음집들. 누가 지혜롭게 풀어 낸다는 사건 이야기도 아니고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그런 해괴하고 이상하며 무서운 일들이 있었단다 하고 마는.
이번 책에는 세 편이 실려 있다. 어쩐지 점점 더 무서운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 읽을 때는 귀여운 맛을 주는 이야기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밤이나 잠들기 전에는 안 읽는 게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말았으니. 각 이야기의 분량도 많은 편이라 중간에 끊어 읽는 게 마땅치 않아 죽 읽어 버리는데 그게 또 그것대로 무섭고. 무섭다면서 계속 읽고 있는 나도 자꾸 무섭고(ㅎㅎ).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데 이 이야기의 핵심에 담긴 메시지는 아프고 신랄하다. 시대를 넘어서 공간과 지역을 넘어서 사람 사는 세상에 공통으로 퍼져 있는 삶의 방편들. 나쁜 정치가와 희생되는 백성들의 관계. 하필 이 책을 읽는 동안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불편한 마음이 더 살아났다. 전쟁은 누가 일으키고 누가 주도하는데? 죽고 다치는 사람은 또 누구인가? 누구에게 이로운 전쟁인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정녕 없는 것일까?
이룰 수 없는 것을 바라는 마음이 애달프다. 작가든 독자든 이만큼의 위로로 스스로의 삶을 견뎌야 하는 것인지.
총 세 개의 이야기. 첫번째 이야기는 색실 짚신을 그린 그림 한 장으로 모든 게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주사위와 등에>라는 제목의 이야기는 혼인을 위해서 집을 떠났던 누나가 등에에 씌여서 돌아왔고 안타까워 하던 동생이 등에가 든 물을 마셔버림으로 누이를 구해낸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좋았다라고 하면 좋겠으나 동생은 등에에게 잡혀서 신들이 노름을 하는 공간으로 이동되어 버렸다. 즉 현세에서 지워진 존재가 된 것이다. 여기서 그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누나를 극진히 사랑하는 동생의 마음이 잘 녹아 있으면서 주사위가 말을 하고 종이인형이 일을 하는 환상적인 세계가 펼쳐지는 기묘한 이야기.
두번째 이야기는 질냄비 그림 한장으로 모든게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루터지기인 오빠와 그를 돕는 동생. 어느 밤인가 동생은 오빠가 누구와 이야기를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집에는 오빠와 동생 둘 뿐인데 오빠는 누구와 이야기를 한 것일까. 우렁 각시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질냄비 각시>라는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마지막으로 표제작인 <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는 도미지로도 고민했듯이 한 장의 그림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워낙 스펙터클한 이야기가 막막 펼쳐지는지라 어느 한 장면을 딱 지정해서 그리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그도 그림첩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겠지. 넘겨 가며 상상하는 재미는 그 그림들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이미 밝히고 있듯이 에도 시대 좀비 이야기다. 이제와서 좀비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 유행이 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야기 상으로는 충분한 재미를 준다. 얼음 속에서 발견된 한 남자의 시체. 누구인지를 밝히려고 건졌을 뿐인데 시체가 살아났다. 발악을 하다 사람을 물었다. 대체 죽었으나 죽지 않은,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자' 이 자는 누구일까. 한 마을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용기와 좀비 아니 '인간이 아닌 자'들의 대활약과 사람 사이의 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작품. 흑백의 방에서 이야기를 듣고 버리는 역할을 하는 도미지로는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자신의 사촌동생이기도 하면서 전에 이 방을 지켰던 오치카가 아이를 낳게 되면서 흑백의 방은 당분간 문을 닫는다. 편집자 후기에 따르면 이 부분을 오해한 독자들이 이 미시야마 시리즈가 끝나는 것이 아니냐고 문의가 빗발쳤다는데 아직은 때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듯 하다. 나도 이 99개의 이야기를 다 읽기 전에는 못 죽을 것 같고 작가님도 다 쓰기 전에는 못 죽을 것 같고 출판사도 다 번역해서 출간하기 전까지는 못 망할 것 같다.
늦더위도 오래 앉아 있는 손님처럼 질질 끄는데 사라질 때는 인사도 없다. 그리고 가을은 닌자처럼 정신을 차려 보면 거기에 있다.
225p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딱 지금의 계절을 아주 적절하게 담아냈다 생각했다. 여름도 아닌 그렇다고 가을도 아닌. 그러다 겨울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