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권 책 읽기와 한 달에 한 권 서평 쓰기 시작하면서 아무래도 책에 관한 관심이 전부터 많긴 했지만, 요즘 더 많아진 관계로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책과 관련된 내용을 검색하고 올리다 보니 똑똑한 스마트폰이 나에게 새 책 소식들을 광고로 잘 안내해주고 있었다.
그러다 출판사에서 새 책이 나오면 서평단을 모집해서 서평 이벤트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설마 나한테까지 오겠어 하는 마음에 그냥 신청이나 해보자 했는데 덜컥 선정되어 이 책을 받게 되었다.
제목은 오색찬란 실패담. 실패라고 하면 우울하고 슬프고, 위로해줘야 할 것 같은데 오색찬란이라니, 오색찬란은 ‘여러 가지 빛깔이 한데 어울려 아름답게 빛남’을 뜻하는 단어로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실패를 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란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어떤 실패면 오색찬란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한 실패 중에 그런 실패가 있었나? 난 항상 우중충했던 거 같은데….
표지에 있는 사람이 책을 쓴 정지음 작가와 닮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무념무상의 표정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으며, 뒤표지에 쓰여 있는 ‘인생은 선택, 긍정은 필수!’라는 말이 아모르 파티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흥얼거리게 되었다. 천부적 낙관의 일인자, 정지음의 칠전팔기 장전법이라고 소개가 된 걸 보니 아마 보통의 생각과 사고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도대체 어떤 실패를 했고, 어떤 생각을 가지면 실패를 오색찬란하다 할 수 있는지 얼른 읽어보자.
“어차피 우수한 인재들만 모아놔도 누군가는 낙오자가 되고 만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본인의 자리를 찾는 것이 난다고 생각한다. … 실수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실수하더라도 괜찮다는, 관용의 분위기를 만드는 게 먼저 아닐까 싶다.”
- 알면서 하니까 실수지, 한 번 더 그러면 실력이고’라는 미생의 대사가 떠올랐다. 나는 그런 실수를 괜찮다고 다독여줄 수 있는 상사인가? 아니면 그렇게 봐주다가 또 실수하면 어떡하냐고 따지는 꼰대인가
“망망대해에서 혼자 되는 것이 외로움이라면, 고독은 반대로 군중 속에서 홀로 남은 일인 것 같다.”
- 고독을 참 잘 묘사한 표현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난 외로움보다는 고독 가운데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이겠지? 외로움이라면 그걸 벗어나기 위해 누군가기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고독은 내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통제 없는 자유는 감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유를 쟁취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무방비한 자유가 나를 잡아먹고 있었다.”
- 이유로 오히려 자유가 두렵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누군가의 통제와 지시를 통해 생활해 왔던 경험 때문에 혼자서 무언가를 결정하고 움직이는,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게 쉽지 않다. 가끔 직원들도 나에게 얘기한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할게요. 근데..나도 그러고 싶단다.
“우울증이란 어쩌면, 어른의 중압감을 짊어진 채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현상일지 모른다. 우울증자에게 필요한 언어도 어린 시절에 들었거나 듣지 못했던 말이 아닐까.”
- 고독에 이어 우울증까지 이렇게 정확하기 주관적 정의를 내리다니. 이 작가는 정말 상당한 내공의 소유자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부럽다. 하긴 그러니 작가란 타이틀을 얻을 수 있는 거겠지.
“글씨기 규칙을 설정하지 말자. 글씨기의 묘미는 어떻게 하면 잘 쓰는지 모르면서 구석구석 헤매는 과정이 아닌가?”
-쓰고 싶은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래서 나도 ‘그래 글쓰기 규칙 따위는 무시하고 그냥 막 써보자’ 했는데 아니 아직 난 그 정도 수준이 아니란 걸 금방 깨닫고는 ‘그래 난 아직 규칙을 가지고 써보고 그 규칙을 매번 확인하지 않고 쓸 정도 수준이 되면 그때 가서 규칙을 무시하고 써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기가 있어야 응용을 하지….
직장을 다니다 프리랜서 작가로, 그리고 다시 직장과 작가를 겸하는 능력자로 살아가는 모습이 부러웠다. 직장인으로서의 어려움을 모두 겪고 나서 프리랜서가 되었지만 정작 직장인을 부러워하는 모습도 생생하게 그렸고,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매력의 소유자이다. 아프리카 오지에서도 혼자 충분히 즐기며 살아갈 것 같으면서도, 주위에 친구가 없으면 외로워 힘들어 할 것 가기도 한, 내 모습과 참 비슷한 것 같았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했던 실패들을 돌아보았다. 그러고 내린 결론은 내가 했던 실패들도 우중충한 게 아니었다. 오색찬란까지는 아니라도 이색찬란 정도는 되지 않을까? 잦은 이직, 학위논문 포기, 작심삼일 등등. 그래도 지금은 그 모든 것들 다 내려놓고 난 원래 그런 사람이라 인정을 하니 실패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에세이 책들의 특징이 가볍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 서적처럼 지식을 받아들일 필요도 없고, 자기계개발 서적처럼 내 삶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에세이를 빙자해 교훈을 주거나, 훈계하는 내용이 닮긴 책들을 읽다 보면 불편하다. 그런데 이 책은 전혀 그런 것도 없고 그냥 난 이렇게 살고 있고, 남들이 보기엔 실패한 삶일지 모르나 그 실패도 책 제목처럼 우리의 인생에서는 모든 것이 그저 오색찬란한 경험일 뿐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읽다 보면 나와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어차피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다. 남들 눈에 어떻든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랴.
실패,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내 삶의 일부일 뿐이다.
이 책은 꼭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추천을 해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면 너무 단순한 결론이다. 그렇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 이 책을 한번 읽는다고 해서 실패를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이런 책은 그냥 나처럼 실패에 큰 두려움 없는 사람들이 읽으며 그래 그렇지 하면서 맞장구를 치는 맛이 있는 책이다. 그러면서 내가 생각지 못한 실패를 감탄하며 응원하고 비슷한 실패를 한 나를 위로하면서 읽으면 된다.
‘실패하지 않기’는 실패지만
‘실패에 흔들리지 않기’는 성공입니다.
책 맨 뒤표지에 적힌 이 문구가 참 좋다. 이런 마음이면 어디서 뭘 해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모두 그랬으면 좋겠다. 실패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실패를 했어도 그깟 실패쯤이야 라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다. 자기 모습대로 잘 살아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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