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이 아니라 인생 3기를 앞둔 출사표
나는 교과서에 나오는 클래식은 알아도 우리시대의 클래식을 잘 모른다. 기껏해야 피아니스트 백건우, 정명훈 남매, 그러니까 ‘정 트리오’ 정도나 알까? 그래서 나는 백혜선(1965~ )이라는 피아니스트가 낯설다. 그런데 우리 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일본 사이타마현 문화예술재단이 선정한 ‘현존하는 세계 100대 피아니스트’라는 수식어에 그녀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궁금증이 생겼다.
서울 예원학교 2학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건반 위의 철학자’로 불리는 러셀 셔먼과 변화정 부부의 가르침을 받았다. 1989년 월리엄 카펠 국제 콩쿠르 1위를 시작으로, 1990년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 199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등에서 입상하여 국내에서는 “콩쿠르 여제”로 통했고, 1994년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1위 없는 3위라는 성적으로 한국인 최초로 상위 입상을 하면서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수상 직후 서울대 음대 사상 최연소 교수로 임용되었으나, 10년 후 서울대 교수직을 박차고 미국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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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클리블랜드 음악원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모교이자 미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음악 대학인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 소개를 보면, 백혜선은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아직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현역 연주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번쯤 ‘금의환향(錦衣還鄕)’하는 기분으로 자신의 성공담을 쏟아내고픈 유혹을 받지 않았을까?
그런데 저자는 다른 선택을 했다. 과거의 영광을 회고하는 대신, 실패담을 되씹으며 인생 3기를 향해 출사표를 던지기로 한 것이다. 인생 3기라고 해서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음악 인생을 어릴 적 피아노를 접하고부터 미국에 건너간 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입상하기까지를 제 1기, 최연소로 서울대 음대 교수에 임용되고 나서 겪은 부침부터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어렸던 아들딸이 성장하고 선생이자 연주자로 다시 선 지금까지를 제 2기, 그리고 앞으로 맞닥뜨릴 시기를 제 3기라고 구분한 것이다.
첫 좌절, 수영
백혜선이 처음 열정과 재능을 느낀 분야는 수영, 그 중에서도 자유형이었다.
내가 단출하게나마 스스로의 재능을 처음 발견한 영역은 수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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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재능이라고 한다면 다른 아이들보다 신체 조건이 유리하다는 정도였던 것 같다. 물이 무섭지도 않았는지 몸으로 물살을 가를 때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 느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또래에 비해 월등히 큰 키 덕분이었을까. 나는 비슷한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또래 아이들보다 조금 앞서 있었다. 운동 신경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라도 물속에만 있으면 칭찬 세례가 연거푸 이어졌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pp. 21~22]
열세 살이 되던 해에는 경북 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가 서울 전지훈련을 가서 만난, 최윤정은 그녀와 달리 타고난 천재였다. 얼마 후 소년 체전에서 만난 최윤정은 그녀에게 반짝이는 천재의 꽁무니를 멀찍이서 뒤쫓는 범인의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보다 좋은 신체조건과 수영장에서 살다시피 하는 노력으로도 타고난 천재를 넘어설 수 없었던 것이다.
피아노 콩쿠르, 영광과 좌절
1989년에는 월리엄 카펠 콩쿠르에 나가 1위에 오르면서 국제 문대에 화려하게 데뷔했고, 1990년에는 여섯 명의 결선 진출자에 드는 것만도 대단한 영예인 리즈 콩쿠르에서 5위를 했다. 또 1991년에는 벨기에에서 열리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연속 스무 시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양의 연습을 강행한 끝에 4위를 차지하기까지 했다.
‘백혜선은 콩쿠르에 나가기만 하면 무조건 된다’는 부러움과 질투 섞인 말이 국내의 젊은 음악인들에게 떠돌았다. [p. 73]
“콩쿠르 여제”라는 별명을 스스로도 당연하게 여기며 나간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는 그녀에게 또 한 차례의 좌절을 안겼다.
그런 분위기를 타고 1993년 6월에 미국에서 가장 큰 콩쿠르인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 나갔다. 평소보다 적은 수라고 할 수 있는 사십에서 오십 명의 연주자만을 추려 참가시켰는데, 그 중에서도 강력한 후보인 예닐곱 명에게는 특별히 취재를 위한 카메라와 작가가 하나씩 따라다녔다. 콩쿠르 측에서 ‘이 사람은 분명히 입상할 것’이라고 예상한 참가자들이 대상이었고, 거기엔 물론 나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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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혜선 백이 떨어지면 난 이번 콩쿠르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런데 그 이상한 일이 정말로 벌어지고 말았다. 본선 1차 실격. 내 평생 1차에서 떨어진 콩쿠르는 처음이었다. [pp. 73~74]
또다시 좌절한 그녀는 앞날을 냉정한 판단해보고, 미국 장거리 전화회사 MCI에 영업직으로 들어갔다. 영업직도 천성에 맞았을까? 두 달 만에 매니저 승진 제안을 받을 정도로 능력과 실적을 인정받았다.
그 때, 그녀의 은사인 변화경에게서 연락이 왔다.
“콩쿠르 준비는 하고 있고?”
매니저 승진 소식까지 전하지는 않더라도 솔직한 마음을 전할 차례 같았다.
“선생님, 저는 피아노는 포기했어요. 음악으로 돈 벌고 사는 건 제가 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차이콥스키는 나가봐야 되지 않겠니?” [p. 77]
고민 끝에 그녀는 그녀가 참가할 수 있는 마지막 콩쿠르인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 지원했다. 여기에서 1위 없는 공동 3위에 입상하면서 다시 피아노의 길을 걷게 되었다.
1인 3역의 좌절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나는 서울대를 종착역으로 여기거나 실제로 그렇게 되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보았다.
학생이고 교수고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은 서울대라는 결과에 운과 배경과 실력이 어떠한 비중으로 작용하였는지 헷갈려 하는 이들이 많았고, 교수들 역시 주변에 에헴 하며 으스대지만 내실은 텅 빈 이들이 많았다. 잠깐 머리에 쓸 감투를 너무 눌러써서 감투가 곧 자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긴, 십 년이면 나도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다.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었고 내 것이 아닌 자리였다. [p. 238]
학교에서 아무리 젊은 연주자를 위해 편의를 봐준다고 해도 직장은 직장이었다. 서울대 교수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너무나 많은 시간을 가르침에 쏟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주에 가르치는 시간이 서른 시간을 넘어서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연주자로서 존재할 수 없었다. [p. 251]
결국, 교육자, 연주자, 엄마로서 1인 3역을 수행하기가 너무 힘들었고, 또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고 여긴 백혜선은 서울대 교수 자리를 박차고 미국으로 떠났다. 이때의 경험 탓일까? 그녀는 교수직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손열음, 김선욱 같은 젊은 연주자들의 용기와 능력이 부러워하는 말도 남겼다.
교수가 되어 십 년 정도 지나면 어느덧 연주자로서의 빛을 잃어, 대중들에게조차 연주자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교수를 함으로써 안정을 얻되 자칫 연주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몸소 경험을 해보고 나서야 아프게 깨달은 그 사실을 이들은 어떻게 미리 알았을까? [p. 254]
교육자로서의 벽, 러셀 셔먼
콩쿠르와 서울대 교수의 간판을 벗어버리고 그녀가 다시 교수가 된 것은 2013년이다. 8년 만에 다시 교수가 된 것이다.
참된 스승은 자신이 아는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이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보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오랫동안 선생님의 모습을 지켜봐 왔고 이제는 스스로 가르치는 일을 오래 해오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가르치는 것보다 학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게 한다는 선생의 일이 몇 배는 어렵다는 것을. 셔먼 선생님처럼 가르치는 사람에게 그만한 실력이 없다면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셔먼 선생님은 희생하지 않는 연주자였다. 말하자면, 가르침으로 인해 자신의 연습과 연주가 희생되는 것을 한 치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혼자서 음악에 대해 생각하기로 엄격하게 정해둔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레슨 시간에는 ‘학생이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파악하기 위해 온 초점이 학생에게만 맞춰져 있었다. [pp. 255~ 256]
학생에게 가장 좋은 스승이란 ‘저렇게 되고 싶은 사람’이다. 셔먼 선생님은 그 기준에 완전히 부합하면서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기까지 했다. 그분은 ‘저렇게 되고 싶지만 도저히 될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p. 257]
백혜선이 교육자의 길을 걸으면서 스승인 ‘러셀 셔먼’이라는 벽에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저렇게 되고 싶지만 도저히 될 수 없는 사람’을 아는 것만으로도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졌을 테니까. 그럼에도 그녀는 한 걸음 더 나가기 위해 노력했고, 또 노력하고 있다.
여러 차례 좌절을 겪으면서도 계속 나아가는 그녀도 누군가에게 ‘저렇게 되고 싶지만 도저히 될 수 없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다산북스’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좌절의 스페셜리스트'라고 부른다. 아마도 처음으로 겪었던 수영선수로서의 삶에서도 그랬었고, 예원학교에 진학하고서도 마치 악보를 사진 찍듯이 기억하는 친구들을 보면서도 그랬을 것이다. 그녀가 말했듯이 게으른 천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자신이 무엇인가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그것에 대해 더욱 호기심을 느끼게 될 것이고, 더욱 그것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다. 만약 자신이 하는 무슨 일인가에 대해 게으른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분야에 관해 진정한 천재는 아닐 것이다. 그저 단순히 그 분야에 약간의 소질이 있을 뿐.
사실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서도 그렇다. 뭔가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가장 오래 공부한 사람일 것이다. 어느 독서실에도 쓰여 있다고 하지 않던가.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사람이 그 독서실에거 가장 늦게 남아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공부라는 분야에, 특히 수학이라는 분야에 있어서 천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국민학교 5학년이었을 것이다. 나름 학교에서 산수를 좀 한다는 학생들을 따로 모아 보강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때 6학년 선생님이 오셔서 우리들에게 6학년용 문제를 칠판에 내셨다. 다른 학생들은 공책에 받아 적고, 문제를 푸느라 난리였다. 그런데 내 눈에는 풀이방법이 보였다. 머리로 암산을 하고, 몇 가지 계산을 적어 바로 답을 구했다. 그리고 그중에 제일 먼저 손을 들고 답을 말했다. 물론 정답.
6학년에 들어서 지방 시 대회에 출전을 했다. 나름 괜찮은 성적이긴 하지만 1등은 아닌 금상, 2등이었다. 그래도 도 대회에 참석은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청 소재지로 가서 또 시험을 봤다. 그런데 이때도 또 금상, 2등이었다. 학교 내에선 내가 1등이긴 하지만 시 대회나 도 대회를 나가니 1등을 하지 못했다. 중학교때도 그랬다. 2학년, 3학년 모두 교내에선 내가 1등이긴 했지만 시 대회에선 대상을 차지 못했다. 나는 그저 수학에 조금 소질이 있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대상, 대통령상같은 것은 못 받아봤다. 늘 금상, 장관상에 그치는 수준, 결국 고등학교 2학년때 운이 없게도 돈을 밝히는 그런 담임을 만났고, 소위 촌지를 찔러줄 여력이 없었던 우리 집 형편에 나는 그 선생한테 제대로 찍히고 말았다. 별것 아닌 일에도 교무실에 불려가기 일상이었고, 별 일이 아닌 것에도 혼나기 일수였다. 덕분(?)에 공부에 손을 완전히 놓았다. 수업시간을 멍하니 아무 생각없이 보냈고, 시험을 앞둬도 전혀 공부하지 않았다. 결국 전교에서 한 자리 숫자였던 내 등수는 세자리까지 내려갔다.
그녀에겐 그래도 자신을 지원해 주는 어머니는 계셨다. 비록 아버지께서 그렇게 피아노를 배우는 것에 반대하시기는 했지만 어머니라는 원군이 있어서 미국으로 유학도 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첫 독주회를 그녀의 아버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연을 관람하셨다. 아버지게에 가장 자랑스러운 날이자 신의 축복이라고 하셨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부모님이 모두 내 편이 아니었다. 뭐 어쩌랴, 내 복이 그 수준인 것을,
어느 분야에서나 그렇지만 위대학 업적을 이룬 사람 뒤에는 그를 가르쳐 준 스승이 있다. 물론 청출어람처럼 스승보다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업적이란 것 자체로만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론 그 업적을 이루기 위해선 스승의 훌륭한 가르침이 있어야 한다. 베토벤에게는 하이든이라는 스승이 있었고, 살리에르라는 스승도 있었다. 과학에 있어서도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발견, E=mc²이라는 질량이 곧 에너지가 된다는 법칙과 상대성 원리가 있지만 그 역시도 그의 생각을 수학적으로 풀이를 해내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에서도 그런 구절이 있다고 하더군. "당신과 나의 공통점은 수학을 못한다는 것이잖소"
삼성의 이건희회장은 한때 마누라와 자식을 빼곤 모두 바꾸라고 하면서 혁신의 중요성을 설파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많이 혁신하는 사람은 많이 기여하고, 조금 혁신하는 사람은 조금 기여하지만, 절대 다른 사람의 뒷다리를 잡는 행위는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 이건희도 처음 경영자 수업을 받으면서 삼성전자를 큰 회사로 키우려고 했다고 한다. 다음 세대는 전자산업이 미래를 이끌 것이라 생각해서 그랬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처럼 반도체 사업이 잘 되지 않자 아버지 이병철 회장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병철 회장이 일본의 NEC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반도체란게 뭐냐?' 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NEC 회장이 '당신은 그런거 잘 몰라도 된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가 뭔가 대단한 것이라서 저렇게 대답한 것이라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이건희의 사업을 도워줬다고 한다. 미래를 내다본 이건희도 대단한 사람이지만 단순한 한 문장만으로 사업의 성격을 꿰뚫어 본 이병철 회장은 더 대단할지도 모르겠다.
백혜선이 위대한 피아니스트라 불릴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안정적인 자리인 서울대 교수라는 자리를 떠났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인가에 안주하는 이상 사람은 더이상 발전하지 못한다. 계속해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세상에 뒤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안정된 자리를 떠나 세상을 떠돌며 공연을 하고, 자유롭게 연주를 하면서 기량을 연마하고, 그러면서 후학을 기르는 것이 그녀를 이렇게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만들 수 있었으리라 본다.
나는 이렇게 그녀가 보여준 삶의 작은 일면들을 들여다보며 내 삶을 되돌아 본다. 혹시 지체하는 것은 아닌지, 세상을 따라가기는 하는 것인지 말이다. 위대한 사람이 지나간 자리엔 깊은 발자국을 남기며, 큰 그림자를 드리운다.
마치 잔잔한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다.
영화에 나오는 음악과 영상, 그리고 스토리 모두 좋았다.
*영화 : #나는좌절의스페셜리스트입니다
*음악 : 이 책을 읽는 동안 백혜선님의 피아노 연주와 함께 했다. 책을 읽는 동안 음악과 함께 하길 추천해본다.
*영상 : 새 이야기가 시작되는 페이지마다 나오는 명화들, 나도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여서 너무 반가웠던 레이크 코모의 전경(이 에피소드에서는 잠시 책 읽기를 멈추고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호수의 이미지를 찾아봤다.)
*스토리 : 피아노 연주자의 치열한 삶과 그 안에서의 많은 고민과 선택, 그리고 삶에서의 많은 역할 중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과 '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이야기.
에세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주관적인 한 개인의 내용이라 공감을 하기가 쉽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에세이를 굳이 찾아서 읽는 편은 아니다. 이 책 역시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피아니스트의 좌절이라니 진짜 좌절이 담겨있을까?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인생에서 가장 고민하고 있는 내가 없는 것 같은 삶, 현실에 안주하는 삶에 대한 고민을 하는 이 시점에 이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어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속적인 공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어떻게든 좋은 것을 발견하려는 태도,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 좋은 습관 들이기, 아무런 성취가 없는 하루에도 과정만은 충실히,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도전하는 것 등 삶에 대한 태도와 나아갈 용기를 주는 메세지로 가득 찬 책이다. 더불어 14시간의 연주 한계 테스트, 매일 반복되는 연습, 타고난 예술성이 아니라 영감을 얻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마치 겉은 우아하지만 수면 아래의 발은 몹시 분주한 백조같은 피아니스트의 삶처럼 나는 이 만큼의 노력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내 모든 것을 다 쏟아부을 만큼 후회 없이 노력한 적이 있는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인생은 절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부분에 극히 공감한다. 그래서 나도 주어진 삶 속에서 그 때 그 때 현실에 충실하게 살고자 노력하는데 인생의 선배가 그런 나의 생각이 옳다는 것에 공감을 해주는 것 같아 기뻤다.
이것이 정녕 나의 삶인가 하고 각성한 현 시점에서 이걸 그대로 넘기지 말고 눌러 앉지 말라는 조언, 배움이 끊기는 날이 인생이 끊기는 날이라는 말을 가슴 깊이 새겨본다.
연주자로서의 나를 잃지 않고 그 길을 걷고 있음에 존경을 표한다. 이 책을 잃고 나도 잃어버린, 혹시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나를 다시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서평단에 신청, 감사하게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