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의 행위가 무릇 타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무심코 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스스로 경계하고,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주의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타자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가 점차 이 세계를 점령하는 인상이 짙어지고 있는 듯 하기만 하다. 대체 버젓이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은 어떤 존재인가? 빌런(villain;악당)을 제재로 하는 이 작품집을 손에 든 이유이다.
인간 뇌의 신경생리학적 구조에 기댄 「샐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라는 작품부터 오늘 AI의 첨병역할로서 현실의 모든 물리적 세계를 재구성해 인간을 디지털 세계로 모델링한 세계로 급속하게 전환시키고 있는 ‘메타버스’의 윤리적 정치적 실체를 이야기하는 「수정궁의 유령」, 그리고 우상화된 연예인과 팬의 관계를 바라보는 「우세계의 희망」, 자연의 절대 지배자로 자임하는 인간의 오만과 편견을 우주 동화로 지펴낸 「치킨 게임」, 마지막으로 세계의 모든 타자들을 한낱 도구로 여기는 어느 투견업자의 패악질을 그리고 있는 「송곳니」까지, 이들 다섯 작품은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 인간의 적나라한 자화상일 것이다.
작품집의 첫 편에 앞서 서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기쁨과 슬픔이 함께 하듯, 선과 악도 공존하며 서로의 거울 역할”을 한다며, “우리는 항상 정의로운 마음을 가져야만 하는 걸까요?”라며 인간 악(惡)의 보편성을 당위시하고 있다. 물론 인간의 저 밑바닥에 침잠해있는 심연의 어두운 그림자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중립적 표현들로 인간의 악과 그릇됨을 정당화하거나 혹은 본질을 흐리멍텅하게 하여 도덕적 기회주의적 성향과 자기기만적 존재임을 합리화하려는 의도에는 저항감을 느끼게 된다.
인간들마다 어떤 도덕적 믿음을 하고 있는가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러함에도 ‘인간을 자연의 대상과 다른 대상들과 구분해주는 의지, 즉 도덕적 공과에 대한 개념의 선험적 능력’을 지녔다는 칸트의 지적처럼, 인간은 선하고 악한 것, 옳거나 그른 것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 만일 이를 부정하게 되면 어떠한 악이나 그릇됨에 대해 도덕적 비난을 가할 원천 자체가 사라지고 만다. 결국 인간에게 도덕성이라는 것 자체를 박탈하여 혼돈이 휩쓰는 무법천지의 세상이 바른 세계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게 된다.
빌런을 선의(善意)로 해석하는 이들에게 나는 강한 불쾌감을 갖는다. 이러저러한 상황과 배경의 불가피성이 한 인간을 악한으로 만들었으니 그 존재에게 도덕적 처단이 아니라 연민과 동정, 관용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야릇한 논리를 내세우곤 한다. 더구나 이러한 이데올로기에는 이분법에 대한 강한 회의가 있는데, 정말 우리네 믿음에 중립적인 지대가 존재하는 가에 대해 나는 반감을 표시하게 된다. 이를테면 계급과 지배이데올로기를 인정하면서 계급투쟁을 부인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는 본디 당파적인 존재임을 부정하는 것은 위선이요 기만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성선설과 성악설을 모두 인정하는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는 말은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하나마나 한 말에 불과하다. 도덕이란 인간 의지의 선택으로 발생한 결과에 대한 규범이다.
김구일 작가의 단편 「송곳니」는 가장 직접적이고 저열한 빌런을 등장시키고 있다. 외딴 산골 지역에 투견을 길러 투견도박으로 더러운 부를 쌓는 인간의 잔악성이 진동하는 썩은 내와 함께 작품 전반을 채우고 있다. ‘수기’라는 어린 소녀는 투견 우리에서 학대받고 신음하는 개들을 풀어주고 보호하기위해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악의 화신인 투견업자 서재형에 대항한다.
읽으면서 지역의 대표자로 선출되어 행세하는 현실의 한 인간을 떠올리게 된다. 분쟁있는 호텔을 사들여 은밀히 지하층에 도박장을 운영하며, 지상에서는 지역 유지행세를 하는 인간. 사람이라 보기 어려운 전형적인 악인이다. 자기 이익에 반하는 모든 타자는 폭력의 대상이며, 생명을 죽이는 것에 어떤 도덕적 의식조차 없다. 악을 선택한 인간, 아니 인간에 경멸을 표하기에 가장 적절한 모델인 존재로부터 작가는 성악설을 길어 올린다. 빌런은 단지 악한 존재이지 때론 선한 존재라는 말로 희석되는 그런 부류가 아니다. 내 도덕적 신념과 가장 가까운 작품으로 느껴졌기에 그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에 상응하는 이유있는 빌런, 즉 악행에 정당화를 부여하려는 존재를 부각시키는 최구실 작가의 「샐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스트레스나 트라우마가 되어 정신을 고통에 빠뜨리는 기억으로 기능하는 뇌 세포만이 파괴되어 긍정적 신호만으로 삶을 살아가는 인물에 대한 기만을 주제로 하는 것 같다.
김샐리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변이 뇌세포를 가진 존재이고, 자신의 뇌세포를 연구하여, 트라우마로 고생하는 세상의 인간들에게 고통을 지우고 정상적 삶의 존재로 회복시키려는 ‘기억소거협회’ 연구책임자다. 여기에 옛 동창생인 최은수가 연구원으로 입사하지만 김샐리는 친구를 기억하지 못한다. 최은수는 미국 유학시절 김샐리의 신경과학의 발견을 읽게되고, 최샐리가 되어 〈트라우마 증폭세포의 기습적 증식〉이란 논문을 써낸다. 두 인물의 성격과 행위를 바라보며 독자는 영구적 행복만을 추구하는, 그리고 이타적 행동만을 하는 김샐리와 인간의 고통을 실감하며 사는 최샐리를 통해 인간다운 삶이란 진정 무엇인지를 생각게 된다.
“샐리야..., 내 이름 기억나?” 김샐리는 최샐리의 물음에 고개를 내젖는다. 뻥 뚫린 기억, 쪼그라든 뇌의 어설픈 기억, 그 긍정의 기억만 하는 뇌, 매양 행복하기만 한 인간의 이타적 삶이란 것이 친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라면 과연 그것이 진정한 기쁨이고 행복이겠는가라는 물음일 것이다. 이것은 이에 저항하는 빌런 최샐리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동하며 도덕적 회색지대를 드러내려한다. 이러한 경우 두 인물 중 진짜 빌런은 누구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만일 행복 만능의 이타적 존재의 맹점을 지적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이러한 맹점이 지닌 인간적 존엄성의 결여를 지적하는 것이라면 두 인 물 모두 빌런이라 할 도리밖에 없다. 결국 빌런에 대한 연민, 그 동기의 도덕성을 가지고 논의하여야 하는 까닭이다. 즉 동기가 애초에 그릇된 것이라면 모두 부도덕하다는 칸트의 도덕논리에 이른다. 결과주의냐, 동기주의냐는 여전히 고달픈 인간 의식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 이상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항상 이러한 딜레마를 상정하고 도덕적 상대성을 주장하지만 도덕은 시대가 지니는 상황적 의식을 배제하지 못한다. 모든 시대와 장소에 한결같은 진리란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빌런을 정의하려는, 도덕논리는 사실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단지 정서적 갈등의 문제일 뿐인 것 아닐까
김상원 작가의 「수정궁의 유령」은 희망찬 미래 세계라는 메타버스, 가상의 공간 속 인간들의 분신이야말로 ‘정신’, 그 자체인 세계를 추구하게 된다며, 그 선점을 선전하는 디지털 세계에 잠재된 문제들을 수면위로 부상시킨다. 한 여성이 고글을 쓴 채 미친 듯 춤을 추면 사지와 몸통과 머리가 뒤틀린 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추적하는 추리물의 형식을 띠고 있다. 실재하는 인간은 ‘본체’로 불리고, 가상공간의 ‘아바타’는 실재처럼 설명된다.
본체가 사망한 아바타의 아이템이나 리플레이 영상까지 상업적 자산으로 거래되는 오직 경제적 효율만 존재하는 비정한 공간이다. 아바타와 실존하는 인간을 살해하는, 즉 가상의 이미지가 본체를 살해하는 괴물화된 디지털 세계를 그리고 있다. 메타버스가 지향하는 세계를 마치 유토피아처럼, 전통적 지식들의 세계를 전복하며 인간 욕망이 평등화된 세계를 주장하지만 실제, 현실이란 소수의 플랫폼 소유주와 돈을 추구하는 정보기술 독점자들의 추한 세계의 디지털화로의 이전일 뿐임을 회의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유머와 재치넘치는 문장들과 메타버스 세계에 넘쳐나는 쾌락과 도덕적 부패의 근원을 탐색하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김달리 작가의 「우세계는 희망」과 엄성용 작가의 「치킨 게임」 또한 빌런이란 제재에 부합하고 있지만 서사의 축을 이루는 제재는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우세계...」는 남자 영화배우 스타의 팬카페 구성원인 여성들의 시기와 질투, 소유 욕망의 진부한 다툼과 이를 이용하는 배우의 탐욕적 이해의 놀이에 대한 비극적 전경이다. 「치킨 게임」 또한 흔한 자연의 지배자로 우뚝 선 인간의 오만과 편견을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돌연변이로서 인간지능을 초월하는 ‘슈퍼 닭’을 등장시킴으로써 인간 호모데우스를 농락한다.
사실 인간이라는 종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인류를 빌런이라 칭함으로써 빌런이란 의미를 지워버린다. 인간의 도덕적 경계를 범주화하는 용어가 대상의 전체에 미치면 실제로는 아무 뜻도 없는 말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은 돋보인다. 즉 뛰어난 서사의 구성적 역량으로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재미만큼은 독보적이다. 그럼에도 너무 투명해서 마치 킬링타임용 영화 한 편을 본 인상과 유사한 기분이다. 아무튼 독특한 표제를 한 이 작품집은 요즘 범람하는 회색지대의 인간들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 준 것은 분명하다. 나는 '안티 -히어로'에 열광하는 낭만주의를 계승하는 요즘의 상대주의적 도덕관에 동행하기가 버겁다.
안전가옥 앤솔로지 9권이다. 언제부터인가 안적가옥 시리즈가 기업과 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책은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안전가옥의 네 번째 공모전 수상작 모음집이다. 그런데 소재가 재밌다. 히어로가 아닌 빌런이다. 얼마 전 빌런도 아닌 빌런의 조수 역할을 하는 사람을 다룬 소설을 읽었다. 점점 소재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이 재밌다.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어쩌 영웅과 악당 들만 있겠는가. 그리고 스테레오타입의 영웅보다 가끔 악당들이 더 흥미를 자아내는 경우도 많다. 하는 일은 악한 일이지만 그 대상이 악당인 경우에 한정하는 소설들도 요즘은 많이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런 소설들을 좋아한다.
최구실의 <샐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란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 것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란 영화다. 제목의 패러디인가? 하지만 소설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두 명의 샐리가 서로 하나의 연구를 위해 만난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세포를 가진 김샐리의 연구다. 그들의 연구는 성공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성공의 이면을 파고 든 이야기다. 달콤한 성공의 열매를 나누어야 할 때 최샐리가 사라진다. 그리고 이 연구의 성과를 누리는 사람들이 이상한 일을 경험한다. 당연히 그 악당이 누군지 금방 알 수 있다. 진짜 이야기는 김샐리의 원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일에 대한 것이다.
김상원의 <수정궁의 유령>은 메타버스를 이용해 새로운 빌런을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빌런이 누군지, 어떤 악행을 저지르는지 보다 메타버스수사계 범죄행동분석팀 양익수 팀장과 김도반 경장이 이 낯선 세계 속에서 활약하는 소소한 장면들에 더 눈길이 갔다. 단숨에 원하는 곳으로 휙~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실재처럼 헉헉거리면서 움직인다. 현실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면서 메타버스 속에서는 돈까지 들여가면서 운동한다. 만약 어딘가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을 묘사한 글을 읽었다면 머릿속에 몇 가지 이야기가 떠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 김도반 경장이 재밌는데 시리즈로 나와도 좋을 것 같다.
<우세계는 희망>은 16년간 배우 우세계를 뒷바라지 한 팬 카페 이야기를 다룬다. 개인적으로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어 낯설다. 기사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본 팬들의 마음은 대충 짐작할 뿐이다. 팬클럽 ‘우세희’의 운영진과 친한 세진은 그곳에서 김마리를 만난다. 그녀는 말기 암 환자다. 극성 팬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나오고, 팬클럽 회장이 죽으면서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김마리가 팬클럽 회장이 된 것에 분노한 세진의 조사와 팬심은 뒤섞인다. 사생팬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들에게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기에 완전히 긴장감을 풀 수 없다. 결말에 오면 나의 예상 중 많은 부분이 무너지고, 우세계에게 최고의 빌런은 누굴까 하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엄성용의 <치킨 게임>은 sf판타지 소설이다. 인구 폭발 때문에 우주 진출을 바라는 지구인과 식량 부족 문제를 겪는 타이탄 인의 교류가 이루어진다. 두 행성의 과학 수준은 비슷한데 우주 항해 연료 기술은 타이탄이 더 뛰어나다. 타이탄을 위한 식량을 실고 우주탐사선 ARK가 날아간다. 냉동 상태에 있다가 도착 일주일 전에 깨어날 예정이었는데 5년이나 먼저 정비팀 성식이 깨어난다. 먹고 살기 위해 닭을 꺼낸다. 해동한 후 닭볶음탕을 만들 예정이다. 그런데 이 닭이 살아 움직인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탄생한 수퍼 닭이다. 성식과 대화를 통해 공생하고자 하지만 성식은 닭은 닭일 뿐이다. 이후 벌어지는 사건들은 약간 황당하지만 그것만 무난히 넘어간다면 상당히 재밌다.
김구일의 <송곳니>는 가장 흥미 있게 읽은 단편이다. 조금 거친 면이 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와 빌런의 탄생 과정이 계속 시선을 끈다. 투견장을 운영하는 악당과 그 악당의 개를 훔친 수기의 대결은 섬뜩한 대목들이 많다. 동물과 대화하는 능력을 가진 수기가 투견용 개 등을 구하고, 그 과정에 이 마을의 작은 비밀들이 하나씩 나온다. 수기의 친구 동물 병원 원장의 아들 율과 그에게 폭력을 가하는 깡이라는 동창까지 등장해 이야기의 볼륨의 키운다. 수기가 구한 19호가 깡을 공격하는 장면에서 수기가 보여준 거대한 어둠은 아주 인상적이다. 아직 자신의 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녀가 한 명의 빌런으로 자라는 과정은 섬뜩하지만 재밌다. 장편이나 시리즈로 나와도 좋을 것 같다.
빌런
최구실|김상원|김달리|엄성용|김구일|안전가옥
책을 읽다보면 선호하는 작가도 생기고, 믿고 선택하게 되는 출판사도 생기게 된다. 이 책을 출간한 '안전가옥'은 요근래 신뢰하게 된 출판사이다. '안전가옥' 이라는 출판사의 책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출판사가 추구하는 방향은 대략 짐작할 수 있으며 나와 맞다고 느껴진다.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함을 지닌 소재의 글들이 재미는 물론 사고를 유연하고 다양하게 만들어준다.
이 책『빌런』또한 기발하고 재미나다. '빌런'은 이야기에서 악역을 맡고 있는 인물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이 책을 구성하는 5개의 단편 모두에는 각각의 빌런이 등장한다. 빌런이라 하더라도 마냥 미워할 수 없다. 그들 모두가 나름의 이유로 악당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며, 그들의 이유가 나름 이해가 된다.
이유없는 결과는 없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기에, 존재감으로 나를 주눅들게 하기에,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나를 인정하지 않기에 그들은 분노를 폭발하며 빌런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빌런이 된 것은 그들을 대하는 상대의 태도와 행동때문 일 수도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그들의 악행이 합리화될 수는 없다.
5편의 단편 중 [우세계의 희망]이 가장 먼저 선택해서 읽은 작품이다. 팬덤을 소재로 갈등과 사랑, 증오와 권력이라는 주제를 잘 버무린 이야기가 흥미롭다. 같은 대상을 좋아하며 형성된 동질감이라는 감정은 우상에게서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에 의해 금방 증오가 되어버린다. 아군은 순식간에 적군이 되고 권력의 정점을 차지하기 위한 음모와 편법이 난무한다. 어찌보면 그들 모두는 서로에게 빌런이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인정 욕구가 강하므로 자신의 사랑을 인정해주는 이들과 연대하게 된다. 또한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것에 인색하다. 그러니 팬덤은 언제나 불안한 집단이 될 수밖에 없다.
5편의 단편 모두 매력적이다. 가독성 좋은 문장과 독특한 소재가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역시 '안전가옥'이 선택 할만한 작품들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공포영화는 보지도 않으면서 호러나 공포 소설은 좋아하는 까닭에 안전가옥 앤솔로지 시리즈였던 <호러>를 접하고서는 꽤 특이한 단편 모음집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이것이 호러라고 할 수 있는 건가?'란 생각을 시작으로 호러라면 떠올려질 당연한 것들을 왠지 외면했다는 느낌마저 들어 기억에 더 남았던 것 같은데 아마 그 기억이 나쁘지 않았기에 다음 시리즈인 이번 <빌런> 편도 궁금해졌던 것 같다.
다소 이름은 생소한 작가님들이지만 이력을 보면 읽었던 단편집이거나 최근 장르소설 출판사에서 입상한 경력을 보여주듯 소설을 읽으며 유려한 문체란 것을 금세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가들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는데 역시 이번 편도 평범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샐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수정궁의 유령', '우세계는 희망', '치킨 게임', '송곳니'란 다섯 작품이 실린 <빌런>편은 악당을 의미하는 제목도 그렇지만 단편마다의 제목도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가지 않아 호기심을 키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렇게 한편씩 읽다 보면 역시 평범하지 않음에, 예상하지 못한 결말에, 이게 뭐라고 두뇌를 굴려 이해해야 하는 복잡함에 작은 탄성을 내질러야 할 만큼 다섯 작품 모두 만만하지 않다. 그렇기에 내용이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면, 빌런이란 이름에 걸맞게 이 정도 내용은 넣어줘야지 싶은 당연함을 모조리 깨고 참신하면서도 기발한 내용들이 실려 있다는 것엔 역시 이견을 낼 수 없을 듯하다. 다만 장르에 대한 호불호는 피해 갈 수 없을 듯한데 SF 스릴러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SF 적인 요소를 그다지 반기지 않는 취향 확실한 나 같은 독자도 <빌런>은 확실히 머릿속에 뙇!하고 새겨질 만큼 독특하고도 강렬한 소설임에는 확실하다. 사실 '샐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란 시작 작품부터 이해가 쉽지는 않았더랬다. 뭔가 단어 하나라도 놓치면 이해가 부족해 다시금 되짚어 돌아가야 할까 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었는데 두 번째 만나게 된 '수정궁의 유령'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이게 맞는 건가? 이렇게 이해해야 하는 건가? 싶을 만큼 혼란스러웠다. 다행히 단편이었고 그런대로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구나 싶은 약간의 위안을 삼으며 단편을 마무리하긴 했지만 지금껏 보았던 SF 적인 소설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라 세세하게 다 이해하기는 부족할지라도 확실히 기억에 콕 박힐만한 소설이었다.
영화나 소설 속 지독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처럼 대놓고 악당 같은 느낌보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어느 순간 악당으로 변해버리는 이야기가 더 서늘하게 다가와질 때가 있는데 이 소설은 양쪽 모두 충족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지만 그렇게 대놓고 얘기하기에도 확신할 수 없을 만큼 묘한 구석도 있는 것 같다. 좋아하는 장르라서 안전가옥 시리즈를 골라보고 있지만 앞 편에 재미있어 보이는 제목들도 있어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