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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마지막 인사말에 심어둔 씨앗 하나 - [작별]을 읽고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k*****o | 2022.08.14 리뷰제목
마지막 인사말에 심어둔 씨앗 하나 <작별>을 읽고       당신과 '이별'한지도 반 년이 지났습니다. 어느 시처럼 당신은 떠났지만 나는 당신을 보내지 않은 기분이 듭니다. 여러 출판사들이 번갈아가며 펴내는 당신의 유고집들을 마주할 때가 특히 그러합니다. 내가 있는 세상에 여전히 당신도 함께 있는 것만 같아 슬프고도 기쁩니다. 이번에 <작별>을 읽고 나니 불현듯 당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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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사말에 심어둔 씨앗 하나
<작별>을 읽고


 


 


  당신과 '이별'한지도 반 년이 지났습니다. 어느 시처럼 당신은 떠났지만 나는 당신을 보내지 않은 기분이 듭니다. 여러 출판사들이 번갈아가며 펴내는 당신의 유고집들을 마주할 때가 특히 그러합니다. 내가 있는 세상에 여전히 당신도 함께 있는 것만 같아 슬프고도 기쁩니다. 이번에 <작별>을 읽고 나니 불현듯 당신과 헤어짐의 인사를 제대로 나누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은 본인이 없는 세상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그리고 멀지 않은 미래에 삶을 살아가게 될 이들에게 "잘 있으세요. 여러분 잘 있어요."라고 작별 인사를 건넵니다. 묘하게도 헤어짐과 단절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우리는 항상 연결되고 중요한 유산을 공유하게 될 것이라는 당신의 생각과 말에 기대어 어떤 연대감과 기대감마저 느끼게 합니다.
살아생전에 당신이 남다른 발상과 통찰로 당신만의 생각과 말을 우리에게 전하고 그것들을 삶의 현장에서 실제로 구현해낸 장본인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당신은 책속 마지막 인사말에다가 작고도 큰 생각의 씨앗을 심어 두고 동요 한 곡을 연신 부르면서 거기에 어떻게 물을 주고 흙을 고르면 좋을지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원숭이와 백두산. 우리에게 없었던 것과 우리에게 있는 것. 우리가 백두산이 뭐고 원숭이는 뭐냐 얘기하면서 지난 100년을 이야기했듯, 내가 없는 세상의 100년을 살아갈 키워드 같은 노래가 내가 모르는 저 후손들의 입에서, 놀이터에서, 시골 마당에서 불릴 겁니다. 어린아이들이 내가 어렸을 때 부른 것처럼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와 또 다른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겁니다. 그게 뭘까 궁금하지 않나요?(122~123쪽)



  처음에는 내 귀를, 아니 두 눈을 의심하며 단순히 세대를 이어 어린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옛 노래가 왜 소환됐는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당신의 흥얼거림이 점점 흥겨워짐을 느끼게 되고, 나 또한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개화기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의 역사와 한국인의 문화적 유전자가 노랫말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재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염원합니다. 이러한 경험을 밑거름 삼아 미래의 우리가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가치를 알아보고 그것을 향유하며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기를 말입니다. 원숭이에서부터 백두산까지, 다시 누룽지·묵은지·우거지·콩비지·짠지 등 5G에서 뻗어나간 가지들에 관한 이야기를 신명나게 듣노라면 한평생 목마른 사람이 언제든 물을 길어 먹을 수 있도록 우물을 파며 살다간 당신에 대한 고마움이 일었습니다.
  당신과 이별이 아닌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나서「작별」이라는 노래가 문득 떠오릅니다.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날 그날까지 이 세상 사람들과 당신이 나눠준 생각의 씨앗을 '잘' 돌보고 '잘' 키워내고 싶습니다. 디지로그 시대의 접속과 접촉, 생명자본 시대의 눈물 한 방울을 기억하겠습니다. 비록 당신이 없는 세상이지만 여기 남은 우리가 앞으로 부를 노래와 또 풀어나갈 이야기에 한결같이 관심으로 귀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잘 가세요, 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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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작별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s***h | 2022.08.22 리뷰제목
작별   제목 그대로 『작별』을 고하는 글이다. 이어령 선생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담아놓았다.   이 책에서 선생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몇 가지를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하신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어는 바나나   이런 노래가 끝없이 이어지다가 높아는 백두산으로 끝이 난다.   이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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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제목 그대로 작별을 고하는 글이다.

이어령 선생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담아놓았다.

 

이 책에서 선생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몇 가지를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하신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어는 바나나

 

이런 노래가 끝없이 이어지다가 높아는 백두산으로 끝이 난다.

 

이 노래를 시작으로 선생은 원숭이, 사과, 바나나, 기차, 비행기, 반도 삼천리 등 키워드를 통해서 우리가 가지고 살아왔던 게 무엇이고, 우리가 없는 세상 저 먼 미래에는 이러한 키워드 들이 어떻게 바뀌어 갈 것인가를 살펴보고 있다.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높이 높이 날아라 우리 비행기

 

이런 노래 다 알고 있다.

종이비행기를 날리면서 부르는 노래. (55-59)

 

여기서 선생은 뜬다난다를 구분하여,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종이 비행기를 날리면 뜨긴 뜨는데 날지는 못한다. 뜨는 건 뭐고 나는 건 뭘까 

뜬다는 것은 바람에, 물결에, 공기에 뜨는 거니까 내 의사대로 가지 못하는 것이다.

종이 비행기를 날리면 바람을 따라 제멋대로 날아간다. 자기가 가고 싶은 데로 못가는 것이다. 뜨긴 뜨는데 날지는 못한다.

 

'난다'는 것은 거기에 의지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죽은 물고기들은 배를 내밀고 물위를 떠내려갈뿐이다. 반면 살아있는 것은 비록 송사리일지라도 상류로, 상류로 물을 거슬러 갈 수 있는 것이다.

뜬다는 것은 자기의 의지대로 가지 못하는 반면에 난다는 것을 의지대로 가고 싶은 방향을 잡아 간다는 것이다.

선생은 우리가 어릴 적 불렀던 노래를 통해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그저 흘러가는 대로 떠가지 말고 의지를 가지고 날아가라 하시는 것이다.

 

바나나 우유

 

사람들이 바나나 우유를 좋아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 책에서 바나나 우유의 가치를 알게 된다.(97)

 

우유는 낙농으로, 동물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목축문화에 속하는 것이다. 

바나나는 숲에서 나오는 것이니 농업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섞을 생각을 누가 했을까. 바로 우리나라에서 한 것이다.

외국에서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바로 융합의 원리다. 바나나에 우유를 섞다니! 이건 우리나라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선생이 말하는 5G

 

요즘 5G가 대세다. 그런데 선생은 우리가 알고 있는 5G가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던 5지(G)를 꺼내드신다.

 

먼저 그 다섯 가지가 무엇인지 열거해본다.

 

누룽지

묵은지

콩비지

우거지

짠지

 

이 다섯 가지 지(G)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그 가치를 잊고 있었던 것들이다.

굳이 선생의 설명을 인용할 필요조차 없다.

하나 하나 그 이름을 불러보면서 우리가 언제 그 것을 먹었던가, 먹으면서 어떤 생각을 떠올렸던가 생각해 보면, 그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이런 것들을 알려준 선생의 혜안을 존경하게 될 것이다.

 

다시. 이 책은? - 잘 있어, 잘 가

 

우리가 헤어질 때 인사로 건네는 말이 바로 잘 있어’, ‘잘 가이다.

 

여기서 이란 말에 주목해보자.

영어로 바꿔보면 금방 그 뜻을 알 수 있다.

well - dying, well- aging.에서 well이 바로 이다.

 

우리는 이미 인사에서 이란 말을 관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게 바로 요즘 유행하는 wellbeing 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선생은 마지막 인사로, ‘잘 있으세요, 여러분 잘 있어요라는 인사를 남기신다.

 

선생을 알아온지 몇 십년, 그분의 글을 거의 읽어온 독자인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선생이 더 살아계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먼저다. 이 시대에 등불을 비춰주는 역할을 더 해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선생님, 잘 가세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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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에세이 | 이어령 선생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이야기, 『작별』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s*****3 | 2022.08.23 리뷰제목
『하나, 책과 마주하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거죠. 이 생물학적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남긴 말과 글 속에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아침 저녁으로 쓰고 있는 말과 글 속에도 똑같이 문화 유전자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도 우리가 남긴 말, 가장 중요한 몇 가지 말들은 마치 AGCT처럼 서로 얽히고 결합되면서 내가 없는 세상, 우리가 없는 그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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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거죠. 이 생물학적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남긴 말과 글 속에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아침 저녁으로 쓰고 있는 말과 글 속에도 똑같이 문화 유전자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도 우리가 남긴 말, 가장 중요한 몇 가지 말들은 마치 AGCT처럼 서로 얽히고 결합되면서 내가 없는 세상, 우리가 없는 그 세상에도 우리의 이야기를 전달해간다는 것이죠.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이어령 선생이 앞으로 살아갈 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이야기를 펼쳐볼까 한다.

 

저자, 이어령은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재학 시절 [문리대학보]의 창간을 주도 ‘이상론’으로 문단의 주목을 끌었으며, [한국일보]에 당시 문단의 거장들을 비판하는 「우상의 파괴」를 발표, 새로운 ‘개성의 탄생’을 알렸다. 20대부터 [서울신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의 논설위원을 두루 맡으면서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논객으로 활약했다. [새벽] 주간으로 최인훈의 『광장』 전작을 게재했고,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을 맡아 ‘문학의 상상력’과 ‘문화의 신바람’을 역설했다. 1966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 선 후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여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총괄 기획자로 ‘벽을 넘어서’라는 슬로건과 ‘굴렁쇠 소년’ ‘천지인’ 등의 행사로 전 세계에 한국인의 문화적 역량을 각인시켰다. 1990년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취임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과 국립국어원 발족의 굳건한 터를 닦았다. 2021년 금관문화 훈장을 받았다.

마르지 않는 지적 호기심과 창조적 상상력, 쉼 없는 말과 글의 노동으로 분열과 이분법의 낡은 벽을 넘어 통합의 문화와 소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끝없이 열어 보인 ‘시대의 지성’ 이어령은 2022년 2월 향년 89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Ⅰ 원숭이

 

제주도 근방에 야생종 원숭이가 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동물원갔던 게 20살? 21살? 20대 초반이었으니 원숭이 안 본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이렇듯 한국에는 없는 그리고 중국하고의, 일본하고의 차이를 나타낼 때 볼 수 있는 키워드가 바로 원숭이이다.

원숭이는 나를 타자와, 남과 구별하는 나의 의식이자 나의 아이덴티티라고 선생은 말한다.

인간과 비슷하기에 남을 놀릴 때 원숭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즉, 원숭이와 어떻게 다르냐로 자신이 사람이라고 하는 하나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게 우리에게 있어서는 외국이었던 겁니다. 원숭이가 없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하면 인간과 가장 비슷한 동물이 없었기 때문에 인간을 객관화하고 나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과거 우리는 중국 사람, 일본 사람만 겨우 알 정도로 폐쇄적인 생활을 해왔는데, 사람을 배타적으로 대하는 은둔의 시간 속에서 개화를 맞이한 우리의 외국관이 바로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선생의 말에 따르면, 아주 오래전에는 원숭이 엉덩이가 아닌 원숭이 항문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니깐 엉덩이 빨간 짐승같은 사람들이 사과를 가져왔다는 것은 우리보다 월등한 문명인이라는 것을 느껴 한쪽으로는 무시하면서도 한쪽으로는 본받아야겠다고 느낀 것을 의미한다.

과거 개화기때의 외국관이 잘 드러나는 대목인 것이다.

사극 혹은 시대극에서 왜놈, 양놈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4000년 동안 우리는 수많은 억압과 압박 속에서도 살아남은 민족이기에 가지고 있는 이런 오기가 한국 사람들의 단점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핵심적인 원동력인 것이다.

 

 

Ⅱ 사과

 

사과는 1901년 윤병수가 미국 선교사로부터 묘목을 들여오면서 유입되기 시작했다.

추운 지방에서만 나왔었기에 북한 원산 부근에 심었다고 전해지는데 그것이 바로 1901년이다.

한쪽에서 선교사들이 직접 나무를 심어 키워봤지만 기후로 인해 다 죽어버렸는데 유일하게 사과 하나가 살아남았었다.

그것이 바로 대구 사과이다.

사과가 자랄 수 없는 고장임에도 품종 개량을 통해 대구가 사과의 명산지가 된 것이다.

 

사과는 단순히 먹거리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20세기 초 개화가 시작되던 때에 유입되었기에 서양 문명이 압축된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담의 사과, 트로이 전쟁에 나온 파리스의 사과, 뉴턴의 사과 그리고 윌리엄 텔의 사과로 서양사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에서 사과 체험은 즉, 서양 체험인 것이다.

미국을 상징하는 사과는 지금도 이어진다. 바로 애플이다.

미국을 상징하는 하나의 키워드이자 글로벌한 사과가 된 사과!

앞으로도 '사과'가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지 않을까 싶다.

 

 

Ⅲ 바나나

 

바나나는 과일의 단순한 개념과는 무언가가 다르다.

과거 수박, 참외와 같이 둥글둥글한 과일만 보다 기다란 바나나를 처음 접했을 때, 꽤나 놀랐다고 한다.

단순히 길기만 한 게 아니라 끝이 꼬부라져서 올라간 바나나는 우리 상식을 완전히 뒤바꾼 과일이었다.

대부분 바나나 나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파초과이다. 풀이 돌돌돌 말려 올라가서 딱딱해지는 것이다.

또한, 씨가 없다. 씨도 나중에 나오지만 줄기세포처럼 발아되니 그 싹을 잘라서 심는 것이 바나나이다.

인간의 역사, 서양의 역사, 정치, 경제-이 모든 것이 바나나 속에 있다.

 

문득 검정고무신의 한 회차가 떠오른다.

성철이가 바나나 먹었다는 자랑에 기영이는 마냥 부럽기만 하다.

그렇게 성철이를 따라 바나나 먹으러 성철이 외숙모집 앞에서 추운 겨울 날씨에 한참을 기다리게 된다.

그런데 이웃집에 다 나눠주고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말에 기영이는 결국 좌절하고 만다.

그렇게 병이 난 기영이는 아픈 와중에도 바나나만 찾는다.

당시 쌀 한 되가 아닌 쌀 한 말 값은 되었다는 바나나는 쉽게 먹지 못하는 비싼 과일 중 하나였다.

 

 

Ⅳ 기차

 

혹시 알고 있는가?

호두, 호빵, 호박과 같이 '호'자 붙은 먹거리는 전부 이란, 이라크와 같은 중동 지방에서 실크로드를 타고 들어왔다는 것을.

개화기 때는 실크로드를 통해 곧장 들어오지 않고 미국, 유럽에서 배를 타고 들어왔다.

그래서 '양'자가 붙는 것이다. 한국 것에 '한'자가 붙는 한옥처럼.

기차는 인간이 만든 문명을 상징한다.

과거 기차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태우고 떠나는 수단이기도 했다.

대륙에 진출하려던 일본이 한국에 경인선 철도를 만들었었다.

미국이 이를 통해 들어오려고 하니 일본이 가만두지를 않았다.

거기다 만주까지 닿는 철도를 놓게 되었고 이후 러일전쟁, 청일전쟁이 연이어 발발했었다.

그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기차였다.

선생은 어느 누구에게는 지배의 힘이요, 어느 누구에게는 빼앗김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기차를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고 읊조렸다.

 

지금 여러분과의 작별을 앞둔 그 어린아이에게 그 기차는 어떤 의미를 가진 기차일까요? …… 미래에 올 새로운 생명들, 새로운 세계들에 비록 나는 존재하지 않을 테지만 몇 가지 나의 글, 나의 언어들이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그들의 마음속에서 씨앗이 되고, 불씨가 되고, 그리고 작은 터널 속 빛과 같은 것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나는 떠날 때의 모든 절망 소에서 남기고 가는 희망으로 오늘 이별을 얘기합니다.

 

 

Ⅴ 비행기

 

높이 날기 위해서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자기 엔진이 필요한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쓰는 것은 코로나 시대에 당연한 일이다. '나'가 아닌 '남'을 위한 것이다.

본인이 병에 걸리지 않는 것도 이유지만 남에게 병을 안 옮기기 위해 쓰는 것이 마스크이다.

이처럼 나눠야 할 경험의 가치, 이 모든 슬기를 합쳐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선생은 강조한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날아올라 앞으로도 이렇게 100년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잘 있으세요, 여러분 잘 있어요

 

내가 여러분들과 헤어지는 인사말 '잘 있어'라는 말, '잘 가'라고 하는 그 '잘'이라는 말. 영어로 웰 다잉, 웰 에이징 등 우리가 흔히 잘 쓰는 '웰'이라는 말, 그게 바로 잘 있어, 잘 가 할 때의 '잘'입니다.

그게 바로 어질 인이죠. 이게 있으면 잘 있고 잘 가게 되는 겁니다. 떠나도 그와 있었던 사람들을 생각할 것이고, 잘 있으면 떠나간 사람을 마치 곁에 있는 사람처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잘 있어, 잘 가입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코로나 위기를 겪은 사람들을 옛날식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겁니다. 새 문명, 새로운 가치가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는 생명의 가치가 제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접속과 접촉이 함께 있어야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 오늘보다는 내일 늘어가는 것. 생식되는, 불어가는 생명체가 증식하는 세계가 바로 생명자본이요, 우리의 밑천이 되는 세계입니다.

 

이별이 끝이 아니고 잘 있어, 잘 가, 라는 말이 마지막 인사말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서로 헤어지는 인사말 속에 잘 있어, 잘 가, 라고 서로 웃으면서, 그리고 잘 가기를 원하고 잘 있기를 원하는 서로의 공감 속에서 죽음도 생명도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영원한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헤어질 때와, 떠날 때의 인사말…

잘 있으세요. 여러분 잘 있어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그 시작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구전으로 전해진 이 동요는 자연스럽게 입에 익혀져 있다.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이라고 지금은 이어지지만 옛날에는 빠르면 토끼였다고 한다.

원숭이부터 백두산까지 그 어떤 맥락없이 이어지는데, 이는 단순히 한 사람도 아니고 어른들도 아닌 어린아이들의 상상력에서 고르고 골라 전해진 노래이다.

선생의 말처럼 생각해보면 원숭이, 사과, 바나나, 기차, 비행기, 백두산에서 백두산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우리 것이 아니다.

원숭이부터 살펴보자.

외교사절단이 원숭이를 보내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어 대중 앞에 원숭이를 선보인 게 1909년이다.

그렇다면 원숭이를 본 시기를 감안한다면 1909년 이후에 이 노래가 만들어진 것이다.

원숭이, 먹거리인 사과와 바나나 그리고 문명 단계의 마지막인 비행기까지, 전부 미국에서 들여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 백두산은 어떻게 들어간 것일까?

100년 동안 외세와 외국 물품들을 마주하고선 우리는 끊임없이 이를 쫓아가지만 결국은 백두산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이어령 선생이 전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다섯 가지 키워드를 통해 어린 시절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훗날 선생이 없는 지금부터 미래의 한국인들에게 과거의 경험과 꿈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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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작별 평점10점 | m****g | 2022.08.23 리뷰제목
80여 년 동안의 경험에 대한 회고를 다섯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우리가 어릴 적 부르던 노래,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를 시작으로 사과, 바나나, 기차, 비행기,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노래의 키워드와 관련된 경험, 의미, 관계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마지막 길에 미래의 생명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입니다. 책을 읽는다는 느낌보다, 강연을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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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여 년 동안의 경험에 대한 회고를 다섯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우리가 어릴 적 부르던 노래,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를 시작으로 사과, 바나나, 기차, 비행기,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노래의 키워드와 관련된 경험, 의미, 관계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마지막 길에 미래의 생명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입니다. 책을 읽는다는 느낌보다, 강연을 듣는 것처럼 강조하고, 반복하고, 설명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지는 책입니다.

 

 

다시 한번 책으로 이어령 선생님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작별」 유고집이라 조금 무겁게 느껴졌는데, 읽는 동안 대학 강의실에서 교양과목이나 특강을 듣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곧고 굳건한 선생님의 생전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많이 아쉬웠습니다. 좋은 글, 목소리, 모습을 들을 수 없어서 말입니다. 그래도 첨만 다행인 건 선생님의 글이 책으로 남아 소장할 수 있다는 기쁨이 있네요.

 

 

돌멩이를 흙에다 심어 보세요. 싹이 안 나요. 씨를 돌바닥에 심어보세요. 싹이 안 나요. 흙 속에다 씨를 심으면 서로 교류하면서 씨에서 싹이 나죠. 어진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그 사람한테 호소하고 슬픈 얘기를 해도, 고통을 얘기해도 소귀에 경 읽기예요. 그런데 정말 착한 사람 앞에서 "나 이렇게 됐어"라고 말하면 자기 일처럼 같이 눈물 흘려주고, 그 고통을 나눠요. 자기 밥그릇도 작지만 그걸 나눠 먹으려고 해요.

나의 헤어질 때 인사말, 잘 가 잘 있어 120

 

 

이어령 선생님의

'잘 있어요' 인사말이 자꾸 맴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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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작별 이어령 유고집 평점10점 | k**l | 2022.08.23 리뷰제목
이어령 선생님은 문화부 장관을 지닌 교수이자,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거 한국과 미래의  우리의 모습을 하나로 관통하는 통찰력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셨던 이야기꾼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 읽어본 이어령 유고집 작별 도서에서는,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던 저자가, 여전히 삶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더욱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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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님은 문화부 장관을 지닌 교수이자,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거 한국과 미래의 
우리의 모습을 하나로 관통하는 통찰력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셨던 이야기꾼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 읽어본 이어령 유고집 작별 도서에서는,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던 저자가, 여전히 삶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더욱 잘 가꾸면서 미래에도 잘 있으라는 안부 인사였다.

삶의 마지막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도, 
책을 읽고 글을 썼던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당부의 
말을 담고 있는 유고집이기에 살짝 긴장을 하고 
조심스럽게 페이지 한 장 한 장 넘겨 보게 되었다.

그의 마지막 글인 <작별> 이후로 더 이상 세상을 
꿰뚫어 보던 선생님의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없기에 
더욱 소중한 글로 간직할 수밖에 없는 도서였다.



그 이전에는 방송에서도 종종 얼굴을 비추었던 
그였기에 더 익숙하기도 했지만, 학생들에게 
수업을 진행했던 대학교수의 자리에 있기도 했던 
저자이기에 무언가 지식을 전달해 주는 교육자로의 
생전 모습이 더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듯하다. 

그 외에도 여러 글과 강좌에서 평소에 우리에게 
한국인으로 가슴이 뜨겁게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을 
어쩜 그렇게 콕콕 집어내는 건지, 그의 철학이 담겨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저절로 몰입이 되곤 했었다.


이번 도서는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책이 되었는데, 
그렇다고 지난 힘겨웠던 본인의 회환에 찬 삶과 
과거를 돌아보는 무거운 무게의 회상이 아니라, 
잠시 우리에게 안녕을 고하고 그가 없는 세상에도 
계속 오늘의 하루는 지나가기에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후손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이어령 유고집 마지막 인사말을 전하면서, 
그는 뜬금없이 우리가 어릴 때 놀이를 하면서 
불렀던 구전 동요인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로 
시작하는 노래를 키워드 삼아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너무나 그 다운 마지막 말이지 않았나 싶다.


우리의 어린 세대들도 여전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그 노래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이렇게 백두산을 
끝으로 마무리되는 말잇기 처럼 연결되는 노래였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보다 하고 당연한 듯 어린 시절 
놀이를 하면서 불렀던 노래였었다. <작별> 본문에서 
이어령 선생님이 짚어가는 이유를 돌아보면서, 정작 
왜 원숭이를 대상으로 노래를 시작하고, 맛있는 게 
사과였을까? 정말 궁금한 적이 없었던 게 놀랍기만 했다.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온 우리 어린 시절 
놀이로만 여겼던 그 노랫말에서, 그는 우리의 아픈 
역사와 우리가 앞으로 이어나가야 할 유산에 대해서 
그의 통찰을 통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었다.

종교, 역사, 과학, 인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해박한 지식을 나누어 주었던 그였기에, 무심히 
넘겨 버렸음직한 노랫말에서 화수분처럼 끄집어내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끝나지 않고 무한대로 
여전히 저세상에서도 이야기를 남겨주실 듯싶다.

서구에서 산업화의 불꽃이 확산된 것도 기차의 
빠른 교통수단이 촉매제가 되었을 터이고, 
일제가 대륙 침략의 야심을 위해서 우리나라에도 
철도를 깔았었지만, 우리에게 기차는 이별과 아픔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구슬픈 노래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그 노랫말의 총 다섯 개 키워드 주제어를 토대로 
그의 마지막 화두를 <작별>에 기록하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노래가 끝나는 백두산 앞에 등장하는 
키워드인 원숭이, 사과, 바나나, 기차, 비행기는 모두 
우리 고유의 것이 아님을 콕 짚어서 강조하고 있다.

원숭이는 그렇다 쳐도, 사과도 우리 토종 과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중략)...
외국 문화와 우리 문화가 접촉하면 가장 처음 
바깥에서 먹거리가 들어옵니다. 개화기를 
상징하는 먹거리는 사과하고 바나나예요. 
먹거리죠. 아무렇게나 만든 거 같습니까? 사람이 
나오고 먹거리가 나옵니다. 우리나라에는 없던 사람, 
없던 짐승, 원숭이, 인간과 가장 닮은 짐승.....
P. 014

그러나 마지막에는 우리의 뿌리 근간이자 
미래의 통일을 염원하는 백두산으로 노래가 
마무리되기에, 그 의미를 깊게 새겨보게 되었다.


이어령 유고집 <작별>에서는, 이렇게 그 옛날 
아이들과 뛰놀며 읊었던 놀이 노랫말에 등장하는 
원숭이, 사과, 바나나, 기차, 비행기 다섯 가지 
키워드를 통해서 우리 시대의 흐름을 엿볼 수 있었다.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에서부터 스티브 잡스의 
사과에 이르는 연결까지도 흥미롭게 연결하면서 
우리의 역사뿐만 아니라 넓은 세계로 확장되면서 
인문학적인 소양도 더욱 커지는 내용이었다.

여전히 분단되어서 대륙과 해양 침략 세력에 
휘둘려 왔던 대한민국의 운명을 진심으로 
걱정하면서, 은유와 비유 가득한 재치 있는 문답을 
내놓고 있는 진솔하고 공감 가득한 이야기였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그의 삶을 마감하면서 
우리가 미래에 백두산 이후의 새로운 키워드를 연결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당부도 잊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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