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p가 넘는 두꺼운 책. 10월1일날 구매해서 2일날 받아서 오늘10월 25일에 다 읽었다.
양장이고 책이 너무 두꺼워 언제 다 읽을까 생각했는 데, 오늘 완독하였다. 시라서 자간도 넓고 중간 중간 삽화도 많이 있어서 비문학책 500p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구성은 단테가 살아 있는 몸으로 지옥 연옥 천국으로 올라가는 이야기이다. 페이지 하단마다 해설이 있어서 보면서 읽으면 이해가 잘 되는 편이다. 지옥 연옥은 재밌게 이해하면서 읽었고 천국은 좀 난해한 면이 있어서 지옥 연옥 부분보다 이해를 덜하고 읽었다.
읽어본 바 추천하는 책이다. 구입하세요.
쉬흔이 다가올 즈음 유달리 단테의 『신곡』, 그중에서도 「지옥」 편을 인용하거나 그것을 모티브로 한 글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니콜 크라우스의 『어두운 숲』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은 중년이 '지옥'이자 '어두운 숲'(우리의 인생길을 반쯤 지났을 때/ 나는 어두운 숲에서 헤매고 있었네,/ 똑바로 난 길을 잃어버렸기에.)이라는 암시이자 계시처럼 읽혔다.
사실 40대엔 스스로 중년이라는 자각을 못 하고 살았는데(그러기엔 해야 할 일들도 신경 쓸 것들도 너무 많았다), 막상 쉬흔이 되고 보니 이젠 정말 중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내가 지금 시점에서 『신곡』을 읽게 된 건 어쩌면 운명이란 생각이 든다.
대부분 잘 알고 있겠지만,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 편으로 이루어졌는데(이번에 읽으면서 깨달은 건데 이 구성과 배치 또한 매우 의미심장하다) 앞에서 내가 인용한 부분이 「지옥」의 첫 부분이면서 『신곡』을 여는 도입부이다.
내가 앞에서 인용한 것은 롱펠로가 번역한 것을 니콜 크라우스가 자신의 작품에서 인용한 것을 한국의 번역가가 재가공한 것이라면, 이 책의 번역가인 김운찬(맞다, 움베르토 에코의 번역자로 알려진 그 사람이다)는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어두운 숲속에 있었으니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1300년 봄 서른다섯 살의 단테는 어두운 숲소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햇살이 비치는 언덕으로 올라가려 하는데, 표범, 사자, 암늑대가 길을 가로막는다. 그때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언덕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다른 길, 즉 저승 세계를 거쳐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저승 여행길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단테는 인생을 70세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니 1300년에 단테는 서른다섯 살이었고, 본인의 인생의 한중간에 있었다고 보았다. 단테의 인생 한중간에 기록한 이 작품을 중년의 내가 읽는다.
귀스타브 도레의 그림들이 삽화로 수록되어 있어 작품에 대한 몰입을 높여준다. 『신곡』에 대한 도레의 감상이 그림들에 녹아 들었을테니, 그의 그림들은 도레가 이해한 『신곡』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독자들은 텍스트와 그림, 문자와 시각 자료로 『신곡』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 경험은 매우 인상적이면서도 강렬하다.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국에 이르르게 되는데, 그곳은 에덴 동산과 같으며, 교만과 질투, 분노와 나태, 인색과 탐욕, 음욕의 죄에 대한 형벌을 받고 죄를 씻은 다음에야 갈 수 있다. 천국은 아홉 개의 하늘과 그 너머에 있는 엠피레오로 이루어져 있다. 엠피레오는 하느님이 자리하고 있는 최고 빛의 하늘로 온 우주를 움직이며 생명을 부여한다.
'여행'이라는 형식을 따랐다는 점에서 『천로역정』과도 유사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은 궁극적으로 '천국'을 향해가는 여행이라기보다는 '저승 여행'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옥과 연옥, 천국을 순례하면서 만나는 수많은 영혼들과 그들과 나누는 이야기들이 『신곡』을 『신곡』답게 한달까.
아무쪼록 본인 스스로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어두운 숲속에서 길을 잃은 당신이 길을 찾든 그렇지 않든 어떤 식으로든 이 책을 읽은 경험이 당신을 지금과는 다른 곳으로 인도할테니 말이다.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의 공간을 다루는 일종의 판타지이자, 여정을 담아낸 모험 이야기다. 지옥, 연옥, 천국이란 소재와 그 속 디테일한 설정을 텍스트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재미, 방대한 판타지 속 스케일에 압도되어보는 재미, 판타지 소설과 모험 소설 특유의 장르적 재미가 신곡의 한 가지 매력이다.
신곡의 또 한 가지 매력은 책을 덮을 때 비로소 발산된다. 잠시 모험을 멈추고 지면 속 문장 문장을 곱씹어 볼 때, 단테가 묘사한 지옥 연옥 천국의 모습을 찬찬히 되짚어볼 때, 보다 심층적인 주제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한다. 죄와 벌부터, 시대상과 사회에 이르기까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더불어 적재적소에 배치된 귀스타브 도레의 삽화 덕에 지면 속 내용이 보다 생생하게 전달된다. 강한 콘트라스트의 흑백 판화로 지면 속 대목을 명확하게 포착해낸 삽화들은 이 책만이 선사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자 매력일 것이다.
신곡은 셰익스피어, 괴테와 함께 유럽 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단테의 대표작으로, 단테의 저승 여행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장편서사시다. 작가이자 주인공인 단테가 살아 있는 몸으로 일주일 동안 지옥과 연옥, 천국을 여행하며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총 1만 4,233행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놀라울 만큼 체계적이고 기하학적으로 저승 세계를 구축하였으며, 그곳에서 만난 수많은 영혼들의 고유한 삶의 애환을 생생하고 실감 나게 파노라마처럼 그려 보인다. 중세 유럽의 사상과 관념, 의식 세계가 총체적으로 집약되어 있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중세를 마무리 짓는 르네상스와 함께 근대의 도래를 예고한 작품이기도 하다.
신곡 리커버만 몇권째인지 모르겠지만.. 열린책들이 표지 하나만큼은 기깔나게 뽑아서 안 살 수가 없네요.. 책 너무 예쁘고 천천히 완독하는 게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