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공유하기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리뷰 총점 9.5 (71건)
분야
소설 > 영미소설
파일정보
EPUB(DRM) 82.87MB
지원기기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일부 기기 사용 불가)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MD 한마디

[세계적 작가들이 직접 뽑은 문제적 단편들] 미국 문학 계간지 [파리 리뷰]는 작가 지망생들의 등용문이자 문학의 실험실로 기능하며 단편문학의 다양성에 기여해왔다. 이 책에는 그동안 [파리 리뷰]에 실린 단편 중 굵직한 문학적 성취를 이룬 대가들이 직접 선정한 작품만을 골라 실었다. 당신을 무한히 확장된 문학의 세계로 초대한다. - 소설 MD 김소정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소개 (17명)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회원리뷰 (54건) 회원리뷰 이동

종이책 주간우수작 삶이라는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탐색하는 즐거움을 준 책 평점10점 | a*********9 | 2021.12.10 리뷰제목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본서의 첫 단편인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의 문장이다. 왜 하필 저 문장이 표제가 되었을까? 위의 단편을 목차 맨 처음에 배치한 이유는? 얼핏 하찮아 보이는 빗방울은 모이고 모여 작은 웅덩이나 잔잔한 강이 되기도 하지만 돌연 거센 폭풍을 몰고 오기도 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한 치 앞도 예단할 수 없는 삶에 무력하게 내던져진 인
리뷰제목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본서의 첫 단편인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의 문장이다. 왜 하필 저 문장이 표제가 되었을까? 위의 단편을 목차 맨 처음에 배치한 이유는? 얼핏 하찮아 보이는 빗방울은 모이고 모여 작은 웅덩이나 잔잔한 강이 되기도 하지만 돌연 거센 폭풍을 몰고 오기도 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한 치 앞도 예단할 수 없는 삶에 무력하게 내던져진 인간은 심지어 한 시공간 안에서조차 서로 다른 운명을 맞이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고. 그런데 만약 저 모든 게 어느 정신병자의 환각이거나 한낱 꿈이라면? 파리 리뷰(편집자)는 살면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포착하고 그를 빗방울에 빗댄 게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모든 빗방울의 이름은 곧 삶이 된다. 독자를 단번에 휘어잡을 만한, 기가 막힌 제목이 아닌가. 이제부터 저 빗방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파악해 보려는 나의 이름 역시 그중의 하나, 읽고 쓰는 빗방울'이라는 가정 하에...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어렴풋한 시간의 공통점은 주 인물들과 상황 묘사가 마치 실제인 듯 매우 생생하다는 것이다. 영화 [아이덴티티(2003년 개봉/제임스 맨골드(감독)/존 쿠삭(에드 역)]를 연상시키는 전작은 삶이란 자동차 사고처럼 대비와 예측이 불가능한 재난과도 같음을 암시한다. 매우 짧은 분량에 비해 적당한 스릴과 긴장감이 느껴지는 밀도 높은 작품임에는 틀림없지만, 독서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다분해 보인다.

그런가 하면 어렴풋한 시간은 도입부터 무척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자동차 냉각수를 모두 마시고 죽은 아빠에 이어, 검시관이 말한 모습대로 죽은 엄마를 묘사한 부분. 작가들이 표제와 첫 문장(혹은 도입부)에 심혈을 다하는 이유일 것이다. 독자는 뭔가 독특하고 이후 전개가 마구 궁금해지는 그것들에 현혹되기 마련이니까.

반면 레이먼드 카버의 춤추지 않을래는 감정이 서서히 달구어지는 쪽에 가깝다. 밋밋해 보이는 세 인물의 대화가 이상하게 짠하고 울적한 게 여운이 깊고 넓다. 황정은의 소설 ()의 그림자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랄까.

영화 [엠퍼러스 클럽(2002년 개봉)]의 원작인 궁전 도둑12년 전 개봉작인 [죽은 시인의 사회]를 연상시킨다. 교육과 사회, 직업관 혹은 인간 자체에 대해 심오한 질문을 받은 듯한 이 작품은 10년 넘게 교사직에 몸담았던 나의 지난날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19년 동안 꿈꾸듯 살아왔다. 보지도 않고 봤으며, 듣지 않은 채 들었고, 모든 것을, 거의 모든 것을 망각했었다. 그러다가 말에서 떨어지면서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난 이후로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롭고 날카로웠다. 가장 오래되고 사소한 기억까지 선명하게 살아났다. 잠시 후 몸이 마비 상태임을 알았지만, 그 사실은 거의 관심의 대상도 되지 못했다. 그는 마비 상태가 최소한의 대가라고 (느꼈으며 그렇게) 합리화했다.”(모든 걸 기억하는 푸네스, 288)

 

모든 걸 기억하는 푸네스는 낙마 사고 후 모든 걸 기억하게 된 한 청년의 이야기다. 이 작품의 저자는 무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다. 언젠가 알레프를 완독한 후 내친김에 픽션들까지 읽다 중도 하차한 그에게 다시금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준 이 단편에 대한 첫 느낌은 실제로 푸네스와 같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추측이었다. 인간의 한계에 대해 숙고하다 갑자기 얼토당토않은 생각에까지 미치게 된 묘한 작품이다.

 

그래서 너한테 물어본 거야, 값이 싸질 거다.”

고마워요. 끔찍하게 자상하시네요.”(늙은 새들, 303)

 

김훈의 화장과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등을 떠올리게 하는 늙은 새들의 매력은 차고 넘친다. 반쯤 잠든 에테르 속에서 가장 섬세한 생각을 발견할 수 있다.”(303) 아인슈타인의 일화를 빌어 나온 이 문장은 소설의 맥락상 죽음에 임박한 늙은 새(노인)의 또렷한 정신을 비유한 듯하다. 그렇게 나이 든 육체에 반비례하는, 에너지 짱짱한 여든아홉의 아버지는 낮에 누워 있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지적하며 자신과 아들의 장례식에 필요한 관을 할인된 가격에 미리 구매하려 한다. 죽기도 전에 자신의 시신을 화장할 건지 어쩔 건지를 물어보는 아버지를 상상해 보라. 이런 식이라면 중년의 육체에 어정쩡한 정신의 나는 지금 미래의 늙은 새(나)를 미리 보고 있는 셈이다.

슬픔은 참 수수께끼 같아. 아주 사적이기도 하고.”(라이클리 호수」, 340) 상실 속에서도 일상은 계속된다. 아들이 죽은 장소는 잊고 싶은 상실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가족을 잃은 자의 삶은 절름발이의 그것과 같다. 블랙 유머를 닮은 슬픔의 방식이 마음을 파고든다.

그런가 하면 한 번쯤 이별을 경험한 사람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슬프도록 아름다운 일인지. 점점 멀어지다 끝내 사라지고 말 기차를 내내 바라보게 되는 그 아픈 시간마저도(플로베르가 보낸 열 가지 이야기당신이 떠난 후에>).

 

타운 북부에서 어느 흑인 부부가 백인 동네에 식료품점을 개업했다. 그날 밤 가게 창문이 전부 깨지고 불이 났다. 신문에 폐허가 되어버린 가게와 능글맞게 웃는 두 명의 경찰관과 재산을 전부 잃어버린 흑인 부부의 사진이 실렸다. 브리지 부인은 남편이 출근하고 몇 시간 후에 혼자 아침을 먹다가 기사를 보았다. 그녀는 젊은 흑인 부부의 비참한 얼굴을 살펴보았다.”(브리지 부인의 상류사회평등>, 416)

 

브리지 부인의 상류사회는 인종차별, 빈부의 격차, 범죄 등을 통한 사회 풍자와 역설은 물론 마치 거울 속의 나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만든다. 어느 날은 중고의류 보따리 해체 작업에 투입된 소년원의 소년들과 함께 자원봉사를 하고(<장갑>), 또 어느 날은 칵테일파티에 갔다가 강도를 당할 뻔한 상류층 부인의 일상(<헤이우드 덩컨 집 강도 사건>)은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가진 자들은 모를 것이다. 자신들의 선행이 그 의도와 다르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지. 하지만 가장 큰 공포는 그 누구도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과연 나는 타인의 불행에 무관심하고 방관하는 대중 속에 끼어있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백화점의 군중 속에 떠밀려 낯선 이의 거북한 인사를 받고 보니 아는 사람이었다? 한 끗 차이로 심하게 경계하던 사람이 일순간 편안한 사람이 되고 마는(<낯선 사람과 절대로 말하지 말 것>) 이 웃지 못할 해프닝이라니.

 

본서에 엮인 단편들은 결국 삶을 이루는 각양각색의 빗방울들이라 할만하다. 경험이란 인간의 비상한 능력인 왜곡된 기억상상력이 투사된 현실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기 마련이고, 이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평소 단편집 읽기를 꺼리던 나에게 이 책은 가장 애정 하는 단편집 1호가 될 공산이 크다. 일독하고 말기엔 너무 진중한 책을 만났다. 문득 내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가진 소소한 것들에 감사하게 된다. 서평단 응모 댓글에 한 편 한 편 음미하며 한 잔의 커피처럼 추운 겨울을 따듯하게 나고 싶다는 내용을 남겼더랬는데, 딱 그럴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만나게 되기까지의 모든 우연과 행운에 감사하며.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19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9 댓글 7
종이책 '파리 리뷰'가 주목한 15편의 단편 소설 평점10점 | t*******1 | 2021.12.08 리뷰제목
단편집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문학잡지 <파리 리뷰>가 2012년 미국에서 출간한 ≪Object Lessons(실물교육)≫에 실린 20편의 단편소설 중에서 15편을 추려서 옮긴 책이다. <파리 리뷰>는 1953년 파리에서 창간된 영문학 계간지로, “<파리 리뷰>는 요란한 선동가나 음모꾼이 아닌 좋은 작가들과 시인들을 환영한다. 잘 쓰기만 하면 언제든지”라는 창간사에 따라 오
리뷰제목

단편집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문학잡지 파리 리뷰2012년 미국에서 출간한 Object Lessons(실물교육)에 실린 20편의 단편소설 중에서 15편을 추려서 옮긴 책이다.

파리 리뷰1953년 파리에서 창간된 영문학 계간지로, “<파리 리뷰는 요란한 선동가나 음모꾼이 아닌 좋은 작가들과 시인들을 환영한다. 잘 쓰기만 하면 언제든지라는 창간사에 따라 오늘날까지 줄곧 작가의 경력이나 출신국, 성별,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편집하는 잡지라는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단편집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열다섯 명의 작가에게 그동안 파리 리뷰에 실렸던 단편소설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 한 편을 고르고 그 소설이 탁월한 이유를 서술해달라는 부탁으로 탄생했다고 한다. 이 작품들이 파리 리뷰에 발표되었던 시기는 1950년대에서 2010년대까지이고, 내용이나 경향, 분량 등은 각양각색이다.

이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먼저 작품을 싣고, 바로 이어서 그 작품을 고른 작가의 추천사가 실리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2년 출간 당시의 이 책 제목은 실물교육이었는데, 번역하면서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로 바꾼 것이다. 이 단편집의 제목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첫 작품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데니스 존슨)에 나오는 한 문장이다.

 

……나는 퍼붓는 비를 맞으며 흠뻑 젖은 채 잠에서 깨어났다. 내게 약을 주었던, 이미 언급한 처음 세 사람, 세일즈맨과 체로키족과 대학생 덕분에 약간 의식이 흐린 상태였다.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나는 차를 타리란 희망도 없이 기다렸다. 누군가의 차에 탈 수 없을 만큼 젖었는데 침낭을 걷어 올려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나는 침낭을 망토처럼 둘렀다. 폭우가 아스팔트를 할퀴며 푹 팬 바퀴 자국 속으로 콸콸 흘러들었다. 딱하게도 내 생각이 질주했다. 출장 중인 세일즈맨이 혈관 내막이 벗겨져 나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약을 먹였다. 턱이 아팠다. 나는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일어나기도 전에 모든 일을 감지했다. 어떤 올즈모빌 자동차가 속도를 줄이기도 전에 내 앞에 멈춰 설 것을 알았고, 차에 탄 가족의 다정한 목소리만 듣고도 우리가 폭풍우 속에서 사고를 당할 것을 알았다. (19~20)

 

그런데 작품의 문맥 속에서 나는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이 문장은 어려웠다. 생뚱맞다는 느낌도 들었다. 전후 상황을 보자. 주인공 는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잠에서 깨어나 현재 의식이 약간 흐린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서 는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심지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장차 벌어질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어렵다.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파리 리뷰> 110(1989)에 수록됐던 작품이다. 굉장히 짤막한 분량의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주인공이 히치하이킹 도중 사고를 당한 이야기와 몇 년 후 종합병원의 중독 치료센터에서 치료받는 이야기가 전부다. 두 사건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작가의 친절한 서술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어렵다. 추천자는 두 사건의 의미를 나름대로 밝혀주고 있긴 하지만, 이런 말도 하고 있다. “이 대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독자는 알 수 없다. 관습에 따른 서사의 절차는 사라졌고 독자는 멍청한 놈의 세계에 들어섰음을, 또는 빨려 들어왔음을 깨닫는다. 이야기에서 합리적인 연관성을 생략하고, (중략) 이 이야기는 경험에 관해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경험을 독자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이야말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소설 쓰기의 가장 좋은 정의다.”(제프리 유제니디스)

제프리 유제니디스는 2003년 퓰리처상을 받은 소설가인데,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가 관습을 부수는 통렬하고 날카로운 서사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추천사를 남겼다. 나는 이 작품을 두 번이나 나름 꼼꼼하게 읽었지만, 여전히 이해가 쉽지 않았다.

 

이해가 쉽지 않기로는 어렴풋한 시간(조이 윌리엄스)도 마찬가지였다. 이해될 듯 이해는 어렴풋했다.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보다는 좀 덜했지만. 이 작품은 일찍 고아가 된 맬 배스터라는 남자아이가 홀로 세상을 살아가며 겪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차츰차츰 성장한다는 관점을 보여주고 있지 않으므로 성장소설로 보기도 애매하다. 더욱 애매한 것은 각 장의 앞부분에 대략 5~6줄 정도로 서술해놓은 내용인데, 이게 어머니의 사인을 밝히려는 힌트 같은 것인가, 하는 관점으로 접근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식의 해석은 난관에 봉착했다. 이 작품은 단편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분량이 꽤 됐는데, 주인공이 겪는 이야기는 웬만큼 이해를 할 수 있을 듯도 싶었지만, 각 장의 앞부분 내용은 이해가 쉽지 않았다. 다음에 다시 정독해보면 나아지려나? 이런 당혹감은 나만의 것은 아니었던 것도 같다. 추천인(다니엘 알라스콘)어쨌든 나는 어렴풋한 시간을 세 번째 읽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라고 말하고 있으니까.

처음에 두 작품이 난해함으로 독자를 힘들게 했지만(그래서 추천인의 추천사를 꼼꼼히 읽어야 했다. 나는 추천사나 해설은 잘 안 읽거나 대충 읽는 편이다. 앞으로는 추천사나 해설도 잘 읽을 생각이다.), 이후의 작품들은 다행히(?) 독자를 많이 괴롭히지는 않았다. 물론, 어떤 작품은 추천사에서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점을 짚어준 덕에 이해하기도 했고, 어떤 작품은 나중에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좋았던 작품은 궁전 도둑(이선 캐닌)방콕(제임스 설터), 늙은 새들(에이미 헴펠)이었다. 내가 좋았다는 것은, 작품의 문학적 성과의 측면보다는 개인적 선호 혹은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그렇게 보는 것이 좋겠다.

사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의 작가와 추천 작가들은 다들 내로라하는 작가들이다. 작가의 이력을 보면 하나같이 쟁쟁하다. 어쩌면 추천 작가들이 작가들의 이력을 보고 고른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다들 웬만큼 이력을 가진 작가들이다.

모든 작품을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고 분량이 많고 그만큼 스케일이 큰 궁전 도둑과 분량이 짤막하고 심플한 방콕두 편만 간단히 알아보자.

 

먼저, 궁전 도둑. 이 작품은 다수의 문학상 수상작으로, 2002엠퍼러스 클럽으로 각색되어 영화화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작품의 서술자는 평생을 고등학교 역사 교사로 살아온 인물이다. 서술자는 제자였던 한 인물의 학창 시절에 있었던 일과, 시간이 많이 흘러 그 제자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후에 벌인 일을 서술하고 있다. 그 제자는 상원의원의 아들이었는데, 학업에 재능도 의욕도 없는 인물로서 교내 퀴즈대회에서 부정행위로 우승을 하려 한 것을(교장도 눈감아주려는 것을) 내가 저지한 일이 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38)이 흐른 후 그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기업의 회장직에 오르고 은사인 내게 초대장을 보내며 학창 시절에 했던 퀴즈대회를 다시 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히며 예전의 제자들까지 초대한다. 그리하여 퀴즈대회가 열리는데 그는 학창 시절과 방식만 다를 뿐 부정행위를 한다. 내가 주의를 조금만 소홀히 했다면 몰랐을 방법으로. 그러나 그것을 눈치챈 나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그가 우승하지 못하도록 조력자가 알 수 없는 문제를 내어 그가 이기지 못하게 한다. 그렇다고 굴복할 그가 아니다. 그는 상원의원을 꿈꾸는 자로 유세에 나를 이용하는 등 온갖 술수를 다 쓰고 결국 상원의원이 된다. 이 작품의 줄거리를 제목과 결부시키면 그는 궁전 도둑이다. 이 작품은 사회 고위층의 부정과 술수를 치밀하게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의 초반부에 서술자의 입을 빌린 작가의 의도가 다음처럼 드러나 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의 명예 때문이 아니라 명예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경고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든 경고가 헛됨을 재빨리 알게 되기 마련이다. (중략)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로지 어느 유명인의 삶에서 일어난 예측 가능한 사건들을 기록하기 위해서고, 그가 사는 시대의 짤막한 촛불이 언젠가는 다른 역사학도의 조사를 받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게 전부다. 별로 놀랍지 않은 이야기다. (117)

 

별로 놀랍지 않은 이야기다.” 이 문장은 역설로 읽힌다. 유명인이 벌인 사건이 다른 역사학도의 조사를 받는 게 놀랍지 않은 이야기라니? 처음의 조사는 역사 교사인 서술자가 했고, 자신은 유명인의 부정과 술수를 어떻게 하지 못했지만, 훗날 다른 역사가는 그의 부정과 불의를 () 밝혀줬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내면서, 마치 대단하지 않은 양 말하고 있다니! 추천인(로리 무어)은 이 작품을 작가의 탁월한 시간 처리 능력은 엄청난 깊이와 지혜, 건축적인 복잡성을 지닌 소설이라고 극찬했다.

 

방콕은 짤막한 분량만큼이나 사건도 간단하다. 홀리스라는 유부남에게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캐럴)가 찾아와서 대화를 나누다 헤어지는 이야기다. 여자는 남자를 자극하는 말을 하고 그런 여자를 남자는 꺼리지만, 여자는 개의치 않는다.

 

여기서 나가, 그가 말했다. 어서 나가.

그 여자(아내)는 아무 대답도 안 하더라, 캐럴이 말했다.

순간 그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두려웠고 죄책감마저 들었다. 한편으로 방금 들은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럼, 당신 아직도 좋아해? 여자가 말했다.

어서 가줘. 제발, 그는 예의를 차리려 애쓰며 말했다. 그는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정말이야.

오래 머무를 생각은 없어. 몇 분이면 돼. 보고 싶었을 뿐이야. 왜 전화 안 했어  (234~235)

 

인용한 부분처럼 이 글은 대화 위주로 서술되어 있다.

제목인 '방콕'은 캐럴이 여행하겠다는 곳으로 남자에게 같이 가자고 유혹하는 소재이다. 남자는 그 제안에 응하지 않는다. 그러나, 캐럴이 가고 난 후 묘한 뉘앙스의 태도를 보인다는 게 줄거리다.

 

방이 헤엄치고 있었다. 그는 생각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과거가 갑작스러운 밀물처럼 그를 휩쓸고 지나갔다. 과거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라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는 모습으로 지나갔다. 업무로 돌아가는 게 가장 좋았다. 그는 캐럴의 피부가 어떤 느낌이었는지 알았다. 비단결 같았다. 캐럴의 이야기를 듣지 말았어야 했다. (245)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있다. 단편집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에 실린 15편의 작품들은 저마다의 개성으로 작품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개중에는 이해에 어려움을 겪게 하는 작품도 없지 않았지만, 그건 작품의 문제라기보다 독자의 문제일 것 같다. 단편소설의 다양한 양식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4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4 댓글 2
종이책 [소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평점8점 | c********u | 2021.12.18 리뷰제목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라 불리는 '파리 리뷰'가 있고 국적 불문, 장르 불문, 작가 이력 불문 그래서 탐미적인 문학 실험실인 그 파리 리뷰에 실린 글 15편을 엮었다. 책 소개에 국내에 알려진 작가들 이외 소개되지 않은 작가들이 대부분이라 했지만 난 알려진 작가들조차 생경해서 더 흥미로웠던 책이다. 소름 돋을 정도로 멋진 제목처럼 얼마나 감각적인 책일까.   첫 작
리뷰제목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라 불리는 '파리 리뷰'가 있고 국적 불문, 장르 불문, 작가 이력 불문 그래서 탐미적인 문학 실험실인 그 파리 리뷰에 실린 글 15편을 엮었다. 책 소개에 국내에 알려진 작가들 이외 소개되지 않은 작가들이 대부분이라 했지만 난 알려진 작가들조차 생경해서 더 흥미로웠던 책이다. 소름 돋을 정도로 멋진 제목처럼 얼마나 감각적인 책일까.

 

첫 작품이 자 이 책의 제목이 담긴 <Car crash while Hitchhiking,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를 읽고 든 생각은 그래서 '실험적' 작품이구나 싶었다.

 


 

 

'멍청한 놈'의 시선으로 들여다본 생사의 갈림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대한 것들이 약쟁이의 환각으로 대치되는 순간, 난 뭐지? 이건? 이란 느낌이었다. 기존 익숙한 소설의 문장 형태를 찾을 수 없는 맥락들.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리뷰(해제)가 있음에도 감각을 살아나지 않았다. 하긴 내가 작품을 해석할 정도의 수준이란 게 있지도 않으니 딱 여기까지가 내 깜냥인 게지라고 넘기기엔 뭔가 끓는 것이 있다. 다시 읽는다.

 

멜이 아이에서 소년으로 그리고 좀 더 성장할수록 더 어두워지는 삶의 모습은 '삶을 묘사하지 않고 드러낸다.'라는 다니엘 알라르콘의 해설처럼 한껏 음습하고 축축한 이야기가 뒤덮여 있는 <Dimmer, 어렴풋한 시간>은 방금 호수에서 헤엄치다 온 사람처럼 깨끗한 나뭇잎 냄새를 풍기다 어느새 개울물에 빨아 여름 햇볕에 말린 것 같은 무척 깨끗하고 먼 냄새가 나는 여자의 존재가 입에 맴돌 뿐이다. 단편이라고 치기에는 아득하게 긴 소설에 진이 빠졌다.

 


 

 

"위대한 이야기는 영원히 긁어야 하는 가려움과 같다." 107쪽

 

<Why Don’t You Dance, 춤추지 않을래>의 데이비드 해설 첫 문장은 그 어떤 소설보다 감각을 선사한다. 간절한, 혹은 그럴지도 모르는 남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자신의 영역에 드러내고 낯선 누군가는 흥겹게 춤을 추기도 지켜보기만 하기도 한다. 그리고 돌아서 관심에서 지우고 더 이상 회자하지 않는다. 짧고 간결하다. 한데 '춤'은 흥겹지 않아서 남자의 우울을 이해하기도 전에 음악은 끝났다.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에도 나는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 갈 준비를 했다. 나는 내가 들고 있지만 떨어뜨리지는 않을 돌멩이처럼 굴복을, 휴식의 고요를, 중력을 사랑한다."

313쪽, 버나드 쿠퍼 <늙은 새들>

 


 

 

단편 소설의 묘미가 단순히 짧은 문장들 안에서 어우러지는 문장의 유희가 아니고 '무엇을 생략할지'를 아는 것, '남겨진 것은 반드시 사라진 것을 함축해야 한다'라는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말처럼 이토록 어려운 단편 소설의 진수를 이 책이 보여준다.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는 일은 존재조차 몰랐던 세계를 발견하는 일과 비슷하다'라는 옮긴이의 말처럼 생경했던, 그것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야만 만날 수 있는 대가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다는 건 짜릿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난해하고 방향을 잡을 수조차 없던 문장들에서 공부하듯 되돌아가야 했던 순간들조차 감내하게 할 정도다. 어느새 끝을 만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4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4 댓글 0
종이책 단편소설을 배우다 [외국소설-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평점9점 | YES마니아 : 로얄 j***6 | 2021.12.02 리뷰제목
세상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 있고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 둘 다 하는 사람도 있고 둘 다 하면서 하나에 더 열중하는 사람도 있고 둘 중에 하나만 하는 사람도 있겠다. 쓰는 글이 전문분야라면 둘 다 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니 쓰지는 못해도 읽기만 해도 좋겠다 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 이 글이 단편소설이라면?   나는 순전히 독자의 입장으로 읽었다. [파리 리뷰]라는 잡지에 대해서도
리뷰제목

세상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 있고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 둘 다 하는 사람도 있고 둘 다 하면서 하나에 더 열중하는 사람도 있고 둘 중에 하나만 하는 사람도 있겠다. 쓰는 글이 전문분야라면 둘 다 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니 쓰지는 못해도 읽기만 해도 좋겠다 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 이 글이 단편소설이라면?

 

나는 순전히 독자의 입장으로 읽었다. [파리 리뷰]라는 잡지에 대해서도 이 책을 통해 알았고 이 책에 실린 글들이 얼마나 근사한 작품인지도 추천하는 작가들 덕분에 알게 되었다. 그렇구나, 실험적이라거나 개성적이라거나 독창적이라고 하는 특징들을 가졌다는 게 이런 모습이구나, 끄덕이면서. 그러나 묘하게도, 내게는 대체로 인상적이지 못했다. 무엇보다 재미가 좀 없었다. 마지막으로 실려 있는 댈러스 위브의 '스톡홀름행 야간비행'이 없었더라면 많이 실망하고 쓸쓸했을 듯하다. 이 작품이 있어서 이 책을 다 읽은 보람을 갖도록 해 준 게 고마울 따름이다. 

 

왜 재미있게 읽지 못한 걸까, 나는 또 나를 의심하면서 이 책에 대해 쓴 다른 이들의 글을 찾아 보았다. 흠, 글을 쓰려는 예비작가들을 위한 소설집이라는 문구를 본다. 그런가? 그래서 그랬던가? 독자의 범위야 작가가 정해 준다고 딱 그 사람들만 읽는 것은 아닐 테고, 그래도 주 대상이라는 게 있을 테니 그들을 위한 작품이라고 한다면? '장차 단편소설을 쓰려는 사람들은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의 개별적인 특징들을 잘 살펴보고 도움을 얻으세요.'와 같은 취지라면?

 

소설을 읽을 때면 나는 쓴 작가의 처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곤 한다. 어떤 생각에서, 어떤 뜻을 품고, 어떤 의도를 전하려고, 어떤 바람으로, ...... 썼을까? 나는 작가가 펼쳐 놓은 그림에서 얼마나 많은 곳에 머물러 보았을까? 작가의 의도와 달리 내 마음대로, 내 멋대로 바꿔 받아들이는 대목도 많을 텐데, 그렇게 받아들인 건 얼마나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작가와 작품과 독자 사이에 관한 이론들이 여럿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작품은 작가 손을 떠난 때부터 온전히 독자의 것이라고도 하지만, 읽는 내 마음으로는 쓴 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다 알지는 못해도 알려고는 해야 한다고 여전히 믿고 있고. 

 

어쨌든 읽는 것보다는 쓰는 게 더 어려운 일, 이건 확실하다. 그러니 장차 쓰려고 하는 이들은 나처럼 그저 읽고만 있는 사람들보다 마음이 더 복잡하겠지. 독자도 생각해야겠지만 그보다 먼저 쓰는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야 할 테니까. 나는 홀로 바라는 사람이다. 적어도 소설을 쓰는 사람이 그 글을 읽는 사람보다는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그 행복이 글 사이사이로 풍겨 나와 읽는 마음까지 행복해지도록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이 책을 읽는 예비작가들이 그랬으면 좋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362

"생각이 움직일 수 있는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아래로 흐르는지 궁금해." 다른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 안에서는 어떤 것도 홀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다. 이야기 자체가 공동의 형식이자 행위이기 때문이다.  -앨리 스미스

 

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2 댓글 0
종이책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평점7점 | s*******r | 2022.03.20 리뷰제목
이 책은 <타임>이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라고 부른 <파리 리뷰>에서 기획한 단편선이다. <파리 리뷰>는 1953년 출판 산업과 문학 교류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창간했다. 영문학을 다뤘으며 계간지였다. 창간 이후 7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작가의 경력, 국적, 성별,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한 소설들을 편집해왔다.   어느 날 <파리 리뷰>는 웬만한 출판사는
리뷰제목

이 책은 <타임>이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라고 부른 <파리 리뷰>에서 기획한 단편선이다. <파리 리뷰>는 1953년 출판 산업과 문학 교류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창간했다. 영문학을 다뤘으며 계간지였다. 창간 이후 7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작가의 경력, 국적, 성별,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한 소설들을 편집해왔다.

 

어느 날 <파리 리뷰>는 웬만한 출판사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기획한다. 열다섯 명의 작가에게 그동안 <파리 리뷰>에 실렸던 단편소설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 한 편을 고르고 그 소설이 탁월한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한 것이다.(자기 소설이 아니라 다른 작가의 소설을 고른 것이다)

 

물론, 보는 이야 즐거운 기획이지만 선택당할 소설의 작가들이 이런 기획에 흔쾌히 동의했을지는 의문이다. 문학을 해설하는 일에 기겁하는 작가들이 많은 데다 누군가 본인의 소설을 탁월하다고 평하는 걸 마냥 흐뭇하게 쳐다볼 작가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호평이든 혹평이든 비평 자체를 혐오하는 작가들도 많다. 오죽하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84일 동안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다 거대한 청새치를 낚은 뒤 모조리 상어 떼에 뜯겨먹힌 산티아고 노인의 이야기를 헤밍웨이와 비평가 사이의 관계로 해석하는 버전이 나왔겠는가.

 

그러나 소설을 선택하는 입장에선 이런 기획이 자신의 최애 작가를 여러 사람 앞에서 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작가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작품에 대해 뭐라 하는 건 싫어하지만 다른 작가에 대한 얘기는 곧잘 하는 편이다. 특히 그들이 남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만약 내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두 소설을 두고 고민할 것 같다. 하나는 어윈 쇼의 <80야드의 질주>이고 하나는 기 드 모파상의 <비곗덩어리>다. 둘 모두 우리나라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어윈 쇼의 경우 작가 자체도 낯선 이름인데, <80야드의 질주>에서 그가 크로키한 인생의 무상함은 읽은 지 몇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아무튼 나 같은 바보에게도 이런 기회가 주어지면 얼마든지 원고를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이는 꽤 신나는 일이다. 아마 <파리 리뷰>의 전화를 받은 작가들도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누구의 소설을 고를까. 이 소설의 어떤 면을 소개할까. 독자들도 나처럼 이 작가를 사랑하게 될까?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이란 고작 먼지 한 톨에도 비기지 못할 존재고, 그 먼지만도 못한 존재가 낳은 문학이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가치가 있나 싶다가도, 이렇게 문학이 사람 사이를 연결하고 열광하게 만드는 걸 보면 역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위대함이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첫 소설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의 화자는 자동차 사고 현장에서 퍼붓는 비를 맞으며 '나는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I knew every raindrop by its name)' 고 말한다. 우주의 먼지들에게도 모두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이 적힌 소설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나는 문학의 폭우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2 댓글 0

한줄평 (17건) 한줄평 이동

총 평점 9.9점 9.9 / 1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