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순 교수의 <질문 빈곤 사회>
개인적으로 어느 행사장에 가든 가능하면 질문을 한다는 것이 내 신념 중에 하나였다. 실제로 대형 포럼에 참석했을 때 플로어로 질문권이 넘어오면 한가지씩 했다. 안 그러면 뭔가 잘못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미디어오늘에 들어가고, 첫 인터뷰가 잡혔다. 광고업협회 신임 회장이 되신 제일기획 사장이었다. 질문을 만들기 위해 꽤 고심하기도 했다. 어떻든 그렇게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질문은 내가 살아가면서 가장 고민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강남순 교수는 다양한 저작으로 우리 사회에 많은 이슈를 던지는 분이었다. 강교수님이 이번에 내놓은 책은 그래서 유독 눈에 잘 들어왔다. 책 안에는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내용이 참 많아서 반가운 책이기도 했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어서 이 시대 악이란 ‘비판적 사유의 부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비판적 사유의 부재를 가져오는 가장 원인은 질문하면 뭔가 걸리게 하는 우리 사회적 분위기라고 말한다. 사람이 동물과 달라진 것은 ‘질문하는 존재’라는 이유다. 질문하기를 ㅌ통한 정신세계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때문에 “갖가지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한국 문화는 결국 비판적 사유의 부재, 질문의 부재, 그리고 질문의 빈곤이 가져온 ‘질병’이라고 말한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사회에서 만연한 일기장 보기도 꼬집는다. 조국 교수를 수사하는 검찰은 아이들의 일기장을 가져가서 그 범죄에 꾀어 맞추려는 작업을 했다. 가장 야만스러운 행위지만 이 행동에 제동을 거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이 사회의 굳건한 세력을 형성한 극우정치, 기독교, 미디어의 기생적 동맹도 신랄하게 지적한다. 이런 그의 사유는 트럼프를 부르는 미국에서도 찾아낸다. 어찌 생각하면 지금의 우리 사회도 그런 측면으로 깊어 가는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배움이란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질문하기를 배우는 것이다.”고 말할 정도다.
저자의 질문하기는 차츰 세상에서 차별 없애기 등 우리 사회가 가진 전반적인 고질병으로 접근해 간다. 동성애, 장애인 등 소수자에 대한 차별 뿐만 아니라 혐오를 조장하는 이 시대의 문제 전반으로 옮겨진다.
이런 저자의 마지막 주장은 다섯가지 가치를 찾으라는 것이다. 우선 존중의 가치다. 둘째는 인내의 가치다. 세 번째는 정직의 가치다. 네 번째는 친철의 가치고, 다섯 번째는 연민의 가치다.
책은 ‘나는 질문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테제로 시작했지만, 이 시대가 가진 도덕의 가치 전반을 다루고 있고, 잔잔한 느낌을 받았다.
21대 대선이 다가오는 국면에서 나는 이 사회의 갖가지 문제를 직면한다. 개인적으로 내 첫직장인 미디어오늘의 기자들조차 이제 엘리트주의나 정치적 편향성에 매몰되지 않은가 하는 느낌을 가졌다.
세상을 지키는 힘은 어떤 강력한 것들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로마제국이나 몽골제국이나 대영제국 같은 강자여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여전히 강한 존재는 도덕적으로 성숙하고, 사랑을 받는 존재였다. 나는 주변에서 꽤 긴 시간 동안 진행된 평화를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을 종종보게 된다. 그들은 결국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지향한다.
마치 뱀이나 학을 왕으로 모시려는 개구리 같은 근성이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돌아보면 가장 간절한 것이 이런 집단 탈도덕을 어떻게 제어하는 것인가 였다. 많은 이들이 한국의 리더십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더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그 한국의 리더십은 국민들이 진실을 판단하고, 그 진실을 지켜가는 힘에 있다.
강남순의 『질문 빈곤 사회(행성B,2021)』는 “나는 질문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로 질문이 부재하는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경종을 울리며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책은 여전히 한국이 ‘질문 후진국’(p.10)임을 상기시키며 ‘나쁜 질문’의 위험성과 ‘좋은 질문’의 전제와 방법을 익히도록 독자를 이끈다. 현직 교수인 저자는 현대 철학적·종교적 담론들 뿐 아니라 “코즈모폴리턴 권리, 정의, 환대 등의 문제들”에 학문적, 실천적 관심을 두고 학생과 대중에게 지식 전달과 변화를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동시에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페미니즘과 종교 3부작을 비롯해 다양한 저서와 컬럼으로 독자를 만나고 있는데 『질문 빈곤 사회』는 최근작으로 “지금” 더 부각되고 수정해야 할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꼭 필요한 다섯 가지 “물음 묻기”를 제안한다. 대상 별로 “권력과 언론에 물음 묻기”부터 “타자의 얼굴”, “관행과 대안”, “존재와 혐오”, “희망과 생명”에까지 “물음 묻기”는 긴급하고 기본이 되는 것부터 미래 지향적인 단계까지 확대된다. 아인슈타인이 가진 호기심과 창의성에서 재능이 열정적으로 궁금해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봤을 때 “질문은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가장 잘 드러내는 정체성의 결정 중 하나”(p.61)다. 즉, “호기심이 없어 질문 자체를 구성하지 않는 이들은 자기 자신이나 사회의 새로운 변화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는 무관심한 사람“이며 그람시의 명제에 의해 그런 무관심한 이들은 ”기생하는 존재“들로써 이미 진정으로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p.62)
2부 "타자의 얼굴에 물음 묻기"에서는 사람은 처해진 환경과 별도로 세 종류의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고 지적한다. 매니퓰레이터, 매니저, 리더의 특징을 하나씩 살펴볼 때 저자가 보여주는 사례는 그들을 넘어 우리 주위의 누군가로 확대, 연상된다. 또한 저자는 일반화된 호칭 뒤에 숨은 폄하 의도, 한국의 나이 집착주의가 왜 위험한지를 근거를 들어 밝힌다. "정치적 행위로써의 말과 글"(p.108)에서의 지적도 논의를 부른다. "문학작품이라고 해서 차별과 혐오의 면책 특권 영역이 되는 것이 아님을, 또한 어떤 종류의 글이든 이러한 비판적 수정 작업의 대상임을 시인을 보여준다."(p.110)는 지점에서 저자의 의도는 알겠지만 범위를 한정하는데 있어 의문이 들기도 한다.
“긴즈버그의 유산”을 하나씩 짚어가며 숙고하는 장면들도, 배움과 불편함의 관계 등을 정리할 때도 밑줄에 괄호, 별표와 각종 체크가 지면 가득이다. 적절한 인용과 풍성한 사례는 이 책의 장점으로 가독성을 높이고 이해를 돕는다. “진정한 배움은 학생들에게 익숙한 인식 세계를 깨고, 새로운 관점으로 주변 세계의 문제들을 보게 함으로써 상투적이고 무비판적인 인식을 깨는 ‘불편함’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배움이 가능하다.”(p.188) 날선 비판에 움츠러드는 부분, 내내 강력하게 주도하는 글로써 과하다 싶은 부분도 있지만 지평을 확장하는 배움을 위한 ‘불편함’의 감수는 반대할 수 없다. 주요 이슈를 빼곡이 담아 공부하며 읽어야 할 책 같다. 책 자체가 배움의 과정을 자연스레 경험케한다. 여러 부분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그 중에서도 다시 펼치는 부분은 은밀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현대 세계의 “식민화”다. 이는 주체적으로 사유하는 ‘고독의 시간과 공간’ 가지기를 회피할 때 언제든 가능한 식민화로 “스스로 사유하고, 읽고, 고민하고, 대안을 찾으려고 씨름하는 과정에 들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정황과 연계된 대안의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게 된다.”(p.132)는 권고를 다시 새기게 한다. 희망적인 논의의 결말이 책을 덮는 독자의 마음에 선물처럼 남을 책이다.
현대 세계에서 식민화는 매우 은밀한 방식으로 진행되기에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다. 주체적으로 사유하는 ‘고독의 시간과 공간’ 가지기를 회피한다면, 외부 세력이(그것이 사람이든, 대중 매체이든, 사회나 국가든) 나를 대신해 내 삶의 방향과 대안을 결정하게 하는 ‘식민화’의 문을 열 개 된다. 스스로 사유하고, 읽고, 고민하고, 대안을 찾으려고 씨름하는 과정에 들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정황과 연계된 대안의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게 된다.(p.132)
교육과정에서 '불편함'이 생략된다면, 현실 세계가 담고 있는 무수한 차별과 배제를 문제로 인식하고 새로운 변화를 만드는 '변화 주체'로서 이행하는 진정한 평등 교육은 불가능하다. 진정한 배움은 학생들에게 익숙한 인식 세계를 깨고, 새로운 관점으로 주변 세계의 문제들을 보게 함으로써 상투적이고 무비판적인 인식을 깨는 '불편함'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배움이 가능하다.(p.188)
어찌 보면 인간의 삶이란 무수한 ‘작심 3일’들을 거치면서, 이 삶의 짐들을 견뎌 내면서 지금과 다른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생명 에너지를 공급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p.352)
인간의 삶은 무수한 ‘작심 3일’들이 만나서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자신만의 여정을 이어가는 것이기도 하므로.(p.353)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질문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은 질문하는 방법, 질문하는의 태도를 알려준다. 권력, 인권, 관행, 혐오, 희망에 커다란 질문을 던지며, 독자가 스스로 물음표를 가질 수 있도록 안내한다.
생각을 확장하고 나를 돌아볼 수 있도록 이끈 고마운 책이다.
무의미한 질문,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하는 나쁜 질문의 예시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질문에 인색하고 편협한지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