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는 50대는 미래가 두렵지 않다.
(박윤진/빈티지하우스/2020)
은퇴예정자이거나 은퇴자가 가장 불안을 느끼는 것이 ‘돈’이라고 한다. 그런데 저자는 돈 보다는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한다. 회사에서 얼마나 고민했던가? 얼마나 기대하고 마음 졸였던가? 출근과 퇴근 사이에서, 시무식과 종무식 사이에서, 성과평가와 승진 사이에서 우리는 그렇게 늙어갔다. 싫든 좋든 그 사건사고들은 오늘을 사는 나를 촘촘하게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은퇴를 앞둔 시점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도 지난 회사생활과 무관하지 않다. 가정에서는 또 어떤가? 꼬박꼬박 나오던 월급이 사라지는 것도 불안하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불안의 원인은 ‘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 불안을 극복할 방법을 여러 가지 면에서 제시한다. 특히 내면을 돌아보라고 말한다. 가장 좋은 방법으로 철학을 제시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내면의 힘을 키워라. 하이데거는 불안은 ‘양심이 부르는 소리’라 하고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가치가 없다.’ 라면서
고전을 읽고 좋은 글귀들이 많이 있다. 도서관을 다니며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산책을 하고, 독서 모임 하고, 일상의 소중함을 가꿔라. 그리고 내면의 힘을 키워 남을 돕는 일을 하라
공무원으로 퇴직한 저자는 연금생활자일 것이다. 일단 기본 의식주가 해결이 되니, 조선 시대 선비 같은 삶이 가능할 것이다. <임계장 이야기>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저자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을지 궁금하다.
0 중년층이 겪는 은퇴불안
한 연구자가 중년기를 은퇴불안 척도(Middle Aged of Retirement Anxiety Scale, 이하 MARAS)를 개발했다. 은퇴예정자의 고통을 심리적 요인, 신체적 요인, 경제적 요인, 사회적 요인 등 모두 4개 요인으로 붆석하고 있다.
* MARAS 심리적 양상 파악
1. 나는 은퇴를 생각하면 속상하다.
2. 나는 은퇴를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3. 나는 은퇴를 생각하면 걱정된다.
4. 나는 은퇴를 생각하면 초조하다.
5. 나는 은퇴를 생각하면 긴장된다. p31
* MARAS 신체적 양상
1. 나는 은퇴 후, 노인성 질병(치매, 우울증, 암, 치과 질환, 뇌졸중, 관절염, 퇴행성 질환) 및 성인병, 만성질환 (고혈압, 당뇨, 심혈관 질환), 불치병에 걸릴까 두렵다.
2. 나는 은퇴로 인한 신체노화로 체력 저하, 기억력 감퇴, 근력감소와 질병이 걱정된다.
3. 나는 과식, 음주, 흡연을 절제하지 못하고 있어 은퇴 후 건강이 염려된다.
4. 나는 현재의 불규칙한 생활 때문에 은퇴 후의 건강이 걱정된다.
5. 나는 은퇴 후 예상되는 불규칙적인 생활 때문에 무기력, 비만이 걱정된다.
소화불량, 만성두통, 손떨림, 불면증, 시력 저하, 관절염, 탈모도 흔한 증상이다. '나‘ 라는 인식 자체는 늙지 않지만 몸은 늙어간다. p32
* MARAS 의 신체적 요인
1. 나는 은퇴 후, 개인적으로 준비해 온 노후자금과 연금으로 생활이 가능할 까 걱정이다.
2. 나는 은퇴 후,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퇴직금이나 연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한다.
3. 나는 은퇴를 위한 경제적 준비의 필요성을 인식하나 저축, 연금, 보험, 퇴직금 등을 준비 못해 걱정이다.
4. 나는 은퇴 후, 경제적 어려움이 예상되어 은퇴 후의 월평균 생활비가 얼마 정도 필요할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5. 나는 은퇴 후, 질병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과 물가 상승으로 인한 주택 구입 및 전세자금 등 목돈이 갑자기 필요해져서 가정의 재정상태가 어려워질까 불안하다. p33
* MARAS 의 사회적 요인
1. 나는 은퇴를 하면 직장 동료들과 계속 연락하기 어려울 것이다.
2. 은퇴 후, 사람들은 결코 어떤 일을 함께하자며 나를 찾지 않을 것이다.
3. 현재 나의 사회적 지위, 위치는 은퇴를 하면 상실할 것이다. p35
0 무조건 써야 한다.
의식의 흐름에 의존해서 현재 자신의 기분을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원망스럽다면 원망이라고 써라. 누군가 떠오른다면 그 이름도 써라.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내게 했던 말도 써라. 그 이름이 손이 되어 나를 때릴 수도 있다. 그 행동을 써라. 그 말과 행동 때문에 일어난 감정을 써라. 욕을 해도 좋다. 죽이고 싶다고 쓸 수도 있다. 가식 없이 다 쏟아내라. P81
6장 왕년에 말이야
0 어쩌다 꼰대
영업의 신 또는 보고서의 신이라고 불리던 선배들도 ‘왕년 타령’과 ‘이젠 한물 갔다’ 사이를 어김없이 오고 간다. p89
0 과거형 인간
꼰대를 다른 말로 하면 과거형 인간쯤 되지 않을까. 지금 여기를 살지 못하고 그때 그곳을 사는 사람들 말이다. p90
과거형 인간이 예상한 미래는 과거와 닮는다. p91
우리가 삶의 열쇠를 떨어뜨린 곳은 현재다 우리는 언제나 현재만을 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에서 열쇠를 찾아야 한다. 아무리 어둡고 부안해도 현재를 떠나면 안 된다. 왕년이 아무리 밝고 화려해도 거기엔 삶의 열쇠가 없다. p92
0 일상의 위대함
내가 사는 곳은 늘 현재다. 나의 관심사항과 희망사항은 현재에서 나온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문제는 늘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현재의 자신 때문에 생긴다. 과거는 나에게서 벗어나 이미 사실이 되었다. 우리는 객관적인 사실마저 고치려한다.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내 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영원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억울하거나 불안하지 않다. 시간 여행도 원하지 않는다. 그는 지난 과거를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불안한 미래란 없다. 지금 여기를 향해 아름답게 오고 있는 미래가 있을 뿐이다. 미래의 의미를 바꾸는 힘은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내 안에 있다. 진정한 시간 여행은 지금 여기에서 날씨, 식사, 여행, 부부, 부모, 자식, 친구 등을 친절히 맞이하는 일상 그 자체에 있다. p94
0 지금 여기에 뿌리내리는 독서 모임
평범함이란 나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평범하게 오래 뿌리 내릴 수 있는 모임을 만들거나 참여하길 권한다. p95
0 내 목소리로 듣는 철학
철학 친교는 랜 라하브라는 사람이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 철학 실천 방법 중 하나다. 철학 친교는 의미 있는 글을 함께 소리 내어 읽고, 참가자들이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말하고 듣는 시간이다. 나는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오래된 삶의 관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는 철학친교의 가장 큰 장점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친교는 내 목소리로 듣는 철학인 셈이다. 같은 문장도 속으로 읽을 때와 소리 내어 읽을 때가 다르다. 여럿이 함께 읽으면 또 달라진다. 감동뿐만 아니라 의미도 달라진다.
철학 친교는 자기 생각을 소리내어 밝혀도 괜찮은 자유와 배려의 시간이다. 교수님 등 어떤 전문가의 견해에도 얽매이지 말라고 당부한다. 나는 자유롭게 말하고 듣는 넉넉함을 통해 쉼과 회복을 얻었다. p99
8장 아빠 말고, 아빠 카드
0 자식이 내 맘 같지 않은 이유
과학자들은 엄마와 아빠를 만드는 호르몬도 발견했다. 출산 과정에서 나오는 옥시토신은 여성을 엄마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남성은 아내의 출산 전후에 바소프레신이라는 호르몬 수치가 높아진다. 바소프레신은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공격성을 높이고, 새끼와 놀아 주려는 부성 행동을 증가시킨다. p128
◈ 자식이 내 맘 같지 않은 이유가 있다.
첫째, 원래 내 마음은 내 몸에만 적용되는 거다. 내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확장해서 적용하려는 것 자체가 반칙이다. 한 나라의 주권이 그 나라에만 미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면 온 국민이 분노하는 것처럼, 부모가 아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면 아이들의 온 세포가 분노한다. 아이들은 엄연히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다. p129
누가 나의 어린 시절을 규정하는가? 부모다. 제우스도 자신의 아버지 크로노스를 죽였다. 크로노스는 시간이다. 모든 존재는 시간에서 태어난다. 제우스는 그 시간을 죽임으로써 자기만의 시간을 얻어낸다. 사춘기 때 아이들은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자기만의 삶에 대한 의지가 발동하는 것이다. 제우스의 부친 살해는 이러한 인간 성장의 자연스런 단계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둘째, 모든 사람은 시대의 자식이기도 하다. 짙게 화장하고 짧은 치마를 입은 아이돌에게 환호하고, 돈 잘 번다고 칭찬하는 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이다. 우리 아이들은 이 시대가 추구하는 가치를 태어날 때부터 온몸으로 배웠다. 요즘 아이들은 외모에 너무 관심이 많다고 걱정하는 분들이 있다. 지금 이 시대와 부모가 그렇다는 증거다. 요즘 아이들이 너무 돈만 밝힌다며 걱정하는 분들도 있다. 너무 돈만 밝히는 시대와 부모 탓이다. p130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상황에서 각자 스스로 가장 좋은 행동을 하도록 판단하고 실천하는 삶의 지혜를 ‘프로네시스’라고 불렀다. 프로네시스는 누가 가르쳐 줄 수도 없다. 마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녀들이 자기 삶의 맥락에 맞는 프로네시스를 갖길 바란다면 믿고 지켜보는 방법이 가장 좋다. 사실 그 방법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p135
9장 황혼이혼과 백년해로 사이
0 혼자라는 운명
플라톤 <향연> 인간은 원래 한 쌍으로 남자-남자 , 남자-여자, 여자-여자 이렇게 세 종류가 있었단다. 이들은 모두 힘이 세고, 지혜롭고, 빨랐다. 결국 이들은 신들마저 공격했다. 제우스는 오랜 생각 끝에 인간들이 더 이상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벌을 내린다.
“지금 나는 인간을 두 쪽으로 나눌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지금보다 약해질 뿐만 아니라 그 수가 두 배로 늘어난다. 그러면 우리에게 더 많은 재물을 바칠 수 있게 될 것이다.” p149
우리는 원래 완전하고 신에 버금가는 능력자였다. 그런데 신이 인간을 반으로 쪼개버렸다. 사랑이란 갈라져 헤어진 내 반쪽을 찾고 싶은 인간의 욕구라는 것이 플라톤의 설명이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결혼은 미친 짓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살라고 한 것은 우리의 죗값을 치루기 위한 신의 명령 아닌가. 신의 명령을 어기고 그 오랜 시간 함께 살았으니 결혼생활에 이런저런 문제가 그칠 수 없었던 것 아닐까.
헤파이스토스가 인간들의 감동적인 사랑을 굽어보고 이렇게 말한다고 가정해 보란다. “인간들아, 너희들이 서로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너희는 정말 밤에도 낮에도 서로 떨어지지 않고 함께하는 것을 원하느냐? 살아서도 하나의 삶, 죽어서도 하나의 죽음으로 남길 원하느냐? 이것을 너희가 진심으로 원한다면, 내가 너희를 녹여 하나로 만들어 주리라. 그 후, 너희가 여전히 만족하겠는지 살펴보아라.” p150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분리를 겪었다. 분리는 내 몸을 갖기 위한 고통이었다. 엄마를 아무리 사랑해도 그 몸에서 분리되지 않으면 나는 존재할 수 없다.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도 먹는 입은 각자 따로 있다. 내 입으로 들어가야 음식 맛을 알고, 내가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사랑도 하는 것이다. p151
10장 안 아픈 데가 없어
자기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P167
0 몸을 바꾸는 비법
몸을 바꾸기 위해선 먼저 생각을 바꿔야 한다. 생각을 바꾸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생각을 일단 멈추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을 더 잘하려고 하지 말고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언어 이전에 있는 침묵이 모든 말을 뿌리이듯, 생각 이전에 있는 텅 빈 의식이 모든 사고의 뿌리이기도 하다. 이 뿌리에 닿기 위해 내가 사용하는 방법은 명상이다. 일단 생각을 멈추고, 나의 감정과 몸 상태를 알아채는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
호흡명상은 호흡 확인에서 시작된다. 한 번 숨을 들여 마셔 보자. 밖에 있던 공기가 코로 들어오는 순간, 바깥 공기는 이제 ‘숨’으로 바뀐다. 숨은 기도를 타고 넘어가 폐를 통해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코, 기관지, 허파, 배, 손과 발까지 숨을 따라 온몸 구석구석을 의식해 본다. 놓치지 말고 이 숨이 움직이는 통로를 따라 마음을 써 보자. 내 몸에 퍼지고 있는 것은 단순한 ‘산소’가 아니다. ‘생명력’이다. P169
숨은 밖에 있던 생명과 내 안에 있는 생명을 이어주는 탯줄이다.
숨을 내 쉬어 보자. 몸 구석구석에 있던 기운들이 숨을 타고 나온다. 의식은 들어올 때와는 거꾸로 날숨을 따라간다. 발과 손, 배, 허파, 기관지, 코 이런 식으로 계속 들숨과 날숨을 의식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덧 순서가 사라지고, 숨과 의식만 남는다. 더 진행되면 숨만 남는다. 이때 일어나는 몸의 변화, 느낌, 감정들을 자각해보자. 나는 호흡 명상을 5분 이내로 한다. 잘 되는 날은 5분만으로도 푹 자고 난 듯 몸이 가볍다.
또한 몸을 바꾸기 위해 매일 하는 일은 걷기이다. 하루 한 시간 이상 걸은 지 10년이 넘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걷고 나면 막혔던 생각이 뚫린다는 점이다. 내가 빠져 있던 생각의 관성을 걷기가 깬 것이다. P170
11장, 건망증이 주는 선물
0 파리 관점과 웃음 코드
미국 버클리대학교의 오즐렘 에이덕 박사
인생 최악의 사건을 떠올려다. A 집단에게는 당시 사건을 생생하게 떠올리고 주문 B집단에게는 자신을 벽에 붙은 ‘파리’ 라고 생각하게 한 후 그 사건을 기억하도록 했다. 이후 심장 박동수, 혈압, 스트레스 수준 등을 측정했는데, 자신을 파리로 상상하고 기억을 떠올린 B 집단의 스트레스 정도가 현저히 낮았다. 파리의 눈을 통해 교훈을 얻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것을 ‘거리두기’라 한다. P179
나쁜 기억을 다스리는 또 하나의 방법은 ‘앵커링’이다. 앵커링은 배를 바다 한곳에 정박시키기 위해 닻을 내려놓는 걸 뜻한다. 여기서는 생각하기조차 싫은 나쁜 기억 속에 자신만의 웃음 코드를 심어놓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해고통지서를 주었던 팀장이 방귀를 뀌었다거나, 계약서를 던지는 갑질 거래처의 임원 입에서 갑자기 틀니가 빠지는 상상을 기억 속에 삽입하는 것이다.
‘프루스트 효과’란 후각을 통해 잠재되어 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을 먹게 되는데, 그 향기를 맡는 순간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단초가 되는 것이다. P180
13장 딱 살기 싫더라구
0 개 경주
가짜 양을 매달아 사냥개를 달리게 한다. 얼마나 열심히 뛰는지 발톱에 피가 고이고 금세 빠진다. 이건 약과다. 어떤 놈은 앞발로 자기 뒷다리를 친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다리를 타고 흐른다. 1등을 차지한 개가 양 인형을 물고 마구 흔든다. 고개를 떨구고 땅에 털썩 주저앉아 뜨거운 발바닥을 핥는다. 발톱이 빠져라, 피가 나는 것도 모르고 뛰었는데 목표는 가짜였다.
이런 허무감을 호소하는 50대들이 많다. 평생 충성했던 회사가 더 이상 나를 원하지 않는다. 행복하리라 믿었던 가정도 돈이 끊긴다는 불안 앞에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 보너스, 승진, 감투는 나를 더 빨리 달리게 만들기 위한 경영전략이었다. 내가 경주용 개와 뭐가 다른가. 사실 아무도 내게 이런 눈치를 주지 않는다. 혼자서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p213
0 불안은 양심이 부르는 소리.
내가 불안한 건, 나답지 살지 못한 것에 대한 갈증 때문은 아닐까? 하이데거를 이렇게 봤다. 불안은 양심이 부르는 소리! 이것이 하이데거가 불안에게 붙인 새로운 이름이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양심은 세상 따라 살기에 급급한 나에 대한 정지 신호다. 그 신호가 어느 날 갑자기 불안하게 깜빡거린다. 내 자신이 경주용 사냥개와 다를 바 없다는 비참한 자존감도 정지 신호 중 하나다. 세상사람 흉내로는 더 이상 내 인생을 속일 수 없다는 목소리, 그게 바로 양심이다. p214
하이데거의 양심의 소리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성찰과 일맥상 통한다. 소로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동료와 발을 맞춰 행진하지 않는 것은 다른 북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박자건, 얼마나 멀리서 들려오건, 자신이 들은 음악에 발을 맞춰라.”
인간이라면 자기로서 살도록 생겨 먹은 것이다. 생긴 대로 살지 않으니까 불안한 거다. 맞지 않은 신발을 신었으니까 발에서 피가 나는 거다. 다른 사람 속도에 맞춰 뛰려니 항상 피곤할 수밖에 없다. p216
14장 병원에서 항 우울제를 주더라.
0 철학 상담이 뭐예요.
철학 상담이란 인간에 대한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자기 삶을 천천히 살펴보도록 돕는 대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게 설명인지 수수께끼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을 것이다. 뭐든 철학이란 말이 들어가면 좀 어렵고 진부하게 느껴진다. p235
철학상담의 최종 목표는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자신을 자신답게 가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결국 내가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상담 단계를 지나, 철학을 통해 나의 존재에 대해 질문하고, 이를 통해 자기 발견과 자기 학습에까지 이른다면 최고 수준의 철학상담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p236
나를 알아가는 과정과 내 영혼을 돌보는 과정이 연결되어 있는 것 아닐까? 나름 생각해 보고, 내 삶을 생각해 보면서, 마음 날씨를 천천히 살피는 게 어떨까?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이런 말도 했나 보다. “생각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 p238
불안을 인정하는 것이 불안을 완화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불안을 인정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공감과 위로다. 섣불리 충고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불안의 원인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대화했다. 불안은 단순히 돈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불안은 아무 이유 없이 우리 옆에 있다가, 삶의 매 순간마다 때는 바로 지금이다 고개를 드는 것 같았다. p239
철학을 통해 ‘무조건 돈이 원인이다.’ 라는 생각에 묶여 있던 자신을 발견했다. 자기의 문제점을 스스로 발견했고, 나만의 삶을 떠올리면서 자신에게 질문한다.
“지금 여기에서 나는 괜찮게 살고 있나?” p240
15장 도대체 갈 데가 없어
0 나는 그 사람을 대신 살았다.
하이데거는 나와 함께 밥 먹고 술 마시는 세상 사람들을 ‘세인’이라고 불렀다. 나와 세인은 다를 것이 없다. 세인은 나에게 어떤 해코지도 하지 않는다. 세인도 나와 비슷한 처지다.
하이데거가 세인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이거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방식을 문제 삼지 않는 삶은 진정한 삶이 아니다! 내 발로 출근하고, 내 입으로 밥을 먹고, 내 눈으로 영화를 보더라도, 그건 내 삶이 아니라 세인의 삶일 수있다. 내가 나로서 살고 있는가를 질문하지 않고, 그저 국민으로, 시민으로, 회사원으로, 아들로, 남편으로, 아빠로 산 건 세인의 삶일 뿐이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삶은 결국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산 것이다. p248
나를 나답게 해 주는 건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다. 내 삶에 대해 묻고 생각할 수 있는 곳으로 규칙적으로 떠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늘 그곳으로 가야 한다. p249
0 집을 떠나 매일 갈 수 있는 곳
동네 도서관을 알게 되었다. 내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것에 버금가는 사건이었다. 도서관은 그야말로 번듯했다. 책을 읽고 쓰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컴퓨터도 여러 대 있다. 무료 와이파이도 제공된다. 주말엔 사람도 많지 않다. 책상과 의자, 화장실 등이 모두 깨끗하다. 집을 떠나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이 나에게도 생긴 것이다. p251
0 혼자라는 혁명
규칙적으로 일상을 지내다보면, 어떤 일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다. 그 일 때문에 야근을 하는 데도 불평불만이 없다. 그 일이 내 안에 있는 역량을 온전히 쏟아내도록 하는 마중물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자기 능력이 발휘되는 상황이나 결과물을 ‘에네르게이아’라고 불렀다. 내 안에 있는 능력이 고스란히 발휘되는 활동 속에서 인간은 삶의 에너지를 느낀다. 규칙적인 나만의 시간이 이런 에너지를 품고 있는 것이다.
일상의 반복이 혁명의 시작이다. 오롯이 내가 되는 규칙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은 제아무리 화끈한 이벤트를 찾아 세상 구석구석을 찾아 헤매도, 결구 허무할 수밖에 없다. 자기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p257
16장 하루는 더디 가고, 일 년은 후딱 간다.
0 나는 시간이다.
시간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나와 시간을 구분하지 않고 나로서 사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시간을 항상 ‘무엇을 위한 ’시간으로 이해했다. 삶에서 의미 있는 시간은 우리가 마음을 쓰고 있는 그 무언가와 관련되어 있다. p266
하이데거가 볼 때, 인간의 모든 시간은 죽음의 영향권 안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참 이상한 점이 있다. 내가 사라져 가고 있는 동안에도 인간은 늘 무엇에 대해 마음을 쓴다는 사실이다. 내가 죽어가고 있다면, 내가 없어지고 있다면, 나 자신에게만 신경 써도 시간이 부족할 텐데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 인간은 세상에서 산다. 인간은 ‘세계 - 내 - 존재’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동안에는 항상 세상이 있는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세상에 있는 것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마음씀’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늘 무엇인가에 마음을 쓰고 산다. 그게 호기심이든, 필요해서든, 걱정되고 불안해서든 말이다. 시간은 나 그리고 나의 삶 그 자체다. 시간은 인간 존재 그 자체다. p267
0 감각과 영감을 살리는 비법 - 아침산책
인간의 몸은 땅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걷기는 내 몸이 고향을 맛보는 여행이다. 아침은 삶의 리듬과 몸의 울림을 느끼기에 좋은 시간이다. 땅을 한 걸음씩 디딜 때마다 막 깨어난 대지의 기지개와 만난다. p273
18장 내 팔자엔 사업 운이 없나봐.
0 내 이익만 생각하면 팔자는 항상 사납다.
주역을 나의 돈벌이로 설명하기 위한 책으로 본다. 주역은 그런 용도가 아니다. 주역은 음양의 변화와 관계에 관심을 갖고 쓰인 책이다. 음양이 서로 어떻게 돕는지, 즉 음양의 상보성을 다루는 학문이 주역이다. 음양은 상황에 따라 서로 뭉치고 헤어지는 방식이 달라진다. 음양의 강약 변화는 고정된 가치 판단이나 선악 판단이 아니다. 상황을 읽어내는 지혜, 즉 맥락 판단이다. 주역은 삶의 맥락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사람 앞에서만 그 지혜를 드러낸다.
우리가 답답한 건, 까놓고 말해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만 관심이 있는데, 주역은 그렇지 않다. 주역은 세상살이의 전체 흐름을 괘를 통해서 그려내는 것이다. 우주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따라서 내 이익만 생각하면, 팔자는 항상 사나울 수밖에 없다. P299
19장 치킨집이냐 카페냐
0 돈의 철학을 바꿔야 할 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이 돈을 버는 것. 즉 일하지 않고 돈을 버는 것을 자연원리에 어긋나는 일로 받아들였다.
공자는 부자 되는 것이 옳은 일이라면 시장에서 채찍질하는 직업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옳지 않은 일이라면,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겠다고 했다. 공자의 직업 선택 기준은 그것이 옳은 일인가?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
다른 사람이 점점 가난해지는 상황에서 나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비법은 없다. 내 주머니만 바라보면 오히려 주머니가 더 가벼워진다. 이게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시장의 원리다.
다만, 이제 내가 먹고살만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우리나라가 어떤 목표를 향해 나가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천신만고 끝에 어렵게 잡은 내 자리도 빼앗길 가능성이 커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P321
20장 다시, 행복
0 정답은 없다.
내 마음에 뭔가 불안하고 꺼림칙하면 본성과 어긋나는 일을 했다고 보면 틀림없다. 집안일과 회사 일에 쫓겨 나를 돌아보지 못하며 더 불안하고 더 허무한 것도 이러한 본성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P329
0 우리는 거짓 행복에 잘 속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에우다이모니아라고 표현했다. ‘좋은 영혼’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좋은 영혼이란 세상과 자신의 삶을 조용히 바라보고,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영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자기 영혼을 돌보고, 인생과 세계를 성찰할 수 있는 시간, 즉 여가를 국민들에게 주는 것을 정치의 중요한 목표로 생각했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에우다이모니아를 설명해 또 다른 형태의 행복을 설명한다. “당신이 지닌 최고의 힘이 무엇인지를 다시 깨달아, 자기 자신보다 더 크다고 믿는 무언가를 위해 그 힘을 쓴다.”는 의미로 에우다이모니아를 새겼다. 그에 따르면 행복은 개인적인 평정 상태에 멈춰 있지 않는다. 행복은 분명히 개인적인 나에게서 출발하지만, 나를 넘어선다. 에우다이모니아는 나의 영혼을 품고 더 큰 영혼을 향해 나아간다.
그동안 우리는 거짓 행복에 속아왔다. 학창시절엔 키, 몸무게, IQ, 내신 등급, 성적 전국 상위 몇 퍼센트, 좋은 대학이 행복을 가리키는 줄 알았다. 커서는 연봉, 실적, 성과평가, 자동차 크기, 아파트 평당 가격, 안정적인 연금 등이 행복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사용되었다. 영혼을 돌볼 수 있는 쉼과 회복의 시간이 행복의 기준이라고 누군가 말했다면 개 풀 뜯는 소리 그만하라고 했을 거다.
삶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균형 잡히고 평온한 영혼의 상태로 해석하기도 한다. P333
0 나보다 더 큰 무언가를 위해
어떻게 사는 것이 삶의 균형을 잡아 줄까?
행복을 첫째, 내 안에 있는 최고의 힘이 무엇인지를 다시 깨닫는 것
둘째, 이 힘을 자기 자신보다 더 크다고 믿는 무언가를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내 안에 감춰져 있던 최고의 힘은 나를 벗어나 세계와 타자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휴대폰도 충전을 위해 남을 위해 일하고, 자동차도 기름을 먹으면 남을 태우러 다닌다. 하물며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회복된 이후에도 자기만 바라보고 있다면 그 존재 가치에 걸맞지 않는다. P335
0 행복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행복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더 큰 무엇은 바로 내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내 눈으로 볼 수 없는 걸 보고, 내 귀로 들을 수 없는 걸 듣고, 내 머리로 생각할 수 없는 걸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은 삶에 행복을 준다. 그것이 우리의 본성에 알맞기 때문이다. 본성에 맞는 삶이 자연스런 삶이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다’ 뜻이다. 스스로 그러한 대로 사는 것, 그게 행복이다. 생긴 대로 살면 된다. P337
자신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정신 상태를 자폐라고 한다. 나의 소유, 나의 명예, 나의 권력만을 쫓는 나르시시즘은 자폐와 다를 바 없다. 현대 사회는 철저히 내가 타자의 욕망에 따라 살도록 되어 있다. 그렇게 남에게 전적으로 의존해 있으면서도 우리는 오직 나를 위해 산다고 굳게 믿는다. P338
고통 받고 있는 이웃의 얼굴은 내가 지금 여기 왜 존재하는가를 날카롭게 질문한다. 나에게서 벗어나 그의 고통가 대면했을 때, 인간은 자기 내면의 힘을 어디에 사용해야 할지 깨닫게 된다. 나보다 더 크고 의미 있는 존재로서 이웃은 내 앞에 항상 존재한다. 내 앞에 있는 일그러진 이웃의 얼굴은 지고의 가치인 신의 얼굴과 닮아 있다. P339
0 변화를 만드는 유일한 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에 순응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성품’이라고 불렀고, 이성을 통해 생각하는 것을 ‘지적 활동’이라고 불렀다.
문제는 성품과 지적 활동이 모두 세상에서 발휘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상실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성품과 지적 활동이란 있을 수 없다. 참된 이기주의자는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타자를 향해 자신의 성품과 지적 활동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다시 행복을 말해야 한다면, 우리는 나를 넘어서서 가족과 친구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무엇이 행복인지, 행복은 무엇이어야만 하는지를 같이 물어야 한다.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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