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나에게
미리보기 공유하기

고독한 나에게

불교철학자가 40년 동안 찾은 고독의 조각들

리뷰 총점 9.4 (12건)
분야
인문 > 인문학산책
파일정보
EPUB(DRM) 34.60MB
지원기기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일부 기기 사용 불가) PC(Mac)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회원리뷰 (10건) 회원리뷰 이동

종이책 구매 무소의 뿔처럼 평점10점 | e******s | 2020.04.20 리뷰제목
나는 이 저자의 오랜 독자이다. 그동안 이 저자의 책들을 킨들로 읽었었다.번역본으로 읽은 경우는 처음이다. 먼저 킨들로 원서로 읽고 번역본을 읽었다.이 저자의 글 쓰는 스타일이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스타일은 아니다.원서를 읽어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번역본을 읽어도 사실 잘 모르겠다.문장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력의 문제일 수 있겠다. 아무래도 원서를 먼저 읽고 번
리뷰제목

나는 이 저자의 오랜 독자이다. 그동안 이 저자의 책들을 킨들로 읽었었다.

번역본으로 읽은 경우는 처음이다. 먼저 킨들로 원서로 읽고 번역본을 읽었다.

이 저자의 글 쓰는 스타일이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스타일은 아니다.

원서를 읽어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번역본을 읽어도 사실 잘 모르겠다.

문장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력의 문제일 수 있겠다.

 

아무래도 원서를 먼저 읽고 번역본을 읽게 되면 내용도 읽지만 번역하는 스타일도 자세히 보게 된다.

같은 의미의 단어도 굳이 어려운 단어를 찾아내어 사용하는 저자의 책을 번역한 번역자가 꽤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번역이 만족스럽지 않는 곳이 있다.

 

나는 지금은 서점에 가지 않은지 꽤 되었다. 모든 책을 킨들로 읽거나 예스24에서 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서점에 가면 불교책이 두 군데로 나누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스님이나 재가자가 쓴 책들은 '종교'-> '불교' 섹션에 있고 탓닉한 스님이나 외국불자들인 쓴 책들은 '명상' 이라는 섹션에 따로 모아져 있었다.

 서점이 온라인으로 가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 책은 분명히 불교 관련 책임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아닌 '인문교양' 부문에 분류되어 있다.

 

출판사의 의도가 불교색을 희석시켜 독자층을 넓히고 싶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책은 분명 불교 책이다. 따라서 번역할 때  불교 단어를 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출판사들이 번역본을 출간할 때 판매수와 독자층을 고려해서 문단을 무자비하게  빠뜨리거나 심지어는 한 챕터를 모두 없애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었다.)

 

이 번역책에서 가장 불만스런 단어는 '피정'이다. retreat의 번역인데 보통 '안거'라고 번역한다.

피정은 카톨릭 용어이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24p1276a

책의 주제가 고독이다보니 이 단어가 여러 번 나온다. 여러 번 신경 쓰였다.

 

'스님'을 '승려'라고 번역한 것까지는 이해한다. 내가 느끼기에 중립적인 단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정은 중립을 넘어 정체성을 바꾸어 버렸다.

물론 나도 일상적인 현대 한국어와 동떨어진 고풍스런 일부 불교 단어와 말투에 거부감이 있고 현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종교정체성까지 바꾸는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서양인들이 불교 관련 책을 쓸 때 카톨릭 용어를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도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일 때 자신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단어 중에 비슷한 것을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다시 한글로 옮길 때는 적어도 본적은 찾아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책에서 nun은 비구니를 의미한다. 수녀가 아니다. 묵상이란 단어도 카톨릭 단어이다.

마지막로 '부처'라는 단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나는 불자로서 '부처'라는 단어 뒤에는' 님'자를 꼭 붙인다. "님'자를 붙이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러나 불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강요할 수 없다.

존칭어를 붙이지 않을 바에야 아예 '붓다'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편하다. 나도 '붓다' 뒤에는 존칭을 붙이지 않는다.  마치 한국인이 나이 어린 외국인이 자신을 부를 때 '길동'이라고 부르면 화를 내지만 미국식 이름인 '마이클'이라고 부르면 아무렇지도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 심리이다.

 

그리고 읽다보니 자잘한 오자, 오역도 보인다.

 

102쪽 ; 그녀는 거의 십년 동안 쿠바의 뉴멕시코 타운 위 포탈레스 메사에 정착해서 살았다.

            이 문장을 읽으면 쿠바라는 나라에 있는 멕시코타운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실제적으로는 미국 뉴멕시코 주에 있는 쿠바라는 카운티이다.

            https://nmlandconservancy.org/projects/northwest/tecolote-de-mesa-portales/

 

202쪽 : 명상 중인 리의 두뇌를 기능적 기공명영상법으로 촬영하자,

              '가기'가 아니라 '자기'이다.

 

225쪽, 226쪽 : priest :  바라문->승려, 수행자  또는 사문

        바라문은 부처님 재세 시 인도 사회의 최상층 계급으로 세습적으로 전통을 중시하던 사제계급이다.

       부처님은 그런 계급적 사회에 반기를 든 진보주의자였다.

       부처님과 그 제자들인 priests를 바라문이리고 부르는 것은 현대 한국의 50대 진보주의자들을 태극기부대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바라문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0b1973a

     사문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1s0189a  

   사문은 당시 전통 보수적인 바라문의 반대 개념으로 계급 사회를 벗어나 떠돌아 다니며 수행하는 사람들을 총칭한다. 부처님도 사문중의 한 사람이었다.

 

   ' Chapter of Eights'는 불교용어가 정착되기 전의 경전이라니 사문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수행자'가 좋을 것 같다.

     The priest without borders

     doesn't seize on what he's known or behold,

     Not passionate, not dispassionate,

     he doesn't posit anything as ultimate.

     바라문은 알거나 보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는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또 욕망을 버리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는 어떤 것도 으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책의 원서 리뷰 : http://blog.yes24.com/document/12373627

3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3 댓글 0
종이책 고독한 나에게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i********g | 2020.03.19 리뷰제목
내가 사랑하고 옹호하는 고독은, 내 감정과 사고를 내게로 되돌려 놓는 일, 나의 발자국이 아니라 욕구와 불안을 제한하고 억제하는 일, 외적인 것들을 걱정하지 않는 일, 소중한 삶을 위해 봉사와 의무에서 벗어나는 일, 그러니까 인간애에서가 아니라 인간사에서 멀어지는 일이다. 42쪽고독을 즐기기 보다는 고독을 잘 견뎌내보려고 애썼던 때가 있었다. 외로움, 고독 이란 단어가 들어
리뷰제목

내가 사랑하고 옹호하는 고독은, 내 감정과 사고를 내게로 되돌려 놓는 일, 나의 발자국이 아니라 욕구와 불안을 제한하고 억제하는 일, 외적인 것들을 걱정하지 않는 일, 소중한 삶을 위해 봉사와 의무에서 벗어나는 일, 그러니까 인간애에서가 아니라 인간사에서 멀어지는 일이다. 42쪽


고독을 즐기기 보다는 고독을 잘 견뎌내보려고 애썼던 때가 있었다. 외로움, 고독 이란 단어가 들어간 에세이나 인문서적을 찾아 읽으며 어떻게든 그 시간을 미래를 위한 시간으로 만들어보려고 노력했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실패했다. 위의 발췌문에 나오는 '인간애에서가 아니나 인간사에서 멀어지는'일과 정확하게 반대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패자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책 <고독한 나에게>는 고독을 긍정적으로 여기되, 어떻게 즐겨야 하는 지 모르는 이들에게는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저자는 오랜기간 불교에 몸담았었지만 그의 말처럼 이 책은 불교의 경전을 풀이해주거나 특정 종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라고 조언하지도 않는다. 앞서 언급한 고독을 삶속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전달할 뿐이다. 다만 조심해야 할 부분은 명상과 수련에 있어 약물을 이용하는데 마약은 누구에게 쓰이느냐에 따라 반드시 필요한 약물이 되기도 하지만 이를 악용 및 상습적인 중독을 방지하기 위해 제재를 가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부분에 있어서는 문화와 해당하는 규범에 따라 주의해야 한다고 미리 언급한다. 고독을 흔히 완벽하게 혼자 있을 순간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많은 이들 속에서도, 도심한가운데에서도 고독한 자신을 만날 수 있다. 그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경전을 암송하는 것일 수도 있고, 멀고먼 길을 걸어가는 방식일 수도 있고 단기간 외부와 단절한 상태로 자연속에서 침잠하는 방법일 될 수도 있다. 무한히 자유로운 것이 고독처럼 보여지기도 하고 금욕과 같은 삶이 고독을 대하는 유일한 방법처럼 느껴지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종교적인 피정방식이나 묵상의 방법등이 등장할 수 밖에 없다. 깨달음이 한 번에 찾아오는 것도 아니오, 그 깨달음의 결과가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어느순간에는 절대자를 향해 무릎을 꿇기도 하지만 때로는 절대자와 대화하듯 주거니 받거니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의 여러지역을 다니면서 결국은 오롯이 자신안에서 고독을 다스렸던 기록이 책에 담겨 있었다. 그때 그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스스로를 다스리고 평안의 상태에 머무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테뉴의 삶과 저서, <시의 장>이 주된 뼈대가 되었지만 이외에도 한 번은 만났을 명작들과 예술가들의 만남을 통해 그 나름의 방식으로 콜라주한 결과가 이 책인 것처럼 독자는 또 하나의 재료를 담아 또 나름의 방법으로 콜라주를 만들면 될 것이다. 


걸을 때는 "내가 걷고 있다'는 걸 안다. 서 있을 때는 "내가 서 있다"는 걸 안다. 앉아 있을 때는 "내가 앉아 있다"는 걸 안다. 누워 있을 때는 "내가 누워 있다"는 걸 안다. 내 몸이 어떤지 안다. 61쪽


그는 충고한다. "다른 일에 몰두해 바삐 움직이고 있는 당신과 의지를 되찾아라. 당신은 스스로를 소모시키고 있다.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을 단단히 붙잡아라. 당신은 배신과 낭비와 도적질의 표적이 되고 있다." 95쪽


당신은 매번 새로운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두려움과 반사적 감정을 내려놓고, 열반에 자리 잡게 한 후, 번영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길을 나선 사람은 독립적이 된다. 188쪽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댓글 0
종이책 고독의 탐미 평점10점 | b*****l | 2020.03.18 리뷰제목
인상적인 책의 제목이 가슴에 와 닿았었다. 아마도 요즘 들어 더 문득문득 느껴지는 고독감들 때문에 그런것 같다. 고독감은 외로움과는 전혀 다른 고요한 공허함이다. 그의 책이 궁금한데다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지 읽고 싶은 책이었다.옛 지성인들의 고독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면서도 절절했다. 빅토르 위고는 고독을 지옥이라 했으며 선이자 악이라고도 했었다. 반면 시인 윌리엄
리뷰제목
인상적인 책의 제목이 가슴에 와 닿았었다. 아마도 요즘 들어 더 문득문득 느껴지는 고독감들 때문에 그런것 같다. 고독감은 외로움과는 전혀 다른 고요한 공허함이다. 그의 책이 궁금한데다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지 읽고 싶은 책이었다.

옛 지성인들의 고독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면서도 절절했다. 빅토르 위고는 고독을 지옥이라 했으며 선이자 악이라고도 했었다. 반면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고독은 마음을 가득 채우는 더없는 행복이라 했었다.

저자 스티븐 배철러는 그 두 극단의 가운데 절충점을 탐구한다고 말한다. 유교적 느낌의 중용과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수상록의 몽테뉴를 시작으로 한 그가 40년간 탐구한 고독에 대한 성찰들은 심오하기 그지 없다. 몽테뉴는 파리 룩송브루 팡테온에 잠들어 있다. 수상록을 쓴 그답게 고요하고 고독한 장소다. 그 앞을 지나다니며 느꼈던 팡테온의 이미지가 그랬었다.

스티븐 배철러의 이력은 남다르다. 불교에 심취해 인도에 갔었고 우리나라까지 와서 조계종에서 수계하다 그곳에서 만난 프랑스 비구니와 환속하여 결혼까지 했다. 그는 이후로도 지금까지 불교철학과 명상을 전파하고 있다. 그의 이름을 진작부터 들었지만 책을 접하진 못하다 처음 만난 그의 책이다.

그가 평생을 통해 명상하고 불교를 탐구했던 고독의 성찰들은 깊은 지성의 바다 같다. 고독의 탐미와도 같은 그의 철학들은 깊고도 고요하다. 그가 남긴 고독한 지성에 빠져든다.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댓글 0
종이책 고도한 나에게 평점10점 | j***3 | 2020.03.15 리뷰제목
'고독'이라는 단어를 누구나 다 알고 있으며, 생활에서 많이 사용 하고 있다. 그렇지만 과연 얼마나 자세하게 알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래서  『고독한 나에게』이 책을 읽기 전에 '고독'이라는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싶어 찾아보니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이라고 나와 있었다.  『 고독한 나에게 』 불교, 철학, 명상으로 기록한 고독의 깊은 맛'이
리뷰제목

 '고독'이라는 단어를 누구나 다 알고 있으며, 생활에서 많이 사용 하고 있다. 그렇지만 과연 얼마나 자세하게 알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래서  『고독한 나에게』이 책을 읽기 전에 '고독'이라는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싶어 찾아보니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이라고 나와 있었다.

 

『 고독한 나에게 』

 불교, 철학, 명상으로 기록한 고독의 깊은 맛'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는 책의 표지를보면서 나의 삶에 있어서는 고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아무런 생각 없이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의 저자를 살펴보니 스티븐 배철러, 우리나라의 구산 스님 아래에서 승려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런 까닭인지 조금 더 친근한 마음을 안고 '고독한 나에게' 속으로 여행을 떠나 보았다. 고독을 이야기 하기 위하여 다른 철학자는 잘 모르지만 수상록이 떠오르는 몽테뉴의 이야기를 많이 인용한다.

우리 것이 되게 하되 피부를 벗겨내지않고는 떨어질 수 없을 만큼 연결되거나 들러붙지 않아야한다.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일은 나 혼자만의 사는 법을 아는 것이다」...42쪽

 

 어느사이 반세기의 일생을 훌쩍 뛰어넘게 살다보니 , 아니  『 고독한 나에게 』이 책을 읽다보니

지나온 삶 속에서 나의 고독은 어떻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지나온 시간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남은 인생이 어디까지일런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 지금보다 도 ' 나 혼자만의 사는 법'을 익혀 살아볼까 생각한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나 만의 시간을 많이 갖고 있지는 않았기에 힘에 겨워 술 한잔을 하고 홀로 울기도 했었다.

 

쉽지 않은 이야기로 전개되고 있는 『 고독한 나에게 』 그렇지만 어렵게 끝까지 읽고나니 마음 속에 와 닿는 부분은 줄을 쳐가며 다시 읽어 보련다, 조금씩 천천히.....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댓글 0
종이책 “고독은 곧 열반”…스티븐 배철러의 『고독한 나에게』 평점10점 | k******l | 2020.03.14 리뷰제목
“고독은 곧 열반”…스티븐 배철러의 『고독한 나에게』[서평] 『고독한 나에게 (불교철학자가 40년 동안 찾은 고독의 조각들)』(스티븐 배철러, 이영래 역, 유노북스, 2020.03.05.)‘고독이 몸부림칠 때’라는 영화가 있었다. 얼마나 처절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저자 스티븐 배철러는 고독이 지옥도 아니고, 더없는 행복 역시 아니라고 머리말에 썼다. 그는 고독의 절충점을 찾고자 한
리뷰제목

“고독은 곧 열반”…스티븐 배철러의 『고독한 나에게』

[서평] 『고독한 나에게 (불교철학자가 40년 동안 찾은 고독의 조각들)』(스티븐 배철러, 이영래 역, 유노북스, 2020.03.05.)


‘고독이 몸부림칠 때’라는 영화가 있었다. 얼마나 처절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저자 스티븐 배철러는 고독이 지옥도 아니고, 더없는 행복 역시 아니라고 머리말에 썼다. 그는 고독의 절충점을 찾고자 한다. 그건 바로 ▶ 자율 ▶ 경탄 ▶ 사색 ▶ 상상 ▶ 영감 ▶ 배려다. 


이 책 『고독한 나에게』를 읽다보니, 내가 마치 어느 오지의 고요한 곳에서 침낭 하나 메고 탐험을 하는 기분이 든다. 또한 이름이 낯익은 ‘스티븐 배철러’를 따라 각종 환각제를 마시고 몽롱한 상태에 이르러 나를 온전히 느끼는 기분이 든다. 책에는 각종 환각제를 했던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술과 담배만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을 한 단계 고차원으로 이끌어줄 마약 종류의 치료제를 옹호한다. 


『고독한 나에게』에는 붓다와 몽테뉴의 얘기가 많이 나온다. 특히 몽테뉴의 『수상록』을 인용하고 발췌한 대목들이 눈에 띈다. 미셜 드 몽테뉴는 13년이나 해오던 고등법원 참사관 자리를 내놓고, 고독한 삶에 빠져들고자 탑에서 저술하는 작업을 했다. 그때가 1570년이다. 몽테뉴는 거의 10년 동안이나 연구 활동에 매진했다. 『고독한 나에게』 말미에는 고독이 결국은 인류애를 깨닫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몽테뉴나 제인 구달이나 넬슨 만델라 등 모두 고독 속에서 휴머니즘을 찾았다. 




"내가 사랑하고 옹호하는 고독은... 인간애에서가 아니라 인간사에서 멀어지는 일이다."ㅡ42쪽. 


고독이 단순히 물리적 분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독은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내면을 키워가는 일이다. 영혼을 돌봐야 하는 것이다. 스티븐 배철러는 종교를 믿든 믿지 않든 고독 안에서 실존적 질문을 마주하고 살핀다고 적었다. 고독은 보살펴 키워야 하는 운명이다.  


몽테뉴는 우리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지나간 일들을 회상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고독 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실패할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일은 고독해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부처의 ‘마음챙김’은 수행자가 어떤 것에도 집착 안 하고 독립적으로 머무는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래서 슬프다. 몽테뉴는 죽음을 각오하는 게 바로 자유라고 밝혔다. 죽음을 맞이하다 보면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종교는 고독을 먹고 산다. 스티븐 배철러는 “금욕의 어려움은 수익, 힘, 명성을 낳는다.”고 적었다. 


고독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데모크리토스는 진리라는 게 무한히 높은 신성한 깨달음에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신성함을 추구해야 하는가? 그 누구도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없겠지만, 고독함이야말로 신성함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고독은 곧 열반이다. 욕망, 두려움, 미움, 견해에 휩쓸리지 않으며 세상에 대응할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인 것이다.”-214쪽. 


『고독한 나에게』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수상록』이 로마 가톨릭 교회에 의해 1676년부터 1966년까지 290년 간 금서였다는 사실이다. 몽테뉴는 신앙과 이성이 양립할 수 없고, 구원은 신앙만에 의해 얻을 수 있다는 견해에 반대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책이 금서에 지정된 것이다. 몽테뉴는 아무래도 상상력과 창의력이 뛰어났던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독립적이 되고, 고독한 인간이 되었다. 나쁘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책의 200쪽, 203쪽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고독한 이들이여, 힘을 내자. 


“명상은 경험의 내용과 당신의 ‘관계’를 변화시킨다.”-200쪽. 


“세상은 우리를 놀라게 하려고 여기 있다.”-203쪽.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댓글 0

한줄평 (2건) 한줄평 이동

총 평점 8.0점 8.0 / 1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