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의 밤 : 손안의 가장 큰 세계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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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의 밤 : 손안의 가장 큰 세계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리뷰 총점 9.1 (7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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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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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인터내셔녈의 밤 평점8점 | 이달의 사락 g********r | 2018.12.27 리뷰제목
어디든 일단 다녀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처럼 - 본문 중에서   아르테의 작은책 시리즈 두번째, 인터내셔널의 밤을 읽었다.개인적으로 이 두권을 다 가지고 계시고아직 두권을 안 읽으셨다면인터내셔널의 밤을 먼저 읽고 안락을 읽으시길.(개인적인 생각일뿐이다 물론)   안락이 "마무리"를 이야기했다면인터내셔널의 밤은 "경과"를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누군가의 아픔
리뷰제목

어디든 일단 다녀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처럼

 

- 본문 중에서 

 

 

아르테의 작은책 시리즈 두번째,

인터내셔널의 밤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이 두권을 다 가지고 계시고

아직 두권을 안 읽으셨다면

인터내셔널의 밤을 먼저 읽고 안락을 읽으시길.

(개인적인 생각일뿐이다 물론) 

 

 

안락이 "마무리"를 이야기했다면

인터내셔널의 밤은 "경과"를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누군가의 아픔은 지나가고

누군가의 갈등도 시간이 지나면 지나가니까.

 

 

책들은 만나고 헤어지고 사라지고 지나간다.

어떤 함께하던 책들은 시간이 지나면 헤어지게 되는데

그걸 슬퍼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어떤 것들은 이미 변해버려 흔적이 없어졌을 수도 있다.

그래도 헤어짐은 있다.

한솔은 열여섯 열일곱에 읽던 책들을 지나가며

아 이미 헤어졌군 우리는 헤어지고 다시 만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한솔은 기대고 싶은 누군가를 찾아,
나미는 사이비종교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을 그 나름대로 지나고 있다.

 

혼잣말과 생각과 대사가 무분별하게 이어지나
그렇다고 어려운 느낌도 아니고
안 읽혀지는 책도 아니다.
이거 뭐지? 하며 읽다보면 벌써 끝났어? 하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읽다보니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으나
또 한편으로는 무슨이야기인지 정확히 알겠더라.

 

우리는 무엇인가를 결정할때 꼭
망설이거나, 고민하거나, 돌아본다.
어쩌면 이 모든 게 같은 뜻일지도 모르고.
그 모든 사실이,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와, 번호와, 관계 등은
때로는 나를 의미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나를 의미하지않기도 한다.


나에게 낯선 날도 있고,
그렇지않은 날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보편적인 시민"의 경계에 서있는
그 둘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싶었다.
이리 들어오라고, 여기가 보편적이라고.
그런데 문득
정말 내가 보편적인 곳에 서있나를 고민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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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인터내셔널의 밤』어디든 다녀봐, 산책처럼 평점8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 2018.12.27 리뷰제목
오래전 서울에서 목포로 향하던 기차안에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내 또래의 남자애였다. 우락부락한 아저씨보다는 났다는 생각으로 창밖을 보며 가고 있는데 말을 걸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친해져 캔맥주 하나를 나눠마신 적이 있다. 기차 여행의 묘미는 옆자리에 있지 않냐는 우스갯소리를 뒤로 하고 그 아이와 오래도록 친구가 될 줄 알았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
리뷰제목

오래전 서울에서 목포로 향하던 기차안에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내 또래의 남자애였다. 우락부락한 아저씨보다는 났다는 생각으로 창밖을 보며 가고 있는데 말을 걸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친해져 캔맥주 하나를 나눠마신 적이 있다. 기차 여행의 묘미는 옆자리에 있지 않냐는 우스갯소리를 뒤로 하고 그 아이와 오래도록 친구가 될 줄 알았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의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옆자리에 앉은 이가 자리를 바꿔달라고 하고 머리칼을 내리고 창밖만 바라보았던 여자는 자신의 존재를 감추는 것 같다.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안에서 한솔은 기차안에서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언젠가 읽었던 책을  떠올린다. 기차안에서 만났던 인연으로 부산에서 나미라는 여자를 다시 만나 어디론가로 떠나는 배를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이 책을 공교롭게 부산의 한 호텔에서 읽게 되었다. 짧은 소설 답게 아침에 일어나 누운 채로 읽은 소설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 한솔이 남자라고 생각하고 읽다가 다시 들여다보니 여학교를 나왔다고 했다. 많은 걸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무심코 남자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한솔은 여학교 다닐 적에 친했던 친구 영우의 결혼식에 가려고 먼저 부산으로 왔다. 부산에서 다시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일본으로 가기전 부산에서 며칠 쉬고 싶었던 것이다. 한솔이 지금과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아직은 주민등록표 상에 2자로 시작하는 여자인지라 지문을 찍고 여권을 기다려야 했던 그는 한가지 걱정이 일본에 입국시 지문을 날인해야 할때 과연 일본으로 입국할 수 있느냐 였다. 또 한 사람, 한솔의 옆자리에 앉았던 나미는 종교 공동체에서 도망치는 중이었다. 서울과는 가장 먼 부산으로 향하면서 누군가 자신을 쫓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들이 자신을 찾아내 다시 공동체 안으로 데리고 갈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한솔과 나미는 새로운 삶의 방향에 서 있었다. 과거의 삶을 버리고 현재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 지금의 삶을 살기 위해 먼 곳으로 여행을 계획했다. 배를 타고 떠나든 비행기를 타고 떠나든 다녀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 것이었다.

 

 

책을 펼치면 단어 단어들이 생생하게 다가와 양손을 뻗으며 한솔이 어깨를 눌렀다. 꿈에서 배제를 이해하기를 요구받은 것처럼. 각 단어들이 선명하게 몸속과 머릿속으로 파고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읽지 않는다면 자신에 대한 생각이 그 사이를 파고들 것이다. (105페이지)

 

기착지인 부산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은 한솔과 나미에게는 새로운 세상이었을 것 같다. 새로운 세상으로 가기 위한 부산에서 낯선 사람들이 함께 오사카로 가는 유람선을 바라본다고 생각해보라. 어디든 떠날 수 있지만 떠나기전의 망설임. 많은 것을 두고 온 여러 생각들로 가득찬 곳에서 바라 본 부산의 바다는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부산의 해운대의 수많은 호텔들. 움직이는 사람들은 거의 여행자에 가깝다. 그 앞으로 보이는 너른 바다. 현재와는 다른 사람으로 살길 바라는 한솔과 나미의 독백이 바람처럼 울려퍼졌다.

 

오래전에 읽었던 문고본 느낌의 아주 작은 책이었다. 중편 정도의 짧은 소설과 함께 작가가 이 글을 쓰게 된 생각들을 담은 작가노트를 곁들였다. 소설 읽는 재미가 있다. 어느 장소에서든 펼칠 수 있고, 앉은 장소에서 금방 읽을 수도 있다. 책 읽는 맛을 느껴볼 수 있는 작은책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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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나는 이제 다른 사람이에요. 평점8점 | r*********s | 2019.01.04 리뷰제목
처음 만난 사람과 이야기를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특정 공간에서는 경계심이 사라지고 만다. 기차나 버스 같은 공간에서는 이상한 친밀감이 발생한다. 목적지가 같다는 이유만으로도 이곳을 떠난다는 행위만으로 말이다. ‘기차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을 옛날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를 것이다.’란 문장은 우리를 기차에 태운다. 그곳이 어딘지도 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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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만난 사람과 이야기를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특정 공간에서는 경계심이 사라지고 만다. 기차나 버스 같은 공간에서는 이상한 친밀감이 발생한다. 목적지가 같다는 이유만으로도 이곳을 떠난다는 행위만으로 말이다. 기차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을 옛날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를 것이다.’란 문장은 우리를 기차에 태운다. 그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떠날 마음이 충분하다. 비어 있는 옆자리에 앉을 이가 누구일까, 무슨 이유로 이 기차를 탔을까. 박솔뫼의 짧은 소설 『인터내셔널의 밤』은 그런 이들의 이야기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기차에서 처음 만난 한솔과 나미의 이야기. 서로에 대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툴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 순간들.

 

 한솔은 여자로 살았던 삶이 아닌 남자의 삶을 선택했다. 어쩌면 그건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주민등록번호는 2로 시작하고 사람들은 종종 왜 군 복무를 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일본에 사는 친구가 보낸 청첩장을 받고도 그가 결혼식 참석을 두고 고민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자신을 설명하고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 곤혹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미는 사이비 종교단체에서 도망쳤다. 이모가 소개한 이모의 친구가 있는 부산에서 잠시 지내려 한다. 기차 안에서 나미는 그곳에 남은 아이들을 생각한다. 혼자만 도망쳤기에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는지도 모른다. ?처음 만난 한솔에게 그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줄 정도였다. 나를 모르는 이에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것처럼. 한솔과 나미는 부산에 도착해 각자 헤어졌다. 한솔은 호텔로 향했고 나미는 이모의 친구 집으로 갔다. 부산 이곳저곳을 산책하고 호텔로 돌아온 한솔은 자신에게 도착한 쪽지를 받는다. 누가 보냈는지 이름이 없었지만 한솔은 그가 나미라고 생각한다. 나미의 이름을 알기 전인데 말이다.

 

 박솔뫼는 부산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한솔과 나미의 고민에 대해 들려준다. 기차를 탔을 때 부산은 도착지였지만 이제 그들에게는 떠나기 위한 공간이다. 머물 곳이 아니기에 부산은 자유롭고 편안하다. 맛있는 빵을 먹고 헌 책방에서 책을 고르고 벤치에 앉아 크루즈를 구경할 수 있다. 아무도 한솔과 나미를 주목하지 않는다. 그들이 어떤 시간을 지나왔고 어떤 일을 경험했는지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다.

 

 한솔의 마음을 알 수 없지만 나는 이 문장들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내가 되기를 바랐던 어떤 날들을 떠올렸다. 한솔과 나미의 사정과는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그런 시간을 지나왔거나 지나고 있는 건 아닐까. 다른 나로 사는 일, 다른 나를 꿈꾸는 일 말이다.

 

 어떻게 주민등록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어떻게 모르는 사람으로 사라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매일 밤 잠자리에서, 물론 매일 밤은 아니지만 자주 반복되는 생각이었다. 사라질 생각은 없었지만, 큰 잘못을 아직 저지르지 않았지만 어떻게 한국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어떻게 숨을 수 있을까 혹은 한국을 빠져나가 외국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37쪽)

 

 박솔뫼의 소설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읽을 때마다 묘한 기분을 느낀다.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에 대한 묘사가 그러하다. 그는 하나의 공간을 특정하고 그곳으로 인물을 모은다고 할까. 공간으로 이동하는 동안 마주하는 풍경이나, 그것들을 바라보며서 과거를 회상하는 것들이 다른 작가의 소설과 비슷하면서도 그만의 개성이 있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어 안타깝다. 그가 소설에서 보여주는 인물도 마찬가지다. 언뜻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은 그저 그들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에. 이 소설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읽는다면 어떨까. 출장지나 여행지에서 말이다. 공항이나 터미널에서 읽어도 좋겠다.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이런 글은 무척 인상적이다. 한솔과 나미도 그렇게 서로를 지나가고 결국엔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박솔뫼의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지나온 누군가를 나를 지나간 누군가를 가만히 생각한다.

 

 책들은 만나고 헤어지고 사라지고 지나간다. 어떤 함께하던 책들은 시간이 지나면 헤어지게 되는데 그걸 슬퍼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어떤 것들은 이미 몸으로 변해버려 흔적이 없어졌을 수도 있다. 그래도 헤어짐은 있다. 한솔은 열여섯 열일곱에 읽던 책들을 지나가며 아 이미 헤어졌군 우리는 헤어지고 다시 만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만나지 않게 된 사람들도 가끔 생각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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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인터내셔널의 밤》 모두에게 이야기는 필요하다. 평점8점 | 이달의 사락 r*******n | 2018.12.25 리뷰제목
한솔은 이제 못 보게 된 아이들은 영영 못 보게 될 아이들처럼 여겨졌다. 아이는 사람의 인생에서 너무 짧은 시기여서 못 보게 된 아이들은 영영 만날 수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우리는 어른이 되고 뭔가 빼먹은 얼굴이 돼서 만난다. 그건 못 보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전혀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이 아닐까. 새로운 사람으로 다음 장면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것이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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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은 이제 못 보게 된 아이들은 영영 못 보게 될 아이들처럼 여겨졌다. 아이는 사람의 인생에서 너무 짧은 시기여서 못 보게 된 아이들은 영영 만날 수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우리는 어른이 되고 뭔가 빼먹은 얼굴이 돼서 만난다. 그건 못 보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전혀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이 아닐까. 새로운 사람으로 다음 장면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것이겠지.   p.26

최근 한국 소설의 트렌드는 아무래도 경장편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한 두 시간이면 완독할 수 있는 가벼운 분량과 부담 없는 저렴한 가격, 그리고 가지고 다니기 편한 작은 판형까지 여러 모로 소설에 대한 접근성이 쉬워졌다고 하겠다.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은행나무의 '노벨라', 작가정신의 '소설향',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에 이어 이번에는 아르테의 '작은 책'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아르테 한국 소설선작은책시리즈는 이름 그대로 판형이 가장 '작은 책'이라서 주머니에 쓱 들어가는 크기라 휴대성에서는 가장 돋보이는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작은책’ 시리즈 그 첫 번째 작품은 박솔뫼 작가의인터내셔널의 밤이다. 올해로 등단 10년을 맞은 박솔뫼 작가의 여덟 번째 작품집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에 탄 한솔의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기차가 광명역에 도착하자 누군가 급하게 와 그의 옆자리에 앉았고, 앉자마자 자리를 바꾸자고 부탁을 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기차에서 만나게 된 한솔과 나미, 두 여행자로 시작된다. 한솔은 한 달 전 졸업 후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가 보낸 청첩장을 받았다. 그는 결혼식에 가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들을 생각하며, 그곳에 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직 친구에게 거절의 연락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미는 이년 넘게 책을 전혀 읽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사이비 종교 집단에 속해 있다가 교단에서 도망치고, 이모네 집에서 한 달간 숨어 살았다. 한솔과 나미 모두 각각 자신이 속해있던 곳으로부터 도망치듯 떠나왔다.

 

책들은 만나고 헤어지고 사라지고 지나간다. 어떤 함께하던 책들은 시간이 지나면 헤어지게 되는데 그걸 슬퍼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어떤 것들은 이미 변해버려 흔적이 없어졌을 수도 있다. 그래도 헤어짐은 있다. 한솔은 열여섯 열일곱에 읽던 책들을 지나가며 아 이미 헤어졌군 우리는 헤어지고 다시 만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만나지 않게 된 사람들도 가끔 생각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p.89

어떻게 주민등록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어떻게 모르는 사람으로 사라질 수 있을까. 정체성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되는 고유의 정체성이 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들게 되는 정체성 말고, 처음부터 주어진 것들 말이다. 남성, 여성 등의 성정체성과 종교를 비롯하여 일상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같은 것들로부터 벗어나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거의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벗어나기 위해서 도망치거나, 떠나야 한다면, 살아온 모든 것들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야기는 가벼운 분량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게 읽힌다. 평범한 서사 구조 대신 인물들의 생각들이 드문드문 펼쳐지고, 해체되고, 두서없이 이리저리 보여지고 있으니 말이다. 인물들의 혼잣말을 천천히 따라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면의 풍경들이 손에 잡힐 듯 구체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사라질 생각은 없지만, 큰 잘못을 아직 저지르지 않았지만 어떻게 한국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대해서 말이다. 누구나 일생에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 지금의 정체성을 던져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그런 생각들. 그리하여 어딘가 불안하게 시작되었던 이 여행에서 어느 순간 안도와 같은 기분이 들게 된다. 어떤 면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야기는 필요한 것이다. 필요하지 않아도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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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박솔뫼 [인터내셔널의 밤] 평점10점 | e******t | 2018.12.27 리뷰제목
등단 10년을 맞은 박솔뫼 작가가 아르테의 새로운 포켓북 시리즈 『작은책』으로 돌아왔다. 『작은책』의 첫 작품인 장편 소설 『인터내셔널의 밤』은 보편적이면서 보편적이지만은 않은 보편시민을 박솔뫼 작가 특유의 감성 넘치는 시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출판사 리뷰에 나온 “당신은 보편시민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되돌아가세요.”라는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대체 보편시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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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10년을 맞은 박솔뫼 작가가 아르테의 새로운 포켓북 시리즈 『작은책』으로 돌아왔다. 『작은책』의 작품인 장편 소설 『인터내셔널의 밤』은 보편적이면서 보편적이지만은 않은 보편시민을 박솔뫼 작가 특유의 감성 넘치는 시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출판사 리뷰에 나온당신은 보편시민이라고 말할 없습니다. 되돌아가세요.”라는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대체 보편시민은 무엇이고 보편시민이 아닌 시민은 무엇인가.

부산행 기차에 오른 한솔의 덤덤한 시각은 소설의 시작부터 무겁지 않으나 결코 가볍지도 않게 이야기를 끌어갔다

『인터내셔널의 밤』은 박솔뫼 작가 특유의 섬세한 풍경 묘사와 분위기 묘사가 더해져 순간의 공기까지 온몸으로 느끼며 쉬지 않고 끝까지 내달리게 하는 힘이 있었다.


한솔은 일본에 거주중인 친구 영우의 결혼 소식을 전해 듣곤 부산행 기차에 오른다. 부산행 기차의 지정좌석에 앉아 낯선 생각을 하던 한솔의 옆자리엔 종교단체로부터 도망친 나미가 자리를 잡는다.

누군가와의 대화조차 불편했던 한솔이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보편적 시선으로 자신과 대화를 이어가던 나미에게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 둘은 부산을 향해 출발한 기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여정에 오른다.


자신의 세계에서 결국 인정받지 못한 둘의 만남은 어쩌면 기차에서만 가능한 일은 아닐까. 나이도, 이름도, 거주 지역도 알지 못하는 한솔과 나미였지만 둘은 오히려 편안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부산에 도착해서도 나미는 용기를 내어 일본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 한솔과 동행하기로 하며 어색하면서도 편안한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이윽고 시간이 되어 한솔은 출국절차를 밟게 되고 보편적 시민임에도 보편시민이 없었던 한솔은 출국절차 마저도 커다란 관문이 되어 단계를 지날 때마다 돌려받는 질문들 속에서 보편적 시스템과 제도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넘어 환멸을 느낀다.

이국땅을 밟은 한솔이 느낀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이 그저 지친 현실로 부터인지 아니면 앞서 넘은 장치로 부터인지는 한솔 자신도, 우리도 수가 없다.


한솔은 점점 세상 밖으로 밀려나는 사회 체제 속에서 보다 보편적인, 보편시민이 되는 과정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그러한 삶에 순응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와 같으면서도 반대되는 나미는 자신이 속해있던 굴레(그것은 사회로 보았을 보편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들 안에서는 보편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벗어나 지난 세상을 등지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한걸음 나아가며 그러한 자신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단순한 이야기다. 기차에서 만난 사람,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아주 짧은 시간을 다루었고 보편적이지 않은 사람을 보편적인 시각에서 그려냈다. 단순한 이야기는 시리즈의 제목인 『작은책』만큼이나 작고 단순했으나 깊이는 바닥이 없다. 가볍고 재미있게 접할 있는 작품이다. 편하게 읽을 있으며 빠르게 읽기도 좋은 작품이다. 그러나 의미를 생각하면 굉장히 심오한 작품이다.


『인터내셔널의 밤』을 읽으며 가장 집중했던 부분은 바로 『작은책』 시리즈의 첫걸음이라는 부분이다. 아르테는 『인터내셔널의 밤』과 『안목』 작품을 선두로 하여 시리즈의 포문을 열었다. 분명 작품은 아르테가 신중히 선택을 했을 것이고 또한 향후 『작은책』 시리즈가 나아가야 방향성에 대해 알려주는 이정표가 것이니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내셔널의 밤』을 보면 아르테가 지향하는 『작은책』 시리즈는 아마 판본으로서의 직설적 표현이겠지만 작품으로서는 반어적 표현이지 않을까 싶다. 『작은책』이란 누구나 쉽게 접하고 가볍게 들고 다니며 언제든 읽게 만든 시리즈로 거듭나겠지만 아마도 작품의 깊이 면에선 작고 가볍지 만은 않을 같다는 예상을 해본다. 또한 굳이 사회파 작가들을 영입하지 않더라도 시대의 문제를 읽고 지적하는 사회파 소설을 라이트 리더부터 헤비 리더까지 누구나 읽을 있는 작품들로 엄선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기대하고 있던 시리즈기도 하지만 작품부터 상상 이상으로 좋은 작품을 선보인 『작은책』 시리즈의 향후 행보에 기대를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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