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시작은 아내의 인생 마지막 몇달 전부터 요리와 세탁일을 특훈으로 배우는 것이었다. 이 책은 아내를 암으로 먼저 보낸 후, 일흔 살 먹은 남자가 홀로서기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아내가 있을때는 크든 작든 모든 집안일은 아내의 손을 거쳤다. 그랬기에 사소하게는 셔츠는 어디에 있는지, 청소기는 어디에 있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정원일은 어떻게 손 봐야하는지 알수없어 집안일이 모두 서툴기만 하다. 남편과 아내 모두 안과의였지만 집안일은 늘 아내가 도맡아 했기에 응석받이처럼 대접받기만 한 남편이, 아내가 세상을 떠난후 홀로서기를 잘 할수 있을까 염려가 되기도 했다. 집안일을 하나도 손대지 않은 만큼 남편의 일은 비례적으로 승승장구해왔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직업적 성취의 절반 이상은 결국 아내의 내조 덕분에 가능했다고 하는 저자는 집안일에서만큼은 서툰 어린아이 같았다.
그는 집안에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그의 경험상 사소한 물건 하나하나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다가 찾지 못해 구매하고 나면 어디선가 나타나는 식의 반복을 경험한다. 이런 낭비를 막기위해서 뿐만 아니라 필요없는 물건을 정리해야 혼자 살면서 청소를 조금이나마 더 수월하게 할수 있음을 저자는 경험으로 깨닫게 된다. 그러나 저자는 물건 하나하나마다 추억이 떠올라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는일이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결국 그는 유품에 특별한 추억이 있을리 없는 제삼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고 한다.
'살기위해 먹어야만 하는 현실이 슬프지만'
제3장의 제목은 짠하게 마음이 아파온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텅빈 집에서 아무런 의욕이 있을리 없지만 결국 살기 위해 영양공급을 해야하는 현실, 그러자면 스스로 요리부터 뒷정리까지 해야하는데 또 그 일이 만만치 않음을 난생 처음 겪게 된다. 집안일 중 특히 삼시세끼 차려먹는 일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일인지 직접 경험하고서야 뒤늦게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요리에 점점 재미를 붙여 점차 더 나은 요리를 하기를 바라는 주인공을 보니 인생의 새로운 즐거움을 알게되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생존을 위한 신체적 영양공급은 필수지만 저자는 마음의 영양 또한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좌충우돌 직접 경험하며 다양한 조리법으로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가는 재미를 느끼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낸다해도 말 한마디 없이 혼자 하는 식사는 외로운 법이다. 그는 마음의 영양을 위해 일부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고, 다행히 주변에서 그를 식사 초대하는 일이 많아 주변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글쓴이는 아내 없는 남은 생의 최대 목표는 '아내에게 자랑하기'라고 한다. 문득 집안일에 유용한 물건을 발견하거나 새로운 노하우를 알게 되면 마음속으로 '어때?' 라며 아내에게 자랑하는 글쓴이는 본인의 사후에 아내를 만났을때 '이만큼 잘 살아왔다'고 말해주고 싶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의 죽음 이후 몸도 마음도 둔해지고 삶에 대한 의욕이 떨어질 수 밖에 없지만 남은 날들을 덤으로 주어진 하루로 인식하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자신의 경험으로 터득한 7가지 규칙은 아래와 같다.
1.잃어버린 것을 세지 말고 가진것에 감사하라.
2.내가 만난 사람들이 곧 나의 인생임을 기억하라.
3.죽을때까지 계속 배우면서 재미있게 살아라.
4.은퇴후 시작되는 인생의 황금기를 누려라.
5.멋지게 나이들고 싶다면 설렘을 포기하지 마라.
6.언제 닥칠지 모를 긴급상황에 대비하라.
7.남은 인생은 덤이라 여기고 마음껏 즐겨라.
주변에 페끼치지 않기 위해 자립을 결심한 저자라지만 주변의 도움 없이는 혼자서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실제로 저자의 주변에는 그를 챙겨주는 주변인들이 많았기에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저자가 나이가 들어 체력도 떨어지고 노안으로 불편한 단점들도 있지만 오히려 전체를 보는 눈이 생겼다며 나이들어 좋은 점을 말할수 있었던것 또한 다행이다. 젋은시절 대학원에서 연구를 해본 경험은 50여년 지난 현재 자취하는데 도움이 된다며 '인생이란 버릴게 하나도 없다'는 연륜에서 묻어나는 여유를 가지기도 한다.
그는 비록 1년여의 시간이 지나서야 본인의 인생을 즐길 여유를 갖게 되었다. 아내와 함께 갔던 장소를 다시 찾는 일은 마음을 더욱 공허하게 만들 뿐임을 깨닫고 그렇게 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대신 크리스마스는 홀로 집에서 외롭게 보내고 싶지 않아 뉴욕여행을 계획하고 각종 콘서트와 음악회 티켓을 구매해 음악으로 즐거운 여행을 보내기도 한다. 비로소 아내가 없어도 본인의 남은 인생을 즐길수 있게 된 것이다.
일흔이 넘어가니 체력이 마음을 따라오지 못하긴 하지만 그래도 인생 최후의 막에서 마음 풍성한 시간을 보내려면 음악이나 책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 주변에 있을,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221)
나 또한 집안일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 그래서 꾀도 부리고 게으름 피우기도 하지만, 어쨌든 마냥 미뤄둘수만은 없다. 그랬기에 저자의 아내는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고 세심하게 집안일을 해낸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존경심 마저 든다. 그래서 아버지같은 저자의 홀로살기가 걱정도 되고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누구라도 겪을수 있는 문제다. 나중에 나이 들어 나의 남편이 겪게 될수도 있고, 나의 아버지가 겪게 될수도 있다. 아내와의 사별을 먼저 겪은 70대 노인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들이, 그리 대단할것 없는 홀로서기가 그래서 더욱 와닿았다. 지금도 잘해내고 있지만 앞으로 남은 인생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 살아낼 그를 응원하고 싶어진다. 뿐만 아니라 소중한 사람을 잃은 모든 홀로서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한번쯤은 추천해보고 싶은 책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