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문명과 거의 함께 시작된 게 맥주의 역사다. 경작한 보리가 발효하면서 요상한 맛과 효과를 내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고, 인류는 그것을 맥주로 빚어냈다. 이란 고원의 석기시대 토기에서 이미 발효곡물의 흔적이 나오고 있고, 수메르인이 기원전 4000년에 이미 맥주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맥주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역사 속에서 맥주의 흔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혹은 맥주를 통해서 인류의 역사를 더듬어 보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미카 리싸넨과 유하 타흐바나이덴(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북유럽 출신 역사학자들이다. 서지 사항을 보면 아마도 핀란드)가 《그때, 맥주가 있었다》를 통해서 하는 일이 바로 그런 역사 속의 맥주의 흔적 찾기, 맥주를 통한 인류의 역사 더듬기이다. 맥주에 관한 책들이 꽤 많은데, 그런 책들 가운데서도 맥주와 관련된 흥미로운 역사를 다루는 게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그저 일화에 그치기보다는 보다 역사 쪽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다(저자가 역사학자들이니 당연한가?).
맥주는 어디에도 있었다(물론 유럽의 역사에 한한 것이긴 해도).
중세 수도원의 역사는 맥주와 함께 했고(특히 북유럽의 수도원은 더욱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에도 맥주는 등장한다(맥주를 즐겼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결혼한 아내는 직접 맥주를 빚었다).
스웨덴의 30년 전쟁에서의 승리에 이면에는 전설 같은 맥주 이야기가 있고, 유럽화를 염원했던 러시아 차르 표트르 대제의 유럽 여러나라에서의 행보에도 맥주가 함께 했다.
스웨덴의 위대한 군인이었던 산델스는 병사들이 마시는 맥주를 마시며 동고동락하며 신임을 얻었고(그의 이름을 딴 맥주가 있다), 철도가 처음 유럽에 도입되었을 때, 뉘른베르크와 퓌르트 사이에 오간 기차의 첫 화물은 맥주 두 통이었다.
루이 파스퇴르는 독일을 이겨보겠다는 염원 하에 맥주를 연구했고(거기서 파스퇴르살균법이 나왔다. 이후 이 살균법은 우유에 더 널리 적용되어왔지만), 코펜하겐의 메디치 가문을 불리는 야콥센 부자는 파스퇴르의 연구를 이어받아 질 좋은 맥주를 만들어냈으니 바로 칼스버그다.
북극점에 처음 도전했던(실패했지만) 난센을 후원한 것은 링그네스 양조장이었고, 제1차 세계대전 때 전선에서 이뤄진 크리스마스의 기적 속에도 맥주가 있었다(비록 김빠진 맥주였을 가능성이 높고, 그 기적인 단 한 해에 그쳤지만).
히틀러는 뮌헨의 비어할레(말하자면 맥주집)에서 쿠데타를 시도했고(물론 그 어설픈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결국은 정권을 잡는다), 히틀러 이전 바이마르 정권을 이끌었던 외무부 장관 슈트레제만은 맥주 도매업자 집안에서 태어나 맥주를 통해 노동을 하고, 인간 관계를 넓히는 방법을 익히고, 경제를 배웠다(그의 이른 죽음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파멸을 촉진했고, 히틀러의 집권으로 이어졌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투르 드 프랑스의 현장에도 맥주가 함께 했고, 옥스퍼드대학 근처 펍에서는 《반지의 제왕》의 톨킨과 《나니아 연대기》의 루이스를 비롯한 문인, 학자, 역사학자, 의사 등이 맥주를 마시며 잡담도 하고, 자신의 작품도 다듬었다.
맥주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에게 제공되기 위해 전투기 날개 밑에 매달려 해협을 수도 없이 건넜고, 체코의 반체제 극작가였던 하벨은 핍박의 시기에 맥주 양조장에서 일꾼을 일했다(나중에 벨벳 혁명 이후 대통령이 된다).
1990년대 초 폴란드가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이후 혼란의 시기에는 맥주 애호가 정당이 등장에 의회에 진출하기도 했고, 세르비아의 사라예보 포위 시에는 시내의 사라예브스카 양조장의 우물의 사라예보 시민들의 생명수 역할을 했다.
아일랜드의 비상과 추락을 함께 했던 카우언 총리는 기네스 맥주를 마시며 어지러운 경제 숫자를 다루었고, 맥주 회사는 오래전부터 프로축구 팀과 함께 한다.
물론 맥주 얘기를 쏙 빼놓고도 유럽의 역사를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다. 위의 역하, 혹은 일화에서도 맥주가 반드시 등장해야만 하는 이야기는 몇 없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에 맥주가 있어 생동감 있는 역사가 된다.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맥주가 우리 삶에 활력소가 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