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ㅡ 김동식 , 요다
자본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는가
- 김동식 소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이 소설은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가 나타났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멀리서 보면 눈처럼 새하얀 피라미드 같은 이 요괴는 3미터나 되는 키에 눈이 하나, 콧구멍이 세 개였으며, 피라미드 하단부를 거의 다 차지하는 거대한 입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말을 할 때마다 여기저기로 뻗친 이빨이 튀어나왔고, 긴 혓바닥 위로는 오돌토돌 검은 돌기들이 솟아났다. 처음 보는 이들이라면 당연히 놀라 자빠질 모습을 한 이 요괴는 사람들을 보자마자 자기는 약하다며 절대로 공격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이 총을 들이대자 요괴는 몸을 벌벌 떨며 제발 살려달라고 소리를 쳤다. 상황을 구경하는 사람들 속에 섞인 한 아이가 요괴를 향해 돌멩이를 던졌다. 돌에 맞은 요괴의 몸은 금방 부풀어 올랐다. 외눈으로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아이가 던진 돌에 맞고 비명만 내지르는 요괴를 누가 무서워할까? 침착함을 찾은 사람들에게 요괴는 자신이 요괴 세계에서 추방당한 존재라고 말한다. 힘이 너무 약해서 쫓겨났단다. 그러면서 요괴는 인간과 공존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요능으로 인간을 도울 수 있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요괴는 어떤 요능을 지니고 있을까? 놀라지 마시라, 요괴는 80세 노인을 20대 청년으로 되돌려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막바지 인생을 사는 사람을 한창 청춘인 20대로 돌린다는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이가 어디에 있을까? 죽을 때까지 젊게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요괴는 젊게 사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아예 젊음을 돌려주겠다고 말한다. 요괴의 말이 사실이라면 인간은 불사(不死)의 힘을 얻게 된다.
다만 조건이 있다. 요괴가 잡아먹은 사람만이 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요괴의 말에 경악한다. 젊어지려면 일단 죽어야 한다는 말이 되니까. 죽음을 각오하면 새로운 청춘을 얻을 수 있다. 문제는 죽은 사람이 과연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신의 아들인 예수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이야기 속에서나 전해진다. 신의 아들이 아닌 자가 어떻게 부활을 한단 말인가? 사회적인 논란이 불거지는 시점에 한 명의 지원자가 나선다. 60대의 노숙자 김 씨였다. 가족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김 씨는 목숨을 걸고 인생을 바꿔보려고 한다. 요괴는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총을 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받고 김 씨를 혓바닥으로 휘감아서는 거대한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이내 오도독 씹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과연 김 씨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김 씨를 완전히 소화시킨 요괴가 얼굴에 힘을 주자 뒤쪽에 가려져 있던 항문이 드러났다. 항문에서 무언가가 나왔다. 놀랍게도 노숙자 김 씨였다. 정말로 김 씨는 20대의 젊음을 회복했다. 요괴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던 소망이 현실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는 곧바로 사람들이 우러르는 존재가 되었다. 청춘을 회복하고 싶은 인간들은 요괴 앞에 줄줄이 나섰다. 요괴의 능력은 전 세계로 퍼졌고, 요괴가 사는 곳은 찾는 사람들로 바다를 이루었다. 한 사람당 평생 한 번만 선착순으로 요괴 앞에 설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고액을 받고 자기에게 돌아온 차례를 팔았다. 주체할 수 없이 돈이 많은 이들은 요괴 앞에 서는 일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청춘을 회복하면 더 많이 벌 수 있는 게 돈이었다. 그렇게 요괴는 세상의 중심에 오롯이 자리하게 되었다.
요괴의 능력으로 청춘을 회복한 이들이 만 명쯤이 되었을 때 그만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요괴가 삼킨 인간이 항문으로 나오지 않은 것이다. 첫 희생자였다. 사람들은 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100% 성공이 보장되지 않았는데, 그 누가 목숨을 걸고 청춘을 회복하려고 하겠는가? 실패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이 일을 계속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했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불행하게도 요괴는 이미 경제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었다. 요괴 자체가 자본을 증식하는 핵심적인 도구였다는 말이다. 요괴를 없애면 자본 증식의 길도 막혀버린다. 게다가 인간은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쉬이 내버릴 수 없다. 자본과 욕망이 맞물려 만들어낸 요괴는 이미 인간의 손을 떠난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사망자의 가족이 칼을 들고 요괴를 죽이려고 하자 다른 사람들이 막아섰다. 이제 요괴의 곁에는 늘 경호가 붙었다. 요괴 앞에 가려면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다. 5천 명쯤에서 또 다시 사망자가 발생했다. 국가는 재빠르게 사망자의 가족을 찾아 보상을 했다. 사람들의 마음에 요괴에 대한 의심이 끊임없이 맴돌았지만, 사람들이 어찌할 수 있는 요괴가 아니었다. 요괴를 움직이는 법칙은 자본에서 나온다. 요괴를 없애려면 자본을 없애야 했다. 자본을 없애다니, 무슨 힘으로 자본을 없애단 말인가? 인간은 이미 자본의 노예가 된 지 오래였다. 자본이 만들어놓은 시장이 없으면 인간은 더 이상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요괴를 죽이면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들은 또 어떻게 하는가? 죽음을 무릅쓰고 청춘을 회복하고 싶은 이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사망자가 발생하는 시간은 점점 짧아졌다. 5천 명이 3천 명으로 줄어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백 명에 한 명꼴로 사망자가 나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요괴 앞에 줄을 섰다. 아무도 요괴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죽일 수도 없었다. 요괴 곁에는 늘 가공할 폭력을 행사하는 경호원들이 상주하고 있었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안전했다.” 사람들은 핵 방공호급의 안전을 자랑하는 건물을 지어 요괴를 ‘모셨다’. 요괴의 요능으로 청춘을 회복하고 싶은 이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이중 삼중의 검색대를 거쳐야만 요괴 앞에 설 수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망 사건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망한 사람보다 청춘을 회복한 이들을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청춘을 회복하는 사람이 있는 한 요괴의 요능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넘쳐날 터였다.
김동식은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의 마음 깊이 드리워진 지독한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청춘에 대한 욕망은 자본에 대한 욕망만큼이나 인간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이 소설에 나오는 요괴는 그 두 개의 욕망을 한 몸에 품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를 움직이는 자본의 힘을 상징화한 게 요괴라고나 할까. 자본은 항상 청춘을 유지하려고 한다. 청춘의 힘으로 자본은 오로지 증식이라는 목표에만 집중한다. 끊임없이 자본주의의 트랙을 내달리는 자본의 힘은 무엇보다 이러한 청춘의 힘과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 시간의 속박을 벗어난 바로 그 힘으로 자본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 거대한 입속으로 집어넣는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자본의 항문으로 나오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자본 속에서 시들어버린다. 단순히 기호에 불과한 자본이 사람들의 목줄을 쥔 실물로 변하는 순간을 작가는 요괴의 우화로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제목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여선지 여기 실린 이야기에는 요괴가 많이 나온다. 요괴 하면 만화 <나츠메 우인장>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거기나오는 요괴하고는 많이 다르다. 여기에는 요괴뿐 아니라 외계인에 악마도 나온다. 무언가 신기한 일이 일어나려면 그런 게 나와야겠지. 신기하고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사람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사람은 다 그렇게 될까. 젊어진다고 하면 요괴한테 한번 먹히고 병이 낫는다 하면 요괴가 가져온 냄비 속에 들어갔다 나올지도. 그런 것을 한 나라나 한 지역만이 쓰고 돈을 벌려고도 한다. 실제 그런 일이 없지 않구나. 자기 나라나 자신이 사는 지역에 돈이 되는 게 있다면 다른 나라나 다른 지역 사람은 오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모두가 함께 나눠쓰려는 일은 없을까. 그런 일 아주 없지 않겠지만 어쩌다 한번이겠다.
김남우는 자신이 부자가 되게 해달라 하고 악마와 계약을 했다. 그 바람을 이루면 나중에 영혼을 악마한테 주기로 했다. 하지만 김남우는 부자가 되지 못했다. 김남우는 성실하게 살았다. 김남우가 죽은 뒤 악마한테 그 말을 하니, 악마는 돈이 생길 기회가 있었는데 김남우가 그걸 잡지 못했다고 말한다. 악마는 안 좋은 방법으로 김남우한테 돈이 생길 기회를 만들었다. 1등에 당첨된 친구 복권을 훔치거나 할머니가 평생 김밥을 팔아 모은 돈이 든 통장을 빼돌리거나 부잣집 아이를 유괴하는 거였다. 만약 김남우가 악마가 말한 일을 그대로 했다면 정말 돈을 많이 갖게 됐을까. 경찰에 잡혀갔을 것 같다. 악마는 김남우한테 한번 더 기회를 준다. 죽었다 살아난 김남우는 여전히 성실하게 산다. 혹시 성실하게 살면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일까. 그건 아니겠지.
악마는 사람을 황금으로 만들기도 한다. 황금이 되면 자신은 쓰지도 못할 텐데. 황금이 되고 싶다 말한 사람은 가난한 집 어머니나 아버지였다. 어머니나 아버지는 자식이 황금을 잘라서 쓰기를 바랐다. 자식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황금이 됐으니 그걸 잘라도 몸이 아프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악마는 다시 나타나 몸이 잘린 어머니 아버지를 사람으로 돌려놓는다. 어머니나 아버지는 사람이 되고 숨을 거두면서 자식한테 자신은 괜찮다고 말한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대단하다. 자식을 키우는 것 자체가 부모 몸을 깎는 일과 다르지 않겠지.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것만큼 자식은 부모를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좋을 텐데.
마지막 이야기에서도 어머니가 딸을 생각하고 자신을 지옥에 보내달라고 한다. 딸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지옥에 갔다고. 그 어머니 삶은 무척 힘들었다. 힘들게 사는 사람이 정말 천국에 간다면 좋겠지. 자기 바람대로 다시 태어나고 딸을 만나도. 전생은 기억하지 못할 텐데 하는 생각이 지금 든다. 그 어머니 다음 삶은 좋을 것 같다. 모두가 이런저런 축복을 걸었으니 말이다. 이야기일지라도 그런 게 있다면 좋겠다 생각한다. 좋은 일이라 해도 욕심 내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게 좋을 듯하다. 쉽게 얻는 건 쉽게 잃는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요괴는 실제로는 못생겼다. 이 요괴가 잠들었다 일어나면 사람도 예뻐진다고 했다. 요괴가 한번 자고 일어났더니 모두가 예뻐졌다. 잠깐 그런 일을 경험하는 건 재미있을 텐데 사람들은 자신이 늘 예쁘기를 바랐다. 욕심을 내다니 싶은데, 끝은 안 좋다. 모두 못생긴 요괴를 닮고, 그것을 예쁘다고 생각한 거였다. 겉모습이 예쁘고 못생겼다 기준도 사람이 만든 거기는 하다. 거기에 마음을 많이 쓰지 않으면 나을 텐데. 쓸모있는 것은 공부를 잘하거나 좋은 집이나 좋은 차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 게 정말 쓸모있을까. 쓸모없으면 또 어떤가 싶기도 하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좋겠다.
희선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김동식 소설집2
저: 김동식
출판사: 요다 발행일: 2017년12월
김동식의 소설집 3권을 주문하고서 말 그대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전부 다 읽었다. 1권 ‘회색인간’을 소개하면서 나는 큰 놀라움을 표시했다. 글쓰기를 배우지 않았던 그가 어떻게 이렇게 상상력이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지 아직도 믿을 수 없었다. 아마도 일종의 천재성이 발휘된 것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소설에는 요괴라든지 외계인이라든지 하는 예외적인 등장인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없는 일종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든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 어느 순간 상상할 수 없는 제안을 받는다. 그럴 경우, 우리는 내면에 있는 욕망을 억제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상황에서 어떤 도덕적 판단을 할 것인가
2권의 ‘황금인간’을 보자. 악마는 돈 욕심이 많은 사람들을 살아있는 황금으로 만든다. 그러나 막상 그들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된다. 막막해진 그들은 자신의 몸을 하나씩 하나씩 잘라 가족을 위해서 쓰도록 한다. 황금이 된 가족. 괜찮겠지. 괜찮겠지. 과한 욕심은 황금이 된 가족의 몸을 조금씩 조금씩 갈아먹는다. 그들은 마지막에 유서를 쓴다. ‘나는 괜찮다’고.
다른 단편 ‘스마일맨’에서는 악마의 저주는 매달 첫째 날 9시 가장 먼저 웃는 사람 100명의 목숨을 가져간다.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는 스마일맨을 고용한다. 100명의 사망자 제보를 받고 나서, 스마일맨은 목숨을 걸고 웃어야 한다. 사람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그러나 나중에 모든 사람이 깨닫는다. 100명의 사람이 죽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100명이 사람이 빨리 죽도록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부품을 구하는 요괴’는 인간을 부품으로 사용하는 요괴의 이야기다. 요괴의 부품이 되면, 특별히 하는 일이 없이 괴생물체에 끼워졌다가 퇴근한다. 그러나 그 대가는 황금. 처음에는 요괴의 부품이 되는 일을 꺼리던 사람들이 앞다투어 요괴의 부품이 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살인도 일어난다. 문득, 내가 우리 사회의 모습. 더 자세하게는 회사인간의 서글픈 모습을 생각하게 된 것은 우연일까
김동식의 소설에서 이야기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리고 그로 인한 인간군상의 모습은 우리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그는 탁월한 이야기꾼인 듯. 기발한 상상력으로 채우진 이야기는 풍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