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13일의 김남우 ㅡ 김동식 , 요다
공기가 축축하다 . 창 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뭔가가 내리고 있구나 느껴지게 하는 그런 공기이다 . 소리가 없는 걸로 봐서 눈이겠구나 싶어 현관을 열어보니 옆집 남자가 부지런하게도 마당을 쓸고 있다 . 적은 양이라서 였는지 오늘은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 이 겨울의 작은 수확은 이웃과 소통할 구실로 눈이 오는 날의 함께 눈치우기가 있었다 . 제법 쌓이는 날이면 옆집 남자는 윗집과 내 집에도 문을 두드려 함께 눈을 쓸자고 한다 . 그 제안이 기뻐서 입김이 하얗게 나오고 손이 시리고 발목이 차가워져도 기꺼이 나간다 . 옆집 남자는 윗집 할머니와 나와 눈쓰는 시간을 즐기는 것 같았다 . 그의 아내는 우리가 눈을 다 쓸었을 즈음 나와서 따끈한 캔커피를 내민다 . 아마도 시간을 보며 캔커피를 데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그 3만원을 내고 값을 치렀다고 후련해 하는 사람도 있고 , 그마저도 귀찮아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 일이 벌어지고 자신의 일이 되어야만 사람들은 아차하고 후회를 하게 되는데 , 이 모든 과정이 작은 일 때문이라니 ,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일엔 사람들은 금방 지치기 마련인가 보다 .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데도 회의적인 사람들 . 그리고 예방조치 메시지를 받아도 어떤 행위는 되돌릴 수 없어서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일이되는 우연의 촉발들 .
[13일의 김남우]를 읽고 느낀 건 작가가 구상하는 작품 세계가 어쩌면 , 영화나 미디어일지도 모른단 상상을 하게 했다 .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고 해서 너무 신기했는데 이야기 구성을 보니 , 각각 어떤 영화들을 보고 그려낸 것을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 마치 내가 정유정의 [7년의 밤] 을 읽고 , 아 ! 작가는 분명 그 세계를 그림으로 그려놓고 스토리라인에 힘을 실었구나 느꼈듯이 ... 또 , 내가 어떤 시를 읽고 이어서 단상 끝에 시의 힘을 뭍힌 글을 쓰듯이 , 작가의 작업과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 그러니 어떤 면에서 새롭지만 이 세상에 ,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도 맞는지 모른다 .
김동식작가님의 작품은 [회색인간]이후로 두번째이다.
각 이야기의 캐릭터들의 이름은 모두 같다. 김남우, 홍혜화, 임여우, 최무정 이라는 이름을 가진 캐릭터들이 각 챕터마다 돌아가며 주인공으로 나온다. 캐릭터의 묘사보다는 그들의 서사와 주제전달에 집중한 듯 하다.
도덕의 딜레마를 보고 도덕성이란 참 애매한 것 같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자신이 믿고있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죽여도 된다고 믿고, 어딘가에서는 독재자를 추종하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핵개발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는 그것이 다수가 믿고 있는 도덕이기 때문이다.
나비효과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갔는데 바로 버스가 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때마다 버스기사님이 개인적인 일 때문에 화가 나서 평소보다 빨리 달렸다면? 승차하는 사람이 꾸물거리느라 늦게 출발했다면? 정확하게 내 앞에 도착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나는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
13일의 김남우를 보고 자신의 삶을 타인과 공유하고 함께 할 때 내일이 온다. 혼자사는 인생은 매일매일이 똑같다. 함께 있을 때에 다른 미래가 만들어진다.
퀘스트 클럽를 보고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사는 주인공의 도파민을 제대로 건드렸다고 느꼈다. 선배가 사람을 제대로 골랐구나 싶었다.
인간에게 최고의 복수란 무엇인가를 보고 뒷담화를 앞에서 듣는 것만큼 상처되는 일은 없겠다고 느꼈다. 누군가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보다 부정하는 것이 더 상처가 되는 것 같다. '무반응보다 악플이 낫다'는 말은 아마 틀린 말인듯하다.
가족과 꿈의 경계에서를 보고 정말 잘 쓴 작품이었다. 평행세계에서의 엄마나 이곳의 엄마나 둘 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더 가치있다고 생각해서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선택한 것과 살다보니 그것의 가치를 알아버린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런걸 보면, 어쩌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든 괜찮지 않을까 싶다.
굉장히 흡입력 있는 책이었다. 선하다고 반드시 해피엔딩을 맞지는 않는 점이 반전이었고 그래서 김동식 작가님의 작품이 재미있다. 독서 초보자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13일의 김남우
김동식 소설집3
저: 김남우
출판사: 요다 발행일: 2017년12월
1권과 2권을 읽으며 나는 그의 소설에서 비슷한 이야기 구조랄까 클리셰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쓴 이야기가 워낙 좋았으므로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된다면, 아마도 식상함을 느낄 수 있으리라. 그렇지만 그러한 생각을 불식시킨 것이 3권이 아닐까 싶다. 이제 요괴라든지 악마라든지 하는 형이상학적 존재에 기인한 상황이 아닌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 것이다.
‘도덕의 딜레마’을 읽고, 우리가 생각하는 절대적 기준의 도덕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다수가 옳다고 하는 도덕적 기준이 항상 맞는 것인가? 그것은 어떤 횡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러한 일들이 현실에서도 태연하게 일어난다.
‘완전범죄를 꾸미는 사내’, ‘자긍심 높은 살인 청부업자’, ‘죽음을 앞둔 노인의 친자 확인’, ‘세 남자의 하우스 포커’, ‘퀘스트 클럽’와 같은 단편들은 흥미로운 추리소설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히가시고 게이고가 쓴 추리소설에 비해서도 나는 전혀 손색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그 중에서도 ‘죽음을 앞둔 노인의 친자 확인’라든지 ‘퀘스트 클럽’의 마지막 반전은 매우 좋았다고 생각한다.
한편, ‘김남우 교수의 무서운 이야기’를 읽으며, 교수의 이야기를 듣던 학생과 같이 마지막에는 나 역시 스스로 놀랐다. 그 평범한 이야기 속 중간중간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끔찍한 상상을 했던가? 교수는 마지막에 말한다. ‘너희들이 상상했던 그 이야기들이, 너희들이 살고 있는 현실이야. 이런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현실. 너희들은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야. 정말, 끔찍하게 무서운 이야기 아니야?’
만약에 3권에서도 악마라든지 요괴라든지 등장하는 클리셰를 김동식이 반복했다면, 무척이나 식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3권에서 그가 쓴 단편은 그러한 틀에서 벗어난 그러나 여전히 상상력과 재치를 잃지 않은 작품들이다. 문득, 나는 김동식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작가가 앞으로도 우리를 일깨워줄 글들을 많이 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그가 또 다른 신간을 발표한다면, 바로 가서 구매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번에는 어떤 번뜩이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가지고 올 것인가 기대해볼 것이다. 그의 글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이 소중한 3권의 소설집을 당신에게 권하고 싶다.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김동식 (1985~) 1985년 경기도 성남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일할 수 있을 나이가 되었을 때, 바닥 타일 기술을 배우기 위해 대구로 올라갔다. 2006년 독일월드컵이 열리던 해 서울로 상경, 액세서리 공장에 취직해서 10여 년을 일했다. 2016년 [오늘의 유머] 공포 게시판에 창작글을 올리기 시작해 지금까지 300여 편이 넘는 글을 썼다.
김남우는 그러니까 김동식(의 소설)에게 있어서 일종의 페르소나 같은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속에 앉아 있는 김동식의 분신 같기도 하다. 김동식의 세 권의 소설 중 첫 번째 권이 얼핏 SF 계열이라면 두 번째 권은 얼핏 환상 문학에 가깝고 세 번째 권은 음, 그러니까, 음... 여하튼 세 권 모두 재미있고 기발하다. 할머니로부터 전해 듣는 새로운 전래 동화의 시작 같은 것, 이야기의 제목들도 참 직관적이다.
「도덕의 딜레마」
운석 충돌이 예정되어 있고 살려야 하는 인간을 선정해야 하는 인류는 도덕적 질문을 통해 선별작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질문을 받는 대상자와 그 대상자를 향하여 투표를 하는 관객이라는 구분법은 어느 순간 전복된다.
「나비효과」
나의 어떤 행위가 나비효과를 거쳐 어떤 죽음에 이르게 되는 상황을 미리 알게 된다면... 그러니까 나의
어떤 행위가 어떤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결과가 나에게 문자로 전달된다면...
「13일의 김남우」
김남우의 거듭되는 하루, 그러나 나의 거듭되는 하루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면 이제 그하루는 이틀이
되고, 거듭되는 하루를 경험하는 사람도 한 사람이 늘어나게 된다.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계속 거듭되는 하루를 사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결국...
「버튼 한 번에 10억」
버튼을 누르면 상대방은 3일 뒤 죽게 되고 나는 보험금을 받는다. 그런데 만약 내가 3일 안에
상대방이 죽는 것을 번복하고 싶다면... 그리고 그 상대가 나의 아내이고, 사람들이 내가 버튼을 눌렀다는 사실을 안다면...
「완전범죄를 꾸미는 사내」
기발하다. 완전범죄를 꾸미고 있는 사내의 비밀을 알게 된 내가 그 비밀을 모두가 알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하여 꾸미는 완전한 상황극...
「퀘스트 클럽」
돌고 도는 뫼비우스 띠 같은 퀘스트 클럽의 신참 늘리기 퀘스트...
「인간에게 최고의 복수란 무엇인가」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에게 최고의 복수를 하기 위하여 그 범인의 처와 동생과 친구를
감금하고 있는 내가 취하는 방식...
「도와주는 전화 통화」
드라마 <시그널>의 잔혹판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자긍심 높은 살인 청부업자」
깔끔하게 살인을 하기 위한 살인 청부업자의 정당방위 살인 만들기...
「김남우 교수의 무서운 이야기」
끔찍하고 무서운 상상, 그러니까 이야기의 다음을 넘겨 짚는 우리의 잔혹한 심정이 곧
우리의 무서운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는, 그래서 그것이 더 무서운...
「나는 정말 끔찍한 새끼다」
이십 년 전에 저지른 어린 살인에 대해 실토하게 되는 과정이 지난하다. 자신을 향한 끔찍한
감정의 에스컬레이터...
「거짓은 참된 고통을 위하여」
전복에 전복을 가하는 사건의 진행이라니... 이야기를 한 번 뒤트는 것으로는 부족해서 한
번 더 뒤튼다.
「시공간을 넘어, 사람도 죽일 수 있는 마음」
누군가가 살기를 바라는 마음과 누군가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들
사이의 싸움...
「자랑하고 싶어 미치겠어」
법의 집행과 가상 현실, 작가가 다루는 가상 현실이라는 것의 소설적 흡수 방식...
「죽음을 앞둔 노인의 친자 확인」
흰색 거짓말이 불러 일으킨 나쁜 결과도 있을 수 있다...
「사이코패스 죽이기」
진정한 복수에 대한 여러 편의 소설이 있고 그 중의 하나이다. 복수에 대한 작가의 천착, 어쩌면
우리의 천착...
「버려버린 시간에도 부산물이 남는다」
분신사바의 지독한 변형...
「친절한 아가씨의 운수 좋은 날」
김동식의 여성형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홍혜화, 다시 살아 나다...
「세 남자의 하우스 포커」
또 다시 복수, 딸아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를 색출하기 위한 포커판, 그를 따라가기 위한
포커판...
「심심풀이 김남우」
리벤지 포르노를 향한 김동식 식의 반발...
「가족과 꿈의 경계에서」
엇갈리는 선택이 만드는 페러럴 월드와 가족 이야기...
김동식 / 13일의 김남우 / 요다 / 428쪽 / 2017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