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내 삶에 관한 것이고, 당신의 삶에 관한 것이며, 시간이 거쳐 갈 무수한 삶에 관한 것입니다."
집에 대한 로망이 있으신가요? 이른 아침, 남편과 잠시 집에 대해 이야길 나눴어요. 한 권의 책으로부터 사유가 시작된 겁니다. 바라는 소망은 욕망에 불과할 테지만, 집착 없이 바란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남편이 딱히 삶에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것처럼, 제겐 살고 싶은 집이 없었다는 게 새삼스러웠습니다.
과연 살고 싶은 공간이나 살며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실까요. 즐겁게 하루를 보내는 데 익숙하지 않은 제가 다른 삶을 선택하고 보니,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는 걸 알았어요. 집 역시도 마찬가질 테죠. 살고 싶은 공간이 없을리가요. 다른 문제에 가려 고민하지 않았고, 소망하지 않을 뿐입니다.
'돈'이 좀 더 여유로워지면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 보겠다고 남편이 덧붙였습니다. 우리의 삶이 여행이라면 방향 없는 여행도 나쁘지만은 않아요. 그러니까, 소망이 없대도 삶은 우리를 이곳저곳에 데려다 줄 겁니다.
다만 저는 기쁨을 선택하는 데 익숙해지고자, 많은 걸 비운 지금에 하루하루가 가벼워지고 방향이 생겼습니다. 삶이 그다지 무겁지 않다는 걸, 심각할 필요가 없단 걸 눈치챘달까요. 실은 모두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하는 느낌도 들어요. 이전의 저를 생각하면 눈을 가리고 달리고 있었으니까요.
차민주 작가님의 <아홉칸집>을 읽으며 내가 살고 싶은 집, 살고자 하는 동네에 방향을 갖기로 결심합니다. 돈이 더 생기면, 아이가 자라면, 하는 식의 핑계는 대지 않을 거예요. 일단 소망하고 보렵니다. 그게 나를 기쁘게 하니까요. 소망이 생긴다 해서 지금 사는 집에 불평하거나, 동네에 감사하지 않는 건 아니랍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프랑스 작가 스탕달의 말처럼 공간의 취향과 심리적 가치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아홉 칸 집'에서 느끼는 나무의 향기와 색감, 그리고 목재가 방출하는 피톤치드는 알파파를 증가시키니 집안이 쾌적한 듯하다. 그런 순간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감격의 사실을 음미하게 된다.
111p
아홉 칸 집에 들어섰을 때, 나무 향이 코끝을 통해 얼굴 가득 들어차는 걸 느꼈어요. 매일 숨 쉬는 집을 나무로 둘러싸면 참 좋구나, 경험은 욕망을 만들어 내는구나, 싶습니다. 글을 읽으며 목조 주택이 단순히 보기 좋고, 향이 나는 점 외에도 수많은 이점이 있다는 걸 배웠어요.
"비 내리는 날이면 나무로 만든 집도 비를 마신다.. <중략> 건기와 습기를 오갈 때 집은 물을 머금고 뱉어내며 그가 품은 나와 아내와 아이들을 지켜낸다. 비가 오늘날이면 간혹 마루가 삐걱대는 소리를 낼 때가 있다. 그것은 나무가 자연에 적응해 가며 공간의 균열을 보정하고 스스로 몸을 맞추는 소리다.
이런 날 커피를 내리면 향이 진하고 스피커의 음향은 더욱 풍부해진다. 실제로 목조는 소리를 저음에서 고음까지 균일하게 흡음하고, 잔향을 없애기 때문에 귀로 들어오는 음악이 더 편하다." 127p
예민하다는 작가님과 반대로 뭉뚱그리는 성향을 가진 저라도 소리와 향에 민감합니다. 아무리 뾰족한들 모든 부분에 까다로울 수 없는 것처럼, 제 몸에선 특별히 귀가, 다음으론 코가 까탈을 부릴 적이 많은데요. 이런 제게 목조 주택이 딱이라는 걸 알았어요. 위아래로 나눠 분리하는 공간도, 칸이 평등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도, 마치 하나의 생명과 같은 한식의 이점에 매료되었습니다.
부족한 저의 강연에 차민주 작가님이 오셨던 건 우연이 아닐 테죠. 관심을 가지려야 가지지 않았던 목조 주택의 매력에 빠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특별히 어떤 집을 꿈꾸시거나, 저처럼 꿈꾸지 않았던 모든 분들에게 사랑을 담아 <아홉칸집>을 추천하고 싶어요.
"행선지를 계획하는 순간부터 여행의 설렘이 시작되는 것처럼, 5년 후, 10년 후에 내가 살 집, 내 가족들과 함께 살아갈 '우리 집'을 꿈꾸고 계획해 보는 것만으로 삶의 온도가 올라가지 않을까요.
집은 그 무엇보다 특별한 존재입니다. 사람을 담고 함께 세월을 이겨나가기 때문입니다. 집은 당신의 몸과 마음을 보듬는 존재입니다. 집은 안전이고, 안락이며. 당신과 가족이 살아가는 세월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