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서 전쟁은 빠지지 않고 벌어졌다. 그리고 전쟁은 언제나 '최선의 순간'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 '최악의 순간'에 벌어졌다는 사실도 잘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전쟁은 최악 중의 최악으로 가장 나쁜 짓이다. 그런데도 왜 인간은 전쟁을 되풀이 하는 것일까? '고장난명'이라고 했다. 한 손바닥으로는 소리를 낼 수 없다는 뜻이다. 전쟁도 홀로 치룰 수는 없는 법이다. 즉, 어느 한 쪽이 전쟁을 하자고 덤벼도 나머지 한 쪽이 제정신을 차리고 전쟁을 피하고 대화와 협상의 테이블에서 '멈출 수 있는 방법'을 논하려 든다면 얼마든지 막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인간은 오랜 역사속에서 전쟁을 피하지 않았다. 과연 전쟁을 일으키고 참전했던 이들은 용감한 사람들이었을까?
이 책 <전쟁으로 보는 동양사>는 전작인 <전쟁으로 보는 서양사>에서 다루지 못한 동양의 전쟁사를 다뤘다. 하지만 영광스런 전쟁이라느니 정의로운 전쟁 따위의 메시지는 담지 않았다. 이런 점이 참 신선할 따름인데, 전쟁을 벌인 이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들을 저질렀는지 새삼 돋보이게 전달하는 작가의 메시지가 참 좋았다. 물론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어쩔 수 없이 참전해야 할 전쟁이라면 '승리'를 해야할 테지만, 어차피 전쟁이라는 것이 승자든, 패자든, 얻는 것은 거의 없고, 잃는 것만 더 많은 법이기 때문에 애초에 '하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것을 꼭 전쟁을 치루고 난 뒤에야 깨닫곤 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러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전쟁은 아무런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물론, 호전광들은 '그렇지 않다'고 외칠 것이다. 초전박살을 낼 정도로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기만 한다면 전쟁은 이롭기 그지 없다면서 말이다. 실제로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이 '초반 상황'만 볼작시면, 그럴 듯해 보인다. 먼 과거의 알렉산더나 칭기즈칸처럼 거대한 영토를 차지한 사례를 들면서 강력한 군대를 앞세우면 못할 것이 없을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로마제국이나 제국주의를 내세운 서구열강들도 그랬고,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패권주의'를 내세우는 오늘날의 미국이 그렇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전쟁사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면,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될 것이다. 전쟁에서 패배하면 폭망하게 되는 건 불을 보듯 뻔하고, 전쟁에서 승리해도 얻는 것은 거의 없고, 오히려 빚더미에 깔려 나라경제가 흔들리기 일쑤고, 젊은세대들은 전쟁터에 끌려나가 헛되이 목숨을 잃어버리고, 늙거나 어린 세대 들은 기울어진 경제를 되살릴 여력이 없어 결국엔 온 국민이 경제난에 허덕이게 될 뿐이다. 그럼 손실분만큼 패전국에게서 빼앗아오면 모자란 점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이득을 얻지 않겠느냐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동양의 전쟁사'를 통해서 정말 그런지 확인해보자.
고대 전제왕권시대에는 '왕의 명령' 하나로 전쟁을 벌이곤 했다. 현명한 임금이라면 절대 전쟁 같은 것을 일으키지 않고 태평성대를 이루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겠지만, 꼭 멍청한 임금들이 자신들의 못난 점을 가리고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어김없이 '전쟁'을 통해서 문제해결을 일거에 해버리려 들기 일쑤였다. 그래서 전쟁에 승리해서 안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했던 임금이나, 시대가 있었던가? 진시황이 오랜 전란으로 혼란스러웠던 춘추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최초의 통일왕조를 이룩했다. 결국 15년 만에 폭망하고, 항우와 유방의 전쟁인 '초한지'가 펼쳐졌다. 유방이 한으로 다시 통일하고 난 뒤에는 어땠나? 전쟁에서 이겨 한나라가 흥했던가? 오래오래 태평했던가? 주변의 오랑캐들에게 시달리고 내부의 부정부패로 인해 혼란스럽지 않았던 때를 손꼽는 것이 훨씬 편했을 정도다. 이후에 송나라 때나, 원나라 때, 명나라 때, 청나라 때도 마찬가지였다. 늘 전쟁에 시달려야 했고, 전쟁으로 망할 뿐이었다.
전쟁으로 폭망한 아주 좋은 케이스가 바로 '군국주의 일본제국'였다. 아시아 최초의 근대화에 성공하기 무섭게 '군사력'을 키워 무장을 하더니 '청일전쟁'을 일으켰다. 선전포고도 하지 않고 무차별 공격으로 선빵을 날려 승리를 거둔 쾌거였다고 자평할 정도였다. 그로 인해 청나라로부터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챙겼고, 요동반도와 조선까지 일거에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키려고 야심을 감추지 않았더랬다. 허나 요동반도는 '삼국간섭'으로 도로 뱉어내야 했고, 조선마저 아직까지 집어삼키기에 이르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이었다. 왜냐면 러시아가 만주와 조선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서둘러 '러일전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청일전쟁'에서 얻어낸 배상금도 몽땅 '군사비용'으로 허비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서 손실을 본 비용은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둬서 채울 생각이었다.
허나 '러일전쟁'은 길고 긴 싸움이었다. 물론 요동반도와 발해만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군을 궤멸시키고, 아프리카를 돌고 돌아서 1년 만에 겨우 대마도 앞까지 도착한 막강한 '발트함대'까지 '대마도해전'에서 몰살 시키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했다. 허나 러시아는 아직 전쟁을 시작하는 단계였을 뿐이고, 일본은 이미 총력전을 치룬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러시아는 항복조차 하지 않고, 시베리아 철도가 완공되는대로 육군을 일본 본토에 상륙시켜 전쟁을 이어갈 태세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미 모든 전력을 투입한 일본으로써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여기서 미국이 주선을 하며 '러일전쟁'을 일단락시키긴 했지만, 명목상 아무도 패배하지 않은 전쟁이었기에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도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 오직 조선에 대한 패권과 이권만 얻을 수 있었는데, 전쟁비용으로 허비한 것을 채우기에는 초라한 결과였던 셈이다.
그렇게 착착 조선침략을 서두르더니, 결국엔 중국까지 차지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내고 말았다. 조선과 만주를 자국의 식민지로 삼고, '병참기지화'를 빠르게 진행시키더니, 느닷없이 중국과 전쟁을 벌인 것이다. 물론 선전포고 따윈 없었다. 일왕의 재가도 얻지 못한 상태로 '중일전쟁'은 돌입했고, 한 달만에 '북경'을 점령하고, 석 달만에 '상해'와 '남경'까지 점령하는 쾌거를 이뤘다. 허나 거대한 영토와 어마한 인구를 거느린 중국은 '결사항전'을 다질 뿐이었다. 전쟁은 점점 '장기전' 양상을 띠었고, 일제는 전쟁을 빨리 끝낼 욕심에 도시를 파괴하고 민간인들을 학살을 자행하였다. 이에 미국은 미친짓을 그만 두라며 '석유수출'을 금지시켰고, 일제는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서 '동남아'로 전쟁을 확대시키며 '석유보충'을 하다가, 급기야 미국을 선제공격까지 감행하게 되었다. '진주만 기습'을 하고 말았다. 이때는 선전포고를 했는데,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궤멸시키고 난 뒤였다.
일제의 미친짓에 제대로 열이 받은 미국은 의회의 승인을 얻어 '일본과의 전쟁'을 벌이게 되었고, 태평양 함대를 잃어버린 초반에는 상당히 고전을 했지만, '미드웨이 해전', '과달카날 전투승리', '이오지마섬 점령', '도쿄대공습', 그리고 '핵폭탄 투하'까지 승리에 승리를 거듭한 미국은 끝내 일제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게 된다. 이렇게 일제는 전쟁으로 얻은 것도 별로 없었지만, 패전을 함으로써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만약 '공산주의 국가의 팽창'과 5년 뒤에 벌어진 '한국전쟁'이 아니었다면 일본은 지금껏 가난한 농경국가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양쪽에서 벌인 전쟁에서 모두 승리한 미국은 전쟁으로 '최고의 이익'을 얻은 게 아닐까? 물론 1945년 이후의 미국은 '냉전체제'까지 승리(?)를 거두면서 일약 '패권국가'로 성장하며 '팍스 아메리카(미국에 의한 평화)'를 구축하며 명실상부한 초일류국가로 거듭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팍스 아메리카'는 불과 100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도 허물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직 2024년일 뿐인데, 미국은 안에서부터 썩어들어가고 있고, 대외적으로도 강력한 힘을 보이지 못하고 흔들리는 모양새가 점점 확연해지고 있단 말이다. 과연 미국은 그동안 벌인 '전쟁'에서 엄청난 이득을 챙기기나 했는지 모르겠고 말이다. 혹여 챙겼다손치더라도 그로 인해 미국에 영광보다는 더 큰 불이익만 가져다준 것은 아니었을까?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면서 베트남에서 깨지고, 아프간에서 터지고, 걸프만에서 된통 당하고, 급기야 '9·11사태'까지 겪게 되고, 이제는 동네북마냥 이나라 저나라에게 만만한 나라로 전락하고 만 듯 싶을 정도다. 물론 아직까지는 '초강대국' 역할을 하곤 있지만 말이다. 한마디로 예전 같지 않다.
자, 이래도 '전쟁'이 달갑게만 보이는가? 설령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다해도 그 영광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오히려 전쟁에서 승리한 영광 때문에 '또 다시 전쟁'을 치뤄야 하는 어려움만 겪을 뿐이란 말이다. 과거의 서구열강들이 싸질러놓은 똥 때문에 아직까지도 전세계가 혼란스럽지 않느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최고의 이득을 챙길 수 있는 시점에 놓여 있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오늘날의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까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역사'가 없는 전세계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대로 우리가 '제2의 한국전쟁'까지 벌이지 않고, 평화체제를 유지하며 통일을 이룩하고, 지정학적인 '동아시아 화약고' 상황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대한민국은 앞으로 거칠 것이 없는 선도국가로 우뚝 서게 될테니 말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전쟁'을 치루는 순간 어떻게 될까? 단 한 번도 '침략의 역사'를 가지지 않았다는 명예로운 이득도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것이고, 또 다시 침공을 받아 '전쟁터'로 전락하고 만다면 다시금 경제대국으로 되돌아가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전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만 깨닫게 될 뿐이다. 설령 우리가 압도적인 군사력과 빵빵한 경제력으로 북한과 통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조선족'이 살고 있는 만주땅까지 되찾고, 감히 우리를 식민지로 삼은 일본열도를 점령하여 거대한 영토를 거느린 '대제국'으로 거듭난다 하더라도, 언젠간 주변의 강대국들의 이익선 때문에 '또 다른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만 커지고, 우리가 일순간 확보했던 '짧은 달콤함'은 '오랜 쓴맛'을 작렬하게 경험할 뿐일 것이다. 이래도 '전쟁'을 옹호할 것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느 곳에서는 '전쟁'을 치루고 있다. 그리고 그 전쟁으로 얻은 달콤함은 결코 모든이들이 맛볼 수 없다. 단지 몇몇 소수만이 이익을 누릴 뿐, 대다수의 사람들은 폐허가 된 터전에서 신음하고, 전장에 참전된 사람들은 헛된 목숨을 잃을 뿐일 것이다. 따라서 '전쟁영웅'은 없다. 오직 '잔인한 학살자'만 있을 뿐이다. 알렉산더, 카이사르, 칭기즈칸, 나폴레옹, 히틀러, 도조 히데키...모두모두 잔인한 전쟁광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전쟁은 수많은 희생자를 낳을 뿐이니 결코 자랑할 만한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전쟁사'를 다루면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