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쓰는 일이 당연했던 이유는 항상 펜과 노트가 함께하는 부모님 덕분이었다.
10대 때 담임선생님의 칭찬 덕분에 학창 시절 내내 쓰는 일에는 부담감이 없었고, 회사 생활에서도 글쓰기는 무난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결혼하고 알았다 주변에 글쓰기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나 또한 글쓰기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는 중이어서 그런지 글쓰기 책들에 관심이 간다.
30년이 넘게 연구자이자 학자로 살아온 저자 졸리 젠슨의 '스트레스 없이, 생산성 있게 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매뉴얼'이란 부제의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쓰기>는 나뿐 아니라 공부하는 일이 아직 많이 남은 딸아이에게 좋은 팁을 나눠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큰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다.
총 5부 28장으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200여 페이지 책이라서 가독성도 좋았다. (더 좋았던 점은 손으로 들고 읽어도 손목에 무리가 안 가는 무게감) 편집(그리드, 그레이&옐로) 또한 취향 저격이고 실용적인 면에서도 최근 읽은 글쓰기 책 중에서 가장 좋았다.
글쓰기가 술술 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나 또한 한 문장을 쓰기 전에 여러 권의 책과 기사를 읽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중 하나는 "넌 원래 잘 쓰잖아?"라는 말이다. 한 문장 쓰기까지의 노력은 깡그리 무시한 듯한 그 반응이 싫어서, 한 번은 핏대를 세우고 내 노력을 말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쓰는 일이 당연하고 무난하게 할 수 있는 일이더라도 기계처럼 스위치를 누른다고 그냥 나오지는 않는다. 더 많이 읽고 쓰고 지우고 하는 과정을 통해서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글쓰기를 대신 부탁하고 칭찬을 가장한 무시하는 발언을 하기 전에 그럴 시간에 졸리 젠슨의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쓰기>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식사시간에 우연하게 본 영화<루시(2014)>. 인간성을 잃어가는 주인공에게 노먼 박사가 하는 대사가 마음에 남았다. "죽은 뒤에도 정보와 지식은 다음 세대 세포에게 전달됩니다" 삶의 최종의 목적은 결국 지식 전달이라는 것.
삶의 목적에 글쓰기는 필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말로 전달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나는 무조건 글쓰기를 추천한다. 학술적 글쓰기의 목적인 지식 전달뿐 아니라 사람 관계에서 감정도 나는 글로 전달하는 것을 좋아한다.
간혹 아이와 사소한 다툼이 있을 때도 우리 모녀는 말보다는 글이 화해하는 속도가 더 빠르다.
이 책은 이처럼 글쓰기를 통해 나를 솔직하게 돌아보고, 목적을 통해 내 에너지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하는 시작과 실천하게 해 준다.
부담스러운 의무가 아닌 '귀중한 특권'으로 글쓰기를 대하는 방법은 정말 좋았다. 힘든 것 불안한 것은 당연하다고 말해주는 것도 위로가 됐다.
20대 편집 기자로 일할 때 선배 취재기자가 인터넷 뉴스 글을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 때보다 부담이 됐다. 메일을 보내기까지 정말 몇 번을 고치고 또 고치고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당시 이 책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래서 한살이라도 어릴 때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책에서는 더 많은 책들을 추천하고 있는데 그 책들 또한 읽고 싶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길을 잃은 나에게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쓰기>는 한동안 내 손이 닿는 곳에 항상 있는 내 글쓰기의 안내원이 될 것 같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