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복지”란 무엇인가, 조선 시대 복지란 말은 단 한 구절도 사용된 적이 없다는 점부터 밝혀둔다. 현대의 시각으로 조명해보면, 복지라는 말을 쓸 수 있겠지만, 복지란 말은 일본의 메이지 시대, 외국과 교류하면서 생겨난 한자로 여겨진다. “국가”라는 말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국+가(왕+제후 등의 문벌), 즉, 지배 권력이 미치는 범위를 말함이다. 근대화의 길을 먼저 걸었던 일본이 편의로 만들어 낸 한자들이 지금은 중국, 한국 등 한자권에서 모두 사용하고 있다.
아무튼, 우선, 이 책을 읽는 이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조선의 빈곤 정책”이라고 이해하자. 지은이도 이해를 돕기 위해 ‘복지’라는 현대적 개념을 썼지만, 실은 빈곤 정책이라고 했다.
복지 국가체계란 국민 간의 수직적 재분배를 전제로 한 제도다. 사회보험은 소득이 높은 사람이 더 많이 부담하도록 설계됐고, 공공부조는 소득이나 재산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이 부담하여 조성된 세금으로 빈곤한 사람들에게 소득을 이전하는 것이다.
이 책은 지은이의 이른바 “시시콜콜” 시리즈 중 하나다. 그렇다고 내용이 시시콜콜한 것은 아니다. 많은 참고문헌과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료를 확인하였고, 또한 재치있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대목은 애니메이션을 넣어서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일본 붓교대학에서 사회정책을 연구하는 박광준의 <조선왕조의 빈곤 정책>-중국·일본과 어떻게 달랐나- 하는 3국 비교를 통해 조선의 빈곤 정책을 입체적으로 톺아보고 있는 두툼한 전문서의 다이제스트나 축약, 요약판으로 여기질 만 만큼, 꽤 정리가 잘됐다. 아마도 조선 시대의 우리 빈곤 정책이 어떠했는지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밖에도 사회복지 분야의 연구에서 조선 시대를 꽤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논문이 나왔다. 장용기의 <토정 이지함의 ‘사회복지사상’연구>라는 꽤 흥미 있는 논문도 나왔다(2019 초당대 사회복지학 박사 논문).
이 책은 조선 복지정책의 내용과 이런 정책들로 인해 백성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나를 살펴보고 있다. 마지막에 복지가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하는 화두를 던진다.
조선왕조의 구빈 시스템
조선왕조는 빈곤한 백성을 먹여 살리는 것이 곧 유교의 인정(仁政)이라는 판단 아래 백성의 경제생활에 국가가 깊이 관여하는 체제를 왕조 초기에 확립했다. 빈곤 구제는 지방관의 책임이라는 대원칙<경국대전> 또한 조선 초기에 정해졌고, 이후 지속해서 강화됐지만, 인구증가가 되면서 농업기술의 개량으로 이앙법이 보급되면서 수확량은 늘었다. 하나 이앙법은 기후의 영향을 크게 받아, 모내기 철에 가뭄이 들면 일 년 농사를 망치는 극심한 피해가 생겼다. 이 시스템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 1840년 무렵이었고, 20년 후에 대규모 국가구제가 멈추게 되자, 기존 사회질서에 도전하는 세력이 대두됐다.
이른바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삼정문란, 환곡의 실패다. 환곡의 폐해, 조선 성리학의 정신적 스승인 주희는 스스로 사창을 만들고, 무이자로 환곡제도를 시행했다. 그런데 조선의 사대부 양반들은 이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사복을 채우는 데 앞장섰으니, 성리학이란 학문은 양반의 편의적 도구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주자학에 살고 죽던 한 줌도 안 된 양반무리에게는 왕조의 인정정치도 그다지 중요치 않다. 대의명분을 이미 상실한 조선의 빈곤, 빈민구제 정책은 이렇게 빛을 잃게 됐다.
조선왕조의 구빈정책은 국왕의 덕치, 인정의 실현이 그 이념이다. 구빈제도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서 복지시설의 조건 정비가 적절한 수준으로 마련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기 아동보호는 토우라는 임시 피난소에서 한겨울 동안만 보호할 뿐이었다. 봄이 돼서 구걸할 수 있게 되면 더는 보호하지 않았으므로, 이는 아동복지가 아니라, 한겨울에 굶어 죽는 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왕조의 의지를 나타낼 뿐이다. 아사자가 나오는 순간 왕의 부덕의 소치로...어찌 염려하지 않을까,
지방관의 의무라는 책임규정은 현실적으로 강제력이 따랐지만, 이 역시 선언적 의무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조선왕조가 근대적 구빈법에서 말하는 국가 책임주의를 표방했다고까지는 볼 수 없는 이유이겠다.
여성은 여전히 “삼종지도”의 틀 속에 갇혀, 보호 대상일 뿐이다.
가족 중심의 공동체 속에서 어렸을 때는 아비를 혼인해서는 남편을, 남편 사후에는 어린 호주인 아들에게…. 여성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이런 여성이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사례가 생기게 되면, 가부장 중심체제는 크게 흔들리게 될 것을 우려, 여성은 그저 보호 대상으로 남겨두게 된 것이다. 반면에 노인에 대한 사회적 예우는 사회질서의 기본인 "효'와도 관련이 있던터라 장수한 노인에게 명예직 벼슬을 내리기도, 양로연을 열고 국왕이, 지방에서는 수령이 나서서 인사를 했다.
장애인에게도 출사의 기회가
장애인이라 말은 불과 20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장애라는 개념 자체가 비장애인 중심주의 시각에서 나온 용어이니 말이다. 서양이건 조선이건 기록에 따르면, 그저 불편한 자로만 칭할 뿐, 이를 장애인이라는 범주로 대상화, 차별, 소외시키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지은이는 이 대목에서 조선 시대 유명한 이들이 장애를 안고 있었다고 밝힌다. 오리 이원익 등이 그러하다. 또, 양반의 일기에는 요즘은 장애가 있는 자가 장원급제를 하지 못하는데 이는 아무래도 차별인 듯하다고…. 요즘에 이런 말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당대의 인식은 같은 사람으로, 동등 대우를 받아야 할 인간으로 봤던 것 같다. 물론, 사농공상의 계급에 기초한 사회질서가 존재하지만 말이다.
조선왕조의 빈곤 정책을 복지사회론적 맥락에서 보면, 왕조가 설계했던 대규모의 구비시스템의 취지가 제도입안자는 물론 제도 이용자에게 충분히 이해되지 않았고, 그것이 제도의 남용(도덕적 해이)으로 이어져 구빈제도가 파탄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구비비용은 백성의 부담으로 조달되는 것이고 일반 백성들이 불필요한 수급을 하지 않았을 때, 진정으로 구빈제도가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구제받을 수 있다. 만약 이런 의식이 희박해지면 국가구제를 무주공산과 같은 것으로 여겨, 축재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이익을 보는 현상이 계속된다면 제도는 지속할 수 없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복지제도와 그 내용을 살펴보는데, 조선 시대의 그것과 비교해서 보면 꽤 흥미로울듯하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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