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그냥 이끌렸습니다.
누구에게나 겪을 수 있는 일이기에...
하지만 막상 생각해보지 않고 지내기에...
한 번은 생각의 계기를 갖고자 읽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마음은 부서졌지만, 나는 부서지지 않았습니다"
이 문구가 참으로 인상적인 이 책.
저자가 전할 회복과 치유의 과정 속에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통렬한 슬픔과 심리 이론 사이를 오가는 솔직한 고백
상실을 견뎌내며 삶의 의미를 찾는 치열한 여정
『상실의 언어』
여느 때처럼 그녀는 요리를 하고 설거지는 빌이 맡았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함께 위층에 올라가 옷을 차려입으며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을 나누던 중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키더니 가슴을 움켜쥔 '빌'.
20대 내내 배우로 일한 빌이었기에, 연기 본능이 뼛속 깊이 배어 있기에 사소한 일에도 과장된 반응이 터져 나오곤 하지만...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고통과 분노로 가득한 비명 소리에 놀라 전속력으로 달려가보니...
유령이라도 본 듯 창백하고 경악한 안색, 흐려진 눈, 혼란과 공포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표정.
공황 상태에 빠진 그녀 '사샤'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부리나케 병원으로 향해갑니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하니
"아무래도 상태가 심각한 것 같아서요. 지금 바로 의사 선생님을 불러주실 순 없나요?" 빌을 달래려고 속삭이는 동안엔 최대한 숨겼지만, 사실 나는 정말로 겁에 질려 있었다.
"지금은 환자를 보고 계셔서요. 하지만 남편분이 다음 순번이에요." 이것이 돌아온 대답이었다. "다른 환자도 진료를 받아야하니까요." - page 26
이것이 진정 응급환자를 대하는 병원의 태도란 말인가!
더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의사는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시 한 번 말해달라고 했다. 접수원, 환자 분류소의 간호사, 응급실 간호사에게까지 이미 몇 번이나 설명했는데 말이다. 나는 또다시 터무니없게 들리는 증상 목록을 늘어놓았다. 처음엔 가슴 통증이었고 다음엔 목, 그다음엔 가랑이, 그다음엔 왼쪽 다리 저림, 시야 흐림과 메스꺼움, 왼쪽 다리 감각 상실, 복통, 마침내 다리 마비까지. 의사는 당황스럽고 겁이 난 기색이었다. 당황하고 겁이 난 의사라니, 나로서는 전혀 안심이 되지 않는 광경이었다. - page 27
이런 의료 시스템은 나 역시도 겪어보았기에...
읽으면서도 가슴속에서 울컥! 솟아나는...
마침내 빌의 병명이 밝혀지게 됩니다.
'대동맥박리'
(그러니까 빌의 대동맥, 즉 심장에서 온몸으로 피를 내보내는 가장 중요한 동맥이 찢어지는 바람에 그 안에 있어야 할 피가 전혀 상관없는 신체 부위들로 흘러간 것이었다. 물론 이는 지극히 복잡한 의학적 증상에 관한 문외한의 이해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 이제 수술로 찢어진 동맥을 복구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터였다. - page 33)
수술을 하면 다시 빌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하지만 이것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기묘한 아침식사로부터 서른여섯 시간 뒤, 샤샤는 이 말을 듣게 됩니다.
"죄송합니다. 저희로선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군요." - page 24
예상치 못했던 남편의 죽음은 순식간에 그녀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빌이 죽은 뒤 여러 달 동안 나는 이런 수수께끼에 매달려 있었다. '이 모든 게 예정된 일이었나? 내가 저지른 어떤 잘못에 대한 처벌일까? 그렇다면 왜 내가 아니라 빌이 죽었지? 그가 무슨 죄라고? 이것이 일종의 숙명이라면 우리 둘 중 누구의 숙명일까? 나는 이 일에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 걸까? 왜 빌을 내게 주어 행복을 맛보게 한 다음 도로 빼앗아 간 거지?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혼란한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회오리쳤다. 그러니 누가 나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것도 당연하다. 나는 존재, 신앙, 영성, 내세에 관해 예전과 전혀 다른 의문을 갖게 되었고, 존재하지도 않는 답을 찾아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다. 왜, 어째서, 누가, 무엇 때문에? 빌이 없으면 난 뭐지? 이 같은 실존적 분노, 영성과 믿음을 재검토하고 새롭게 정의하려는 욕구는 유족에게 드물지 않은 현상이며, 사랑하는 이를 갑자기 잃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정신적 급강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깊은 혼돈에 빠져 있던 나로서는 이러다 내가 완전히 미쳐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나는 서서히 온전한 분별력과 현실의 끈을 놓쳐가고 있었다. - page 41 ~ 42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일이기에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배우자의 부재.
생각만으로도 가슴 먹먹하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데 막상 마주하게 되면 그 혼란과 고통은 어찌할까...?
나는 바를 지나쳐서 걸어갔다. 촛불이 깜빡이는 저 바닷가 테이블 중 하나에 나 혼자앉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빌을 떠올리지 않으려 했지만, 내 생각은 자기만의 의지를 지니고 너무도 자주, 너무도 멀리 헤매어 가곤 했다. 문제는 빌을 떠올리지 않아도 끔찍하긴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그 죄책감이란! 내가 어떻게 빌 생각을 안 할 수 있지? 이 무슨 배신인가. 난 얼마나 끔찍한 아내인가. 아니, 아내였는가. 젠장. - page 130 ~ 131
함께 나누었던 일들이, 추억이 나를 갉아먹는 이 느낌이란...
이것이 남은 자들의 몫인 건가...?!
그건 아니라는 것을 저자는 일러줍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일은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정신적 외상을 남기며, 이는 절대 한순간에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잠시 울고 약을 한두 알 삼킨 다음 툭툭 털어내고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얘기다. 유족이 되는 것은 몸과 마음과 정신과 감정의 대폭발이자 세게와 신념을 뒤흔들어 우리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경험이다. 물론 새로운 우리도 멋지게 살아가며 기쁨과 행복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어쨌든 예전의 우리는 아니다. - page 241
나는 이제 고통도, 눈물도, 빌에 대한 그리움도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그 감정들은 형태와 색채를 바꾸어가며 다른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처음에 그랬듯이 충격적이고 기진맥진하도록 격렬한 감정은 아닐 수 있지만, 어쨌든 항상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 그리움과 애절함은 점점 깊어지는 반면 빌의 실재성과 존재감은 희미해질 테니까. 빌의 목소리에 대한 기억도 흐려질 것이며, 기억 속 빌은 계속 중년의 모습인 반면 나는 늙어가리라. 하지만 나는 내 상황이 얼마나 힘겨운지 만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이 되었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내 삶에 빌이 존재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제는 빌을 잃었기 때문에. - page 326 ~ 327
결국 상실을 통해 또 한번 성숙해질 수 있음을, 그렇게 또 한 걸음을 나아감을, 아니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었습니다.
내가 느낀 그 모든 죄책감에도 불구하고 감히 말하자면, 나는 빌의 인생에서 최고의 14년을 그에게 주었다고 확신한다. 빌이 내 인생 최고의 14년을 주었듯이. 그리고 그 14년 동안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30년 넘는 시간 동안 겪었을 것보다 더 많은 모험을 함께했다. 빌은 내가 여생 동안 다 말하지 못할 만큼 많은 것을 주었고, 죽고 나서도 여전히 가치를 매길 수 없을 귀한 것들을 주고 있다. 자기 인식, 더 넓은 세계, 내세에 대한 확신, 죽음에 대한 초연함, 너그러운 마음, 더욱 유연한 자세, 나에게 사랑과 지지와 힘을 주며 나 역시 확고히 헌신하고 죽는 날까지 보살필 가족. 물결은 계속 번져나간다. 단지 빌의 이름을 딴 상뿐만이 아니라, 나와 마찬가지로 빌을 잃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나를 떠받쳐주고 그 과정에서 영원히 변화한 사람들을 통해. 그리고 우리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울포타의 길고 느린 진화처럼, 우리가 공유한 경험 역시 사랑과 배려가 겹겨빙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 - page 327 ~ 328
그래서 그녀가 빌의 장례식에서 읽었던 추도사가 더 와닿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 속에 저자는 애도의 과정을 표류와 항해의 이미지로 표현하였습니다.
미지의 바다
정처 없이 떠다니게 된 배
다시 정박할 곳을 찾는 과정
안정감 있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곳을 찾는 과정은 참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운명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이 시가 떠올랐습니다.
랜터 윌슨 스미스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시를 끝으로 맺어보려 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 랜터 윌슨 스미스
큰 슬픔이 거센 강물처럼 네 삶에 밀려와
마음의 평화를 산산조각 내고
가장 소중한 것들을 네 눈에서 영원히 앗아갈 때면
네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끝없이 힘든 일들이
네 감사의 노래를 멈추게 하고
기도하기에도 너무 지칠 때면
이 진실의 말로 하여금 네 마음에서 슬픔을 사라지게 하고
힘겨운 하루의 무거운 짐을 벗어나게 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네게 미소 짓고
하루하루가 환희와 기쁨으로 가득 차
근심 걱정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의 기쁨에 젖어 안식하지 않도록
이 말을 깊이 생각하고 가슴에 품어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너의 진실한 노력이 명예와 영광
그리고 지상의 모든 귀한 것들을 네게 가져와 웃음을 선사할 때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일도,
가장 웅대한 일도
지상에서 잠깐 스쳐가는 한 순간에 불과함을 기억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