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한국은 짧은 기간 동안 분단과 전쟁, 그리고 독재와 민주화 운동을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한국의 격동의 현대사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사상과 이념에서의 갈등과 대립, 사회의 분열을 초래했다. 그래서, 한국 현대사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아직까지 한국 현대사에 깊이 관여한 인물들이 여전히 생존해 있으며, 또한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서로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사에 대한 접근이 신중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어느 정도는 공감을 하지만, 그래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입장에서 현대사로 편입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필요하기에 마냥 현대사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늦출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사에 대한 색다른 접근을 제시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사건을 통하여 그 시대의 분위기와 흐름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1. 보호받아야 할 정조, 보호받을 수 없는 정조 : 카사노바 박인수 사건
2. 미궁 속에 남은 정치 테러 : 공작명 KT 납치 사건
3. 개돼지보다 못했던 사람들 : 무등산 타잔 박흥숙 사건
4. 미워할 수밖에 없는 죄, 미워할 수 없는 사람 : 서진룸살롱 살인 사건
5. 유전무죄 무전유죄! : 탈옥수 지강헌 인질극 사건
6. 사람이 증발한다, 지구 최후의 날! : 1992 휴거 소동
7. 꽃분홍 아지트의 괴물들 : 지존파 납치 살인 사건
철저한 언론 통제로 인하여 '공작명 KT 납치 사건'의 경우는 당시 사람들이 그 진상을 제대로 알 수 없었지만, 나머지 사건들은 연일 언론에서 대서특필할 정도로 잘 알려진 사건들이다. 덕분에 나 역시 '탈옥수 지강헌 인질극 사건', '1992 휴거 소동', '지존파 납치 살인 사건'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책은 이러한 사건들을 통하여 한국 현대사의 어떤 실상을 보여주고자 한 것일까?
1. 보호받아야 할 정조, 보호받을 수 없는 정조 : 카사노바 박인수 사건
1955년 20대 해군 대위가 고급 댄스홀을 휘젓고 다니면서 여성들을 농락한다는 첩보가 들어와 검찰은 수사 끝에 26살의 박인수라는 인물을 공무원 사칭과 혼인빙자간음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 공소장에 피해자는 30명이었지만, 실제로는 70명이 넘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그것도 1년 동안 만난 여성의 숫자이니 그의 행각은 당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저렇게 많은 여성 피해자가 있었으니 그에 대한 재판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하지만 피고였던 박인수는 혼인빙자간음을 극구 부인하였다. 이 와중에 그의 입에서 나온 발언은 재판은 물론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만난 여성 중 처녀는 미용사 한 명 뿐이었다."
이 진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진짜 처녀인 한 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여성들과 혼인빙자간음죄가 아예 성립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근거는 무엇일까?
형법 제304조.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p. 16 中에서-
형법에 정의된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설명 중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는 음란하지 않은 여자, 문란하지 않은 여자를 의미한다. 그러니 피고의 주장은 곧 미용사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여성들이 문란했기 때문에 혼인빙자간음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발언이 황당한 것 같지만 이 발언 이후 오히려 피해 여성들에게 질타의 시선이 쏟아졌다. 그리고, 여성들은 고소를 취하하거나 스스로 정조를 빼앗긴 적이 없다고 증명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심지어 재판부는 혼인빙자간음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고 해군 대위라고 사칭한 부분만 유죄로 인하여 가벼운 벌금형을 선고하였다. 2심 역에서는 피고인에게 결혼을 약속한 동거녀와 자식이 있다는게 드러나면서 징역 1년 형이 선고되었지만, 판사는 판결과 함께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정조에는 보호해야 할 정조와 보호하지 않아도 될 정조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정조라는 것은 여성에게 있어 생명이다.
- p. 20 中에서 -
이 사건은 1950년대 한국 사회가 남성의 정조에 대해서는 관대하였고, 여성의 정조에 대해서는 중요시 하는 사회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지금은 혼인빙자간음죄가 폐지되었지만, 유죄의 판단 기준 중 하나가 여성의 정조였다는 점은 누구도 잘 몰랐을 것이다. 또한 6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이러한 여성에 대한 정조의 관념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치단체장의 여비서가 재판정에서 원치 않았던 관계를 왜 강하게 거부하지 않았느냐고 물은 것은 그러한 관념이 여전하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학교에서 벌어지는 제자에 대한 교사의 성범죄에 대한 판결 역시 교사가 남성이냐 또는 여성이냐에 따라서 형량이 달라진다는 점 역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성과 관련된 범죄에서 가해자 또는 피해자의 성에 따라 달라지는 형량도 어쩌면 남성은 강하고 여성은 약하다라는 편견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개돼지보다 못했던 사람들 : 무등산 타잔 박흥숙 사건
1977년 4월 20일, 한 남자가 철거반원 4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히는 사건이 발생한다. '무등산 타잔 박흥숙 사건'이라 명명되는 이 사건을 이 책에서는 그 진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 사건의 내막을 자세히 알지 못하였다. 그저 무등산에 불법 주거지에서 살던 사람이 철거 위기에 놓이자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을 들여다 보면 과연 이 사건을 그저 가해자와 피해자로 구분되는 참혹한 사건으로만 볼 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 우선 이 사건으로 인하여 결국 사형을 당하는 박흥숙이라는 인물의 삶을 본다면 과연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러한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하였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머리가 좋았지만, 너무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가족과 함께 무등산에 움막을 짓고 사는 와중에도 사법시험에 도전할 정도로 그는 성실했다. 그러한 녹록치 않은 환경에서도 신체를 단련하고 시험을 준비하는 그의 모습은 개천에서 용으로 거듭나기 위한 의지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1977년 4월 20일 철거반원들이 들이닥치면서 박흥숙 가족의 주거지는 철거되면서 이 과정에서 철거반원들은 불을 지르게 된다. 이로 인하여 박흥숙의 모친이 열심히 모은 돈이 움막과 함께 타버리지만, 오히려 박흥숙은 가족들을 진정시키면서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주거지는 불태우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거동조차 힘든 사람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철거반원들은 무시하고 주변의 움막들을 불태우고, 이 부분에서 박흥숙은 분노와 함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이다. 이후 박흥숙은 재판에서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고 그는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속죄의 시간을 갖다가 결국 사형이 집행된다. 박흥숙의 이러한 사정 때문에 그를 옹호하거나 변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철거반원들 역시 공무원이 아닌 하청업체의 직원이었고, 그들 역시 공무원들의 지시를 받아서 그들의 업무를 수행했을 뿐이다. 그러니 이 비극적이고 참혹한 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모두 사회적 약자들이었으니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한가지 더 주목할 부분은 이 사건을 다룬 언론의 행태이다. 지금과는 달리 정부의 눈치를 보던 그들은 이 사건을 한 광기의 인물에 의하여 저지른 것으로 보도했기 때문이다. '무등산 타잔'이라는 용어 역시 그들이 만들어 냈으며 사건의 진실을 왜곡하고 허위로 이 사건을 다뤘던 것이다.
- 박흥숙은 무당골에서도 가장 뛰어나 굿거리 10여 개를 몽땅 가지고 있어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수입이 많고 그동안 절약하여 광주 시내에다 집을 3채나 샀다.
- 무당촌을 사수하려는 집념에 사로잡힌 무당의 아들이, 제단을 차려둔 집도 태우려 하자...
- 사교의 온상 무등산 무당촌을 벗긴다.
: 사교촌 20대 청년의 발악이 끝내 무등산을 피로 물들이고 말았다.
- p. 136 中에서 -
불우한 환경을 스스로 이겨내려고 노력했던 인물을 많은 재산을 모은 무당으로 언론은 묘사하면서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였기에 당시 이 사건은 끔찍한 범죄로만 사람들에게 비춰졌을 것이다. 이렇게 정부의 눈치를 보던 일부 언론이 이제는 더이상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음에도 특정 여론을 형성하거나 조작하고 확인되지 않은 기사를 쓰고 있으니 이 책에서 이 사건을 언급한 이유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리라.
3. 유전무죄 무전유죄! : 탈옥수 지강헌 인질극 사건
1988년에 일어난 이 사건을 나 역시 TV로 그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으니 그저 흉악범이 인질극을 벌인 정도로만 이해했지만, 그가 외친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로 인하여 나중에 이 사건의 본질을 깨닫게 되었다. 대통령의 동생은 당시 73억에 이르는 횡령을 저질렀지만, 약 2년의 형만 살다가 가석방이 되었고 심지어 1992년에는 사면복권 되었다. 그에 반하여 지강헌은 500만원의 절도죄로 인하여 징역형과 함께 이후 장기간의 보호감찰을 받아야 했으니 이에 불만을 품고 그는 탈옥을 하였던 것이다. 결국 인질극 사건은 경찰에 의하여 진압이 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지강헌은 총을 맞고 심각한 출혈로 인하여 결국 사망이라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을 맺게 된다. 하지만 지강헌 일당이 도피 과정에서 시민들에게 인명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는 점과 그 과정에서 보여준 그들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은 훗날 재판에서 오히려 시민들이 그들에 대한 탄원서를 쓸 정도였으니 비록 방법은 옳다고 할 수 없지만, 당시 사회의 부조리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돈 없다고 사람 취급 못 받는 세상, 돈으로 판사도 검사도 살 수 있는 세상, 죄 있어도 돈 있으면 무죄, 죄 없어도 돈 없으면 유죄!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게 우리 대한민국이야! 우리 대한민국의 O같은 법이야!!
- p. 229 中에서 -
이 사건을 다룬 영화 [홀리데이]에서 나온 이 절규가 과연 그 사건에 국한되는 것일까? 법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오늘날 시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판사나 검사가 범죄를 저지르면 제대로 기소되지도 않거나 기소가 되어도 형량이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돈을 많이 쓰면 같은 범죄인데도 형량은 줄어들기 마련이고, '전관예우'가 버젓이 통하는 사법부의 현실을 보면 지강헌의 외침은 계속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4. 꽃분홍 아지트의 괴물들 : 지존파 납치 살인 사건
1993년의 지존파 납치 살인 사건은 정말 사람으로서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지 치를 떨게 한 사건이었다. 이들의 엽기적인 살인 사건은 결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부유한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목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 자체가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사건이 왜 1993년에 일어났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부유층의 젊은이들이 부모의 부를 바탕으로 강남에서 퇴폐적인 행각을 벌이고 있었는데, 이들을 등급에 따라 오렌지족, 탱자족, 낑깡족이라 칭하였다. 심지어 비싼 외제차를 타고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야! 타!"라고 외쳤기에 야타족이라는 용어도 등장하였다. 이러한 모습을 그저 선망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반대로 증오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지존파는 바로 그 후자의 기형아였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심화로 인하여 부의 불균형과 대물림이 심화되면서 그 간극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좁히려고 했던 것이다.
현재에도 금수저를 비롯한 수저론이라든지 건물주와 같은 용어는 이러한 문제점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직까지는 금수저 또는 건물주에 대한 부러움과 선망으로 가득하지만, 이것이 어느 순간 증오로 바뀐다면 과연 1990년대에 일어난 지존파 납치 살인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는 더이상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으며 취업과 결혼, 집장만과 같이 예전에는 노력하면 그래도 이룰 수 있었던 것들을 하나 둘씩 포기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과연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그러한 생각을 이런 엽기적인 사건과 연계하여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이쯤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리뷰에서 다루지 못한 사건들을 포함하여 이 책에 등장하는 내용은 실제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들이고 그것이 하나의 범죄 또는 소동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면서도 그것이 현재와도 깊은 연관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것을 이해한다면 하나의 점으로만 보였던 이 사건들이 연결되어 선으로 현재와 이어지고 있으며, 그것이 한국 현대사의 또 하나의 맥락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