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나는 장례식장 직원입니다>
-다음에 보자,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가벼운 듯 무거운 죽음에 대한 블랙유머
대만 작가, 다스슝의 첫 책이다.
전문 작가는 아니고, 실제 장례식장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자신이 경험안 이야기를 글로 풀어 쓴 것으로, 장례식장 직원이 겪는 에피소드 정도로 이해하면 좋겠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유행한 유품정리사 같은 결은 아니다.
저자는 매우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자식에게 저주 같은 말을 남겼고, 중풍에 걸린 뒤 결국 자신을 돌볼 사람은 자식과 아내인데 고생하라며 일부러 나을 생각도 하지 않고, 온갖 고생을 다 떠안게 했다.
"그거 아냐? 넌 나랑 닮았어. 너도 나중에 나처럼 친구도 없고 놀기만 좋아하다 도박에 빠질 거야. 너도 나처럼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 (저자 아버지의 말, 273쪽)
이게 아버지가 자식에게 한 말이니 치가 떨린다. 그러나 저자는 당당히 말한다. 당신이 틀렸다고, 적어도 책 한 권은 써냈다고.
이 책은 문학적 깊이가 있는 책은 아니다. 장례식장 직원으로 시신이 발견되면 보디백에 시신을 담아오고, 냉동고에 보관하고 장례를 진행해주는 일을 한다. 10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이면서, 아직 결혼 하지 않은 청년으로서 이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긴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어두운 구석은 없어 보인다. 그는 아버지와 다르게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며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한다. 자신의 꿈은 이렇게 살다가 그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거란다. 소박하기는 한데, 이미 책을 한 권 썼으니 어떻게 그의 미래가 바뀔지는 모르겠다.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별별 사건사고와 포복절도 유머의 향연"
책 표지에 찍힌 책의 정체성이다.
장례식장 직원이 쓴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죽음에 관한 글이지만, 국내 모 응급실 의사가 펴낸 책처럼 심오하거나, 진지하거나, 인생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글은 아니다.
죽음에 대한 블랙유머. 결국 뒤집으면 삶에 대한 이야기다. 다만 글을 쓰는 방식이 진지하지 않다는 것뿐인데, 그렇다고 하여도, 우리는 이 이야기들을 그저 희희낙락 웃으며 흘겨 읽을 수는 없다. 왜냐면, 죽음은 죽음 그 자체가 가지는 무게가 있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서 일하다 보면 온갖 유형의 유가족들을 만나게 된다. 사연 없는 죽음도 없고 사연 없는 유가족도 없다." (90쪽)
가난한 유가족들이 매일 찾아오는 모습은 처연하다. 위패를 살 돈이 없어 아들이 좋아하는 햄버거를 손에 들고 십 분씩 서 있다 가는 어머니도 있고, 제대로 키워준 적도 없는데 왜 자기가 돈을 내서 장례를 해야 하냐고 소리치는 자녀도 있다. 무조건 싼 것으로 해달라고 했던 자녀는 화장할 때 유골함도 생략했는데, 알록달록한 과자통을 들고 와서 거기에 아버지 유골을 담아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읽을 때는 정말 이것이 실화인가 싶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숨을 쉬고 있어 이를 아들에게 알리자 아들이 한 말을 읽자 정말 저자의 마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열어본 보디 백 안에는 죽은 줄 알았던 노인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나는 얼른 그의 아들에게 가서 말했다. '세상에, 당신 아버지 아직 숨이 붙어 있어요!' 그러자 아들이 말했다. '그럼, 냉동고에 어떻게 넣죠?' 맙소사.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102쪽)
저자는 말한다. 부모가 죽고 나서 보이는 행동으로는 효자인지 불효자인지 알 수 없다고. 그게 제일 우스운 일이라고.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속이기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그 글을 읽으며 뜨끔했다. 돌아가시고 나서는 효도인 양 열심히 섬기는 게 쉬울 수 있다. 살아계실 때 함께 하는 게 더 힘들다. 그는 단언한다. 이곳 장례식장에서 보는 모습들은 조금 가짜 같다고.
저자는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도 일했는데, 요양원을 방문한 가족의 입을 빌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일은 사랑하는 이를 죽음으로 잃는 게 아니라 치매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이라 했다.
"가장 잔인한 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한평생 살 부대끼고 살던 사람이, 하루하루 나를 천천히 잊어가다가 어느 날 완전히 모르는 사람이 되는 거야. 봐봐. 내가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인데 지금은 날 봐도 사랑은커녕 내가 누군지도 모르잖아. 남편은 나를 잊어버렸지만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지. 이게 가장 잔인한 일이야." (193쪽)
곧 새해가 된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희망찬 새해지만 누군가에게는 희망 없는 또 한 해가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연말에 가장 많은 시신이 들어온다고 한다. 희망없음으로 인해, 새해를 맞기 전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추운 겨울에 돌보는 이 없이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그러니 함부로 "다음에 보자"라는 인삿말을 남기지 말자. 그 다음이 언제일지 우리는 모른다. 그건 인간의 영역 밖에 있는 시간이다.
"여러분도 이 아름다운 명절에 사랑하는 이들과 즐겁게 어울리길 바란다. 우리가 '다음에 보자'라고 말할 때, 그 '다음'이 언제일지, 또 어디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느니 말이다." (203쪽)
조금 진지한 글들만 골라 붙였지만, 책 전체는 재기발랄하다. 장례식장에 진짜 귀신이 나오는지에 대한 에피소드부터 우리가 몰랐던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간접체험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다만, 전체적으로 죽은 시신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밥 먹기 직전에는 읽지 않는 걸 권한다.
(선한리뷰)
삶은 결국 죽음으로 달려가는 과정에 있다.
결국 어떻게 살았느냐가, 내 죽음의 무게를 결정한다.
'다음에 보자'라는 말을 할 때 그 '다음'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오직 하나님만 아시는 내 마지막 시간.
그 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 날이 오기 전까지 하루하루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