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이야기로 책 한 권을 쓰고 난 지금에서야 알게 됐다. 이 책은 내 이야기가 아니지만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 책을 쓰면서 불안하고 흔들리는 나 자신을 만났다. 인생의 방향타를 잡지 못해 방황하던 나를 잡아줄 무언가를 애타게 찾았는데 뜻밖에 소현의 모습에서 내가 가고 싶었던 길을 발견했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믿는 자신감이었다. (p.19)
예전에 2급 항해사의 책을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스물다섯 선박기관사라는 단어부터 흥미가 생겼다. 다들 그렇듯 바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기도 했고. 당연히 선박기관사가 직접 항해하는 이야기를 적은 책일 줄 알았는데, 이 책은 선박기관사를 “인터뷰”한 기록이다. 글을 쓰고 싶었으나 마땅한 소재가 없던 작가와 글을 쓸 시간은 없으나 소재가 풍부한 이의 만남. 이 책은 그렇게 독특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구조에서 오는 묘한 생동감이 이 책을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한발 물러나 볼 때 세상은 더 아름답다고 했던가. 남의 눈으로 보는 '나, 소현'을 통해 그 말을 여실히 이해했다.
전교 1등이었던 아이가 의대 사관학교라고 이름난 상산고에서의 해양대는 나름의 실패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꾀를 부린 적도 없는데, 난 제자리에서 힘겹게 서 있는 건데 빠르게 앞서 나가는 이들에 의해 내가 뒤처지는 기분. 비록 “잘난 아이들의 레이스”에 서본 적은 없으나, 타의에 의해 뒤처지는 기분은 잘 알기에 선입견 없이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기로 했다. 아마 이것을 그녀가 직접 기록했더라면 많은 이들에게 '비공'을 받았을지 모르나, 타인의 눈으로 기록되었기에 그저 인생이 흔들리고, 아파하는 한 사람으로 보였다.
머릿속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터널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몸이 힘들면 아무 생각이 안 난다는 걸 직접 겪어보니 알 수 있었다. (p.45) / 역시 돈의 힘은 위대했다. 이것도 여러 번 하자 고질병이었던 고소공포증이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p.139)
책을 읽는 내내 '소현'에게 뭉클했다가, 안쓰러웠다가, 기특했다가 하는 온갖 마음이 들었다. 아마 '선우' 역시 그런 마음으로 소현을 바라보았기에, 독자도 이런 마음을 느끼는 것일 터. 그런데도 이 책에서 짠 내만 나는 것은 아닌 이유는, 그녀는 힘든 생활 속에서도 스스로 반짝이게 하는 단단함을 가진 사람이었다. 배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늘 같은 사람들과 늘 같은 패턴으로 생활을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도 그녀는 자신이 바라보는 바다의 아름다움을, 누군가의 일에 대한 감사함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그래서 그녀는 소위 “단짠단짠”한 사람이었다.
시간이 수시로 없어지는 시간대에서 사는 덕분에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게 됐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뤘다가 내일은 그 시간이 영영 사라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카르페디엠. (p.175) /
이렇게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가 어찌 짠하기만 하다는 말인가. 그녀의 말대로 직접 머리를 잘라 꾀죄죄할지는 몰라도 그녀는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선박항해사라는 직업 자체를 처음 알게 해 준 사람이기도 하지만, 잊고 살던 카르페디엠을 다시 떠올려준 사람이기도 하다. 매년 다이어리에 카르페디엠을 적던 야무진 나는 어디로 갔을까.
주어진 환경과 상황을 탓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어차피 이 일을 그만둘 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적응하는 건 자기 몫이다. 분노하고 실망하고 원망하며 시간을 보내면 거기에 쏟아부은 감정과 에너지만 아까울 뿐이다. 그럴 시간에 오히려 스스로 바꿀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p.241)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시간을 많이 돌아보았다. 그리고 오래된 다이어리를 꺼내 과거의 나를 만났다. 나의 바다에서는 그저 헤엄만 치라는 그녀의 말이 마음을 둥둥 울린다. 솔직히 요즘의 나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살아내기에 지쳤던 터라, 많이 아팠던 터라 오늘의 행복만 생각하자고 수없이 나를 다독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살랑살랑 물장구를 쳐보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에게 선한 자극이 되어준 책에 감사를 전한다. 물론 나는 내일도 “오늘”만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가. 나의 바다가 있음을 기억해낸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중학교 때까지 전교 수석은 당연히 자신의 차지로 알고 지낸 소녀가 있다. '수재 집합소'이자 '의대 사관학교'인 상산고로 입학, 목표는 당연히 의대 진학이다. 그러나 수재들이 모인 상산고에서도 서열은 정해지기 마련이고 아쉽게도 집안의 장녀인 이 소녀는 바닥권을 헤맨다. 의대 진학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시원하게 수능은 말아먹고, 아버지의 권유에 힘입어 그전에는 1%도 생각하지 않았던 이름도 생소한 한국해양대학교에 진학한다. 기대했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마주한 현실은 '대가리 박아!'(21세기에 이거 실화냐?)
25세 청춘 전소현 선박 기관사의 단짠단짝 승선 라이프 <바다 위에도 길은 있으니까>다.
이 책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선박 기관사가 되어 육지보다 배 위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더 많은 전소현의 청춘 분투기이자 극한직업 체험기이기도 하다. 주위에 선박 기관사 직업을 둔 누군가가 있나?
어설프더라도 본인이 직접 글을 썼으면 울림이 더 크지 않았을까 싶지만, 항해가 대부분인 직업의 특성상 글은 이 책이 데뷔작인 이선우 브런치 작가의 힘을 빌려 공저로 출간됐다.
"소재는 있는데 글을 써보지 않은 사람과, 글은 써봤는데 마음에 드는 소재가 없던 사람의 조합." - 11쪽
보통 이런 유의 글은 실제보다 미화하는 경우가 많다 추측되는데, <바다 위에도>는 오히려 반대일 것이란 생각이다. 실제 전소현이 겪은 실상보다 상당 부분 완화해서 표현하지 않았을까?
책에서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진정한 뱃사람이 되어가는 성장과정이 그려지고, 살짝 바다의 낭만도 이야기하지만 그 뒷면에 그녀가 얼마나 많은 좌절과 부적응, 애로사항이 있었을지 흘린 눈물이 상상이 되질 않는다. 말이 좋아 홍일점이지 고립된 배 위에서 아버지 혹은 큰 오빠뻘 되는 아재들과 생활하는 꽃다운 처녀의 일상은 쉽지 않을 거다. 남성만의, 선임 기술자의 텃세가 분명 없진 않을 거고 그들 역시 유일한 여자 선원이 마뜩잖은 경우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소현은 꿋꿋하게 버티고 잘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뱃멀미는 거의 겪지 않아 태생이 뱃사람이 아닌가 의심되는 수준이고, 아재들과 부루마블과 할리갈리로 소일하며, 화장이 필요 없는 상황에 익숙해지고, 고소공포증을 극복한 라이트 작업도 척척해내며, 자연스레 독서와도 친해졌다. 직급은 3기사, 무늬는 선박 기관사지만 실상은 잡부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 맥가이버에 가깝다.
덤으로 돈 쓸 여건이 안 돼 통장 잔고는 늘어난다. 유일한 그리움은 스벅뿐이다.
나약한 청춘 군상에 대한 비아냥이 많다. 직장에 들어가서도 일이 힘들면 엄마에게 하소연하는 청춘이 있단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 이들도 있고, 전소현 같은 이도 있다.
의사의 길에선 멀어졌을지 몰라도 전소현이 걷는 선박 기관사의 길이 훨씬 희소가치가 있지 않겠나. 희소가치가 다는 아닐지라도 그녀의 경험은 일반인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독보적이다. 이 길로 매진해 여성 기관장이 되든, 아니면 여기서 체득한 경험을 살려 다른 길을 찾든 전소현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 거다. 길이 없다고 주저앉아 있기 보다, 스스로 바다 위에 길을 만들었으니.
앞길이 막막하다고 여기는 청춘 제현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바다위에도 길은 있으니까 - 전소현, 이선우
세상 어디에나 길은 있다.
자동차나 자전거가 달릴 길이 땅에 있고,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갈 길도 있다.
바다위에도 역시 배가 움직일 길이 있다.
그 길들은 원래 정해져있지만
상황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배를 타고 선박기관사의 길을 가고 있는 전소현 작가에게는
원래 이길이 그녀가 원하던 길은 아니었다.
가족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명문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만해도
그녀는 의사가 될 인물이었다.
수재들만 모이는 학교에서 분투를 벌이면서도
늘 하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그녀가 수능을 치를때만해도
그녀는 최고수준의 의대는 아니어도 괜찮은 정도의 의대를 가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와 가족들이 꿈꾸던 그녀의 앞길은 처참히 무너지고
우연히 선택한 대학을 통해 그녀가 앞으로 계속 걸어갈지
아니면 적당한 시기에 그만두게 될지 모를 길을 걷게 된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전소현 저자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여자로서 다소 힘들수 있는
큰 배의 기관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전소현 저자의 이야기를
이선우 저자가 정리해 소개한 에세이다.
이제 스물다섯 무척 젊은 처자가 잠시만 생각해보아도 험한게 뻔한
바다위의 배에서 일을 한다.
적당한 유니폼을 입고 승객들을 접객하는 승무원이 아니라
남들이 들여다보지 않는 배밑바닥의 배관을 만지고 고치는 일을 한다.
어릴 때 부터 무척 예민했던 저자는
직장을 다니는 부모님들의 속도 모르고 매일밤 울어재끼며 부모님들의 밤잠을 뺐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는 제주에 있는 할머니댁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계속 칭얼거리고 울던 그녀가 제주에 도착하자마자부터 방실거렸다거나,
징징거리다가도 바닷가로 나가면 바로 잠들었다는 등
바다를 좋아했다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간증처럼 소개되는데
육지것들은 모르는 바다의 맛을 아는 그녀는 어릴때부터 남달랐던 것 같다.
이 책 바다위에도 길은 있으니까에는
바다위에서 생활을 하는
여자만의 여러 이야기들이 무심한 듯 툭 소개되어있다.
예를 들어 한번 배를 타면 오랜시간 육지에 오르지 못할텐데
여성이라면 한달에 한번 하는 생리 기간에는 어떻게 지내려나,
일하는 시간 외의 시간을 한정된 배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보낼까
이런 소소한 것들이 궁금했는데
딱 그런 소소한 것들이 소개되어있어서 맘에 들었다.
여가를 보내는 이야기와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이야기들 같은 소소한 이야기 속에서
해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때는 침을 꼴깍 삼켰었다.
내용은 예상했던 바와 다르지만^^
배안의 온갖 더러운 것들이 모이는 배관.
그 배관을 책임져야하는 그녀.
더러운 일들을 해결해 내며 괴로웠다가도
흔히 볼수 없는, 배에서만 누릴수 있는 별똥별을 보며 힐링을 하는
그녀의 삶은 감히 내가 도전해볼수는 없지만
또 들여다보는 재미는 쏠쏠한 삶이었다.
모르겠다.
그녀가 앞으로도 쭉 이길을 걸어갈지.
이제 적당히 경험했으니 다른 길을 가게 될지.
하지만 확실한건 배가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바다위를 잘 가고 있듯이
그녀도 보이지 않는 그녀만의 길을 잘 찾아가리라 믿는 다는 것.
그녀의 길을 응원한다.
== 출판사에서 책만 제공받아 읽고 쓴 글입니다 ==
◆ 소개
▷ 바다 위에도 길은 있으니까
▷ 전소현/이선우
▷ 현대지성
▷ 2022년 04월 05일
▷ 308쪽 ∥ 314g ∥ 128*188*15mm
▷ 여성 에세이
◆ 후기
▷내용《中》 편집《中》 추천《中》
이렇게 괜찮은 삶도 있구나. 수능 망쳤다고 인생이 끝은 아니라고 말하는 주인공은 멀리 돌아왔고 그 과정은 매우 어려웠지만 결국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고 말한다. 전교 1등에서 꼴찌까지 무난하게 의대를 진학했다면 몰랐을 세상을 선박기관사가 되어 바다를 누비면서 진짜 자기 세상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공동 저자 이선우는 명문대에 진학하고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을 하면서 경단녀가 되었다고 한다. 어느새 그냥 아줌마가 되어 버린 모습에 전소현 선박기관사를 보며 글이 쓰고 싶어졌다고 말한다. 글을 쓰면서 자신이 잊었던 진짜 꿈과 나를 찾았다고 말한다.
P.029 “대한민국에서 장녀로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딸-딸-아들 집안의 큰딸은 더더욱 그렇다. 21세기가 된 지가 언젠데 세상이 큰딸에게 기대하는 바는 아직도 20세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소현 역시 어려서부터 ‘넌 우리 집안의 기둥이야.’, ‘동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지’부터 시작해서 ‘큰딸은 살림 밑천이야’라는 고릿적 이야기까지 듣고 살았다.
P.079 「무너졌던 자존감을 세워준 바다」 ”배 타고 나가면 기분이 어때? 기관부에서 어떤 일을 하는 거야? 태풍이 오면 어떻게 해? 타이태닉 뭐 이런 느낌이야? 돈 진짜 많이 받는다! 어떻게 취직한 거야?,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배를 타기 시작하면서부터 친구들의 관심은 거의 폭발 수준이었다. 워낙 특이한 직업이라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호기심의 대상이 됐다.“
P.161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는데 그중 남녀의 연애 방식도 포함되는 것 같다. 남자가 배를 타고 육지에서 남는 모양새는 자연스럽지만 반대의 상황은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배 타는 사람과 육지에 남은 사람의 성별이 바뀌는 경우는 애로사항이 훨씬 많다. 어떤 남자가 자기 여자친구가 남자밖에 없는 배에 갇혀 1년 가까이 얼굴도 못 보는 상황을 좋아할 수 있을까. 여성 해기사의 연애는 여러 면에서 남자보다 갑절은 어렵다.“
스물다섯 M 세대의 입에서 아직도 여성에 대한 인식은 20세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은 의아스러웠다. ‘큰딸은 살림 밑천이야’라는 말은 우리 세대에나 듣는 말인데, 70년대 생으로 추정되는 X세대 부모에게서 나왔다는 것은 집안이 원래 그런가 보다. 글을 읽어나가다 보면 「페미니즘」적 성향이 커서 안타까웠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고 말하는 스물다섯에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은 나만 하는 것인가? 여성이 쉽게 전하기 힘든 직업에 도전장을 내고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모습은 진취적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여자니까, 여성이라서라는 단서를 붙이는 것은 두 저자의 생각으로 보인다. 인생에 뚜렷한 목적이 없이 취업만을 생각하는 청년들이 읽어볼 만하겠지만 20대 남성들에게도 이 책이 읽힐지는 의문이다. 남자 간호사나 여자 선박기관사처럼 젠더의 영역에서 자신에게 유리할 직업을 찾는 영감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꿈을 버려야 하는 요즘 세대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긴 한다.
추천하는 독자
-특이한 직업을 찾는 청년 여성
”세상에서 자기만의 바다를 찾아 항해하는 사람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