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인분 생활자>는 90년 대생인 저자의 일인 라이프와 그 라이프를 통해 느낀 개인적인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다.
저자는 취준생, 망해버린 창업, 불안정한 고용, 반복되는 1년짜리 월세살이, 얼마 되지도 않은 월급, 열악한 곳에서 혼자 사는 여성 등 N포 세대가 겪을 수밖에 없는 거의 모든 것을 경험했다.
지방에서 혼자 올라와 서울에 산 지 딱 10년째로 친구와도 살았고, 잘 모르는 사람과도 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혼자 살았는데, 2평짜리 고시원에서부터 4평짜리 다세대주택 원룸, 5평짜리 다가구주택 옥탑방 등에서 살았다.
직방, 다방, 피터팬 같은 유명한 부동산 직거래 앱과 사이트를 틈틈이 접속하고, 4평짜리 집을 구하는 데 영혼까지 다 털리고, 집 안 수리 '만렙'이 되기 위해 기술을 터득하고, 방음이 되지 않아 옆집 사람의 출근 시간이 저자의 모닝콜이 되고, 생계를 위해 N잡러가 되고, 가성비 최고의 DIY 가구를 조립하고, 부동산 실장의 넉살 좋음을 가장한 무례함과 모호한 희롱에 입을 닫아 버리는 등 혼자 산다는 것은 어렵고, 힘들고, 외롭고, 쓸쓸하고 짠함의 연속이었다.
10년 동안 별별 다양한 집에서 살다 보니 별별 일들도 다 겪었는데, 얇은 벽 사이로 이웃 어른의 방귀 소리까지 들릴 때는 분노가 치밀었다가 집 전체를 오롯이 자신의 취향의 공간으로 꾸밀 때는 행복한 집순이가 되기도 했단다.
그렇게 '혼자 산다'는 감각이 점점 뚜렷해지면서 겪은 여러 이야기를 2017년부터 꾸준히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그 글들을 모아 <일 인분 생활자>를 출간하게 되었다.
저자는 돈은 많이 못 벌어도 꾸준히 해외여행을 다니고, 비혼은 아니지만 결혼할 자신은 없고, 한 직장에서 평생 같은 일을 하며 다닌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꼬박꼬박 넣고 있는 적금은 '내 집 마련'이 목표가 아니라, 언제가 갈지도 모를 세계여행을 꿈꾸며 모으는 돈임을 당당히 밝히고 있다.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란 말을 처음 들어봤다.
책 속에서 저자는 지옥고를 두루 거친 20대 주거 현실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p.17)
사람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잠만 자는 공간도, 먹기만 하는 공간도 아니다.
집은 자고 먹고 쉬고 충전하고 노래도 듣고 섹스도 하고 이웃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내 삶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지옥고인 고시원에서는 옆방 남자의 신음소리를 실시간으로 들어야 하고, 해도 들지 않는 눅눅한 반지하에서는 밤인지 아침인지 구분되지 않는 시간을 애인과 함께 맞이해야 한다.
내 돈 내고 사는데도! 여기에 홀로 사는 '여자'라면 또 다른 눈총이 들러붙는다.
(p. 19)
여자 혼자 살면서 겪는 온갖 위험에서 생존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평판까지 신경 써야 할 판이다.
'지옥고'라도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보증금을 마련한 후 보증금에 맞는 집을 구해야 한다.
집 구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p. 25)
허위 매물에 낚이기도 했지만, 기가 막힌 건 애초에 사람이 머물고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자는,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개념이 없는 집들이 대부분이다.
월세를 받기 위해 마구잡이로 지어놓은 '사방이 가려진 좁은 공간'일뿐이었다.
채광과 깔끔한 화장실. 이 두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집은 사치였다.
(p. 26)
집을 구하는 큰 관문을 넘었더니 또 다른 관문이 자리했다.
당장 내 눈앞에 놓인 여러 장의 문서를 보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등기부등본, 건축물대장, 용도, 근저당, 감정가 등 살면서 배워본 적 없는 단어들이 눈앞에서 떠다녔다.
(p.28~29)
마지막 이사라는 관문을 통과하고 나면 인테리어며 가구 구조 등 기를 쓰고 조금이라도 방이 넓어 보이도록 하기 위해 궁리해야 한다.
밖에서 창문을 열지 못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보조키도 설치해야 한다.
도어록 번호 바꾸고 혹시나 집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는 없는지도 훑어야 한다.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때마다 남자 신발을 내놓고 집에 누군가 함께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어쩌면 매일매일이 관문이다.
무엇보다도 1년이라는 계약 기간 뒤 집주인이 터무니없이 보증금과 월세를 올리지는 않을까, 그래서 1년 뒤 이 짓을 또 해야 하는 그런 최악의 관문이 남은 엇은 아닐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성인 혹은 대학생이 되자마자 심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독립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기지만 정작 자립을 위한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은 사회다.
이런 것을 가정에서 하는 교육에만 기대하기엔 문제는 부모도 경험이 적으면 잘 모를 수도 있다는 점이다.
2015년 개정된 기술 가정 교육과정에서는 '자원관리'와 '자립'이라는 파트가 있단다.
시간과 용동 관리, 옷 정이와 보관법, 정리 정돈하는 법, 재활용하는 법, 소비생활, 가정생활에서의 역할과 책임 등이 공통된 필수 교육과정이다.
어쩌면 다른 과목보다 훨씬 일상에서 써먹기 좋은 지식인데, 막상 고교 과정을 공부 중인 아이들은 이런 부분을 소홀히 다룬다.
그렇게 원하는 독립 후 자신의 삶을 오롯이 책임질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중요한 과목인데...
저자의 글을 읽다 보니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부분이 아직도 많다는 걸 느끼게 된다.
집과 관련된 일은 그것이 가사, 기숙, 지식이 되었든 사소한 일이 아니라 생활과 생존의 영역이 될 수 있음을 직시하고 가르쳐야 할 부분이다.
요즘은 결혼 문화도 많이 바뀌고 있다.
여성이 남성의 집으로 편입되지 않는, 여성 역시 주체적일 수 있는 결혼식으로 또한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 아닌, 그저 사랑하는 개인과 개인이 미래를 함께하겠다는 것을 선언하는 결혼식이 점차 확대되고 있단다.
남의 집 사람이 된다거나 사라지는 것이 나이라, 그러 사랑하는 삶과 함께 하겠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자리일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결혼을 하고 싶지만 할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나와 상대에 대한 책임 이외에 져야 할 책임과 역할이 두렵고 싫기 때문이란다.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 또한 지금까지와 다를 바 없는 결혼, 시댁, 제사 등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나의 자식들에게까지 대물림하고픈 생각은 없다.
누군가가 끊어야 한다면 그게 나라도 상관없다.
물론 시끌벅적 난리가 나고 수많은 말들이 오갈 테지만 내가 물러서면 내 아들이, 그리고 결혼하면 며느리가 그 짐을 지어야 될지도 모를 일이다.
결혼은 두 사람을 위해 한 사람이 지워지거나 희생할 필요가 없다.
두 사람 이외의 사람을 위해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희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혼자'라는 것은 꼭 '집에서 나 혼자 산다'은 의미 외에도 혼자 무엇을 해내고 혼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하고 사람들과 약간의 거리를 두는 혼자의 영역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약간의 눈치를 보며 일 인분을 시키고 있을 '일 인분 생활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일 인분 생활자> :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