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종교문화 횡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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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종교문화 횡단기

종교학자와 함께 태안에서 태백까지

리뷰 총점 10.0 (2건)
분야
인문 > 인문학산책
파일정보
EPUB(DRM) 108.65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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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성스러운 한국 답사기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l****i | 2019.05.01 리뷰제목
# 0이 공간에 올린 많은 책 이야기가 그러하듯, 이번 독서 후기 역시, 책 내용보다는 내 이야기를 많이 할지도 모르겠다. 『한국 종교문화 횡단기』는 서울대 최종성 교수님이 쓴 글이고, 나는 종교학을 공부해서다. 03학번 인문대로 입학했다. 02, 03학번은 어문계열과 역사철학계열을 한꺼번에 모집한 저주받은(?) 학생들이었다. 다들 취업이 그나마 잘 될 거라 기대한 영문학과와 중문
리뷰제목

# 0


이 공간에 올린 많은 책 이야기가 그러하듯, 이번 독서 후기 역시, 책 내용보다는 내 이야기를 많이 할지도 모르겠다. 『한국 종교문화 횡단기』는 서울대 최종성 교수님이 쓴 글이고, 나는 종교학을 공부해서다. 03학번 인문대로 입학했다. 02, 03학번은 어문계열과 역사철학계열을 한꺼번에 모집한 저주받은(?) 학생들이었다. 다들 취업이 그나마 잘 될 거라 기대한 영문학과와 중문학과에 지원생이 몰렸다. 인기 없는 종교학이었건만, 나는 종교학 수업이 제일 재밌었다. 취업이야 어찌 될 테고, 나는 정명(正名)을 떠올렸다. 사물의 실제와 명을 같이 한다. 대학은 취업을 위한 중간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학교다. 배우고 싶은 거 배워야지. 그렇게 6학기를 재밌게 다녔다. (1학년이었던 두 학기는, 다른 전공 기웃거리느라 탐색 기간) 지금도 대학 때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을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말한다. 까치에서 나온 월터 캡스의 『현대 종교학 담론』이라고. 물론 내용은 다 잊었다.


# 0.5


종교학이 뭐가 그리 재밌었냐고 묻는다면, 넌 어떻게 숨쉬세요, 라고 되묻고 싶달까. 인간이 곧 종교적 존재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종교를 믿는다. 종교를 믿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조차 민족주의든,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든, 맑시즘이든 뭔가를 믿는다. 세계관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가 누군지, 무엇을 믿는지, 어떤 신념에 따라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를 고민한다면 종교학적 담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너가 얼마나 멋진 인간으로 변했니, 라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답하진 못하겠으나, 확실히 종교학 공부할 때는 행복했고 나날이 더 나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취직한 뒤, 이쪽 담론에 좀처럼 다가가지 못했는데, 『한국 종교문화 횡단기』를 읽으며 많이 정화되었다.


# 1


『한국 종교문화 횡단기』는 서울대 종교학 교수인 최종성 선생님이 안식년을 맞아 한국 이곳저곳을 답사하며 남긴 기록을 묶은 책이다. 대중서, 라고 하기에는 조금 깊이가 있는 책이지만, 여하튼 비전공자도 재밌게 읽을 만하다. 시작도 흥미롭다. 정주영 고 현대회장이 숭의사 초헌관으로 임명받았다는 문서를 우연히 구하고, 어떻게 된 연유인지를 탐색하며 답사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서원을 훑고, 다음 답사지는 저자의 주 관심사인 동학의 무대로 옮겨간다. 동학, 하면 천도교 손병희를 떠올리지만 이 책의 관심사는 천도교가 아니라 천진교다. 3세를 구암 김연국으로 기억하는 천진교. 이쪽의 주요 장소를 걸은 뒤, 배론 성지와 삼척의 산멕이, 정선의 적조암 등을 답사했다.


# 2


흔히 답사기, 하면 조선 궁궐이나 산사이거나 혹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근현대 정치 경제 공간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 소개한 장소에서 보듯, 이 책은 그러한 주목받는 공간을 비껴간다. 이에 관해서는 책에서도 나오지만, 채널예스 인터뷰를 참고해도 좋겠다.


"국토예찬을 떠올릴 만한 명승지를 둘러보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주류적인 전통이나 지배적인 체제에 의해 공식적으로 수용되거나 기록된 종교문화보다는 기록되지 못하거나 감추어질 수밖에 없었던 민속과 민중의 종교문화를 시간이 걸리더라도 발굴해내고 정리해서 학문의 장으로 초대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아왔습니다. 태생적으로 촌놈의 기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신종교를 다루더라도, 창생의 화려함이나 증가일로의 발전모델보다는, 다소 기세가 꺾여서 힘이 부치는 퇴락일로에 있는 종교의 애잔함에 관심이 끌립니다. 왠지 모르게, 시대 정신에 부응하며 창립하거나 부활하는 모습만이 아니라 침체해가고 명멸해가는 종교의 운명도 지켜봐 주고 기록해줘야 한다는 학문적 사명감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제네시스의 화려함만이 아닌 쓰라린 타나토스도 기록해주고 기억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다닌 곳이 모두 임종을 맞은 종교문화라는 말은 아닙니다. 모두가 주목하는 문화재거나 명소는 아니지만 쉬이 잊힐 수 없는 소중한 종교적 삶의 원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나쳐온 사당의 제사, 동학의 잔불, 마을의 천제, 성지와 순례지, 산중의 수행처와 기도터 등은 종교적으로는 나름 중심지였지만 문화적으로는 소외받는 주변지였습니다. 이번 여행기를 통해 저들에게 그 향기와 빛깔에 걸맞은 한국종교의 멤버십을 부여해주고 싶었습니다."



# 3

가유약은 명나라 장수로 조일전쟁 때 한반도로 와서 이땅에 뿌리를 박은 사람이고, 김충선 역시 조일전쟁 때 일본 장수로 참전하여 조선 문물에 이끌려 귀화했다. 조선은 이들을 기억해줬다. 인상적인 이야기다. 한편, 동학이나 초기 천주교는 박해받는 역사인데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주제가 순교, 순도다. 주식, 부동산에 목매는 현대사회에서 이질감이 느껴지는 인물일 법도 한데, 지금도 자신의 신념을 좇는 사람이 있을 테다. 내가 그렇게 살 수는 없겠지만, 저런 사람을 존중해줘야지.


# 4

이 책을 읽고 삼척, 태백 쪽에 가보고 싶어졌다. 과연 언제?


# 5

문장이 감미롭다. 아름답다. 성스럽다. 종교학을 하려면, 역시 진선미만으로는 안 된다. 성스러움도 필요하다.


# 6

드라마 '녹두꽃'이 꽤 인기 있던데, 그 책으로 동학을 향한 관심이 인다면, 이 책으로까지 관심이 이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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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조선 시대에 민중을 위한 두 가지 문화적 창달이 있었다고. 하나는 조선이 개국된 지 50년쯤 지난 1443년에 창제된 훈민정음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의 망국을 50년 앞둔 1860년에 창도된 동학이다. 훈민정음이 사람들에게 어문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었다면, 동학은 사람들 사이에 영적 소통의 길을 열어주었다. (80쪽)


우리 한국인들에게 기도는 각별한 것이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물 한 그릇만 있어도 자식과 가족을 위해 비손하려 하지 않았는가. 단군신화를 생각해보면 우린 ‘기도하는 민족’이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어디 우리만이 기도하는 사람들이랴마는, 우린 인간이 된 뒤에 기도한 것이 아니라 기도한 뒤에 인간이 된 민족의 후예가 아니던가. 주지하다시피 웅녀는 사람이 되고자 늘 염원했고 그것도 어두운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만을 먹어가면서까지 집중적으로 기도한 끝에 인간이 되었다. 우리는 인간존재(human being)라는 지위를 저절로 얻은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인간되기(being human)에 힘쓴 것이다. 결국 인간이 되기 전부터 힘써 기도한 덕분에 비로소 진정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 우리네 신화이고, 우리네 존재의 모델인 것이다. (202쪽)


자장이 옛 성지를 알아보고 그 위에 불교를 열었다면 철수좌는 동학이 갖게 될 미래의 종교적 힘을 예견했고 동학이 세상 밖에서 재기할 수 있도록 그들을 불교의 품에 안았던 것이다. 토착의 소도를 품어 안았던 정암사는 토착의 동학을 품었다가 세상 밖으로 내어준 것이다. 그 속에 종교의 교차가 있고 타협이 있고 변형도 있었을 것이다 (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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