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사유의 시선
최진석
북이십일/2018. 8.13
sanbaram
철학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만든 매우 효율적인 장치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은 철학이 빈곤하다는 말을 한다. 그동안 우리는 철학을 생산한 것이 아니라 주로 수입에 의존하고, 철학을 추상적인 이론으로 간주해 왔기 때문 이라고 말하며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내 놓은 저자는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북경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로 ‘건명원’의 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인간이 그리는 무늬>,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경계에 흐르다> 등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은 2015년 건명원에서 한 5회의 철학 강의를 묶은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철학의 수입국으로 살았다. 수입된 철학 이론을 내면화하거나 자세히 따지는 것을 철학 활동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선진국이니 독립이니, 주인이니 종이니 하는 것은 철학이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들에게는 이데아니, 정신이니, 물질이니, 초인이니, 道니 氣니, 仁이니 하는 것들만 철학이다. 그러다보니 이 땅에서도 주자학을 닮은 것만 철학이라 하고, 동학 같은 자생적 고뇌는 철학으로 치지도 않는 자기비하가 오히려 당당해지는 지경이다.(p.10)”라고 우리의 철학에 대한 관점을 비판하며, 훈고에 갇힌 삶을 창의의 삶으로 비약시키고 싶어서 이 책을 냈다고 한다. 우리는 정말 우리 나름대로의 판을 벌여보는 전략적인 시도를 하고, 어떻게 하면 선도력을 가져볼 수 있을까에 대한 철학적인 높이에서 답해보려는 시도였다고 한다.
“이론이나 학술보다는 ‘진영’의 정치공학이 우선이다. 이렇게 되면 정련된 정책이 집행되지 못할 뿐 아니라 같은 높이에서 진영만 바꾸는 일이 반복되고, 결국 더 높게 오르는 역할의 진보는 더디다.(p.8)” 촛불혁명 이후의 지금도 특별히 다르지 않다고 현실을 분석한다. 나라를 이끌어 가는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의 철학이 빈곤하기 때문에 우리의 철학이 설자리를 잃고 외국에서 수입한 철학에 함몰되어 정신적인 내가 사라진 결과 현재와 같은 혼란과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개탄한다. 경제와 군사, 윤리와 도덕은 한 몸이다. 윤리적 기준이나 이념을 가지고 윤리 이외의 것들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한, 스스로 세상을 좁히는 결과를 가져온다. 여기서 탈피하지 않는 한 우리는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의 독립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철학의 시작은 곧 전면적인 부정이고, 이것은 새로운 세계 생성을 기약하는 일이다. 새로운 생성이란 전략적인 높이에서 자기 주도적 시선으로 세계를 보고 스스로 자신의 나아갈 길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스스로 그 길을 결정하지 못하는 한, 항상 종속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종속적인 한, 우리는 주도권을 잡고 자신의 삶을 꾸리거나 자신이 속한 사회의 새 방향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우선 ‘부정’, 버리는 일이 필요하다.(p.25)”일본을 증오하고 분노만 표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아베의 움직임을 보다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아베의 말과 행동을 통해 일본이 나아가려고 하는 방향을 판단하고, 그 판단 아래에서 우리의 대응 방안을 고민하는 것, 동아시아나 세계정세 속에서 아베 행위의 위치를 점검하고 대응하는 것, 이것들이 중요하다. 아베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욕하고 성토하는 것 말고,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이제는 더 높은 차원의 전략적인 판단과 실질적인 대응을 하는 일이 중요하다.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에 대해 철저한 분석으로 우리의 나아갈 바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레고는 원래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할까?’라는 질문을 붙들고 있었는데, 그 컨설팅 회사의 조언에 따라 기존 질문을 다음과 같은 철학적 질문으로 바꾼다. ‘아이들에게 놀이의 역할은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놀이란 무엇인가?’ 어떤가? 질문이 철학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p.92)” 레고는 이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아이들을 직접 관찰하고 인터뷰하고 따라다니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실을 발견했다. 아이들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즐거움도 좋아하지만, 오래 시간을 투자하여 어려운 기술을 익히고 이를 자랑하는 것에서도 큰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떤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것을 관찰하고 탐구하여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는 것이 철학이라는 것이다.
“선진화란 사유의 상승이 기본 조건인데, 그 해답은 바로 철학에 있다. 철학이란 시대의 흐름을 포착해내는 지성적인 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철학을 토대로 할 때 새로운 ‘장르’의 창조가 가능해짐으로써 ‘선도력’을 갖게 되고 결국 이것이 국가 발전의 기초가 된다. 단순한 지식 습득에서 벗어나 더 높은 차원에서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때 철학은 시작된다.(p.105)” 궁금증과 호기심은 다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자신만의 것이다. 자신에게만 있는 이 궁금증과 호기심이 안에 머물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일, 이것이 질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질문할 때에만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고유한 존재가 자신의 욕망을 발휘하는 형태가 바로 질문이다. 그래서 질문은 미래적이고 개방적일 수밖에 없다. 대답은 우리를 과거에 갇히게 하고, 질문은 미래로 열리게 한다. “질문- 독립적 주체- 궁금증과 호기심- 상상력과 창의성- 시대에 대한 책임성- 관념적 포착- 선도력- 선진국은 이렇게 연결된다.(p.118)” 그러므로 질문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관찰의 능력은 어디서 오는가? 바로 궁금증과 호기심이다. 호기심이 큰 사람은 관찰을 하고, 호기심이 작은 사람은 하지 못한다. 관찰을 유지하는 힘, 그것이 바로 집요함이고 몰입이다. 인생의 승패는 자신을 이 몰입의 단계까지 집요하게 끌고 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좌우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p.187)” 궁금증과 호기심을 발휘하여 진실하게 보고, 거기서 더 나아가 집요한 관찰을 통해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몰입하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아주 높은 단계다. 어떤 대상을 집요하게 관찰할 때, 그로써 대상이 이전과 다르게 보일 때 우리는 생소함으로 깜짝 놀라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때 비로소 대상과 나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며 철학이 탄생한다. 대답은 기능이지만, 질문은 인격이다. 창의성은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튀어나오는 것이다. 인격이라는 토양에서 튀어나온다. 삶의 깊이와 인격적 성숙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는 진보가 어렵다. 경쟁 구도 속으로 들어가는 한, 우리는 경쟁이 벌어지는 판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새로움, 고유함, 선도력은 시도되지 못한다.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경쟁 구도 속에서는 승리자도 패배자도 모두 행복하지 않고 피곤할 따름이다.(p.231)”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일등보다는 일류를 꿈꾸는 사람이다. 일등은 판을 지키는 사람이고, 일류는 새판을 짜는 사람이다. 우리가 따라하고 부러워하는 바로 그 단계다. 무안 국제공항 등 엄청난 예산이 들어간 거대 토목공사 가운데 완공 후에도 별로 사용되지 않은 곳들이 있다. 그런데 어떤 토목공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정치인이나 관료들, 타당성 조사를 긍정적으로 꾸몄던 전문가들 가운데 신분상에 조금이라도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이 있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승진 다 하고, 봉급도 꼬박꼬박 인상되었을 것이다. “엉터리 타당성 조사 결과를 제출했던 전문가들은 지금도 어디선가 또 다른 타당성 조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민감한 책임성은 사라지고 모두들 고착된 체제 위에 얹혀 있는 부표로만 존재한다.(p.245)”고 현실을 개탄한다. 이런 것이 바로 잡혀야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기준이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자신으로부터 형성된 기준이 아니라 외부에 이미 설정되어 있는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닌가?(p.263)” 큰 인간은 외부의 것들과 경쟁하지 않는다. 오직 자기 자신과 경쟁할 뿐이다. 다른 사람보다 더 나아지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부족한지 더 나은지를 따지지 말라. 경쟁에 빠지지 말라. 오직 자신과만 경쟁하라.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나은지만 자세히 살펴라. 독립적이지 못하고 종속적인 사고에 갇힌 사람들은 주로 상황이나 조건을 탓하면서 자기의 책임성이나 자발성을 발휘하는 도전을 유보해버린다. 남 탓으로 돌리는 일도 비슷한 맥락이다.
“흔히 고전이나 경전들을 접하면서 진리에 대한 갈망을 갖는데, 그것은 고전이 가지고 있는 내용을 진리로 받아들여 내면화하는 일만으로는 완성되기 어렵다. 고전에 있는 ‘진리적’인 것들이 당시의 구체적인 세계와 어떤 유기적 연관성 속에서 형성되었는지를 이해한 후,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유기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시대의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p.280)” 결국 지금 자기가 살고 있는 구체적인 세계에서 포착된 자기만의 문제가 자기에게서 먼저 진리로 드러나는 것이 관건이지, 경전에 있는 진리를 묵수하는 것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생각의 결과를 배우는 것이 철학이 아니라,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철학이다.(p.281)” 철학은 무엇을 ‘배우는’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직접 생각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이 해놓은 생각의 결과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가치관뿐 아니라 삶 전체가 종속되며,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국가는 방향성을 상실하고 만다. 철학이란 스스로 삶의 격을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 한마디로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갖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아는 큰 철학자들 누구도 다른 누군가를 닮기 위해서 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시선으로 자기처럼만 산 사람들이다. 노자도 공자도 칸트도 해겔도 모두 ‘자기처럼’ 산 사람들일 뿐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시선으로 세계에 철학적으로 접근한 사람들이다.(p.90)” 이처럼 이미 철학자들이 이루어 놓은 길로만 가지 말고, 사유의 높이를 높여 나만의 길을 찾아갈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자기만의 생각으로 미래를 개척하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 읽기를 권한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