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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님, 저랑 살 만하신가요? : 10년차 집사이자 수의사가 말하는 반려묘와 삶을 공유할 때 살펴야 할 현실 반려 팁
이학범 저
고양이는 자기 집이라는 걸 생각할까. 함께 사는 사람을 날마다 보고 자기 영역이라는 게 있으면 그럴 것 같기도 한데. 난 고양이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다. 만화를 보면 새끼 고양이가 함께 사는 사람을 엄마 아빠라고 하는데 진짜 고양이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겠다. 어쩌면 고양이는 사람과 살면 자신을 고양이가 아닌 사람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들은 말이구나. 사람은 동물과 말을 나눌 수 없지만 마음을 알려고 하면 조금은 알 수 있을 거다. 알려고 애써야 하는구나. 이건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자신한테 말하고 싶다고 하면 어떡하나. 상대가 그런 마음인 걸 알면 놓아주면 좋을 텐데. 사람도 동물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이건 소설인지 산문인지. 산문 같은 느낌도 든다. 자식이 없는 부부는 어느 날 옆집 아이가 길에서 주운 고양이를 기르고 싶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아이는 고양이한테 치비(꼬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나’와 아내는 그 고양이가 옆집에서 가끔 놀러오는 걸 보고 반갑게 여긴다. 방울을 달아서 딸랑이라 하기도 했다. 치비는 ‘나’와 아내 앞에서는 잘 울지 않고 안기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치비는 아내가 만든 잠자리에서 자고 먹을거리도 먹었다. 그런 고양이 손님 조금 반갑겠다. ‘나’와 아내가 사는 셋집 주인은 셋집 사람한테 아이가 없기를 바라고 거기에서 동물을 기를 수 없다고 했다. 그런 말이 아니었다 해도 ‘나’와 아내는 동물을 기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도 옆집에서 놀러오는 치비를 좋아했다. 자꾸 만나다 보니 정이 들었겠지.
치비는 무슨 마음으로 부부 집에 다녔을까. 그 집에서 잠을 자다가도 아침이 오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아이가 나가는 것을 배웅했다. 치비 재미있다. 진짜 집은 아이가 있는 곳이고 옆집은 다른 걸 먹고 다르게 잘 수 있는 곳이라 여겼을지도. 길고양이는 이 집 저 집 다니기도 하던데, 집고양이도 그럴까. 동물도 누가 자신을 좋아하면 그걸 알겠지. 함께 사는 사람한테 보여주는 모습을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이 집에서랑 밖에서 조금 다른 것과 같구나.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닐 듯하다. 어쩌다 보니 그러는 거겠지. 아내가 치비와 절교하겠다고 한 적도 있다. 아내가 치비한테 갯가재 살을 발라서 주었더니 그걸 아주 맛있게 먹었다. 치비는 아내가 갯가재 살을 바르는 걸 기다리지 못하고 아내 손을 물었다. 그것 때문에 아내는 치비한테 절교야 한다. 치비가 그 말 알아들었을까. 아내가 그런 말 했지만 그 뒤에도 치비와 잘 지냈다.
주인 집 할아버지가 죽고 할머니는 요양원에 들어가서 곧 집을 떠나야 했다. ‘나’와 아내는 치비가 또 놀러올 수 있게 가까운 곳에 방을 구하려 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일이 일어난다. 치비가 죽었다. 차에 치여 죽었다는데 정말 그랬을까. ‘나’와 아내가 치비 무덤에 인사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집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자기네 집 고양이를 옆집 사람이 좋아한 게 싫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옆집에서 다른 고양이를 기르게 되는데, 그때는 옆집으로 가는 곳을 철망으로 막았다. 자기 집 고양이가 옆집에 간 거 싫었던 거 맞는가 보다. 어쩐지 그런 마음 아쉽다. 옆집 사람이 자기 집 고양이를 예뻐했다면 그걸 기쁘게 여길 수도 있을 텐데. ‘나’와 아내는 오랫동안 치비를 생각한다. 자기 집 고양이도 아니었는데 그러다니. ‘나’와 아내는 치비를 자식처럼 여긴 거기도 할까. 그럴 수도 있겠지.
‘나’와 아내는 나중에 다른 고양이와 살게 된다. 그건 치비가 찾아와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고양이는 오래 함께 살았다 한다. 어쩐지 지금은 저세상에 갔을 듯하다. 그때는 치비가 죽었다는 걸 알았을 때보다 더 슬펐겠지. 아니 슬픔은 비슷했을까. 늘 그런 건 아니겠지만 동물은 사람보다 먼저 떠난다. 그걸 생각하면 슬프지만, 함께 살 때 동물이 사람한테 주는 게 더 많을 거다.
희선
고양이가 찾아오는 공간은 늘 설렘이다. 고양이는 도도하고 까칠하며 '츤데레'한 면도 있어서 아무 집이나 방문하지 않기에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키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고양이 손님’이라는 말만 들어도 관심이 간다. 게다가 표지의 고양이가 ‘나 여기 있어요, 나 좀 쳐다봐요’라고 말하는 듯한 포즈를 짓고 있으니 고양이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손이 안 갈 수 없다!
<고양이 손님>의 저자는 남자 작가이셔서 문체가 담담하다. 고양이가 오고 가는 일에도 무덤덤한 느낌이랄까. 그래도 작가가 부인이 하는 말을 옮겨 적은 부분에는 고양이에 대해 부인과 동일한 감정인 기다림, 반가움, 사랑스러움, 감사, 토라짐, 질투 등이 살포시 느껴진다.
작가 부부를 찾아오는 고양이 치바는 손님으로 와서 작가 부부와 친해진 후 안방에서 자고 갈 정도가 되어도 왔다 간다 울음소리를 내지 않는다. 아무리 친해져도 난 손님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니 치바를 맞이하는 작가 부부가 토라질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바를 끝까지 미워할 수 없으니 바로 고양이가 가진 매력이 아닐까 싶다.
치바는 손님으로 와서 정만 주고 저세상으로 떠나버렸다. 실제로 키우지 않더라도 자주 방문하던 고양이의 죽음은 고양이 주인과 비슷한 슬픔을 느끼지만 드러내어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책을 통해 간접경험하였다. 나라도 내가 키우던 고양이가 다른 사람에게 더 친근함을 표시하고 내가 모르는 추억을 쌓았다면 질투가 났을 테니까. 물론 치바를 손님으로 환영했던 작가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크지만.
읽는 내내 고양이와 밀당하는 재밌는 모습이 눈에 그려져 나도 고양이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옆집 사내아이로 인해 '치비'라는 이름을 갖게된 길고양이. 번개골목의 그 길고양이에게 분명 주인이 생겼지만 그 고양이가 우리집에 오면 고양이는 어느새 '딸랑이'가 된다. '나 이고양이 키울거야' 라고 말하는 옆집 사내아이의 목소리를 들었을때에는 몰랐던, 시간이 지날 수록 치비가 옆집 아이의 소유가 된것이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치비는 자기 맘대로 내집에 들락거리며 목에 걸어둔 방울 소리를 낸다.
아내는 조금씩 조금씩 '치비'를 사랑하게 된다.
옆집의 고양이가 되었지만 '치비'는 아내의 고양이 인냥. 어느날 아내를 알아보는 것만 같은 '치비'가 얼마나 예쁘던지.
주인집 할머니는 애완동물을 키우는걸 금지시켰지만 그리고 고냥이가 하루아침에 옆집아이의 소유가 되었지만, '치비'는 인간이 정한 경계에 관심이 없다. 이집 저집을 다니며 유혹을 발산하니 아내 역시도 '치비'에게 정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에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그린 도서들을 많이 본 것 같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본 적이 없기에 그 마음을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내가 강아지를 애정하는 맘과 같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책 <고양이 손님>은 큰 사건을 그리기 보다는 서정적으로 예쁜 동네를 묘사하고 고양이의 무관심한듯 자유로운 영역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양이의 영역은 지극히 인간의 규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그대로 '지맘대로'이다.
지금도 내 귀에는 '치비'의 방울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아내가 '치비'에게 가지는 마음을 보면서 고양이 한마리가 주는 기쁨과 행복 그리고 이별하게 되면서 겪는 서운함까지 함께 보았다.
손님처럼 왔다가 손님처럼 가버리는 '치비' 이야기 였다.
수필 같은 소설입니다.
<고양이 손님>을 읽노라면 좁은 골목으로 이어진 동네 풍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마치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손님이 되어 주인공의 집을 찾아가는 기분이 듭니다.
우리가 세를 얻은 거처는 기와담장과 판자 담으로 둘러싸인 넓은 부지 안의 별채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남편인 '나'와 아내를 뜻합니다.
판자 담에 나무로 짠 쪽문이 있어서 집주인에겐 뒷문, 셋집 거주자에겐 출입문으로 쓰였습니다.
옹이구멍은 그 키 낮은 쪽문 옆에 뚫려 있는, 어느 누구에게도 들킬 일 없는 눈(目) 모양입니다.
옆집은 거대한 느티나무의 무성한 가지로 지붕이 덮여 있습니다.
골목길은 그 옆집을 지나서 왼편으로 옆집 기와 담장이 삐죽 튀어나오고 다시 오른편으로 약간 예각을 그리며 꺾어져 있습니다.
그 꺾어지는 방식이 몹시 날카로워 보여 흡사 번개 도안과 비슷하여, 우리는 장난삼아 번개골목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어느날 길을 잃고 번개골목에서 헤매고 있는 새끼고양이를 느티나무가 있는 옆집의 다섯 살 남짓한 사내아이가 데려다 키우게 됩니다.
- 나, 이 고양이 기를 거야.
라는 또릿또릿한 사내아이의 목소리가 담장 너머에서 들렸을 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가 기회를 놓친 순간이었다고 말합니다.
옆집 소유가 된 뒤로 새끼고양이는 빨간 목걸이를 차고 방울 소리를 내며 곧잘 우리 별채의 뜰에 나타났습니다.
고양이 이름은 치비라고 했습니다.
-치비!
라고 부르는 사내아이의 낭랑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소년의 발소리에 딸랑딸랑 작은 방울 소리가 휘감겨 들렸습니다.
치비는 하얀 바탕에 연갈색이 서린 먹빛의 동글동글한 반점 몇 개가 들어간 자그마한 암컷 고양이였습니다.
우리의 삶 속으로 슬며시 들어온 고양이 치비.
평범한 일상이 고양이 치비를 통해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아내는 치비가 고양이 모습을 하고 있는 마음 잘 통하는 친구 같다고 말합니다.
물론 치비가 아내의 손바닥을 깊숙이 물어뜯는 바람에 절교했던 때도 있었지만 아내는 치비를 '내 고양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대상이든 마음에 들어오면 그 마음은 온전히 내 것이 됩니다. 그런데 종종 마음은 그 대상이 내 것인듯 착각합니다.
왔다가 가는 손님, 고양이 치비를 통해서 그 마음을 골목길 풍경처럼 바라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잔잔한 일렁임, 낭랑한 방울 소리 같은 소설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게 되었다. 고양이를 사실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제목이 좀 신선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정말 고양이가 나타나는 것인지 손님이면 주인이 따로 있는건가 싶기도 하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소제목은 다 한자로 1부터 28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부부가 고양이를 손님으로 맞이하는 내용인데, 옆집에 주인이 있는 고양이임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몰래 몰래 찾아오는 손님이었다. 그 집에서도 처음에는 고양이가 찾아오는 것에 대해 좀 신기해했다가도 어느 순간 적응하고는 오히려 자리를 마련해준다. 주인공부부 중 아내가 치비라는 이름을 고양이에게 지어주고는 올 때마다 기록을 한다. 그렇게 고양이는 자주 들락하면서 제집마냥 자고 가기도 하고 머무르다가 사라지곤 했다. 이런 장면들에서 나는 과연 주인공부부였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 고양이가 몰래 찾아오는 것도 사실 좀 무섭기도 하다. 사람을 따르는 고양이는 본 적이 있지만 좀 난감해었다. 너무 따라와서 집에 데려가기도 그렇고 고양이를 무서워해서 사실 만지기도 좀 꺼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부부는 첨 대하는 것임에도 시간이 차츰 지나면서 익숙해진건지 그 고양이 한 마리만 드나들 수 있는 입구를 만들고 치비를 위한 음식과 공간을 마련해준다는 것에 참 인정이 많은 부부임을 알게 되었다.
결국 치비라는 고양이의 행방이 나중에 묘연해지고 결과가 신기하게 끝이 난 소설이다. 아마 열린 결말을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또 한 번 펼치게 해주는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소설 속 묘사가 너무 잘 되어 있어서 빠져들기도 하고, 뭔가 소설같지 않은 오히려 에세이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생생한 느낌이 들면서도 실제로 있음직한 일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책을 통해 또 한 번 힐링시간을 가져서 좋았고, 독자로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마치 내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 책이라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읽어보면서 내용을 곱씹어서 살펴보고 싶어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