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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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시집

윤동주가 사랑한 시인,오감도와 날개 그리고 권태

리뷰 총점 8.6 (3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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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 > 시/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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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마음 속 큰 돌 하나 평점7점 | s*************k | 2022.06.23 리뷰제목
<이런 시> - 이상 역사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내여놓고 보니 도모지 어데서 인가 본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것을 메고 나가드니 어데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길 가드라.   이상은 경성제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에서 건설기사로 일한 적이 있다. 아마 그때의 경험을 시로 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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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 - 이상

역사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내여놓고 보니 도모지 어데서 인가 본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것을 메고 나가드니 어데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길 가드라.

 

이상은 경성제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에서 건설기사로 일한 적이 있다. 아마 그때의 경험을 시로 쓴 것이 아닐까 한다. 공사를 하느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이 나와 땅에 꺼내어 놓았다. 그런데 그 돌이 어디선가 본듯하다.

어제, 수행평가로 연시조를 패러디해 창작하는 과제를 냈다. 글제는 정선의 사계.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즐기면서 그 안에 평화로운 마음, 자기 고장을 아끼는 마음을 조금은 느끼길 바라는 과제. 그러나 이따위 형식만 번드르르한 수행평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수행평가, 진심과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수행평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담긴 작품이 하나 제출되었다. 우아미를 주로 하는 평시조의 형식에 골계미의 내용을 담아낸 작품이었다. 몇 번이나 심화국어 수행평가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각종 서류-평가계획서, 수행평가 평가기준 등-의 외피를 둘렀지만 결국 생활기록부 기록을 위한 그럴 듯한 허장성세임을 간파한 녀석의 말에 변명을 할 수가 없었다. 쿨한 척, 나도 이렇게 헐렁하게 수행평가를 하는 것은 이렇게 앞뒤가 다른 교육 제도에 대한 소심한 반항이다. 너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카톡을 보냈다. 함께 웃었지만, 마음은 씁쓸했다. 어제 그 글을 본 이후로 마음에 문진 같은 죽직한 무언가가 얹혀진 느낌이었다. 분명, 이상의 마음 속에도 문진 같은 그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들여다본 적 없으니 자연히 본 적 없었을 그 돌을 보며 어디선가 본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어디서 보았나 곰곰이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목도들이 그 돌을 옮기는 것을 무심히 지켜본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다가 퍼뜩 정신이 든다. ‘! 저 돌을 어데로 가져갔나?’

뛰어나가 확인해보니 자칫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 있는 큰길 가더라는 확인. 그 다음이야 다시 목도들을 불러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하든, 아니면 돌을 잘게 부수라고 하든 지시를 했을 것이다.

퍼뜩 생각이 든다. 타인에 의해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은 아프다. 그리고 그 순간은 무거운 돌이 되어 내 마음을 누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밖으로 꺼내었다고 해도 아무렇게 방치해두면 제멋대로 구르다가 누군가 다칠 지도 모른다. 그게 내가 될 수도 있다.

원여고에서의 같은 일들을 떠올려 본다. 과연 이 과제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울리는 바가 없었는가.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게 하고 감동을 받게 하는 일이 없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달랐을 뿐. 전에는 각각의 노트에 쓰인 글들을 며칠이 걸려도 정성스레 읽으며 그에 대한 진솔한 답변으로 예의를 다했으나, 지금은 그저 확인한 하거나 짧은 한 문장으로 읽었다는 표시만 냈으니 어떻게 글을 통해 서로 소통했다고 할 수가 있었을까. 역시, 소통을 가장한 과제였다는 자평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나에게는 땅을 파다가 끄집어내진 커다란 돌이었을 것이다.

1학기가 저물어간다. 하지만 방학을 지내고 나면 2학기라는 새로운 기회가 또 찾아온다. 1학기에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글로 잘 구성해서 아이들의 생활기록부에 잘 갈무리해주는 것이, 아마 나에게는 큰길에 내놓은 돌을 잘게 부수어 더 이상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만드는 일이라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글을 써놓고 돌아보니, 나지막한 감탄사가 아니었을까를 상상한다. 빨리빨리 공사를 진행해야 되는데 웬 돌이야? 이런 씨....

 
7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7 댓글 0
종이책 다시 한 번, 이상의 날개를... 평점10점 | m****9 | 2017.12.14 리뷰제목
언제부터였을까? 시를 잊고 살았다. 꽤 오래된 것 같다. 앞으로도 시를 잊지 않고 살겠다고 그 누구한테도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약속할 수가 없다. 나란 인간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인간이니까.  그래도 잊을 수 없는 세 시인이 있다. 백석과 이상과 윤동주. 왜 그들을 가슴속에서 잊지 못해하는 것일까? 그들 이전에도 시인은 있었을 것이다. 그들 이후에도 시인은 있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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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시를 잊고 살았다. 꽤 오래된 것 같다.

앞으로도 시를 잊지 않고 살겠다고 그 누구한테도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약속할 수가 없다. 나란 인간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인간이니까.

 

그래도 잊을 수 없는 세 시인이 있다. 백석과 이상과 윤동주.

왜 그들을 가슴속에서 잊지 못해하는 것일까? 그들 이전에도 시인은 있었을 것이다. 그들 이후에도 시인은 있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들 세 명의 트로이카를 잊지 못하고 머리를 조아리길 주저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이 단명했다는 것과 고독을 숙명처럼 안고 그것을 노래했기 때문은 아닐까? 백석은 몰라도 이상과 윤동주는 그랬다.

 

이상의 시를 언제 한 번 읽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을 기억한들 뭣하겠는가? 너무 난해해 단 한 줄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것을.

 

하긴 남의 시를 이해하려 한다는 건 기실 언어도단인지도 모른다. 이상의 시들은 여간해서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나도 그런 작가의 글은 독자로서 읽어줄 수 없노라고 작파했을 것이다. 지금도 누구라도 겉멋 든 작가가 있으면 누구기에 독자에게 수작질이냐? 독자를 무엇으로 보느냐? 결국 독자로서 할 수 있는 복수라는 건 그 작가의 작품을 읽어주지 않는 것이 고작이다. 이상의 시절에도 그랬을까 

 

지금이야 칭송을 받지만 한 자도 읽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글에 초야에 묻힌 독자는 침을 뱉었을지 모를 일이다. 더구나 그 시대의 문맹률을 생각한다면 이상은 더 고독했을지도 모른다. 누구 하나 공감 해줄 사람 없이 아픈 폐를 부여잡고 그냥 자기 멋대로 글을 쓰지 않았을까 

 

또 모를 일이다. 문맹률이 낮았으니 진짜 시를 읽을 줄 아는 사람만이 이상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가 글을 쓰면 당대의 문단과 문학잡지가 들썩했다. 독자는 그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앞에서는 욕을 할지 몰라도 결국 작가에게 무릎 꿇고 마는 존재. 다는 아닐지언정 누군가는 그 앞에 무릎 꿇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나 역시 이상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말았다. 특히 그의 소설 날개. 시는 너무 어려웠지만 이 교묘한 소설은 그렇지가 않았다.

 

이 소설을 다시 읽다니! 처음 읽었을 때는 20대 중반 무렵이었던 것 같다. 도무지 뭐라 표현할 수가 없다. 마치 뽕이라도 한 대 맞고 쓴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고 서야 어떻게 현실에 발을 내리길 한사코 거부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쓸 수 있단 말인가. 다시 읽은 지금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는 왜 아내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가? 왜 저항하지 않고, 화 내지 않으며,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뛰지 않는가? 그래서 주인공이고, 이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무 평범해지는 것 아닌가? 필시 이 작품의 작중화자 는 이상 자신이었을 것 같다. 그가 한때 기생과 동거를 했다지 않은가? 그때를 회상하며 에피소드를 만들어 쓰지 않았을까? 그러리만큼 문체와 묘사의 생경함과 생생함이란...

 

지금도 의문인건, 그리도 똑똑했던 그가 왜 한낱 기생과 동거를 했느냐는 거다. 그리도 나긋나긋했을 금홍이 좋았더란 말인가? 아니면 자신이 얼마 못 살 거라는 걸 알고 누구한테라도 자신을 던져버릴 생각을 했을까? 아니면 예술가의 치기 같은 거였을까? 금홍은 어떤 여자였을까? 비록 몸은 팔아도 그 누구에게도 마음 주지 않는 콧대 높은 기생이었을까?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 이상을 만나고 사랑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너무 뻔한 스토리 아닌가? 그런데 이 소설을 보면 왠지 금홍은 흔하디흔한 작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그녀가 폐병쟁이 이상을 만난 건 행운인 동시에 불행이었을 것이다. 이상은 건강했다면 금홍을 사랑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당대 최고의 시인과 살았다면 훗날 뭐 하나라도 남지 않을까?

 

이 작품에서 내가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건 아내를 연구했다는 것과 종잇장만 하게 그의 방에 들어선 햇빛이다. 왜 아내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고 하지 않고 연구했다고 했을까? 종잇장만 하게 자신의 방을 비춘 햇빛은 아픈 에게 희망 보다는 가망 없는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아 쓸쓸하다. 차라리 아픈 사람에게 외로움이나 불안 같은 건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뭔지도 모르는 삶을 하릴없는 연구나 하며, 남들은 뻔히 아는 것을 자신은 모르며 삶을 추적하다 어느 날 날개가 돋아나 이 세상에서 날아가 버리면 그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이상은 다음 생에선 새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다음 생이 있다면 난 절대로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새로 태어나면 좋겠다고 몇 번을 생각했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는. 죽을 때가되면 스스로 행방불명이 돼서 자기만 아는 곳에서 생을 마치는. 그러기 위해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문체 자체로만은 얼마나 좋은가. 얼마나 희망적인가.

현실은 언제나 작품속의 처럼 모호하고, 모든 것이 혼재되어 있다. 그런 세상을 날아가 보는 것. 누구나 한 번쯤 꿈꿔 보지 않았을까?

 

어찌 보면 문학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학이나 화학처럼 뭐하나 딱 떨어지는 것이 없으며, 이것 같으면 저것 같고 저것 같으면 이것인 것 같은 그 모호함. 알 수 없음. 그 알 수 없음의 자유를 유영하는 뭐 그런 어떤 것.

 

문학이 희망을 말한다는 건 거짓인지도 모른다. 문학은 거짓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어쨌든 살라고, 살아 보라고 말하는 뭔가의 알 수 없는 코드로 된 텍스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생겨 먹은 문학을 사랑하고, 그렇게 생겨 먹은 작가를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고독한 이상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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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구매 이상의 모든 시와 글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w******n | 2019.03.02 리뷰제목
이상의 모든 시와 글을 읽을 수 있는 책이어서 일단 너무 좋았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분인데, 이 분의 글은 너무도 독특하고 어렵지만서도 계속 마음에 남게 되는 것 같아요. 특히나 가장 좋아하는 '날개' 와 '이런 시' 를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계속 담아둘 수 있어서 너무너무 좋았네요. 읽으면서 너무 어렵고 해설이나 해석이 필요한 부분이 많지만 이 분의 글을 읽을 수 있
리뷰제목
이상의 모든 시와 글을 읽을 수 있는 책이어서 일단 너무 좋았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분인데, 이 분의 글은 너무도 독특하고 어렵지만서도 계속 마음에 남게 되는 것 같아요. 특히나 가장 좋아하는 '날개' 와 '이런 시' 를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계속 담아둘 수 있어서 너무너무 좋았네요. 읽으면서 너무 어렵고 해설이나 해석이 필요한 부분이 많지만 이 분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영광이고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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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이상시집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y*******n | 2018.07.22 리뷰제목
이상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는 시인, 작가. 가끔, 그 시절의 시인들이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이상은 난해해보이는 시만큼이나 매력적이다.어떨 때는 서정시 같은데, 어떨 때는 미로같고, 어떨 때는 매우 현대적인 느낌도 든다.이상의 시는 사실 따라 쓰고, 다이어리 한쪽에 적어두고 싶은 시는 없다.그러나 삶에 묘한 환기를 불러 일으킨다.책 상세설명에 나온 문구처럼, 수학도 이상을
리뷰제목

이상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는 시인, 작가. 

가끔, 그 시절의 시인들이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상은 난해해보이는 시만큼이나 매력적이다.

어떨 때는 서정시 같은데, 어떨 때는 미로같고, 어떨 때는 매우 현대적인 느낌도 든다.

이상의 시는 사실 따라 쓰고, 다이어리 한쪽에 적어두고 싶은 시는 없다.

그러나 삶에 묘한 환기를 불러 일으킨다.


책 상세설명에 나온 문구처럼, 

수학도 이상을 만나 시가 된다. 과학도 건축도, ....

참 신기하다.

삶을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세상을 이런 각도로 설명할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언젠가 이상의 시를 활용한 활동을 해보고 싶은데,

아직은 내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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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근대사회에서 탈근대를 꿈꾼 이상주의자-이상 시집 평점10점 | o*****s | 2018.03.06 리뷰제목
근대사회에서 탈근대를 꿈꾼 이상주의자- 이상 시집을 읽고       ‘시의 변이’라는 말에는 시는 변화하는 양식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변이(變異)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범위 내에서 모양이나 성질이 달라짐’을 의미하는데, 시의 변이를 이에 대입한다면 우선 무엇으로부터 시의 변이가 이루어지는지를 밝혀야 한다. 한국시의 중심에 서 있는 이상(李箱) 시의 경우, 1930년
리뷰제목

 

근대사회에서 탈근대를 꿈꾼 이상주의자

- 이상 시집을 읽고 

 

 

 

 

 

시의 변이라는 말에는 시는 변화하는 양식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변이(變異)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범위 내에서 모양이나 성질이 달라짐을 의미하는데, 시의 변이를 이에 대입한다면 우선 무엇으로부터 시의 변이가 이루어지는지를 밝혀야 한다. 한국시의 중심에 서 있는 이상(李箱) 시의 경우, 1930년대의 이상 시와 이전 시대에 발표된 시들과의 관계를 통해 변이의 여부가 밝혀질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시의 변이를 이야기하려면 무엇보다 변이의 기준을 먼저 설정해야 한다. 시의 변이를 규정짓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귀납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시의 변이는 어떤 진리를 내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돌려 말하면 시의 변이는 시와 관련된 수많은 현상들이 집적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1920년대 근대시의 대척점에 이상 시가 있다면, 그것은 이상 시에 함유된 시적 맥락이 전대의 시 양식과는 다른 (의식적) 지향성을 지니고 있어서이다. 시의 변이는 바로 이러한 시적 의식의 변이라는 맥락 속에서 귀납적으로 도출되어야 한다. 이상의 오감도 제1라는 작품을 통해 논의를 진전시켜 보자.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1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상의 오감도조감도(鳥瞰圖)’의 의도적 오기(誤記)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지만, 오감도연작시를 보면 이상이 의도적으로 근대시의 조감에 들어가지 않는 새로운 시를 쓰려고 했다는 점만은 분명한 듯싶다. 당대의 독자들에게 정신병자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도 그는 근대시의 범주를 벗어나는 ()근대시의 세계로 나아가려 했다. 이상의 이러한 의식은 오감도 제1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이 시는 달리기 시작하면 막혀버리고, 멈추면 뚫려버리는 이상한 골목에 내던져진 아이들의 공포를 담고 있다. 무서운 아이와 무서워하는 아이로 구성된 열세 명의 아이들은 달리면 닫히고, 멈추면 열리는 이상한 골목을 끊임없이 내달리고 있다. 그들은 골목의 너머를 지향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역설적으로 골목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다시 말해 골목 밖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달리는 척하는 것일까 

 

이상은 골목의 공포(혹은 놀이?)에 온몸을 내맡긴 아이들의 정신으로부터 전대의 근대시에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시의 세계를 이끌어내고 있다. 아이들의 골목은 근대의 조감도로는 해석할 수 없는 미로, 곧 판타지의 공간이다. 골목은 근대세계의 너머에 있고, 이성의 너머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 판타지의 세계이다. 그러니 거기에서는 달리면 골목이 열리고, 멈추면 골목이 닫히는 역설의 세계가 거울 속에 비친 상()처럼 연속해서 뻗어 있다. 이상한 골목을 질주하는 아이들의 공포가 즐거운 놀이로 변주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거니와, 어찌 보면 이러한 시적 놀이의 정신이 이상 시의 변이를 예증하는 단서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한국시는 이상 시에 이르러 그때까지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정신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가 만든 언어의 세계는 아이들의 놀이에 나타나는 판타지를 변주한 세계였으며, 그것은 그만큼 그가 당대의 이성적 논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시라는 양식에 접근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상의 또 다른 시 詩第十五號를 참조한다면, “거울없는室內에서 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떨고있”(詩第十五號)는 이상의 시적 주체는 근대의 공포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는 존재를 족쇄처럼 껴안고 있다. 그는 나를거울에서解放하려고거울 속으로 몰래 들어가지만, “그러나거울속의나는沈鬱한얼굴로동시에꼭들어오는 상황에 곧바로 직면한다. 현실의 나는 거울 속의 나 때문에 거울 속()에 갇혀 있고, 거울 속의 나는 현실의 나 때문에 거울 밖()에 갇혀 있다. 거울 속의 나와 현실의 나는 서로를 가두고 있으면서도, 서로에게서 해방되려는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다. 골목의 너머는 골목의 안쪽에 있다. 거울 속의 세계는 거울 밖에 있다. 그러니 거울 속으로 들어가려면 거울 밖으로 나가야 하고, 골목 밖으로 나가려면 골목의 안쪽으로 더욱더 들어가야 한다.

 

근대를 향한 이상의 공포가 발현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는데, 1930년대 이상 시는 이러한 역설의 주체를 내세움으로써 한국시의 새로운 변이를 이끌어낸 셈이다. ‘변이라는 말에 내포된바 그대로, 시의 변이는 곧 시의 의미의 확산이라는 맥락과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이전까지는 시로 인정되지 않던 내용(=형식)이 시로 인정되는 순간, 시는 변이의 과정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당대인들이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시()시의 논리로 끊임없이 변이한다. 이상 시는 시의 변이에 함유된 이러한 맥락을 예시하고 있는바, 그의 시에서 우리는 당대의 일반적 정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 새로운 정신의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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