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현대문학사의 세계문학 단편선 중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들을 읽었는데 한 작가의 단편들을 집중해서 읽어나가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러디어드 키플링의 단편들을 읽어보기로 했는데 이 책도 굉장히 매력적이네요. 작가가 나고 자란 대영제국의 식민지 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어둡고 기괴한 분위기의 초기작들과,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발표한 인간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다양한 성격의 중, 후기의 작품들이 실려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키플링의 작품들은 일단 풍부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인간심리나 자연의 묘사에도 뛰어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왕이 되려 한 남자’가 가장 인상에 남고, 그 외에도 뛰어난 작품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서 많은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을 이야기할 때면 [정글북]을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정글북]이라는 만화를 자주 보고나 동화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도 나는 그곳의 배경이 아프리카인 줄 알았다. 나중에서야 이 작품의 저자가 키플링이라는 사람이고, 그가 성장 시절 인도에서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인도에서 자랐지만, 그에게 인도는 영원히 이해가 되지 않는 숙제와 같은 나라일 것이다. 힌두교의 수많은 신들, 당시에 구석구석 남아있는 인신 제사와 같은 끔찍한 풍습들, 영국인과 인도인의 반목으로 계속되는 암살과 학살... 키플링의 단편집을 읽다 보면 그가 느꼈을 혼돈과 공포가 그대로 소설 속에 담겨 있는 것을 느낀다.
이 소설집에는 키플링의 25편의 단편집이 실려 있다. 시기별로 실려 있는데 주로 초기작에는 인도에서 느꼈을 혼돈과 공포가 그대로 담겨 있다. 초기작인 [백 가지 슬픔의 문]에서는 '풍칭'이라는 인도 노인의 아편굴에서 자신의 삶을 잃어가는 한 백인 남자의 독백이 그려져 있다. [무서운 밤의 도시]에서는 마치 사람을 빨아들이는 듯한 인도의 뒷골목의 혼돈과 공포를 담고 있다.
초기 작품 중에서 가장 인상이 남은 소설은 [모로비 주크스의 기이한 사건]이라는 작품이다. 마치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를 연상시키듯 한 영국인이 모래 구덩이 속으로 빠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곳은 전염병에 걸려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인도인들을 버려두는 구덩이였다. 이 소설은 그 구덩이에서 벌어진 괴이하고 공포스러운 일들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초기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을 보여주는 소설은 [짐승의 표시]라는 책이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술김에 인도의 신을 조롱했다가 한 괴기한 문등 병자에게 저주를 받아 점점 짐승으로 변해가는 괴기한 과정을 다루고 있다. 얼마 전 읽었던 댄 스미스의 [칼리의 노래]를 연상시킬 만큼 인도의 신들에 대한 공포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의 역자는 이 소설을 해석하면서 키플링의 소설이 단지 인도의 야만성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야만성까지 동시에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키플링의 중기나 후기의 소설로 가면 배경이 인도에서 영국이나 다른 지역으로 바뀐다. 또한 해석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다루는 소설들이 아닌, 남녀 간의 사랑이나 동성 간의 우정 등을 주제로 한 소설들이 등장한다. 그 대표적인 소설이 [그린하우 언덕의 추억]이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인도에 파병된 영국인 병사가 탈영한 현지인 병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영국에서의 첫사랑 이야기를 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매우 낭만적인 분위기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 내면의 광기와 사랑의 충돌을 그리고 있는 매우 깊이 있는 소설이다. 읽는 내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연상되기도 했다. 키플링의 소설을 좋아하던 헤밍웨이는 이 소설을 읽고 [여자 없는 남자들]이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에 대해서 영감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감동 있게 읽은 소설은 이 단편집의 대표작이기도 한 [왕이 되려 한 남자]이다. 이 소설은 마치 허황된 꿈을 좇는 것 같은 두 명의 남자가 아프가니스탄의 북쪽에 있는 카피리스탄이란 나라에서 왕이 되기 위한 꿈을 까지고 여행하는 모험소설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둘은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소총 20정을 가지고 카피리스탄으로 가서 신(神) 행사를 하면서 자신의 군대를 만들고 왕이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를 기묘하게 패러디 하는 부분도 있고, 제국주의의 야망을 비꼬는듯한 내용도 담긴, 여러 가지 상징과 비유가 담기 아주 기묘한 소설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을 받았다. 알고 보니 오래전에 숀 코넬리 주연한 [왕이 되려 던 남자(원제: The man who would be king)]의 원작이었다. 어린 시절에 이 영화를 보고 이런 모험적인 상황을 무척 동경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소설은 끝은 끝없는 욕심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조금은 허망한 결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키플링을 제국주의자이며 동양문화에 대한 색안경을 가진 작가로 본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린 나이에 자신이 이해할 수 인도 문화와 힌두교 종교의식에 접했을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마 이것이 작가의 내면에 해석할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남아서 그의 소설 세계를 지배했을 거라는 생각도 해 본다. 이 책의 역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잠시 가치판단을 중지하고 선입관을 버리고 읽는다면 무척 훌륭한 문학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정글북의 작가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의 단편집이 출간되었다.
사실 키플링의 작품은 정글북밖에 읽지 못해서 궁금했는데, 그의 단편들을 이렇게 접하게 되니 좋았다.
인도에서 태어난 작가의 경험덕인지 그의 작품에는 왠지 모를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배경과 이야기들이 있는데, 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속에서 펼쳐지는 풍부한 이야기거리들이 읽는 재미가 있고, 쉽게 접하지 못한 작가의 단편들이라 더 아껴서 읽은 것 같다.
러디어드 키플링의 단편들 모두 기이했는데 환상성은 작품을 극적인 긴장감으로 유지시키다 마지막에 폭발한다. 뚜벅뚜벅 발자국 소리가 나를 쫓아와 마음 졸이다가 뒤돌아보니 괴물이라고 할까.보르헤스는 키플링의 단편을 선집해 <소원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바벨의 도서관’을 내면서 전쟁에 기반한 환상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람들은 키플링이 제국주의자라고 비난하곤 했지만 보르헤스는 키플링한테서 제국주의의 이면을 발견한 듯하다. 이를 테면 대영제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면 해가 지지 않기 때문에 그림자도 지지 않는 것을 키플링의 단편에서 봤다는 것이다.현대문학 출판사에서 나온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의 단편선은 보르헤스의 선집보다 단편이 더 많고 주제도 풍부하다. 전쟁에 기반한 환상성(‘정원사’)도 있고 사랑에 기반한 환상성(‘길가의 코미디’, ‘참호의 마돈나’)도 있으며 환상으로 오인된 과학(‘알라의 눈’)도 있다. 특히 ‘짐승의 표시’, ‘모로비 주크스의 기이한 사건’, ‘참호의 마돈나’, ‘알라의 눈’, ‘참호의 마돈나’, ‘정원사’ 가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