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에서 여러 작가들의 단편선을 출간하고 있는데, 사키의 열렬한 팬으로서 70편의 엄청난 단편소설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크나큰 기쁨이다. 이 책은 레지널드, 클로비스 연대기, 짐승과 초짐승 등 사키가 출간한 단편모음집을 모은 선집이다. 그의 글은 짧지만, 짧다는 아쉬움보다는 이 양에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모든 작품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특히 인상 깊은 작품은 스레드니 바슈타르이다. 이 작품은 인간 사이의 관계, 분노와 위안, 냉혹함과 같은 감정을 종교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예리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인간과 자연, 삶에 대한 통찰이 돋보인다. 그 이야기들의 치밀한 구성과 통찰을 통해 감탄을 내뱉고 싶다면 당장 사키를 읽어야 할 것이다.
사키-4. 가브리엘 어니스트(31~40)
사키-3. 토드워터의 반목(26~30)
‘두 여자가 싸우면 고양이 새끼들만 억울하게 죽는다.’는 진리를 알려주는 묘미! 요즘 세상 같으면 동물학대죄로 벌써 처벌 받았을 텐데. 닭싸움이 사람 싸움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면서 웃을 수만 없는 것은 남의 일 같지 않아서이다. 주변에서 발생하는 많은 시비들이 조금만 양보하고 배려하면 끝날 수 있는 일이었다. 평화는 구성원 모두의 공적 의식에서 비롯되겠지만, 그것도 나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한계로 설정되어 있다.
암탉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주어진 시간과 기회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27)’은 바뀔 수 없다. 날마다 경험하면서도 추상적으로만 인식하고, 일용할 양식에만 모든 감각을 모으고 있어 공존의식이 부족한 것인가. 우리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는 아직도 수렵 시대의 생존 본능-파충류의 뇌라고 하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야만적이다. 누구나.
가끔 그 천박한 바닥을 벗어난 사람을 볼 수 있는데, 보통사람들은 그를 성인이라고 부른다. ‘기분 좋은 영적 교류나 사교적 교제가 이루어지는 느낌을 주는 묘지(26)’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종교의식과 신앙심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여자들의 전투 의식과 어리석은 한 마디로 희망을 과감하게 뒤집어엎는 남자의 어리석음이 화음처럼 잘 어울린다. 이 모든 일의 주범이었던 암탉이 희생되었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반목은 인간의 역사를 풍자하는 것 같아 부끄럽고 스스로 한심하다.
사키-2. 깜박 잊은 지명
‘재수 없으면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의 전형적인 사례. 실연(!)의 아픔을 털어버리고자 ‘신분을 버리고 의사 부인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던 기회가 자신을 죽인 살인자의 운명으로 연결되다니.
삶은 의지의 작용과 실현인 듯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연의 손길이 마구 휘둘러대는 예측 불허 속에 걸음을 옮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상에 대한 감사의 이유는 그런 우연이 긍정적인 결과로 나타나는(사형에 이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데, 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해 사냥개들에게 내기를 걸고 도박을 하는 국민성은 도대체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범인이라는 의심을 하면서도 뒤에서 수군대며 은근히 즐기는 대중의 심리라니.
군중의 얼빠진 호기심과 그것을 부추기는 언론의 교활함은 그때나 지금이나 천박하다. 대중 매체를 신봉하는 광신자인 양 현대인의 욕망 역시 거칠고 후안무치하다.
이 남자가 피의자로 몰린 것은 자기를 증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분에 대한 지인들의 착각, 표정의 변화도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전문지식의 부족(23)’이라고 고백하는 점에 유머가 숨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지 한번 더 생각해보자.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러려면 정말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가르친다고 너무 나대지 않는 시간이 되도록 경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