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로 알게되어 5720원을 결재하고 받은 138페이지의 얇은 핸드북.
얇은 두께에 조금 실망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머리가 뿌듯해지고 결코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은 인종의 노예도, 언어의 노예도, 종교의 노예도, 강물의 흐름의 노예도, 산맥의 방향이 노예도 아닙니다. 인간들의 대결집, 건전한 정신과 뜨거운 심장이야말로 민족이라 부르는 도덕적 양심을 창출합니다."
이것이 저자의 주장을 요약한 것입니다. 저는 이 주장을 보고 결국 '민족주의는 보잘것 없다. 또한 좌파,우파 편을 갈라서 티격태격하는 꼴도 다 바보짓이다.' 라는 결론으로 이해했습니다.
심지어 우리의 사회문제를 저자의 글과 연관지어 생각해봐도 (너무 절묘하게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 책의 해석에서 말하길 '그의 사상은 매우 복합적이기 때문에 지극히 대조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르낭의 글을 제각기 자신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라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만큼 포용력있고 탄력적인 그의 글은 자신의 생각을 단단하게 재정비 할 수 있는 좋은 양분이 될 것 같습니다.
요즈음 세상이 혼탁하다. 혼란스럽다. 같은 생각이 많이 듭니다. 마치며 자신의 주관도 가지지 못하면서 남들의 입발린말에 앞장서서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이 책만은 꼭 읽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에르네스트 르낭의 “민족이란 무엇인가”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철학적 에세이이다. 저자는 민족이란 단순히 인종, 언어, 종교, 국경으로 정의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민족은 언제든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개념이며, 결국에는 사라질 운명이라고 말한다.
르낭의 메시지는 민족이라는 틀에 갇히지 말고, 인간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그는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민족을 학살하는 비극적인 행위를 비판하며, 인간의 가치를 민족보다 우선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프랑스와 독일 간의 전쟁, 민족과 고향, 민족과 인종 등의 주제를 다루며,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의 차이를 설명한다.
그의 주장은 우리에게 경계 짓기에 집중된 편향된 의식에 경종을 울려준다. 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시대 배경을 모르고 읽으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읽힐 소지가 있다. 나도 읽다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가 싶어서 역사적 배경을 조금 공부했다. 배경은 이렇다. 1870년 보불 전쟁(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독일(프로이센)이 프랑스에 승리한다. 독일은 승리 대가로 국경지대인 알자스-로렌 지방을 자국으로 합병한다. 그 유명한 알퐁스 도데 <마지막 수업> 배경이 그곳이다. 르낭이라는 프랑스 지식인 양반이 독일의 알자스-로렌 지방 병합 논리에 반박하는 연설을 하고, 그 연설문을 내가 읽은 것이었다.
르낭의 논리를 간단하게 줄이면 이렇다. 민족은 지리적 조건, 언어, 종교 같은 문화·역사적 조건으로 규정되지 않고 심지어 생물학적 인종학으로도 쉽게 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한 민족은 다른 민족의 억압을 받을 때에만 자신에 대해 자각하게 된다. (22p)"고 말한다. 승리의 역사보다 패배, 억압, 고통의 기억을 공유할 때 민족성이 형성된다는 뜻이다. 그는 최종적으로 민족을 이런 문장으로 규정한다. "역사의 깊은 분규의 결과로 생긴 정신적 원칙이며 영적인 가족으로서의 집단 (79p)" 이런 논리로 르낭은 지역 주민 스스로의 의지가 귀속 여부를 결정짓는 이유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 지역 주민이 스스로 프랑스 국민이라고 생각하면 어찌 독일인이 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민족 정체성의 논리는 아무래도 좋았다. 19세기 후반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였고 알자스-로렌 지방은 이후 몇 차례 전쟁의 결과에 따라 주인이 바뀌다 지금은 프랑스의 영토가 됐다.
르낭에 대해 알아보니 그 자신은 전형적인 19세기 백인 유럽인으로서 명백한 인종주의자였다고 한다. 시대를 아주 초월하는 지식인은 아니었다 생각하고 민족에 대한 통찰만 건지면 될 듯하다. 특히 민족이 억압받을 때 민족성을 형성한다는 통찰이 확 와닿았는데, 이건 정확히 한의 민족 한국인들에게 정확히 적용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전근대엔 민족 개념을 인민 대부분 자각하지 못하고 (그럴 필요도 없었을 테고) 지내다 각종 외침과 분단을 겪으며 인민들은 민족 정체성을 갖게 된다. 그들을 지배하는 민족정신은 주로 피해자 정체성. 그것이 비뚤어지며 눈물겨운 국뽕, 민족뽕으로 발현되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각종 대중문화에서 엿보이는 그것들을 보자면 지레 한숨부터 나온다. 그러나 최근에 조금은 희망적인 장면을 봤다. 남북한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만든다는 정치적 논리에 반발하는 젊은 세대가 많은 것이었다. 현 대통령과 여권에 매우 호의적인 사이트 이용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고통의 순간을 함께했고 언젠가 하나가 돼야 하는 한민족으로서의 북한, 같은 이야기는 이제 멀게 돼버린 것이다. 기실 북한 인민과 고통을 공유한다는 생각은 성립하지도 않을뿐더러, 젊은 세대는 (특히 남성) 오히려 북한으로 인해 실질적인 고통을 받는다. 그런고로 시대는 민족과 정치의 논리로 개인의 자유와 성취를 억압하는 것을 묵과하지 않는다. 운동권 정치인들도 정신 좀 차리고 민족에 대해 세련된 논의 좀 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