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 위험에 처하다 외-책세상 문고 고전의 세계 006"은 1888년에 프랑스 사노당의 일간지 '르 파르티 우브리에'에 머리 기사나 1면 기사로 실렸던 글 17편과 그에 대한 해제를 단 책 입니다.
당시 프랑스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내용들과 필치로 인해,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보는 듯한 감상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일간지의 기사 내용과 해제 이후에는 사노당과 블랑제 사건 관련 연표, 주석, 더 읽어야 할 자료들이 소개되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많은 내용은 아니지만, 당시 사회상에 대한 머리 기사나 사설에 대한 글이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진한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잘 봤습니다.
기한 만료를 앞둔 상품권을 쓰려고 적당한 가격대에서 고민하다 구매한 책인데 가격 이상의 큰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제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어보질 않아서 그런 것이겠지만 19세기를 살아가던 노동자들이 직접 쓴 기사글이라는 부분부터 제겐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요약된 문장으로만 접했던 불랑제 사건과 반불랑제 운동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미 여성노동자의 인권에 대해 고민한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지금도 지켜지지 않는 성차별없이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강령에 명시했던 것도 눈에 띕니다. 잘 읽었습니다.
1789년 프랑스 사회에서는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스티유 탑에는 시민군이 쓰던 붉은 모자가 꽃혔고, 왕이나 귀족 아닌 제3계급의 사람들이 자신이 주인임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희망의 목소리는 그리 오래 가질 않았다. 권력을 손에 쥐어본 자들은 어떻게 해야 제 권력을 되찾을 수 있는지 빤히 알고 있는 듯 반동적인 움직임으로 응수했다. 잇단 왕정복고와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로 신질서는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1864년 제1인터내셔널이 결성되었으며 1871년에는 파리 코뮌의 선언으로 진보진영에서도 무언가 굵직한 선을 그었지만, 파리 코뮌 가담자들은 1880년 총사면령이 내려질 때까지 손과 발에 재갈이 물린 상태로 버티어야만 했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부분은 1870년대로 프랑스 사회가 대혼란에 빠진 시기라 하겠다. 사노당이 결성되면서 프랑스의 노동 운동은 다시 한 번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여느 때보다도 희망찬 목소리가 짙던 시절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지금까지는 하나의 집단으로 애매하게 엮이었던 다양한 목소리 간의 분화가 요구되던 시절이기도 했다. 사노당의 창당은 그와 같은 배경 하에서 이루어졌다. 그들은 이제껏 주도권을 쥐고 있던 부르주아 정치인들과의 결별을 선언했으며, 나아가 노동 계급의 대표가 직접 의회에 진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왕정복고의 흐름이 어느 정도 꺾이었기 때문에 이는 가능했다.
그렇지만 안심을 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바로 블랑제주의 때문이었다. 블랑제주의는 1887년부터 1889년까지 프랑스 사회에서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블랑제는 퇴역 장군의 이름이었는데, 그를 향한 열화와도 같은 성원은 프랑스 인들의 나폴레옹에 대한 묘한 향수를 닮아 있었다. 숱한 피를 흘려가며 세운 공화정 체제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위기의식은 진보세력의 결집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사노당의 움직임에 변질(?)이 꾀해진 것은 그와 같은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도 물론 중요는 했지만, 그보다 앞선 것이 바로 공화정의 수호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편으로는 사노당에게 불행이었다. 사노당의 전략 변경으로 이후 노동자 계급의 독립적인 정치행동은 급히 사그라들었고, 부르주아 정치인들의 세력 공고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공화정을 지켜냈지만 당의 정체성에 타격을 입은 셈이다. 게다가 사노당은 근대적인 정당이라고 하기에는 미숙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분파 다툼(?) 끝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집단이라 할 수 있는 게드주의자들은 사노당을 벗어나 ‘프랑스 노동당’으로 나아가기도 했으며, 무정부주의자, 말롱일파 등으로부터도 외면당하였다.
하지만 그와 같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사노당을 엄연한 근대적 정당의 하나로 인정했다. 우선 사노당은 정당으로서의 정치적 목적 설정에 충실했다. 사회주의 후보가 파리 시의원으로 처음 당선된 것도 사노당의 정치적 움직임에 따른 것이었다. 또한 사노당은 6개 단위로 나누어 지부를 설치해 전당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당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낼 수 있는 신문을 발간했다. 반블랑제주의를 널리 알리는 데에 기여한 <르 파르티 우브리에>라는 이름의 일간지 역시 사노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또한 저자는 사노당의 노선에 전폭적인 변경이 있었다고는 보지 않는 듯했다. 다소 이견이 있기는 했지만, 사노당은 여성문제에 있어서 블라제주의와의 대결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여성보다는 오히려 부르주아 계급의 결정이 당의 노선에 반하는 흐름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고 그들은 보았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여성 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되어야만 한다고 보았던 그들의 목소리에서 사노당이 최초 고수하고자 했던 바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운동가들이 패배의식에 젖어 있다. 자본주의가 공고해진 상황에서 어떠한 움직임도 계란으로 바위치기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하지만 이 책은 1800년대 후반 프랑스 사회 역시 극한 상황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격렬하게 저항했던 이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그들이라 하여 두려움이나 회의감을 느끼지 않았으리란 법은 없다. 하지만 때론 어리석다 싶을 정도의 우직함이 세상을 바꾼다는 걸 역사는 우리에게 말해준다. 거창한 이념보다 강한 것이 하루하루의 소소한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