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5. 김대식 & 챗GPT의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동아시아)'를 읽고
- 우선 이 책은 저자 김대식 교수와 오픈 AI의 프로그램인 챗GPT와 영어로 주고받는 문답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 주어진 질문에 챗GPT가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거나, 질문자의 의도와 다른 답변을 할 경우에 별도로 데이터 후가공을 하지 않았고, 관련 내용에 대하여 재질문하지 하지 않았다.
1. 내가 질문한 내용을 실제로 이해하는 거야?
매력적이지 않은가?, 챗GPT와 나눈 대화라니. 책의 제목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책의 표지는 그러한 나의 관심을 충족하기에 충분했다. 가볍지 않은 주제에 대하여 챗GPT와 깊이 있게 대화를 나누는 경험을 가진 김대식 교수가 부럽기도 했다. 주제별로 나눈 대화에서 챗GPT가 어느 수준까지 알고 있는지가 궁금했는데, 챗GPT는 내가 예상한 수준 이상으로 알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챗GPT가 가진 능력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김대식 교수가 던진 질문을 듣고 유창하게 대답한 챗GPT에게 '챗GPT, 내가 질문한 내용을 실제로 이해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교수님의 깊이 있는 질문에 대하여 완벽에 가깝게 대답한 챗GPT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당신의 질문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대답을 생성하기 위해 언어 속 패턴을 활용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챗GPT의 저 대답을 읽으면서 나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김대식 교수는 챗GPT와 대화를 나눈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일까. 인간은 언어를 이해하고 생성하기 위해 우리 뇌 속의 복잡한 인지 과정 네트워크를 사용하지만, 기계는 학습한 데이터의 통계적 패턴을 사용한단다.(챗GPT의 설명이었다.) 다시 말해 챗GPT가 인간의 질문에 대하여 옳게 답변했다는 것은 학습한 데이터 안에서 통계적 패턴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질문에 대답을 할 때 질문을 이해하고 답변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내가 학습한 여러 데이터들을 조합하여 답을 만들어내는 것이 통계적 패턴을 사용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 오랜 시간을 들여 생각해 보아야 했다. 챗GPT는 기계적인 응답일 뿐, 질문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고 답하고 있지만, 나는 같은 근거로 챗GPT가 질문을 이해한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인공지능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나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2. 인간의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개선해 주는 기계의 능력과 잠재력에 대한 경외심
이 부분을 읽을 때 마침 학생들에게 정지용의 '그의 반'을 가르치고 있었다. 정지용의 '그의 반'은 절대적 존재인 시적 대상을 경외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하는 시적 화자의 모습을 표현한 시이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경외'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였다. 경외의 사전적 의미는 '공경하면서 두려워하다'이다. 이때 경외의 대상과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았었다. 그런데 인간의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개선해 주는 기계의 능력과 잠재력에 대하여 '경외심'이 든다는 문장에서 '경외'는 이 상황에 걸맞은 적절한 표현이었다. 기계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능력과, 앞으로의 잠재력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함께 생기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김대식 교수도 기계가 인간을 앞지르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을 때, 기계 안에 욕망이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챗GPT에게 질문하였다. 이에 대해 챗GPT는 기계의 욕망은 개발자가 설정한 목표나 목적의 결과 또는 기계 스스로 학습한 결과라고 답하였다. 이 대답을 곱씹어 보면 욕망을 가진 인간에 의해 기계가 욕망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고, 기계의 언어적 학습과 같은 반복적 패턴 학습에서 기계가 욕망을 느끼게 되었을 때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두렵지 않은가?
3. 챗GPT는 진짜 전문가일까? 어설픈 강적일까?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없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에 대하여 챗GPT은 거침없이 말했다. 그동안 인류가 만들어 온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챗GPT는 매우 수준 높은 답변을 내놓았다. 그중 기억에 남는 답변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전 지구적 결함에 대한 챗GPT의 마지막 답변은 흥미로웠다.
정보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뉴스나 정보에 압도당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믿을 수 있는 출처에서만 정보를 얻고
위험에 대한 글이나 뉴스를 읽는 데 소요하는 시간을 제한하세요. (158쪽)
챗GPT가 대답한 내용으로 판단하건대 챗GPT의 지식의 양은 전문가를 능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챗GPT가 대답한 내용에 신뢰성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챗GPT가 가지고 있는 축적된 데이터가 뒷받침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톰 니콜스가 쓴 책 '전문가와 강적들'에서 설명한 것처럼 전문가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동영상 플랫폼 속에는 어설픈 지식으로 무장한 어쭙잖은 전문가들에 치인다. 진짜와 가짜 지식이 난무하는 홍수 속에서 통찰력과 지혜를 가르쳐 주는 진짜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를 전문가의 몰락이라고 본 톰 니콜스의 생각을 챗GPT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챗GPT는 진짜 전문가일까? 어설픈 강적일까?
4. '신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챗GPT의 "답변"
큰따옴표로 한정 지어 놓은 '답변'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기 전에 '의견'이나 '견해'가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이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챗GPT 자신은 의견이나 견해 따위가 없다고 책 속에서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식 교수와 10가지의 주제에 대하여 나눈 이야기 중에서 '신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챗GPT의 답변에 대해 나는 챗GPT의 견해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신과 신들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에서 시작하여 초기 문명들에서 다수의 신에서 전지전능한 거대 일신 개념으로 전환되기까지의 일들, 아케나텐 이론과 신을 진화 과정의 산물로 보는 것 등에 대한 일련의 챗GPT의 대답은 기계인 챗GPT의 의견으로 보아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진보한 기계들이 인간을 그들의 신으로 여길 수 있을까에 대하여 챗GPT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을 신으로 보는 진보한 AI에 대한 논의는 과학자, 철학자, 전문가 들 사이에서 계속되는 논쟁의 주제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밝히고 이는 지능, 의식 및 인간과 기계 간의 관계를 둘러싼 윤리적, 철학적 질문이 불러일으킨다고 답변했다. 이 부분은 다분히 챗GPT의 의견으로 보아도 되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실제적으로 의견과 사실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5.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를 통한 교육 활동
책을 읽으면서 챗GPT를 활용한 교육 활동에 대하여 계속 생각했다. 지극히 문과적 사고를 가진 나의 뇌와 또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나의 감성이 만나면 합리적인 기계를 잘 다룰 수 있느냐의 문제부터 만나게 된다. 나는 현재 미러링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해서 미리 판서부터 해 놓고 시작하는 교사이다.(미러링은 학교 인터넷 구축이 안정적이지 못하는 것도 한몫한다고 변명해 본다. 어느 시간은 되고, 어느 시간은 되지 않고, 어느 학급은 되고, 어느 학급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말 많이 생각해 보았다. 챗GPT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챗GPT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우선 토론 수업을 생각해 보았다. 문학 작품 감상 활동을 위한 토론 수업을 하면서 챗GPT의 무한한 정보를 활용할 수도 있고, 학생들은 찬성과 반대 팀이 되고 이를 중재하는 사회자, 혹은 평가를 내리는 역할을 챗GPT가 담당하게 하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교실 현장에서 토론 활동을 하면 잘 하든, 못하든 학생의 장점만을 찾아서 피드백을 해 주거나,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 토론 자체가 더 나은 해결 방안을 찾고, 상대방의 입장을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누가 잘했고, 못했고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피드백을 챗GPT가 한다면 어떨까? 챗GPT의 냉정한 평가에 학생들이 위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정확한 평가를 바탕으로 자신의 성장을 위해 보완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노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 활동의 경우 교사의 전문성을 챗GPT가 대신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처럼 초고를 작성한 후 챗GPT와 학생이 한 팀을 이루어 고쳐쓰기 활동을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고쳐쓰기의 단어 수준, 문장 수준, 문단 수준, 글 수준에 따라 나누어 챗GPT와 함께 글을 완성해 보는 것이다. 이때 인간인 학생과 챗GPT의 고쳐쓰기 결과를 서로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다만, 의욕이 없는 학생일 경우 챗GPT에게만 맡기고 자신의 글인 것처럼 제출한다는 윤리적 문제와 이렇게 함께 고친 글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느냐에 대한 법적 문제에 대한 고려가 우선시 되어야 할 것 같다.
6. 챗GPT에게 묻고 싶은 나
마지막 책장을 닫으며 나도 챗GPT에게 묻고 싶었다. 지금의 나와 앞으로의 나에 대해. 그리고 피식 웃었다. 나는 챗GPT가 아니라 역술가가 필요한 모양이라고. 그런데 만약 저 질문을 구체화하고 세분화하여 묻는다면 챗GPT는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챗GPT를 통해 진정한 나를 찾는 경험을 하게 되면, 그때의 나는 유레카와 같은 깨달음을 얻을까. 아니면 나도 모르는 나를 기계가 더 잘 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까. 나의 이러한 생각은 기계와 인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나의 사고에서 비롯된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과 기계라는 이분법적, 대립적 생각을 넘어서는 것이 이 책을 읽은 나의 첫 번째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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