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는 학창 시절 일본은 우리 대한민국을 무력으로 짓밟은 나라로 배웠고, 실제 강점한 후 36년간 잔인할 정도로 많은 그들이 행한 증거들을 제시한 책을 읽고 자랐다. 당시 어려운 시절에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 하신 분들을 애국지사, 항일투사라고 배웠다. 그것은 역사의 정당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책과 선생님들이 가르친 대로 '항일'과 '반일'이 머릿속 깊이 박혔다. 그들의 우리나라 강제 합병도 불법이고, 그들이 식민지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우리 민족은 점점 더 악랄한 수탈과 억압에 시달렸다.
식민지 정책도 서구 열강들의 세계적인 흐름을 뒤따라 배워 시행한 것은 나중에 좀더 자란 후에 배웠다. 우리 역사 교과서에는 미국이나 중국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부분이 일본은 우리의 '철천지 원수'라는 사실을 가르쳤다. 그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았고, 일본은 우리가 밟고 일어서야 할 존재였다. 이웃나라란 개념은 없었다. 임진왜란 역시 그들의 야욕에서 비롯된 것은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배워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약했던 국력과 내부적 갈등에 대한 부분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대학에 가서 하나 둘씩 한일 강제합병이나 임진왜란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을 배울 무렵부터는 일본은 우리가 밟고 넘어서야 할 국가였다. '극일'의 대상이었고 '지일'의 이유였다. 그래서 그들에겐 어떤 동정심도 없었고, 그들의 사정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일본이라면 무조건 적이었다. 이런 감정들은 스포츠 경기에서 극력하게 드러났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국권 강탈뿐만 아니라 위안부, 강제징용 등 우리에게 행한 만행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실들이 생각할수록 적개심만 커져갔다. 다른 나라들은 이웃끼리 싸우다가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다시 서로의 이익을 위해 힘을 합치기도 한다는 사실은 세계사를 배울 때부터 수많은 책들로부터 지식을 얻었다. 그런데 왜 일본은 가까워지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이 잘못한 부분에 대한 사과도 하지 않고, 반성도 없는 일본이 우리의 적개심을 더욱 부채질할 뿐 우리와 선린 관계를 맺을 의지가 없는 것으로 읽을 수 있을 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도상 거리는 가깝지만 심리적 거리는 한없이 먼 일본으로 지금까지 마음속의 응어리로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미디어조차 일본을 소개할 때 ‘감정’을 싣는다. 배울 점은 없이 비난할 거리만 가득한 미디어 속 일본 이야기를 접하는 사이, 역사와 외교 문제에 대한 경계심만 남고 이웃 나라 문화를 알아가고자 하는 의지는 나날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극일'을 앞세워 '지일'을 한 것이 문제일까. 그들은 세계적으로 선진국으로 대우받고 있는 것은 단순히 돈 많이 벌어 잘살기 때문일까. 이런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란 생각과는 다르게 그들의 언행은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을 버릴 수 없다. 세계와의 상호성이 더욱 요구되는 시대에 이렇게 두 나라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멀어질 수밖에 없을까? 당연한 의문이 생긴다.
이 책 『은근 몰랐던 일본 문화사』는 미디어가 주는 편협한 정보에서 벗어나 세계를 바라보는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썼다고 저자는 밝힌다. '무조건' 적대적일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아야' 감정이나 피해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주장엔 이의가 없다. 독자가 이 책을 읽기로 선택한 이유다. 과거로부터 비롯된 편견과 선입견을 접고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일본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를 폭넓게 다루고자 했다고 저자는 「시작하는 글」을 통해 밝힌다. 저자는 우리 국민 감정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이 때문인지 "무턱대고 일본을 비난하지도, 그렇다고 무분별한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간혹 잔인한 사건이나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대형 사고가 등장하지만, 이는 일본 사회의 문제점인 동시에 일본을 고민하게 하고 또 진보하게 만든 사건으로서 소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오히려 이런 사건들이 벌어졌던 사회를 보여주면서 독자들에게 타산지석으로 삼기를 원하고 있다. 일본 사회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해왔고, 비슷한 사건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일본 헌법엔 군대를 두지 않겠다는 ‘평화조항’이 있다?”, “일본 국회엔 좀비도 있고 소도 있다고?”, 등의 글들은 독자의 머릿속의 감정을 다소나마 누그러뜨리는 데 한몫을 한다.
저자는 반문한다. 우리는 그저 일본을 역사에 대한 반성이 부족한 나라, 우리 땅 독도를 자꾸 자기네 것이라 우기는 나라라고만 여기고 미워하면 끝일까? 저자는 답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 문화론의 고전 『국화와 칼』도 이미 출간된 지 수십 년이 흘렀다. 우리는 과거의 일본은 잘 알지만 현대의 일본은 잘 모른다. 세계와의 상호성이 더욱 요구되는 시대, 현대의 일본을 안다는 건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똑바로 마주하는 일이다. 이 책은 일본의 근현대를 뒤흔들었던 흥미로운 사건을 중심으로 우리가 일본에 대해 알고 있던 지식을 새롭게 업데이트해준다.
가령 갑작스러운 쓰나미에도 생존율 99.8%를 기록하게 했던 어느 방재 교육의 힘, 부족한 지방 재원 확보를 위해 마련한 ‘고향세’라는 독특한 제도, 사회보장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낸 ‘인간재판’ 등 우리가 몰랐던, 그러나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참고해도 좋을 유익한 내용이 가득하다. 저자는 교토 리츠메이칸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하며 경제, 역사, 지리 등을 모두 전공한 검증된 일본통으로서, 이 책에서 법,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폭넓게 아우르며 일본의 다채로운 면모를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에서 소개하고자 했다. ‘혐오’로만 가득 찬 미디어 속 분위기 때문에 일본이 궁금했지만 왜곡된 정보밖에 얻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이 갈증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도 경제성장기에 미나마타병 등 심각한 공해병을 앓아온 나라,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인 일본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 그렇다면 쓰나미가 와도 가족은 찾지 말라고 가르치는 나라, ‘죽음’에 관심이 많아 장례식 때 불경을 읽는 로봇까지 개발한 나라, 빚이 1조도 아니고 1경이 넘는 나라라는 사실은 알고 있는가. 이 책 『은근 몰랐던 일본 문화사』는 일본 사회를 뒤흔들었던 다양한 사건 사고를 마치 뉴스 소식처럼 생생하게 전한다.
핵과 원자력의 위험성을 피부로 깨닫게 하는 제5후쿠류마루 사건이나 도카이무라 JCO 방사능 누출 사고, 매뉴얼의 나라 일본에서 벌어졌던 최악의 열차 사고인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 차별에 반대하며 일어났던 일본 최초의 인권 선언인 수평사 선언, 존속살인죄가 위헌임을 이끌어냈던 도치기현 친부 살인 사건까지, 교과서에서는 본 적 없는 ‘진짜 일본’ 이야기가 실감 나게 펼쳐진다. 또한 이 책은 일본 하면 떠오르는 ‘버블경제’, ‘오타쿠’, ‘황실’, ‘원자력’ 등 30여 가지 핵심 키워드와 함께 현대 일본을 풀어내고 있어, 역사서를 즐겨 읽는 성인부터 세계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길러야 할 청소년까지 누구든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3년간 인기 교양 팟캐스트 〈조재면의 일본연구소〉를 운영한 저자는 스토리에 힘을 불어넣는 특유의 해설로 유튜브만큼이나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에도 시대, 헤이안 시대 등 역사 순으로 일본을 읽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으로 최대한 쉽고 가볍게 이웃 나라 일본을 여행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책에 따르면 일본의 현재는 우리나라의 과거 및 미래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일본의 버블경제 시기 이야기는 현재 우리나라의 부동산 호황의 위험을 떠올리게 하고, 고령화 문제에서도 두 나라는 닮은 구석이 많다. 심지어 초고령 사회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근래 출산율은 훨씬 더 낮을 정도.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한국보다 앞서 여러 사회문제를 겪어온 일본을 제대로 알면 다가올 미래에 더 현명하게 대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좋은 대처는 본받고, 잘못된 대처는 반면교사 삼아 나아갈 수 있다는 것. 2016년 경주 지진, 2017년 포항 지진 등을 겪으며 익숙하지 않은 사건들을 조금씩 맞닥뜨리고 있는 우리가 일본의 방재 교육 등 재난 대처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다.
이 밖에도 두 나라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우리나라의 백정과 달리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사회적 차별에 시달리는 일본의 부라쿠 이야기나 세습되는 일본의 정치판 이야기, 한국의 MZ 세대와 다른 성향을 보이는 일본의 유토리, 사토리 세대 등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세계의 다양성을 깨닫고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통찰하게 된다. 이 책은 한국과 일본, 나아가 세계 속 두 나라를 연결 지어 생각해보게 돕는다. 세계 평화와 식민지배 시대의 반성을 담은 ‘헌법 9조 평화주의 조항’을 둘러싼 일본 내의 논쟁을 살펴보기도 하고, 전쟁 배상금 차원에서 시작된 일본의 국제 공헌을 알아보기도 한다. 이 책을 읽을수록 세계는 결국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같은 종류의 고민을 거쳐 진보해나가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르지만, 보통 의사방해라고 하는 '우설전술'과 '우보전술'이 있습니다. 우설전술이 일본에서 인식하는 필리버스터인데요. 장시간 연설을 통해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일본 국회는 연설이나 답변의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의장이 제지하거나 배제 등의 명령을 내리므로 실제로 큰 효과는 없습니다. (중략) 우보전술은 말 그대로 소걸음 전술입니다. 일본 국회에서는 의원 5분의 1 이상이 요구할 경우 기명 투표를 해야 합니다. 원래는 버튼을 눌러 투표하지만 기명 투표의 경우에는 직접 단상에 올라가서 투표를 해야 하는데요. 그때 소수파가 바로 투표하지 않고 매우 느리게 이동하는 것을 우보전술이라고 합니다. 10~20미터도 채 되지 않는 거리를 몇 시간에 걸쳐서 이동하기도 합니다. 특히 1992년 자위대가 해외로 처음 파견되었던 PKO협력법 체결 때에는 특별위원회장이었던 시모조 신이치로에 대한 문책 결의로 13시간 8분 동안 소걸음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 「입법부 / 일본 국회에는 좀비도 있고 소도 있다?」 중에서
저자 : 조재면
일본 교토 리츠메이칸대학교 국제관계학부를 졸업하였으며 현재 일본 유학시험인 EJU 전문강사로서 꾸준히 유학생을 배출해오고 있다.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역사를 아우르는 종합과목을 가르치며 오프라인 강의 전 타임 마감 신화를 기록한 명실상부 1타 강사이다. 수험생들에게 매년 업데이트되는 지식을 전하는 만큼 최전방에서 현대 일본의 트렌드를 다루고 있다. 3년간 팟캐스트 채널 〈조재면의 일본연구소〉를 운영하며 미디어나 교과서는 알려주지 않았던 ‘진짜 일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편견을 만들지 않는 교육을 지향하며, 미래의 한일관계의 가교를 키운다는 생각으로 세계 속 일본의 다양한 모습을 왜곡 없이 소개하는 것이 목표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