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다소 혼란스러웠다. 목차에서부터 당혹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본문을 읽으면서 그 당혹감은 더욱 커져갔다. 내용이 왜 이렇게 전개되지?
하지만 그 혼란은 내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이 책이 빵의 역사를 다룬다고 생각하고 서평단 모집에 응했는데 실상 책은 그 제목이 암시하듯 빵을 매개체로 한 세계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플랫 브레드에서부터 흑빵에 이르기까지 모두 10가지 빵이 등장한다. 이 빵들은 그들이 소용되는 세상에서 상당히 탄탄하게 자리를 잡은 주류들이다. 그래서인지 각자 독특하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세상 모든 빵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플랫 브레드-Flat Bread겠지?-에서 출발해 효모를 사용하는 발효 빵의 처음인 사워도우까지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빵의 변화를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이후 등장하는 여덟 종류의 빵은 빵의 발전 단계와 무관하게 소개된다. 피자, 마카롱, 에그타르트, 카스텔라, 판데살, 토르티아, 베이글, 흑빵 등은 그것들이 등장한 시기와 상관없이 내용이 펼쳐진다. 따라서 글쓴이가 머리말에서 언급하듯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이런 방식으로 전개되는 까닭에 책은 역사를 다루지 않는다고 평가하게 된다. 원래 기대했던 대로의 정통 역사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냥 역사가 등장한다. 필요한 만큼 역사의 몇 컷을 가져다 빵이라는 소재와 접목시켜 효모와 만난 빵이 부풀어 오르듯 이야기를 확장해 나간다.
각각의 빵이 등장하는 10개의 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그 빵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그것이 현재의 자리에 이르게 된 상황에 대한 설명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해당 빵이 차지하는 사회적 위치와 역할을 가늠할 수 있다. 빵의 현장성이 도도하게 다가온다. 나머지 부분에서는 특정한 역사의 장면과 빵이 갖는 연관성을 설명하는데 그런 장면이 빵이라는 주인공을 압도하는 아이러니를 종종 만나게 된다. 때로는 이 두 부분이 섞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구분되어 나와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을 준다.
위에서 이 책이 역사를 다루지 않는다고 한 것은 책을 폄하하려 함이 아니다. 제목에서 보여지는 세계사라는 타이틀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특정한 빵을 통해서 사회와 역사의 면면을 보여주는 인문학 서적으로서의 가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책은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읽기 쉽게 서술되어있다. 빵 자체를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글만으로도 그 빵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게다가 재미있다. 쉬운 서술과도 일부 중첩되겠지만 글쓴이가 글을 꽤 맛깔나게 쓰는데다 주류 역사책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소소한 이야기,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끌어와서 아기자기한 맛이 더해졌다.
등장하는 빵들이 모두 일상 생활에서 쉬이 그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것들이라 글을 만나는데 장애물이 낮다는 장점도 있다. 대개는 당장 나가서 살 수 있는 빵들이다. 적어도 이름 정도는 들어본 바 있다. 판데살 같은 경우는 예외라고 보이지만.
피자 이후에 나오는 빵들의 지리적 배경이 다 달라서 다양한 모습의 세상을 볼 수도 있다. 피자는 이탈리아, 마카롱은 프랑스, 흑빵은 러시아 등 그 빵이 등장하고 정착해서 영향을 미친 환경의 다채로움을 즐기게 된다. 빵마다 그것들이 태어나서 자란 사회의 현재와 과거의 모습이 담겨있음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현장이 될 수도 있겠다. 나로서는 마카롱이 빵이라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게 빵이 맞겠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도 새로운 세상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다 더하면 적어도 “이 빵에는 말이야, 이런 사연이 있어.”하고 너스레를 떨 수 있는 정도의 지식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교양이 늘어나는 기쁨을 즐길 수도 있고.
내용에 대한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그 첫 번째는 특히 역사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빵 자체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빵을 중심으로 한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 이야기를 하면서 특정의 빵을 잠깐 또는 조금 길게 이용하는 정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빵이 역사에 끼친 영향을 다루는 부분도 약해서 글쓴이가 얘기하는 역사의 한 장면에 빵이 들러리를 선다는 인상이 들었다. 빵을 빼도 이해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대목도 보인다. 빵 자체를 중심으로 내용을 펼치면서 역사가 거드는 식의 전개였다면 책의 제목에 더 부합하지 않을까 한다.
두 번째는 교정의 아쉬움이다. 별 이유 없이 용어를 섞어 쓰는 것-플랫 브레드와 납작빵의 혼재- 등이 거기에 속한다. (더 있지만 길게 거론하지는 않겠다)
빵이든 무엇이든 하나의 소재를 통해 역사를 관망하는 건 역사에 편안하게 접근하는 좋은 방법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은 특히 역사를 어느 정도 알면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그 소재가 지금보다 조금 더 부각되는 서술 방식이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