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후도 서점 이야기> 속편인 <별을 잇는 손>을 읽었다. 이렇게 적으니 내가 <오후도 서점 이야기>의 엄청난 팬인 듯 보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몇 해 전 표지가 예뻐 읽게 된 책이었고, 읽고 난 후에는 따뜻하고 잔잔한 이야기이구나, 딱 그 정도의 느낌으로 남아있던 책이었다.
그렇게 가물가물해진 기억 속에 넣어두었다가 얼마전 서평단에 선정되어 <오후도 서점 꿈 이야기>를 만났을 때에야 ‘아, 맞아 그래서 잇세이는 어떤 서점을 꾸미고 있을까?’ 잊고 있던 궁금증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그렇게 (알고보니) 순서를 살짝 뒤바꿔 속편이 아닌 번외편이었던 <오후도 서점 꿈 이야기>까지 읽고 나니 그 중간 이야기가 정말 궁금해졌다. 결국 속편인 <별을 잇는 손>을 구매해 시리즈 모으기를 완성시킬 만큼.
앞치마가 잘 어울리는, 키가 크고 친절해 보이는 서점 청년, 똑똑해 보이는 소년, 하얀 앵무새와 사랑스러운 작은 고양이가 있는, 어딘가 동화 같은 분위기가 흐르는 서점이었다. p.23
아하, 키가 크고 친절해 보이는 서점 청년 잇세이(오후도 서점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된 주인공)와 똑똑해 보이는 소년 도오루(오후도 서점 주인의 손자)는 오늘도 열심히 오후도 서점을 운영하고 있구나! 세번째 만남이어서인지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인사를 건네게 된다.
산골짜기 마을은 신록이 우거져 있고 멀리에 잔잔한 물결이 반짝이는 커다란 호수도 보인다. 작은 새들의 지저귐과 매미 소리가 섞인 바람 소리를 들으며, 완만한 언덕과 빛나는 시냇물 위로 걸쳐놓은 오래된 나무다리를 건너 배달을 하니 그림책 속 세상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p.44
그림책 속 세상에 자리한 동화 같은 분위기의 서점이라니, 상상만으로도 흐뭇해지는 풍경이다. 이런 곳에서 느긋한 마음으로 책을 고르고 느릿한 속도로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은 법이어서 (비록 소설 속이라 하더라도?!) 이렇듯 예쁜 시골의 작은 동네 서점의 운영은 수월치가 않다.
씁쓸하지만 시골의 작은 동네 서점에 신간이 들어오지 않는 건 드문 일도 아니다. 뉴스에는 최고 인기를 누리는 화제작이 대형 서점에 탑처럼 쌓여 있는 모습이 나오지만, 찾는 손님을 위해 한 권이라도 구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작은 서점에는 그 한 권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pp.34-35
서점 수입만으로는 앞으로 먹고 살기 힘들 것 같아 카페를 만들려고 하는데, 그 때문에 서점의 기능을 희생해야만 한다면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서점인데 책을 줄여야 한다니. p.41
문득 책을 좋아하면 서점 운영을 하지 말고 간간이 서점에 들러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둘러보고 구매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던, 어느 서점 운영인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책을 좋아해서 서점을 열었는데, 운영에 급급해 막상 전보다 책을 더 읽지 못하게 되었다는 조금은 씁쓸한 내용이었다.
동네책방 대표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애초에 책방이 큰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시작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막상 해보면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이문이 박하고 일이 많은 게 책방이라는 비즈니스다.
<동네책방 생존 탐구> 중에서
오후도 서점의 잇세이 역시 녹록치 않은 서점 운영에 조바심을 내기도 높은 벽을 앞에 둔 듯 막막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책을 사랑하고, 일상에 지칠 때 숨 쉴 공간인 동네 서점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듯이 (현실에서도!) 예상치 못한 제안을 받기도 하고,
“아 참, 한 가지 더 부탁해도 되겠나? 부디 서점 문을 닫지 말아주게. 힘들다면 자금을 대줄 테니 서점의 불빛을 꺼뜨리지 말아줘. 서점에 오는 손님들을 위해. 책을 읽고 인생이 달라지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네. 책에는 그런 힘이 있지. 그러니 서점은 마을에 계속 있어야만 해.” p.78
오후도 서점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저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리며 손을 잡아준다. 마치 내가 동네서점에 들를 때면 꼭 한 권 이상의 책을 사고, 음료를 마시고, 에코백이나 수첩같은, 서점에서 판매하는 굿즈를 구매하는 것처럼 말이다.
“거창한 게 아니면 어때.”
아라비아의 석유왕도 아니니 책을 어마어마하게 사들일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라도 읽고 싶은 책은 서점에서 사기로 마음먹었다. p.188
“그래서 난 오후도 서점에서 신간을 사지.”
앞으로도 그래야겠다고 마리노는 다짐한다.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응원을 하는 것. 서점을 좋아하니까. 내 주위에서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으니까..(중략)..내가 할 수 있는 있었을 텐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후회를 하기 전에, 한 권이라도 책을 사야겠다. 서점이 아직 그곳에 있을 때. p.189
책에는 잇세이와 오후도 서점 이야기 이외에도 책을 사랑하고 오후도 서점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렇게 짧은 아홉 편의 이야기들 중 책의 제목이기도 한 <별을 잇는 손>은 마지막 챕터로 눈길을 끄는 예쁜 책표지의 소재이기도 하다.
“전설에 나오는 공주님의 축제예요. 호수에 등롱을 띄워 보내요. 호수와 주위에 있는 전나무 숲에 등롱이나 촛불을 밝혀두면 마치 하늘에서 별이 내려와 앉은 것처럼 보이거든요. 정말 아름다운 축제예요. 그리고 호수에 등롱을 띄워 보내면 소원이 이루어진대요.”
효과가 있을지도 몰라요, 하더니 소리를 낮춰 키득키득 웃었다.
“오후도 서점이 문을 닫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거든요.” p.214
도오루의 소원처럼 나 역시 내가 사랑하는 작지만 나를 안온하게 쉬게 해주는 서점들이 계속 그 자리를 지켜주기를 다시 한번 바라게 된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반짝이는 한 아마도 내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마음으로나마 별이 내리는 밤에 작은 등롱을 호수에 띄워 보내고 싶다.
전설에 의하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밤이라고 하는데, 이런 마법같이 아름다운 밤이라면 어떤 기적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에는 신이 켜놓은 별들이 반짝이고, 땅에서는 사람들이 밝혀놓은 등롱이 따뜻하게 빛나고 있다.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p.238
*기억에 남는 문장
아마도 사람은 자꾸만 위를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적어도 그래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은. 평생 헤엄쳐야 하는 물고기처럼. 날아야만 하는 새처럼. p.19
‘마음은 전하는 것이 중요하구나.’
나루미는 이것을 잊지 않으려 항상 노력하고 있다. 고마운 일이나 기뻤던 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반드시 말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 말은 마법이 되어 자신의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고, 행복하게 해줄지도 모르니까..(중략)..살아 있는 동안에, 세상에 마법을 많이 뿌리고 가야지. p.22
우선 혼자 힘으로 해보고 난 후에 말해도 늦지 않으리라.
(중략)
내밀어준 손에는 감사하며, 일단은 스스로 서점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배려에 대한 성의라고 생각했다. p.49
사람은 정의를 동경하다 보면 선의로 누군가를 탓하게 된다. 자신도 그런 마음이 없다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사람이라는 존재의 슬픔과 친절과 어리석음이 사랑스럽게 여겨졌다. 세상에 제대로 된 정의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생겨난, 슬픈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89
소노에에게 그림은 ‘세상에 보내는 러브레터’일지도 모른다. 말로 생각을 표현하려면 눈물에 녹아버리고 마는, 소노에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생각이 색채와 구도가 된 것이다. 자신의 러브레터를 세상에 남기고 싶어졌다. 책이라는 형태로. pp.124-125
“그 마음을 말로 표현해보세요. 우리가 인어 공주도 아니고. 사람이잖아요. 말로 마음을 전해봐요.”
생각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전해지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마음과 같다. 인어 공주의 마음이 왕자에게 전해지지 못했던 것처럼. p.170
“그런 말이 아니라, 동네에 책이 잔뜩 진열되어 있는 장소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지..(중략)..인터넷으로는 사고 싶은 책만 사게 되잖아. 그게 아니라 살 예정이 아니었던 책과 사고 싶은 책만 사게 되잖아. 그게 아니라 살 예정이 아니었던 책과 아이들이 우연히 만날 장소가 필요하다고.” p.191
“서가가 있는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묵는 게 요즘 유행이잖아요. 책이 있는 곳에서 모두 모여 함께 자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 건 상당히 즐거운 일이거든요.” p.229
“마을에 서점이 있다는 건 그런 거라고 생각해. 그 마을에서 자란 아이에게 꿈의 세상으로 가는 문을 준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지금 우리 동네 서점을 지키고 싶어. 그것이 현재, 그리고 미래 누군가의 꿈을 키우고 지키는 것으로 이어질 거라 믿으니까.” p.232
이 세상을 살다 갔음을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는 한 그 영혼은 영원히 이 세상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지구라는 따뜻하고 커다란 요람 안에. p.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