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표지와 제목이 마음에 들어 클릭해서 소개를 읽다가.. 어느 구매하신 분의 한줄평에서, '뭔가 지쳐 있으면 보세요'라는 말에 바로 구매를 했다. 지금 나에게 가장 많이 와닿는 단어가 '지치다' 였으니까.. 소개글에서처럼 말 그대로 청소년 문학이다. 그래서 읽기가 쉽다. 카페에 앉아 읽기 시작해서 두 시간 좀 안 되어 다 읽고 카페를 나섰다. 가독성이 높고 소재도 매우 흥미롭다. 다만 기대했던 반전이 아니라는 게 좀.. 너무 순리대로 가니까.. 뭔가 좀 심심한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내용도 구성도 별이 4개씩인 것은 그만큼 마음을 많이 어루만져주는 내용이어서이다. 내가 딱 10년만 더 어렸으면 눈물을 조금 글썽거렸을 지도 모르겠다.
p.150
"그게 말이다. 수찬이 친구 도영이라고 있었는데, 휴, 사고가 있었지……. 도수 동생 도영이가 우리 수찬이와 같은 학년이었지."
'있었는데'라는 말이 유독 크게 들였다. '있었는데'는 과거를 말한다. 나는 이제 과거에 있었던 아이가 된 거다. 현재에서는 사라진 아이. '있었는데' 한마디는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몸을 지탱하고 있던 기둥 같은 것이 흔들리며 몸이 땅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었다.
과.거.형.! 살아있든 죽었든, 내가 아는 누군가에게서 과거형으로 느껴진다는 건 많이 슬픈 일이다. 특히나 좋은 기억을 많이 가졌던 사람에게서 잊혀져가는 사람이 된다는 걸 알게 된다면.. 도영이처럼 나도 몸이 땅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그렇게 훅 다운될 것 같다. 그 뒤의 일어날 나의 상태를 말해 뭐해~일테고..ㅠ;;;
p.196
'할머니가 미리 알려줬더라면.'
오늘 할머니에 대해 알았던 것을 예전에 미리 알았더라면 내 생활은 많이 달라졌을 거다. 그날 밤, 할머니가 나를 찾아다녔다는 사실만 알았더라도 할머니에 대한 미움은 조금 가벼웠을 거다. 내 체중보다 더 무거운 덩어리가 되지는 않았을 거다. 그 무거운 덩어리를 가슴에 넣고 다니느라 버거워하며 에너지를 다 쓰지도 않았을 거다.
나는 병원에서 할머니와 형이 했던 대화를 곰곰이 곱씹어봤다. 할머니는 말이 거칠다. 형도 역시 그렇다. 하지만 감정이 섞인듯 오고가는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둘이 서로를 미워한다는 것은 느낄 수 없었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니 그것이 보였다.
할머니도 나에게 그랬던 거는 아니었을까? 똑같은 말을 듣고도 나는 형과는 다른 반응을 나타낸 게 아니었을까? 나는 할머니를 너무 가까이에서만 본 것이 아니었을까?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모든 것을 볼 수 없는 것처럼 할머니의 한 면만 봐왔을 수도 있다.
아무리 가족이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특히 도영이는 자라는 동안 냉대와 멸시를 받으며 자란 아이는 그 사이사이에 조그만 틈처럼 애정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할 확률이 크다. 인간이란 좋은 기억을 잘 잊고 나쁜 기억을 더 가슴에 새겨서 그 나쁜 것을 하지 말아햐지, 후회하지 말아야지..하는 유전자가 우성이니까. 또 사람마다 각자의 특성이 있다보니 같은 표현이라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다. 아마.. 자세한 내막도 모른 채 할머니와 도수의 이야기만 읽으면 나도 이런 막장 집안이 있나~ 그렇게 생각했었을지도..
p.217
"어떤 사람이 하늘에 떠 있는 조각달을 갖고 싶었대요. 그래서 고생고생해서 조각달을 따는데 성공했지요. 조각달을 집으로 가져온 그 사람은 무지하게 행복했어요. 왜냐하면 자기가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조각달을 손에 넣었으니까요. 그런데 조각달은 날마다 슬퍼하기만 했어요. 생각해보세요. 조각달은 날이 지나면서 반달도 되고 보름달도 되어야 하고 변신을 거듭해야 하는데 손아귀에 갇혀 그러질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 조각달은 날마다 울었어요.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난 다음 그 사람은 결심했어요. 조각달을 놔주기로요. 어느 깊은 밤 그 사람은 옥상으로 올라가 조각달을 날려 보냈어요. 넓고 넓은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조각달은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어요. 그런 조각달의 모습을 보면서 그 사람도 행복했대요. 그게 무슨 뜻이냐면요,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붙잡아 매어 내 옆에 두려고 하는 사랑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존재에게 자유를 주었을 때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크크크, 이 말은 책 뒤에 있는 지은이의 말을 읽고 알았지만요. 하지만 지은이 말에 나온 고급스러운 말이 아니더라도 책을 읽으며 저는 주인공과 조각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좋은 이야기인데.. 맞는 말인데.. 지금 내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 보니.. 나는 뻔히 그게 아님을 알면서도 소심2가 돌아오면 집안에 들여놓고 집밖에는 산책할 때빼고는 안 내보낼 작정이다. 산책을 좋아하는 소심2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유유자적 산책하는 모습을 무척이나 이뻐하고 좋아했는데.. 한 번 잃어버리고 나니.. 마음이 모질어진다. 다시는 잃고 싶지 않기에.. 뭐.. 이야기 속 주인공과는 다른 이야기일테지만.. 지금 나는 그렇다. 내가 볼 수 있는 곳에서 함께 행복하고 싶다. 늘 볼 수 있는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여지껏 그랬던 것처럼..ㅠ
p.237
"다른 이가 살아날 가능성을 모두 빼앗고 뜨거운 피를 얻어 먹으면 불사조가 될 거라고 믿었지. 하지만 불사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 모든 생명이 있는 것은 생명을 얻는 출발점에 섰을 때 죽음이라는 것도 함께 얻어. 더불어 행복과 불행이라는 것도 같이 얻지. 살아가며 행복과 불행, 둘 중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오로지 자신들의 몫이야. 제대로 살면 행복하지. 제대로 산다는 것은 후회하지 않는 삶이지.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마음을 열고 살면 그런 삶을 살 수 있어. 마음을 열면 나에게는 물론 모두에게 너그러워지고 여러 각도에서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생기거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원히 살 거라는 멍청한 생각들을 하지. 그러느라 죽을 때 꼭 후회해, 후회해도 소용없는 순간에 말이야. 아아 멍청한 것들. 어때, 너희들은 멍청한 부류에 속하지 않았나?"
나는 딱 중간 멍청이다. 행복과 불행 중 '과'를 택했다고 해야 하나.. 행복을 추구할 때는 자꾸 행복을 막는 것들이 더 크게 보여서 너무 힘들었다. 행복을 향해 가는 과정이 점점 힘들어져 굳이 꼭 행복해야만 하나~하는 원론적인 질문을 되뇌였다. 하지만 또 불행한 건 싫어서.. 뭐.. 불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나먀는.. 불행하지 않기 위해.. 제대로 살려고 노력한다. 내가 한 행동에 최대한 후회하지 않게, 지금 죽어도 이 순간이 아쉽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살려고 하는데도.. 가끔은 그래도 불쑥 후회가 될 때도 있다. 요즘은 조금 더 그렇기도 하고.. 마음 먹기에 따라 다른 거라는 머리는 너무나 잘 아는데.. 마음으론 100% 동화되지 못하니.. 종종 힘들어하는 중간 멍청이다.
자의든 타의든 생生이 있는 모든 것들은 죽음死를 피할 수 없다. 어쨌든 맞이한 그 죽음의 순간에서 마지막으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49일의 시간이 갖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 시간을 갖기로 했다면 그 시간동안 나는,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