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공명(共鳴)의 경험과 소외(疏外) 사이
행복을 일에서 찾는다.
먼 옛날 우리 선조들은 그랬을지 몰라도 산업사회의 기계부품으로 전락한 오늘날에는 더 이상 일에서 행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는 분업화와 관계가 깊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 혹은 소수의 협업에 의존하는 과거의 도제 시스템 혹은 장인 시스템하에서는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기쁨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를 저자는 “일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고 기쁨을 만끽하는 곳에서, 또한 하고 있는 일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재인식하는 곳에서, 그리고 한 일에 대해 인정과 존중을 받는 곳에서 일은 ‘공명(共鳴)의 경험’이 된다.1)”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분업화는 일하는 열정, 즐거움 등을 빼앗아 버린다. 이렇게 노동으로부터 소외(疏外)된 인간은 이제 행복하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일을 한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자신이 만든 노동 생산물과 어떤 관계도 맺지 못하는 노동 과정은 결국 소외감을 낳을 뿐2)”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우리는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을까?
멀티태스킹을 요구하는 노동 현실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 1943~) 교수는 “1980년까지 유효했던 과거 질서 하에서 자신의 노동과 삶을 서사적으로 구성할 수 있었던 노동자들에게 노동은 정체성을 확립해주고, 자기 가치를 전달해주고,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요소였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실물경제가 금융자본주의의 메커니즘에 종속3)”되면서 과거와 달리 자본투자자들이 기업에게 대규모 구조 조정과 인원 감축이라는 보여주기식 경영을 지속적으로 강요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 결과 “단기간의 신속한 업무 처리와 (업무부담의 증가에서 비롯된) 멀티태스킹이 등장했고 이는 현대 노동환경의 특징이 되었다.4)”
“노동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노동을 위해 있어서는 안 된다.5)”는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이미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이 되어 버린 셈이다.
번아웃 증후군, 일의 이중성이 주는 경고
“노동에 의해 공명(共鳴)이 형성되면 노동은 행동의 욕구와 원초적 기쁨을 만들어낼 수 있다6)”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과도한 책임과 업무 강도, 시간 압박, 모순적인 업무 지시 등으로 인한 ‘노력(소모)’과 물질적/비물질적 인정, 노동 안정성, 직업 발전의 기회 등을 통한 ‘보상(인정)’ 사이의 불균형7)”에서 오는 직무 스트레스는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협하며 번아웃 증후군8)에 시달리게 만든다.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번아웃 증후군은 개인의 문제로 간주되는 경향이 강하다. 때문에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는 기업의 의지는 약하다. 하지만 번아웃 증후군이 노동자의 건강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회적 관리가 필요하다.
헤르베르트 프로이덴베르거(Herbert Freudenberge, 1926~1999)는 번아웃 증후군을 예방하기 위해 “자신의 일에 지나치게 높은 목표와 이상, 성공에 대한 기대 등의 부담을 지우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외에도 건강한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운동과 취미 활동을 하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며, 단조로운 일을 피하되 요구가 너무 많은 일도 경계하라고 제안했다. 또한 업무량의 한계를 정해야 하고, ‘집’은 절대 직장이 되어서는 안 되며, 무엇보다 동료 간의 관계와 팀 분위기가 좋아야 한다고 조언했다.9)”
그러나 ‘신자본주의 문화’의 영향을 온전히 걷어내지 못한다면, 그의 예방책도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 아닐까.
1) 요하임 바우어, <왜 우리는 행복을 일에서 찾고, 일을 하며 병들어갈까>, 전진만 옮김, (책세상, 2015), p. 18
2) 요하임 바우어, 앞의 책, pp. 18~19
3) 요하임 바우어, 앞의 책, pp. 141~142
4) 요하임 바우어, 앞의 책, p. 144
5) 요하임 바우어, 앞의 책, p. 15
6) 요하임 바우어, 앞의 책, p. 226
7) 요하임 바우어, 앞의 책, p. 117
8) 헤르베르트 프로이덴베르거에 의하면 번아웃 증후군은 직장에서의 활력 상실과 소진, 업무와 고객에 대한 반감, 업무 효율성 상실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9) 요하임 바우어, 앞의 책, p. 104
어떤 철학자는 인생을 이렇게 정의했다. "인생이란 전반기에는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잃고, 후반기에는 그 잃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번 돈을 쓰는 과정이다." 정말 행복이란 무엇인지, 우린 왜 사는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말이다. 이 책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다룬다. 왜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일을 찾으면서도, 일을 하면서 병들어 가는 것일까? 취업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면서도 막상 취업하고 나면 그 일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눈을 두리번거려야 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일이 우리의 삶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주목한다. 노동으로 인한 건강 문제의 원인을 밝히고, 일과 조화를 이루는 행복한 삶의 방향을 고민한다. 이를 위해 일이 남들과 공감하고 발전해 나가는 유익한 경험인지 아니면 번아웃이나 소외로 사람을 고갈시키는 경험인지를 돌아본다. 또한 과거의 노동 환경은 어떠했는지, 노동의 가치는 어떤 사상적 맥락에서 형성되었는지, 일과 삶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 등 노동과 관련된 다양한 담론을 신경생물학적, 심리적, 철학적, 역사적 관점에서 고찰한다.
우리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새롭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노동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급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일이란 하나의 자아실현이라는 놀라운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일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 병을 얻게 할 정도로 위험성을 지닌 존재가 되어버렸다. 사실 기회와 파괴로서의 일의 이중적 본질은 구약성서에서부터 등장한다. 구약성서에서는 일을 일종의 선택(땅을 정복하라)일 뿐 아니라 벌을 받아 행하는 의무( 네 얼굴에 땀이 흘러야 빵을 먹을 수 있다)로 묘사되어 있다. 시대에 따라 그 강조점이 변화되어 왔지만 아무튼 일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노동이라는 행위의 근본적인 근거는 삶 자체"라는 아렌트의 말처럼 노동이 욕구뿐만 아니라 인간가능성의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시간제 근로제,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등 근로여건이 점점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의 내용면에서도 여러가지 일들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멀티태스킹 성격의 일이 많아진다. 서비스업 부문의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감정노동에 종사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진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일 자체에서 행복과 만족을 찾아가야 할 것인가? 동료애와 리더십, 건강관리, 스트레스 관리는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 노동과 여가의 적절한 조화는 어느 수준일까? 노동이 삶의 기쁨이 되고 여유를 가져다 주는 원천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들을 생각해 보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다섯명이 둘러앉아 산적 꼬치 끼우는 일을 하고 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친구 반찬가게를 돕기 위해 모인 친구들은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며 일을 하고 있다. 음악도 들으면서, 사는 이야기도 하면서 꼬치를 끼우니 더 재미있다. 꼬치는 맛살-고사리-마늘쫑-햄-고사리-마늘쫑 순서로 끼운다. 작업 중반 쯤에 친구들은 작업하는 방식을 바꿔보기로 한다. 다섯명이 재료 하나씩만을 맡아 꼬치를 돌려가며 끼우는 방식으로 바꾼다. 산적 꼬치 끼우기의 분업화다.
이리저리 재료를 찾지 않고 자기 것만 신경쓰면 되니까 작업은 단순하고 빨라졌다. 대신 오고가던 대화는 끊기고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어느 한 공정에서라도 어긋나면 전체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생각에 다들 말이 없어졌다. 이전에는 내 손에서 완성된 꼬치 하나를 얻기 위해 공을 들였지만, 이제는 꼬치의 전체 모양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냥 돌아오는대로 내 것만 끼우면 된다. 꼬치를 끼우는 손이 마치 기계처럼 느껴진다. 덕분에 일은 빨리 끝났지만 허탈감과 피곤함이 몰려왔다.
후배 녀석이 페이스북에 올린 이 웃지 못할 경험담을 보면서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 소외'를 떠올렸다. 마르크스는 공장제 기계공업이 가져온 분업화로 인해 노동자가 기계에 종속되어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노동 소외' 현상이 일어난다고 했다. 헤겔 또한 대공장 기계공업이 불러온 폐해를 보고 "공장이 노동계급의 불행 위에 세워지고 있다"라고 했다. 과연 이것이 19세기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만 국한된 이야기일까?
21세기 노동 현장, '테일러리즘'의 귀환
독일의 의학박사 요하임 바우어는 <왜 우리는 행복을 일에서 찾고, 일을 하며 병들어갈까>라는 책에서 21세기 노동세계의 급격한 변화속에서 '테일러리즘' 부활의 위험성과 이것이 노동자의 건강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경고한다.
미국 출신의 기술자인 프레데릭 테일러에 의해 창안된 '테일러 시스템'은 노동자를 기계 부품처럼 취급하려는 '과학적인' 시도였다. 각 공정마다 노동자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과 움직임을 찾아내 표준화하고 초시계를 이용해 작업시간을 일일히 계산했다. 이 방법에 따라 노동자들은 규정된 방식에 정확히 정해진 시간 단위로 일을 해야 했다. 신경생물학적, 심리적 배경에서 볼 때 테일러 전략은 인간의 욕구가 무시되었을 때 어떻게 자폐증적인 이상행동을 불러일으키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당연히 테일러 시스템이 도입된 작업장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폭동과 파업, 봉기가 끊이지 않았다. 결국 미 의회 조사위원회는 테일러 시스템에 대한 감사를 진행했고 1916년 작업장 내 초시계 사용이 금지되었다(137쪽)고 한다.
저자는 업무현장에 새롭게 도입되는 테크놀로지와 결합한 기업 구조조정의 결과로 인해 노동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고 본다. 노동자의 업무는 점차 파편화되고 장기간의 숙련보다는 단기간의 신속한 업무처리와 '멀티태스킹'이 등장한다. 직업은 저임금 임시 노동을 상징하는 '맥잡'(McJobs, McDonald's Jobs)의 형태로 점점 교체되고 필요할 때마다 짧은 수습기간을 거쳐 매우 한정된 시간에만 단기간으로 투입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저자는 이같은 변화를 '천박함의 승리'라고 표현했다.
이런 '천박함의 승리'(Triumph der Oberflachlichkeit)는 업무 경력의 단기화와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집단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동료 의식과 사회적 귀속감의 가능성까지도 침해한다. 직장 내 개인 관계는 피상적 수준에 머물러 있거나 소멸할지도 모른다. 또한 신경생물학과 의학의 관점에서 이 같은 변화를 보면 동기체계와 공감체계 모두 노동자들의 뇌에서 작동할 기회조차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런 환경에 놓인 직장인은 소위 'ADHD 노동 모드'로 전환된다. (145쪽)
오늘날 기업의 많은 경영자들은 노골적으로 테일러리즘을 도입하려고 애쓰고 있다. 새로운 테일러리즘을 도입하는 시도들은 이제 산업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고 서비스 분야와 간호, 노인 간병 등 의료분야로도 확대되고 있다. 테일러리즘을 적용한 병원에서는 간호사에게 어느 시간대에 어떤 의료 서비스를 환자들에게 제공해야 하는지를 분 단위로 지시한다. 또한 모니터 화면이나 다른 기계 장치가 일을 시키는 콜센터 상담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런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은 수치가 말해주듯이 끔찍하다. 최근 몇년 사이 업무가 가중되고 성과나 일정에 대한 압박이 가중되는 곳은 어디든 새로운 테일러리즘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인간성 뿐만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라도 테일러리즘에 맞서야 할 것"이라고(217쪽) 강조한다. 특히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정신 건강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노동의 질적인 측면을 개선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노동의 실제적인 적은 일하는 인간의 가치가 떨어지고 인간이 의미를 상실한 채 일하고 비인간적인 강압에 처하고 낮은 임금을 받거나 영혼이 없는 기계가 되어가는 상황이다. 그래서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의 노동을 논해야 한다. 사람을 적합하지 않은 노동 조건으로 밀어 넣으려는 사람들과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그런 노동 조건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노동이 주는 행복의 가능성을 파괴한다. 더불어 노동을 강압적인 어떤 것으로 내면화한 사람들, 또는 이미 일중독에 빠진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는 것도 그러한 행복의 가능성을 파괴한다. (228쪽)
노동자 파괴하는 '번아웃 증후군' 예방하려면
저자는 "건강과 일이라는 주제를 논할 때는 일 그 자체뿐만 아니라 경제를 작동시키는 여러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어떻게 현장에 배치되고, 고용주와 상사에게 어떻게 다뤄지는지를 거론해야 한다"(15쪽)고 주장한다.
이른바 '번아웃 증후군'은 '우울증'과는 다른 개념인데 이는 '노동'과 직접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크리스티나 매슬랙에 따르면 직무상 번아웃은 정서적 소진(emotional exhaustion), 비인격화(depersonalization), 자아 성취감 저하(low personal accomplishment)라는 세 가지 하위 요소로 구성된다. 직무상 번아웃 현상은 공업에서 서비스업으로의 산업구조 변화하는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번아웃 증후군'은 지속적인 정서적 소진, 일로 인해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전에 없는 감정적 혐오나 냉소, 일에 대한 심리적 이탈감이나 내적 거리감, 업무 효율성 상실의 증상을 보인다.
직장에서 번아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에게 과도한 업무량을 요구하지 말고 업무의 분담을 공정하게 해야 한다. 노동자의 업무 자율성을 보장하고 스스로 업무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또한 업무에 대해 정당한 인정과 보상, 피드백이 이루어져야 한다. 동료애와 정보공유,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지는 직무환경도 중요하다. 기업은 생산되는 제품에 대한 윤리적 책임 의식을 강조하고 노동자에게 수행하는 일의 도덕적 가치를 설명해야 한다.
번아웃 예방을 위해 개인 스스로 일에 대한 관점을 바로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는 번아웃 증후군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과 삶이 보조를 맞추어 균형있게 가도록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균형을 이야기 할 때 중요한 것은 바로 '업무와의 동일시'(Identifikation)다. 즉 '이 일에 얼마나 헌신해야 하는가?'와 '어느 정도까지 일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일터에서 중요한 것은 의무감과 거리 두기 능력 간의 균형이다. 업무 중에는 완전히 일에 몰입하고 틈틈이 휴식을 취하고 과도한 업무 부담을 떠안지 않고 초과 근무 시간의 한계를 정하고 필요하다면 NO라고 분명히 거부 의사를 표현하고 퇴근 이후에는 업무에 대한 생각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업무 태도다. 무리하게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건강상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순환계나 심장 장애, 번아웃이나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라면 제일 먼저 일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 (198쪽)
그렇다고 모든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으로만 취급할 수는 없다. '건강권'은 건강을 위협하는 사회적 요인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획득할 수 있는 '사회권'이다. 따라서 건강은 정의, 민주주의 가치와 떼어놓고 논할 수 없다. 번아웃 시대, 한국은 OECD 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 자살률 1위의 '헬조선'이다.
이 책은 일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 묻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일에 대한 새로운 생각,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노동은 생산 자원이면서 창의력 발현의 공간이자 자존감과 사회적 연대감의 원천이다. 저자는 노동의 본원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오늘날 변화된 노동 환경에서 동반되는 여러 위험성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노동은 여전히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만 일하는 방식에서만큼은 옛날에 비해 그다지 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번아웃 시대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노동과 분리될 수 없는 우리들이게 중요한 문제의식을 느끼도록 한다. 먼저 '번아웃'이란 무엇일까? 일에 대한 의무감은 있으나, 감정적으로 일과 괴리된 상태를 말한다. 즉, 일을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이 책은 그 원인을 신경생물학적 관점에서 찾고 있다.
인간이 육체적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짐에 따라 오늘날 노동의 성격은 '정신적'으로 변화되었다. 그에 맞게 스트레스 체계도 바뀌었다. '디폴트-모드 네트워크'가 그것이다. 이 체계에서 스트레스는 과제의 수행에서 직접적으로 비롯되지 않는다. 과제와 관련된 여러 상황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물론 상황을 직접 통제할 수 있다면 부하가 덜하겠지만, 불확실성이 만연한 현대 사회에세는 강도가 심하다.
이와 더불어 업무에 온전히 집중하기 힘든 환경(멀티태스킹을 요구하는 환경), 과도한 실적을 요구하는 성과주의, 개인주의 성향으로 주위 직원들과의 상호작용 저하, 첨담 기기의 보편화로 일과 일체가 된 환경도 노동의 질을 떨어뜨리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오늘날 노동과 관련된 논의는 고용안정성, 임금체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 공전중인 노동개혁도 이와 다르지 않다. 허나, 인간의 실존과 관련된, 우리 삶과 결코 유리될 수 없는 것이 노동이기에, 노동의 질을 사회적 차원에서 풀어갈 때가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노동환경 컨설턴트' 등 노동의 질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육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질 낮은 노동환경은 근로자의 정신 및 신체를 피폐하게 만들 뿐 아니라, 기업과 국가경쟁력을 저해한다. 국가의 행정권이 미시적 차원의 노동환경을 관리할 수 없기에, 각 산업별, 기업별로 맞춤형으로 노동환경을 관리할 수 있는 직업군 육성이 필요하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뒤로 하고, 실제로도 먹고 살기 위해 피할 수 없는 것이 노동인 만큼 반드시 읽어볼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다양한 학문적 시각에서 노동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눈이 새로 뜨이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