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있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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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있는 그림

고통과 환희를 넘나든 예술가 32인의 이야기

리뷰 총점 9.6 (4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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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대중문화 > 예술일반/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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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화가의 사연, 그림의 사연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n*****m | 2023.02.21 리뷰제목
어떤 이의 글에서 책에 관한 얘기를 읽고, 책을 사서 읽었는데, 그 사람이 받은 인상보다 더 좋은 느낌을 가지게 된 것 같다면... 고마움과 함께 그의 안목, 더불어 나의 안목(그를 믿었으니)에 뿌듯해진다. 이은화의 『사연 있는 그림』이 바로 그런 경우다.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그림에는 사연이 있다. 그림을 그린 화가의 사연도 있다. 화가의 사연이 그림의 사연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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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의 글에서 책에 관한 얘기를 읽고, 책을 사서 읽었는데, 그 사람이 받은 인상보다 더 좋은 느낌을 가지게 된 것 같다면... 고마움과 함께 그의 안목, 더불어 나의 안목(그를 믿었으니)에 뿌듯해진다. 이은화의 사연 있는 그림이 바로 그런 경우다.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그림에는 사연이 있다. 그림을 그린 화가의 사연도 있다. 화가의 사연이 그림의 사연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의 경우가 그렇다. 다 빈치가 (아마도) 조콘다 부인을 그리고, 그 그림을 평생 간직한 것은 다 빈치의 사연이지만, <모나리자라는 그림이 전 세계적 유명세를 타게 된 도난 사건은 다 빈치의 사연이 아니라 모나리자라는 그림의 사연이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라는 그림을 감상할 때(과연 그게 가능한지와는 별도로) 화가의 사연과 그림의 사연을 안다는 것은, 그저 앞사람의 머리 너머로 보이는 작은 그림 조각을 봤다는 것에 만족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렘브란트의 야경>(이 책에선 주로 야간 순찰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다)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의 원래 제목과 색감이 어땠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고, 이 그림이 어떤 운명을 거치며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에 위치하게 되었는지를 아는 것도 그 앞에 섰을 때의 막대한 감흥에 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실제 나의 경험이다). 그림을 그린 화가에도 희노애락이 있었고, 그림에 그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그림이 거쳐온 사연마저도 희노애락 비슷한 것이 있다. 우리는 그림에서 물감의 흔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연을 읽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가령 이런 것이다. 니키 드 생팔이라는 화가가 있다(솔직하게 이 책 전에 나는 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들어본 적이 있었을지라도 나는 기억을 못한다). 이 책에 소개한 다섯 명의 여성 화가 중 한 명인 그녀는 사격 회화(Shooting Paintings)’라는 분야를 개척했다고 한다. 물감 주머니가 숨겨진 흰색 부조 위에 총을 쏘아 물감이 튀고 흐르도록 하는 추상화다. 행위의 폭발성과 작품의 의외성이 한데 어우러지는 셈이다. 그런데 그걸 이라는 매체에 주목을 하고, 색감을 감상하는 것만이 그녀의 그림을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의 사연이 이야기한다. 그녀는 사격 회화를 시작하던 해에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1961년 난 아버지를 향해 총을 쏘았다. (...) 내가 총을 쏘는 이유는 총 쏘기가 재미있고 나를 최고의 기분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재미로? 그게 아니다. 아버지를 쏜다? 그렇다면 패륜? 혹은 정신학적 의미? 역시 아니다. 그녀는 열한 살에 아버지에게 당했다. 그녀에게 총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이자 복수의 표출이었던 것이다. 또한 자기 치유의 방식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그녀의 행위와 그림은 다시 보인다. 사연의 힘이며, 의미다.

 


 

 

서른 두 명의 화가와 그들의 사연을 다루고 있다. 몰랐던 화가에 대해서 알게 된 것도 즐거운 책읽기로 이끌었지만, 알고 있는 화가의 몰랐던 사연은 더욱 흥미롭다. 화가 한 명 한 명의 인생을 모두 추적하지도 않고, 그림 하나를 세세히 분석하지도 않았지만, 화가의 삶이 박히고, 그림의 의미가 다가왔다. 그림을 보는 눈이 조금은 깊어졌다. 더불어 한 사람의 인생이 표출되는 방식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14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4 댓글 2
종이책 사연이 있는 그림 평점8점 | YES마니아 : 로얄 j*****3 | 2023.05.12 리뷰제목
<사연있는 그림>이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듯한 표지는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가 아내를 그린 것으로 [창가의 여인]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편안한 한 때를 보내는듯도 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는듯한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저자의 설명은 이러했다.   결혼 후에도 스케치 여행으로 수시로 집을 비웠던 남편 때문에 아내는 늘 외로웠을 터다. 그런 아내에 대한 미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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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있는 그림>이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듯한 표지는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가 아내를 그린 것으로 [창가의 여인]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편안한 한 때를 보내는듯도 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는듯한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저자의 설명은 이러했다.

 

결혼 후에도 스케치 여행으로 수시로 집을 비웠던 남편 때문에 아내는 늘 외로웠을 터다. 그런 아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프리드리히는 창가에 선 아내의 쓸쓸한 뒷모습을 화폭에 정성스럽고도 곱게 담았다. 어쩌면 고독했던 화가 자신의 은유적 자화상일 수도 있다. -p65

 

프리드리히는 부모와 형제를 어릴 때 모두 잃었는데, 그림이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제였다고 한다. 그런 화가의 삶을 알고 그림을 보면 고독, 절망이 느껴지면서도 반면, 그만큼 삶의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도 보여졌다. 프리드리히를 포함하여 서른두 명의 화가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고통과 환희를 넘나들며 명작을 탄생시킨 예술가들의 사연을 통해 독자들도 삶의 영감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말하는 저자는 어떤 사연들을 들려줄까?

 

스페인 화가 호아킨 소로야의 그림을 좋아한다. '영감을 찾아 주기적으로 뮤즈를 바꿨던 피카소와 달리, 소로야는 평생 한 사람의 아내와 자식 바라기로 살았고, 고향 바다와 가족이 영감의 원천이었다.'라는 말 때문에 더욱 좋아졌다. 너무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한걸까? 명성이 높아져 해외 여행이 잦았는데, 여행중에 아내를 그리워하며 쓴 편지가 800여통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따뜻하고, 밝고, 다정하다. 

 

 

제 4회 인상파 전시에도 참여하고, 미국 여성화가 최초로 프랑스 인상파 그룹의 멤버가 되기도 했던 메리 카사트. 카사트는 모성애나 여성들의 소소한 일상을 다룬 그림들을 주로 그린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대형 벽화도 그렸다고 했다.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컬럼비아 박람회를 기념하는 '여성 빌딩'의 벽화로 가로만 17m가 넘는 대작이었다. '여성들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지식을 쌓고 과학 발전에 기여하고, 예술을 창조하고 명성을 추구하는 인간이란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라고 말하는 그 벽화는 박람회 직후 사라졌다고 했다. 못내 아쉬운 맘이 들었지만, 카사트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벽화는 그 시대의 다수에게는 인정받지 못한듯하지만, 몇몇 사람들의 마음은 건드렸을거라고 믿고싶다. 

 

 

리처드 롱(1945~)은 걷는 것을 예술화 시켰다고 했다. '도보여행이 끝난 후 그 기록을 사진과 텍스트,지도 등으로남겨서 전시하거나 여행지에서 가져온 돌멩이나 석탄, 나뭇가지같은 구체적인 증거물을 전시장 안에서 설치 미술로 보여준다.' 고 하는데, 이것이 과연 예술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걷기와 자연에 대한 사유를 이끌며 질문하게 만든다는 롱의 작품은 내게는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새로운 시각을 만나고, 한 번 고민해볼 시간을 갖는 것으로도 의미있는 시간이었다라고 할 수 있겠다. 

 

 

익히 알고 있던 화가들의 사연들에서는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포인트들을 만났고, 새로운 사연에서는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받기도 했다.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고, 무한한 창조력에 감탄하면서, 편협한 생각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경험을 했다. 그런 경험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왜 책을 읽고, 전시회에 가서 미술품을 보고, 음악을 듣는 것일까?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결국 내 삶에 자양분을 얻기위함이 가장 큰 것이 아닐까싶다. 예술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 

 

책에서 좋았던 점 한가지를 덧붙인다면, 미술품이 소장되어 있는 23개의 미술관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술관 자체에 관한 글을 읽을 기회가 그다지 없었기때문에 1페이지의 짧은 분량이지만 아주 좋았다. 제프 쿤스의 강아지가 문지기로 있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모네의 수련 연작을 감상할 수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 크뢰위에르와 아나의 그림등 스칸디나비아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스카겐 미술관등 가고싶은 미술관들이 가득했다. 사연있는 그림과 함께 미술관 투어까지 함께했던 시간, 좋아. 땡큐!  (데스노트 류크 버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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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집에서도 흥미롭게 명화 감상하는 책, 사연있는그림 평점10점 | k*******7 | 2023.02.02 리뷰제목
오랜 세월이 흘러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명화 그림, 그 그림속에는 참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그림에 얽힌 갖가지 이야기들을 알고 그림을 본다면 참 많은것들이 달라지게 된다. 알고 보면 더 재밌다는건 익히 증명된 사실!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고흐, 고갱, 다빈치, 드가, 앤디 워홀, 모네, 마네, 몬드리안, 세잔등의 그림속 모델이나 배경이 된 이야기는 물론이거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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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이 흘러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명화 그림, 그 그림속에는 참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그림에 얽힌 갖가지 이야기들을 알고 그림을 본다면 참 많은것들이 달라지게 된다. 알고 보면 더 재밌다는건 익히 증명된 사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고흐, 고갱, 다빈치, 드가, 앤디 워홀, 모네, 마네, 몬드리안, 세잔등의 그림속 모델이나 배경이 된 이야기는 물론이거니와 도난당하거나 파손되거나 생각지 못한 것들이 미술 작품이 되는 등의 갖가지 사연들을 들려주는 이 책, 내가 잘 아는 그림이라면 생각지 못한 사연에 더욱 호기심이 생기고 그림을 잘 모르더라도 미스터리하고 흥미로운 사연에 그림에 대한 재미를 찾게 해주는 책이다.

세상 가장 비싼 가격에 사서는 자신이 죽으면 함께 묻어 달라고 했다는 그림, 모델이 누구인지, 어째서 눈썹을 그리지 않았는지, 온갖 추측이 난무한 여전히 신비로운 르네상스의 걸작!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안에 걸렸다가 그림 주인의 실수로 왼쪽 팔뚝이 파손되어 돈을 날릴뻔 한 그림! 그림을 배운 적도 없지만 자신은 최고의 화가라고 당당하게 외치던 화가의 꿈을 이루게 해준 그림! 화가가 작게 써 놓았을 정도로 미쳐야만 그릴 수 있다는 그림! 이미 눈치 챘겠지만 한번쯤은 들어본 사연들이기도 하다.

일상의 것들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처음엔 호된 악평을 듣게 되고 인정받지 못하지만 결국엔 미술사에까지 영향력을 미친 앤디 워홀, 여성은 화가로 인정 받지 못했던 시대에도 당당하게 화가로 이름을 떨치고 멋진 그림을 남긴 엘리자베트비제르뷔룅, 변기를 예술작품으로 만든 마르셸 뒤샹,죽음을 결심하고 걸작을 남기고 죽으려 했지만 죽지 못했던 고갱등 시대와 삶을 거스르는 듯 하지만 결국엔 미술사의 한획을 긋게 되는 화가들과 그림에 얽힌 이야기들도 참 흥미롭다.

화가의 생애와 유명한 명화에 대한 사연과 함께 명화들이 소장되어 있는 미술관에 대한 소개까지 담고 있어 유익한 책이다. 멀리 미술관을 가지 않고도 그림감상을 즐겁게 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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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사연 있는 그림》 - 명화가 속삭이는 비밀에 귀 기울이다! 평점10점 | s******g | 2023.02.17 리뷰제목
제목: 사연 있는 그림 지은이: 이은화 펴낸 곳: 상상출판     누군가에 관한 첫인상 혹은 느낌이 그 사람의 사연을 알게 된 후 바뀐 경험, 해보신 적 있나요? 어떤 사연을 지녔는지에 따라, 대상에 관한 감정이 더 좋아지기도 나빠지기도 하지요? 결과가 어떻든, 일단 '사연'에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사물에도 그런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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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연 있는 그림

지은이: 이은화

펴낸 곳: 상상출판

 

 

누군가에 관한 첫인상 혹은 느낌이 그 사람의 사연을 알게 된 후 바뀐 경험, 해보신 적 있나요? 어떤 사연을 지녔는지에 따라, 대상에 관한 감정이 더 좋아지기도 나빠지기도 하지요? 결과가 어떻든, 일단 '사연'에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사물에도 그런 사연이 있기 마련인데요. 오늘은 드라마틱한 사연을 지닌 그림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고통과 환희를 넘나든 예술가 32인의 이야기와 더불어 서양 미술사에서 크고 작은 사건을 겪은 작품을 소개하는 책 《사연 있는 그림》을 함께 만나보시죠.

 

 

 

 


 

 

 

 

100년을 앞서간 명작이 화장당할 뻔한 아찔한 사연!

 

 

빈센트 반 고흐의 말기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가셰 박사의 초상》은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합니다. 초상화 속 주인공인 가셰 박사는 고흐를 마지막까지 돌봐준 정신과 의사이자 친구지요. 고흐는 똑같은 제목과 크기, 구도로 가셰 박사의 초상화 두 점을 완성합니다. 근심 가득한 우울한 표정은 비슷하지만, 배경과 탁자 위를 살펴보면 분명 차이가 있는 두 작품. 같은 시기에 그려진 이 작품들의 운명은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첫 번째 그림은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다가 1990년 약 900억 원(현재 가치로는 약 1,770억 원)의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며 일본 제지의 사이토 료에이 명예회장의 손에 들어갑니다. 두 번째 그림은 가셰 박사가 소장하다가 후손들이 훗날 정부에 기증하여 오르세 미술관이 보관해왔죠. 어마어마하게 벌어진 그림값의 격차도 놀랍지만, 첫 번째 그림의 주인이 된 회장의 유언이 더 놀라웠습니다. '내가 죽거든, 이 작품을 함께 화장해라.' 1996년 사이토 회장 사후 이 그림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입니다. 유언처럼 화장당한 걸까요? 만약 당신이 회장의 유족이라면, 천문학적인 액수의 그 그림을 태울 수 있었을까요?

 

 

 


 

 

 

명화와 한층 가까워지며,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 엄청난 명성과 인기를 누리던 그는 《야간 순찰》이란 작품을 기점으로 서서히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야간 순찰》 역시 끔찍한 수모를 피할 수 없었는데요. 1715년 암스테르담 시청에 설치하며 벽에 맞춰 그림 일부가 잘려 나갔고, 불만을 품은 사람들로부터 테러의 대상이 되며 심하게 훼손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공개된 장소에서 복원 중인 이 작품은 제작 당시엔 화가에게 가장 뼈아픈 작품이었지만, 지금은 수많은 사람이 간절한 마음으로 아끼고 무사히 복원되길 바라는 귀한 존재죠. 이 책은 여러 화가가 겪은 인생의 고난과 역경, 희로애락, 성공담과 함께 그들의 작품에 담긴 특별한 사연을 소개합니다. 때론 잔잔하게 때론 폭풍처럼 몰아치는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명화와 한층 가까워지고 삶의 의미를 되돌아본 시간. 그림과 속삭이는 은밀하고 사적인 대화, 함께 나눠보실래요?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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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사연있는 그림]을 읽고 평점10점 | s****a | 2023.10.08 리뷰제목
사연 있는 그림   이 책은 대표작을 통해 살펴보는 위대한 예술가 32인의 삶과 예술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용하기 짝이 없는 미술, 깊이 있게 알 필요가 뭐가 있냐고, 그러면 이렇게 답한다. 예술을 알아간다는 건, 허기진 영혼의 곳간을 채워나가는 일이라고. 세상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이해하고 궁극에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1. 빈센트 반 고흐 1853-1890,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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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있는 그림

 

이 책은 대표작을 통해 살펴보는 위대한 예술가 32인의 삶과 예술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용하기 짝이 없는 미술, 깊이 있게 알 필요가 뭐가 있냐고, 그러면 이렇게 답한다. 예술을 알아간다는 건, 허기진 영혼의 곳간을 채워나가는 일이라고. 세상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이해하고 궁극에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1. 빈센트 반 고흐

1853-1890, Dutch

극심한 신경쇠약에 시달리던 그는 1888.12. 고갱과 심하게 다툰 후 한쪽 귀를 잘라버렸다. 한 달이 지나도 증세가 나아지지 않자스스로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1년 후 퇴원해 동생의 권유로 오베르에 있는 정신과 의사, 가셰박사를 만난다. 이후 고흐는 가셰박사에게 온전히 마음을 역고 의지한다. 박사 역시 그림그리기가 고희의 건강회복에 도움이 될 거라 판단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 결과 오베르에 머물렀던 생애 마지막 70여일 동안 80점이 넘는 작품을 왔성했다.

 

2. 앤디 워홀

1928-1987, American

워홀은 1964년 뉴욕 개인전에서 수세미 브랜드 ‘브릴로’의 포장상자를 여러 개 만들어 전시했다. 오리지널 브릴로 상자는 1961년 화가 제임스 하비가 생계를 위해 상업 디자인 한 것을 상업 미술가 출신 워홀이 술수 미술가의 상업 디자인을 다시 순수 미술로 가져와 팝아트로 재탄생시켰다.

브릴로 상자를 보고 비평가 아서단토는 ‘예술의 종말’을 고했다. 이제 심미적 즐거움의시대가 끝나고 예술가가 부여한 의미가 중요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말했다.

1969년 1000달러 미국 영화감독 리잔느 스카일러가 장난감 겸 커피테이블로 사용하기 위해 구입하였다. 2010년 300만 달러, 40년간 3000배가 되었다.

캠벨 수프캔은 1962년 딜러 어빙블룸이 1000달러에 샀다. 1985년 일본의 한 에이전트 1600만달러 (23년 160배가 되었다. )1995년 모아(뉴욕현대미술관)이 1450만 달러에 구입한다.

마릴린 먼로 초상 2022년 1억 9500만3만달러

워홀은 ‘팩토리’를 통해 수만 점 이상의 작품을 찍어냈음에도 불구하고 비싼 값에 팔린다. 그것은 단순히 그림값이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혁신적인 생각과 그것을 구현한 워홀이란 이름의 브랜드 가치인 것이다.

 

3. 엘리자베트 비내 르브룅

1755-1842, French

1755 파리에서 태어나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워 10대 초반부터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렸고 열다섯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대신해 그림으로 가족을 부양함에 충분했다. 상업활동을 위해 생뤼크 아카데미에 등록해 활동, 1776년결혼, 4년 후 딸 쥘리를 낳았다.

1786, 딸 쥘리를 안고 있는 자화상으로 비난을 받는다 이를 드러내고 웃는 그림을 그렸기 EOans이다. 미모, 사교성, 패션감각 eur분에 궁정화가가 된 것이 스물 넷, 마리 앙투어네트 왕비의 공식초상화가가 도고 스물여덟에 보수적인 왕림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다.

1787년 왕비의 초상화는 전통적인 왕실 초상화의 규범을 완전히 깨고 어린 자녀들에게 둘러싸인 자애롭게 가정적인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렸다.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외국으로 피신, 12년 동안 홀로 아이를 키우며 세계 각지를 떠돌았다. 명성이 해외까지 지지했으므로 초상화를 그려 돈을 벌었고, 10개 도시에서 미술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했다. 86세 1842년에 눈을 감았다.

800점이 넘는 작품을 남긴 르브룅은 곰브리치(서양미술사 저자) 초판에는 없었고 1994년에 추가되어 딱 1명의 여성화가가 있을 뿐이다.)

4. 렘브란트 판 레인

1606~1669Dutch

<야간순찰> 그림 속 무장 군인들은 암스테르담 시민 민병대였던 클로베니르 부대원들로, 그들의 주문으로 제작된 단체초상화다. 강렬한 조명을 받고 있는 두 사람은 프란스 반닝코크대장과 빌럼 판라위텐뷔르호 부대장이다.

두 사람의 지휘 아래 부대원들이 막 출격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으로 밤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다. 어두운 광택제 때문에 밤으로 오인하여 붙은 제목이다. 1940년 300년 동안 그림을 덮고 있었던 광택제와 먼지를 벗겨내자 한낮의 햇빛 아래 진군하는 부대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래도 사람들은 ‘야간순찰’ 또는 ‘야경’이라 부른다.

당시 사람들에게 이 그림은 너무도 실망스럽고 충격적이었다. 당시 단체 초상화는 일렬로 나란히 서는 무미건조한 구도가 일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마치연극 무대의 한 장면처럼 인물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화면을 채웠다. 렘브란트는 당시 명성이 최고조에 달했지만 이 그림 이후 초상화 주문이 딱 끊기면서 개인파산과 생활고도 겪게 된다.

<야간순찰>의 수모

1715년 암스테르담 시청으로 옮기며 윗부분, 왼쪽이 잘려나갔다.

1885년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개관 이후 반달리즘에 수차례 시달린다.

2019년 대규모 복원작업 공개적으로 진행되었다.

 

5. 레오나르도 다 민치

1452~1519 Italian

1911년 8월 21일 루브르박물관 명화 한 점이 사라져 박물관 폐관, 국경봉쇄

<모나리자>리자부인, 라 조콘다

모델은 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부인이라는 조르조 바사리의 주장이 인정된다.

부인의 본명은 리자 마리아 게라르디니이다.

<모나리자>에 관한 질문들...

다빈치는 이 그림을 주문자에게 팔지 않고 프랑스로 가져가 죽을 때까지 곁에 두었다.왜 그랬을까?

눈썹이 그려지지 않은 이유는?

후경은 왜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풍경을 그려 넣었을까?

오른쪽, 왼쪽, 풍경은 왜 연결되지 않는지?

도난 사건은 1913년 12월11일 이탈리아 화상 알프레도 제림이 받은 편지, 이탈리아 미술관에 그림을 팔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범인은 빈센트 페루자. 루브르 박물관 작품 보호용 유리벽 제조 노동자로 작업 중 액자를 떼어내 코트 속에 숨겨 나왔던 것이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한 후 파리로 돌려보냈다.

 

6.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1774~1840 German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파교하는 풍경화가

추자연적인 풍경 속에 인물을 작게 그려 넣는다. 거의 뒷모습만

그는 왜 평생 뒷 모습만 그렸을까? 모델은 누구일까?

사실 모델의 정체는 그리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는 보편성과 익명성을 부여하고자 의도적으로 인물의 뒷모습을 자주 그렸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그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도 가족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연이은 가족의 죽음은 평생의 상처와 우울증을 남겼다. 그에게 그림과 여행은 우울증과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dLT는 유일한 치료제였다.

 

7. 폴 고갱

1848~1903 French

증권거래소 직원이었던 아이 다섯의 가장이었던 그가 과감히 직장을 그만 두고 전업작가가 된다. 생활고로 아내와 자녀들은 덴마크로 떠나고 1891년 평화와 고요함을 위해 단순한 예술을 하고 싶다며 식민지 섬 타히티로 떠난다. 섬생활 예상과 달라 2년만에 60여점의 작품을 가지고 돌아오지만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린다. 파리에서의 2년간 또다시 좌절을 느끼고 타히티로 돌아온 그는 여전히 가난에 시달렸고, 골절상의 후유증, 젊은 시절 걸렸던 매독의 후유증으로 몸은 망가질대로 망가졌다. 딸의 죽음 소식까지 더해져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할 결심을 하고 마지막 걸작을 남기기로 결심한다. 그 작품이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이다. 그의 자살은 실패하고 마지막까지 작품을 남기고 1903년 55세 사망한다.

 

8. 호아킨 소로야

1863~1923 Spanish

클로드 모네가 ‘및의 대가’라 불렀던 유명한 스페인 화가,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국제적은 거장이 된 피카소와 달리 스페인 국내에서만 머물면서 고향인 발렌시아 해변 풍경과 가족 그림을 즐격그렸다.

소로야는 늘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몸은 계속 해외로 떠나야 했다. 1913<스페인 비전>을 그리기 위해 뉴욕으로 향했고, 대형 벽화 14점을 완성하는 데 무려 6년이나 걸렸다. 그동안 미국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의 초상화를 그려 명성을 떨쳤다. 무리한 작업에 건강에 적신호가 올 때마다 휴식을 위해 발렌시아로 오지만 거기서도 쉬지 않고 붓을 들었다. 1919년 벽화 제작을 마치고 귀국했지만 뇌졸중으로 쓰러져 3년 후 죽음을 맞았다. 소로야와 가족이 살던 마드리드 저택은 국립 소로야 박물관이 되었다.

 

9. 제프쿤스

1955~ American

100cm 정도 철강으로 된 xhRL. 100억원이 넘는다.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이 된 걸까?

 

10. 호안 미로

1893~1983 Spanish

미로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의식이 혼미한 상태에서 본 환영을 화폭에 옮긴 것이 <어릿광대의 사육제>이다. 이는 절망 속에서도 굽히지 않는 성공을 향한 작가의 포부를 드러낸 것이다.

 

11. 파블로 피카소

1881~1973 Spanish

첫 번째 뮤즈 페르낭스 올리비에 <아비뇽의 여인들>

세 번째 뮤즈 올가 코클로바(첫 부인 아들 파올로으 ldjaak)사실주의 그림

네 번째 뮤즈 마르테레즈 발터 <꿈>

다섯 번째 뮤즈 도라마르 <게르니카>, <우는 여인>

<꿈>은 카지노 벽에 걸려있던 그림은 스티븐 코언에게 팔릴 거였으나 카지노 주인 스타윈의 실수로 15cm정도 무참하게 찢겼다. 7년후 감쪽같이 복원하여 다시 경매장에 나온 <꿈>은 결국 1억 5500만 달러에 EH다시 스티브 코언에게 넘어갔다.

 

12. 니키 드 생팔

1930~2002 French and American

사격회화로 파리 미술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른 결혼과 남편의 외도 등으로 흥분히 폭행을 한 후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마음 치료를 위해 시작한 그림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유복한 가정이었지만 엄한 가정 교육을 받아 상처가 된 데다 11살에 친아버지로부터 강간을 당한다. 두 남편의 바람둥이 기질 등으로 인한 그녀의 고통과 분노를 예술로 승화시켜 조각, 공공미술의 영역, 회화 등 자유자재로 넘나들었을 뿐 아니라 무대 디자인, 향수, 가구 디자인, 영화 제작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다재자능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13. 에드가르 드가

1834~1917 French

그는 여성만을 그렸으며 힘들고 피곤하고 고통스러움을 표현했지만 관능적인 여성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그렸다.

 

14. 피에르 오퀴스트 르누아르

1814~1919 French

르누아르는 가난 때문에 열세 살에 학교도 중퇴하고 도자기공장에 다녀야했다. 도자기 공장 -색체 사용법, 부채에 그림그리기, 점포 장식일을 하며 꿈을 키워나갔다. 1862년 21살에 국립미술학교에 (에콜 데 보자르) 입학한다. 1868년 처음으로 그림이 살롱전에서 주목 받았으나 고전주의 살롱전은 젊은 화가들의 혁신적인 그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874년 4월 고전주의에 대항하여 동료작가들과 독립전시회를 열었다.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

그누아르, 클로드 모네, 카미유피사르, 에드가르 드가, 폴 세잔, 알프레드 시슬레,베르트 모리조 등 총 30명 165점 전시 - 하지만 홍평, 이 시기 르누아르는 <몰랭드 라 갈레트무도회>를 완성한다.

[자연광 아래서 및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인물들과 무도회장의 시끌벅적한 풍경을 생생하게 화폭에 옮기고자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에 따라 미묘하게 변하는 색을 포착해 빠른 붓놀림으로 화면을 채워나갔다. 아는 대로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 그렸다 냉혹한 현실에 포기하지 않고 인상파 전시회에 계속 참여하여 인생파의 주요 화가로 떠오르자, 유명 평론가와 지지와 상류층 인사들의 작품 구매는 르누아르의 고된 인생에 찬란한 봄을 선사했다.

말년 20년을 관절염으로 고생하면서도 그림그리기는 쉬지 않았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

 

15. 클로드 모네

1840~1926 French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

물을 좋아해 평생 센강을 따라 이사를 다닌 모네. 43세에 지베르니로 이사화 43년을 살았다. 1890년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임대해 살았던 집과 따을 샀고 정원사를 고용 연뭇과 다리가 있는 정원을 만들었다. 처음엔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그의 작품과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갔다.

 

16. 에두아르 마네

1832~1883 French

위대한 주제가 아닌 동시대인의 일상을 빠른 필치로 묘사한 그림들을 그렸고, 원근법 대신 빛의 강약으로 표현한 그의 새로운 화법은 인상주의 미술을 태동시킨다.

 

17. 베르트 모리조

1841~1895 French

어머니는 로코코 미술의 대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종손녀, 그의 후손답게 23세 파리 살롱전에 입선 후 여섯 번이나 통화하며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마네를 만난 이휴 진보적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했다.

“마네의 작품 중 베르트 모리조으 초상화를 능가하는 작품은 없다.”마네가 그린 <제비꽃 장식을 한 베르트 모리조>를 두고 한 말이다. 마네의 남동상과 결혼한다.

 

18. 앙리 루소

1844~1910 French

앙리 루소는 미술을 배운 적도 타고난 소묘 실력도 없다. 파리 세관 공무원으로 일한 그는 49세 은퇴 후 전업 작가가 되었다. 마흔 살부터 그림 그리기 시작, 전시회에 매년 참가하며 노력했다. 예순에 정글 그림에 집중한 결과 6년동안 총 26점의 정글 그림을 완성했고 마지막 <꿈> 작품은 1910년 파리 엥데팡당전에서 동료화가와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해 9월 세상을 등졌다.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19. 마르셀 뒤샹

1887~1968 American, Boen French

그는 작품 자체보다 미술가의 생각이나 선택행위가 더 중요하다며 망막의 예술이 아닌 지성의 예술을 강조했다.

“메트씨가 <샘>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었건 아니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흔한 물건 하나를 구입해 새로운 제목과 관점을 부여한 뒤그것이 원래 가지고 있는 기능적 의미를 상실시키는 장소에 갖다 놓은 것이다. 결국 그는 이 오브제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 낸 것이다.”

36세 돌연 은퇴, 체스 게임에 몰두하기 위해서, 미술가로서 활동 기간도 짧고 작품수도 많지 않지만 뒤샹의 이름은 피카소와 동급으로 거론된다.

 

20. 에드바르 뭉크

1863~1944 Norwegian

뭉크는 <절규>라는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걸까?

어린 시절 경험했던 가족의 죽음, 질병에 대한 공포, 지독한 외로움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예술의 주제이자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예술은 그에게 고통과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는 유일한 치유제였다.

 

21.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

1851~1909 Danish

스카겐 화가들의 리더, 밁고 푸른 바다로 유명한 스카겐은 덴마크 최북단에 있는 어촌 마을로, 화가들이 모여들어 예술공동체를 이루었다. 이들이 ‘스카겐 화가들’이다.

스카겐 사람들의 행복한 일상을 그리며 스카겐을 우명하게 만들었다.

 

22. 에드워드 호퍼

1882~ 1967 American

호퍼의 그림 속엔 고독하고 쓸쓸한 사람들이 유독 많다.

세월을 견뎌야했다. 동료 화가 조지핀 니비슨과 결혼하면서 찬란한 햇빛이 그에게 비쳤다. 갤러리에 소개, 작품관리, 판매, 여행을 계호기하거나 새로운 창작 환경을 만들어 주기까지 평생 영감을 주는 뮤즈로 모델이 되어 주었다.

아내의 내조 덕에 가장 미국적인 사실주의 화가로 명성을 얻었다. ‘위대한 예술은 예술가의 내면의 삶을 겉으로 표현하는 것’ - 평생 내면 깊이 자리한 고독과 외로움을 화폭에 담았다.

‘위대한 예술은 예술가의 내면의 삶은 겉으로 표현하는 것’-평생 내면 깊이 자리한 고독과 외로움을 화폭에 담았다.

 

23.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1416~1492 Italian

프란체스카가 그린 우르비노의공작 부부 초상화는 여느 것들처럼 미화해서 그려지지 않았다. 공작의 매부리코는 강조되고 부인은 창백하다 공작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는 용병으로 성공하여 우르비노 공국을 세우고 공작이 되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빛’이라 불릴 정도로 이날리아 문예부흥에 기여했다. 많은 그림을 주문했고 작가들을 후원했으며 이탈리아에서 가장 zs 종합도서관을 설림해 수많은 필사본을 남겼다. 아내인 바티스타 스포르차는 어렸을 때부터 인문교육을 받았으며 라틴어에도 증통해 지성과 덕을 갖춘 여성으로 칭송받았다. 두 사람은 매우 행복하 srughs 생활을 goTEk. 바리스타는 결혼 11년 동안 딸 여섯을 낳은 후 1472년 첫 아돌 퀴도발도를 낳은 후 6개월 후 사망했다. 페데리코가 전쟁에서 대승하고 돌아와KT을 때 득 남의 기쁨과 아내를잃은 슬픔을 동시에 겪어야 핬다. 바티스타가 죽은 이후 그려졌을 초상화

아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에 창백하게 페테리코는 구릿빛피부(전장의 군인), 매부리코(전장의 영광의 상처),옆면초상(마상시합 때 잃은 오른족 눈)

옆면 초상은 인물을 신화적이고 영웅적으로 묘사할 때 선호되었다.

초상화 뒷면에 갑옷을 입은 페데리코가 흰말 두 마리가 끄는 마차를 타고 ‘명예의 승리를 향해 가는 모습을, 부인의 초상 뒷면에는 바티스타가 유니콘 두 마리가 이끄는 마차를 타고 정숙함의 승리로 나아가는 장면을 그려 넣어 마무리하였다.

프란체스카는 이렇게 권력자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예리한 눈과 이를 화폭에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역량을 통해 화가로서의 부와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24. 메리 카사트

1844~1926 American

카사트로 인해 수동적으로 묘사되던 여성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주체이자 ‘보는자’로 표현되었다. 쉰 살에 그린 벽화<현대 여성>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남성과 마친가지로 지식을 쌓고 과학 발전에 기여하고, 예술을 창조하고 명성을 추구하는 인간으로 묘사된다. 벽화는 박람회 직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주제였기 때문이다.

 

25. 폴 세잔

1839~1906 French

20대 중반부터 살롱전에 출품했으나 계속 떨어졌다. 18년 도전 43에 처음 입상,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공모전에 관심을 두지 않고 개인전도 56에 처음 열었다. 고향으로 내려가 칩거하며 자신만의 독자적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스스로 실패한 화가라는 자괴감에 빠져 살았다. 자신의 부족함을 ‘관찰’로 채우고자 했다. 세잔은 표정도 움직임도 없이 사화처럼 가만히 있으라고 요구하니 모델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 이렇게 까탈스러운 화가의 요구를 군소리 없이 들어줄 모델은 사과 밖에 없었다. 세잔이 40년 동안이나 사화를 그리고 또 그린 이유다.

그의 작품은 두 눈을 이용해 위, 아래, 옆 등 여러 시점으로 본 사물의 이미지를 한 화면에서 조화롭게 배치하고자 했다. 이렇게 복수시점으로 단순화해서 그린 그의 그림은 당대에는 조롱과 비판이 이어졌다. 그의 말년에는 ‘목욕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그렸는데 사과 정물처럼 과감하게 단순화한 인물과 풍경을 한 화면 안에 조화롭게 배치하였다. 죽기 전까지 7년을 매달린 <대수욕도>는 입체파 형성에 큰 영향을 주어 2년 후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을 탄생시켰다.

그는 ‘현대 미술의 이버지’가 되었다. 사과하는 일상의 무미건조한 주제를 위대한 미술의 세계로 끌어올린 세잔, 그만의 예리한 눈과 오랜 관찰의 성실함은 현대 미술을 향한 새로운 문을 활짝 열어졌혔다. 그 문의 열쇠가 사과였던 것이다. 세잔의 사과는 그래서 위대하다.

 

26. 이브클랭

1928~1962 French

클랭은 니스 바닷가에서 본 푸른 하늘색에 유난히 집착, 그의 모든 작품은 거의 다 파란색이다. 파란색은 클랭에게 고향에서 봣던 지중해 하늘의 색이자 완전한 자유를 주는 색이었다. 그는 기존 파란색이 마음에 들지 않아 1960년 자신만의 파란 물감을 개발 ‘IKB'이름으로 특허를 받았다. (’International Klein Blue')

1958년 서른 번째 생일 개인전에서 캐비닛 하나를 제외한 아무 것도 없는 갤러리에 온통 하얗게 색칠, 파란 네온 등 하나, 푸른색 메틸렌을 섞어 만든 파란색 칵테일 제공해 관람객들이 며칠동안 푸른색소변을 보도록 했다.

푸른 술을 몸 안에 품은 관객들이 하얀 텅빈 갤러리 내부를 걷다가 나중에 집에서 소변으로 다시 배출하는 순환의 행위가 하나의 예술이길 바랐다. 미술을 빗물질하고 신화화하려는 클랭의 시도를 보여준 전시였다.

1962년 도발적인 작품에 도전했다. 눈에 보이지도 가치를 매길 수도 없는 작품을 제작했다며 금을 받고 팔았고 영수증도 발행했다. 받은 금의반은 센강에 뿌려 자연으로 돌려보냈고, 구매자도 영수증을 태워, 미술품을 창작하고 전시, 매매, 소유하는 과정을 신비하고 의식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붓자국을 싫어했던 그는 분무기를 사용하거나 스펀지에 물감을 뿌려 회화 표면에 붙이는 식으로 작업했다. 이 방법으로 이해 또 각성제 복용으로 1962 34세로 세상을 떠났다.

 

27.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1834~1903 American

그는 “만약 나무나 꽃, 또는 눈 앞에 보이는 다른 표면만을 그리는 사람이 예술가라면, 예술가의왕은 사진작가가 될 것”이라며 예술가는 보이는 세계 너머에 있는 것을 표현해야 한다고 믿었다. 휘슬러는 자신의 작품을 ‘쓰레기’라고 비난한 영국 평론가 러스킨을 상대로 전 재산을 걸어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휘슬러는 논쟁에서도 재판에서도 이겼지만 받은 배상액은 단돈 1피팅(1/4페니)이었고 막대한 재판 비용은 그를 파산시켰다. 경제적 논리로 보면 완전히 손해였지만 그처럼 모든 것을 다 걸어서라도 지키고 싶은 것이 바로 예술가의 자존심이고 명에다.

 

28. 리처드 롱

1945~ British

걷는 행위로 조각 작품을 만든다.

1967년 미대생 시절, 잔디밭 위를 반복해서 걸어 잔디 위에 흔적을 남겼다. 그것이 그가 고안한 새로운 방식의 조각이었다.

<걸어서 만든 선>

대지 - 캔버스, 작가의 몸 - 붓 연필, 걷는 행위 - 드로잉

그는 걷기를 통해 자연 속에 일시적 흔적을 남기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도보 예술가, 대지 미술가가 되었다.

<벤 네비스 히치하이크>(1967)

6일 동안 런던에서 벤 네비스 정상까지 오른 후,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면서 걷고 히치하이킹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 작품

시간, 거리, 속도, 과정과 같은 추상적인 요서들까지 작품의 재료에 포함시킨 퍼포먼스이자 대지미술이다.

롱 작품의 의의는 조각의범주를 빗물질적인 영역까지 확장시킨 것이다. 그는 조각은 장소에 관한 것일 수도, 재료와 형태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롱의 ‘걷기 조각’은 그 경험의 기록물들을 전시하고 판매한다. 그는 걷기를 하나의 예술 형식으로 정립하였고, 자연 속으로 홀로 걸으며 사유하고,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대지 미술을 만들어낸다. 1989년 마침내 터너상을 수상한다.

 

29. 마크 로스코

1903~1970 American Born Russia

데이비드 록펠러가 1960년 1만달러 구입

2007년 7289만 달러 낙찰 자선단체 기부

‘화이트 센터’

그는 “나는 색의 관계나 형태의 관계 또는 그 비슷한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 나는 오로지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만 관심을 둘 뿐이다. 이를테면 비극이나 환희, 파멸 등과 같은 것이다. 로스코는 쉰살 즈음 자신만의 세계를 발견한다. 크고 긴 캔버스 위에 적절한 크기로 안배된 사각의 색면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그 위를 얇은 색면층들이 차례차례 덮이면서 깊이감을 주는 방식이다. 그가 크도록 천착했던 ‘비극적 감정’을 색면들에 켜켜이 담아내는 로스코 만의 비법을 터득한 것이다.

그는 최적의 공간에서 작품과 감상자가 만나 최고의 교감을 나눌 때 그 작품이 완성된다고 생각했다. 다라서 그는 그의 작품이 어디에 어떻게 걸리는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포시즌즈 호텔의 레스토랑이 아닌 테이트 미술관을 선택한 것도,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을 내어 주면서 전시실의 벽지 색깔과 조명 밝기, 그림이 벽에 걸리는 위치까지 세세하게 지시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30 볼프강 라이프

1950~ German

그의 작품에 쓰이는 주재료들은 돌, 밀탑, 쌀, 우유 등 모두 자연에서 온 유기적인 것들이다 .이 재료들은 모두 생명의 순환을 의미하며 자연에 내재한 보이지 낳는 영적인 에너지의 상징들이다.

그의 작품은 자연에 순응하며 조화롭게 살기를 강조하는 동양의 유기체적 세계관과자연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우유돌>1975. 예술가로서 첫 작품이다. 흰대리석 위에 우유를 붓고 비우는 행위를 매일 반복하는 작품이다. 표면이 오목한 사각형의 흰 대리석 위에 흰 우유를 천천히 조심스럽게 부으면 대리석 모서리와 우유와 만나는 접점이 생긴다.

이 때가 바로 유동과 정지, 따뜻함과 차가움, 비어있음과 채워짐의 대립적 가치들이 완벽하게 결합하는 순간인 것이다. 삶과 죽음, 정신과 육체 등 모든 대립적인 것들이 동일한 실재의 양면이라는 동양적 세게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31. 피에트 몬드리안

1872~1944 Dutch

동료 화가 레오 판 두스뷔르흐와 함께 ‘데 스틸’ 미술 단체

형태, 명암, 원근법 등을 버리고 직선, 직각, 한정된 색채만을 사용해 그리는 신조형주의 탄생

「단순함과 절제」

점, 선, 면 기본적인 요소만으로 질서와 조화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미술이 우주의 영적인 질서를 나타낼 수 있다며 자신의 작품이 ‘우주의 진리와 근원’을 표현한다고 주장한다.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 삼원색면과 다섯 개의 검은 직선으로 이루어진 추상화. 그는 최소한의 요소로 가장 조화롭고 아름다운 구성을 만들기 위해 수십 번, 수백 번 그리고 고치기를 반복한 것이다.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뉴욕의 번화한 교차로를 닮은 그림은 부기우기의 강렬한 리듬과 경쾌한 음악, 뉴욕의 역동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32. 아르테미시아 젠틸렌스키

1593~1654 or later Italian

젠텔렌스키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그림 스승이었던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법정에 세웠지만 죄값을 제대로 받지는 않았다. 억울함을 토로하기 위해 젠텔렌스키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를 그려 타시의 범죄 사실을 널리 알렸다. 유디트 얼굴엔 자신의 얼굴을,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적장의 얼굴에 타시를 그려 넣어 복수를 했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이다. 당신은 카이사르의 용기를 지닌 한 여자의 영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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