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으로 가는 버스에 앉기만 하면 졸음이 몰려온다. 피로감을 안고 집에 도착해 저녁 식사를 하고 소파에 앉으면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 졸린 눈을 비비며, 우리 언제 자냐?란 표정을 하고 있는 것. 누적된 피로 때문이라 여기면 달리 그 상태를 벗어날 방법이 없다. 그냥 잠자리에 드는 수밖에. 몸도 마음도 피폐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어느 날은 나가서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한 날이 있다. 샤워를 하고 나니 몸상태가 확 바뀌었다. 뭘할까 고민하다가 블로그에 글 한 편을 쓰고 잤다. 늦은 운동이 주는 효과를 그때서야 알았다.
명절 연휴지만 코로나로 인해 외출은 못하고 집에서 공부만 하던 아들이 피로감을 호소한다. 공부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는 것 같아 나가서 뛰어보라고 했다. 땀흘리고 나면 나을 거라고. 땀이 날 정도로 몸을 움직이고 나면 컨디션 회복이 됐던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이었다. 형제가 나가서 농구장에서 실컷 뛰고 들어왔다. 그 다음 날 식사를 하며 뛰고 들어왔더니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되더냐고 물었더니 그랬다고 한다. 실내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책상에만 앉아 지내니 몸이 힘들었던 거다. 한참 뛰어다닐 나이에.
듣고, 읽고, 머리로만 아는 것은 아는 게 아니다. 직접 겪은 것만 내 것이다. 그래서 내 경험에서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조언하고 충고하려는 나를 극히 경계한다.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면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신뢰감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 상대도 그것을 안다. 누구나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기는 쉽다. 떠도는 말은 많은데 의지할 만한 말은 적은 이유다. 나 역시도 가능한 몸으로 겪은 것만 이야기하려 한다. 직접 경험하고 깨달은 것을 이야기할 때 제일 신이 난다. 말수 적은 내가 '이건 진짜야' 하고 수다쟁이가 될 때다.
우리 주변에 떠도는 말 중에 우리가 귀담아 듣는 이야기는 따로 있다. 신뢰할 만한 사람이 하는 말이나 누군가 직접 경험한 것에 대한 이야기에 솔깃해진다. 아무리 터무니 없는 이야기라도 직접 경험했다고 하면 신뢰하기 마련이다. 설사 나는 한번도 본적 없는 귀신을 봤다고 해도 말이다. 이 책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를 읽으면서 그랬다. 임사체험에 대한 이야기.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그냥 떠도는 근거없는 이야기 중 하나라고 지나칠 수 있지만 이 책은 직접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라 얻는 게 있으리란 기대로 읽었다.
당신은 오로지 손전등으로 비추는 것만 볼 수 있고, 이미 알고 있는 것만 그게 무언지 인지할 수 있다. 물리적 세계에서의 삶이 바로 이와 같다. 우리는 특정 시점에 감각을 집중하는 것만 알 수 있고, 또 이미 친숙한 것만 이해할 수 있다. (124쪽)
세상에 태어나 육체를 입고 생활하는 우리는 오직 오감에 의지해 세상을 이해한다. 감각하지 못하는 것은 알지 못하며, 쉽게 믿지도 않는다. 감각할 수 없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들은 실제 우리 일상과는 별 상관 없다고 여긴다. 인간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졌다고 하지만 실제 가진 능력에 비해 보여주는 것은 한정적인 이유도 이런 한계 때문이다. 감각하는 것만 믿고 자신의 세계를 한정짓기 때문이다. 그 외의 것은 믿거나 말거나 이거나 그냥 머릿속에 지식으로만 저장해 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실을 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내 삶의 큰 위기도 내가 바깥에만 눈길을 두고 남과 나를 비교하며 그에 따른 경쟁심에 시달렸을 때 찾아왔다. ... 이 모든 감정은 우주가 부족하며 제한된 곳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실제로 우주는 무한한데 말이다. 우주는 우리가 커지는 만큼 커지고 넓어지는 만큼 넓어질 수 있다. 우주가 확장되고 허용되는 정도는 우리가 얼마나 원하느냐에 달려 있다. (262쪽)
우리는 우주와 하나이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외부 세계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저자의 이야기. 우리가 자기 안에 우주를 담고 있는 장엄한 존재라는 사실을 각인 시켜 주려는 이야기를 반복해 읽으면서 한편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영혼은 몸을 가지고 태어나면서 사람과 세상과 '분리'되고 내 몸 감각이 허용하는 만큼의 세계에 갇혀 살고 있다는. 이런 사실에 공감하기 위해 똑같이 임사체험을 해볼 수 없는 나는, 저자가 경험하고 깨달은 것들이 진짜 경험임을 믿고 의지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경험해 보았기에 치유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다. 그저 믿고 내려놓기만 하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을 실천하기가 어렵다고 느낄 것이다. 혹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답은 보기보다 훨씬 간단하다. 그것은 아마 우리 시대에 깊숙이 숨겨진 비밀인 것 같다. 답은 바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227쪽)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것, 새롭게 알게 된 것을 내 안에 허용하는 것. 이것이 큰 과제 중 하나가 됐다. 내가 경험할 수 없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들에 대한 의심을 내려놓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지만,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들이 살아가는데 오히려 도움이 될 거란 사실 때문에 깊이 새겨보려고 가까이 두고 자주 들춰보려고 한다. 윤회나 전생을 주제로 한 책들을 읽다가 만나게 된 이 책에도 가장 자주 언급되는 단어는 역시나 동일하다. '사랑'. '조건 없는 사랑'. 거듭 마음에 담는다.
임사 체험 상태에 있을 때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아주 명료해졌다. '내가 되는 것'이 바로 '사랑이 되는 것'임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나를 살린 가르침이다.(2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