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나를 알기 위해서 읽는다. 글쓰기에 너무 게으른데다 그나마 코로나 19로 인해 자투리 시간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책을 읽다 보면 머릿속이 맑아지고 미처 모르고 지나친 과거 어느 순간의 내 감정과 생각의 단편들을 만나고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건 끝없이 새로운 나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다.
저자의 독후감을 모은 이 책은 페미니즘의 사유로 통하는, 내가 알거나 몰랐던 책들과 우리 사회와 내 주변 사람들, 나의 위치와 감정을 깨닫게 하거나 배움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글들로 알차다. 리뷰를 쓰기가 어려워 포기하려다 이 책이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내 기억을 보완하기 위해 특히 마음에 와 닿은 글들을 남긴다.
* 단도직입적으로 여성주의만큼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학문은 드물다. 아니, 글쓰기와 여성학의 인식론, 방법론은 거의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문학은 언어의 역사이고, 여성주의는 언어의 역사가 형성된 과정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언어를 자명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개입된 권력 관계를 질문한다면, 기존 여성주의를 포함해 세상의 모든 언어는 상대화와 붕괴(의미의 다변화)의 운명을 타고 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주의와 글쓰기 공부는 별개의 실천이 될 수 없다. 여성주의는 하나의 분과 학문(국문학, 영문학 ...)이 아니라 평화학이나 탈식민주의나 생태학처럼 일종의 인식론이다. (15-16쪽)
* 나는 누구인가. 모든 사람이 이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물음은 내 경험과 사회의 시선이 일치하지 않을 때, 타인이 멋대로 나를 규정할 때 솟아난다. (26쪽)
* 용서를 하든 복수를 하든 진짜 피해는, 피해자가 가해자와 그 사건과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31쪽)
* 가장 문제가 되는 외면화는 자기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자기 문제를 남의 문제라고 굳게 믿는 '네 탓으로 인한 나의 고통'이라는 고착 심리다. 이들은 완벽주의자로서 자기를 스스로 정한 기준과 동일시한다. ... 타인에게 자기 기준(이라지만 일관성은 없다)에 맞춰 살라고 요구하고 상대가 부응하지 못하면 분노하고 경멸한다. (55쪽)
* 삶은 할 일로 채워지는 것이지 안정과 성취는 실상 존재하지 않는 관념이다. 나는 조금 태평해지기로 했다. (62쪽)
* 자본주의와 의료 기술의 발달은 가난한 사람에겐 모순이다. 일하는 시간은 짧아졌고 평균 수명은 길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나이에 맞는 라이프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64쪽)
* 시인(김수영)은 도둑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양계를 집어치우지 못하는 이유가 도둑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철조망을 넘어온 도둑(양계를 시작한 시인)은 그만두고 싶지만, 그리고 본인이 넘어온 길을 알지만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라고 물으며, 모르는 척 떼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제목 그대로, 양계 변명이다. (70쪽)
* 고전은 무식의 면죄부다. 아무 때나 인용하고 표기 그대로 오해해도 된다는 허가증이므로, 고전으로 간주되는 책들은 태생부터 반동적이며 동시에 해방구다. (85쪽)
* ... 알튀세르, 푸코, 라클라우나 스피박, 무페, 버틀러 같은 일군의 페미니스트는 보완이든 비판이든 상호 비판이든 마르크스의 길을 연결한 공신들이다.
이들의 요지는 해석과 변혁은 분리되지 않으며, 다르게 해석하는 행위가 곧 변혁이라는 것이다. 신앙을 포함해 모든 철학은 변화를 위한 것이다. 해석이 곧 실천임은 당연한 이야기고 문제는 누구의 해석이냐, 그것을 누가 대표로 말할 수 있는가다. 또한 언어는 사용하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소통 과정에서 변형된다. 투명한 언어는 없다. 사실 인간은 언어로 말하지도 않는다. 소통에서 말이 차지하는 비율은 3~7퍼센트, 나머지는 몸이 말한다. (87쪽)
* 인생이 지옥이고 죽음이 천국이라면, 연옥쯤에 해당하는 것이 은둔 아닐까. (89쪽)
*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의미다. 돈과 권력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바다. 최고의 의미는 내가 타인의 앎의 노력 대상이 된다는 것(사랑받음), 그리고 상대를 알려는 노력이다(사랑). (102쪽)
*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이를 사랑한다. 인생의 절정은 성별, 계급, 나이, 심지어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 상호 성장을 위해 자잘한 것(권력, 돈, 명예) 혹은 자기 알던 유일한 세계를 포기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독일 영화 <타인의 삶>이 그런 경우다. 좋은 인간관계에도 <세한도> 같은 걸작처럼 다른 형태의 권세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105쪽)
* 독서는 타인의 삶을 사는 행위다. 자기만의 사고와 태도, 시각은 과정에서만 얻을 수 있다. (121쪽)
* 다짐해도 다짐해도 금세 잊혀지는 내 좌우명. "지구에 머무는 동안 타인과 자연에 민폐 끼치지 말고 조용히 사라지자." (136쪽)
* 인간의 보편적 상황이란 무엇일까. 나는 단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랑. 사랑 자체가 대단해서가 아니고 상대방이 대단해서는 더욱 아니다. 사랑의 상태만이 의식주처럼 사람을 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승인되는 사랑의 범위는 대단히 좁다. 행복한 중산층 기혼 이성애자가 얼마나 되겠는가(여기서 또 남녀로 나뉜다). 그들의 행위만 규범으로 간주된다. 그러니 계급, 성별(동성애), 인종, 나이 같은 궤도 밖의 조건으로 인해 힘든 사랑이 얼마나 많겠는가. (142쪽)
* 요즘은 새롭고 다양한 동화도 많고 권정생 같은 작가도 있지만, 전통적으로 동화나 우화는 순수한 이야기로 포장되어 '아동에게 그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학습시키는 도구'였다.
특히 여자 어린이가 주로 읽는 동화는 가부장제의 원형을 주입한다. 어느 사회에나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이유다. 신데렐라, 재투성이 아가씨, 콩쥐팥쥐... 내용이 익숙해서 그렇지 조금만 주의 깊게 읽으면 잔혹하고 여성 비하적이다. 왕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다리를 자르고 목소리와 목숨까지 바치는 인어 공주를 생각해보라. '정치적으로 올바른 작가'들은 동화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흑설 공주>도 있고, 백설 공주가 왕자와 결혼했는데 가정 폭력범이어서 이혼하고 독립적으로 살았다든가, '일곱 난쟁이'들이 "왜 장애인은 언제나 비장애인 결혼의 조력자인가?"를 주장하는 시위로 끝나는 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50쪽)
*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 권력자다. 자기 충족적 삶은 최고로 힘을 지닌 상태다. 인간은 권력 지향적이기 때문에 권력감이 없으면 외로운데, 자기 몰두형 인간은 권력에 무심하다. 사실, 이 행복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 (154쪽)
* 자기 모순은 언어를 빼앗긴 이들의 운명이다. 이것이 지배와 피지배 관계의 핵심이다. 강자의 삶과 언어는 일치하지만 약자의 삶과 언어는 불일치한다. '세계문화유산 군함도'는 누구의 관점인가? 피억압자의 노동을 지배자의 시각에서 정의하는 것, 이것이 가부장제요, 제국주의요, 인종주의다. (165쪽)
*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상황 중 하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평화적 해결이라는 이름으로 '대화'를 강요받을 때다. (166쪽)
* 고통의 가치는 오로지 해석에 달려 있다. (174쪽)
* 글쓰기는 삶과 분리될 수 없다. 내게 '여성'은 고통이자 자원이다. 항상 양가감정에 시달린다. 자기 혐오와 연민, 피해의식, 분노가 나를 삼킬 때는 나도 저자처럼 죽고 싶다. (202쪽)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글쓰기 중 하나는 사회적 약자의 자기 재현이다. 이 책(<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헤릴린 루소)은 내가 아는 자기 이야기 중 최고다. ... 이 책은 장애 여성 관련서가 '아니다'. 몸, 관계, 사회라는 삶의 모든 영역을 다룬다. 인문학 '입문서'의 모델이자 타자 없는 사회라는 인류 최상의 선을 보여준다. 이 책의 가장 빼어난 정치학은 배려, 호기심, 평등(같아지라는 요구)처럼 아름다운 듯 보이는 태도가, 실제로는 얼마나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배제의 정치인가를 분석했다는 점이다. (178-179쪽)
* 역사상 가장 오래된 혐오는 말할 것도 없이 여성 혐오다. 고통을 자기 일부로 수용하기보다는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때 처음 등장하는 존재는 동물, 자연, 본인의 배설물이다. 남성(인간)에게 여성(인간 아님)은 이 세 가지를 인식하는 시작이자 교집합이다. 이렇듯 모든 혐오의 출발은 자신이다. 자기 내부의 관념에서 나온다. 파시즘이 그 정점이다. 파시스트는 피아, 자아 경계가 없다. 나=세상이다. (182쪽)
* 살아남기 위해서는 좋은 동료, 커뮤니티, <사랑받지 않을 용기> 같은 책이 필수다.(207쪽)
* 시인이자 여성주의 사상가 에이드리엔 리치는 영화 <가스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수 세기 동안 여성은 남성 사회가 켠 가스등 때문에 자신의 경험과 직관을 부정당해왔다. '미친 여자'는 오로지 남성의 경험에 의해 판정되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바로 우리 자신에게 미스터리였다니!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보살필 의무가 있다. 여성의 인식과 자신감을 믿자. 서로에게 가스등을 켜지 말자." (231쪽)
* 마르크스 이론의 결정적 실패 원인 하나는 성별과 인종 개념의 부재다.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 무엇으로? 남성은 미소지니(여성 혐오)로 단결했지만, 노동자는 인종과 성별, 국적으로 분열되어 있다. (2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