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의 계엄사령관 심재모는 농민들이 왜 경찰과 군을 적대시하는지 그리고 유독 사회주의적 사상을 가진 자들이 더 많은 이유를 알고자 이곳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을 통해 경청하고 배운다. 그래서 나름 농민들의 억울함을 이해하며 그들을 공정하게 대하려 한다. 나름 권력을 가진 자 중 그나마 모범적인 생각을 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총상을 입었던 안창민을 몰래 치료했던 것이 밝혀져 고초를 겪고 감옥에 투옥되었던 전원장, 간호사와 이지숙은 김범우가 나서주어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월녀 또한 정하섭을 도왔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고 결국 배 속의 아이를 잃고 감옥에 투옥된다. 마을에 몰래 침투해 어머니의 도움을 받던 배성오는 형의 신고로 군·경찰과 대치 중 사망하고 아들을 잃은 어머니 또한 자살을 선택한다. 이념은 가족 간의 불화를 넘어 원수가 되고 목숨까지 좌지우지하게 되는 비극을 낳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외서댁은 공산주의자로 산으로 도피한 남편의 아이가 아닌 염상구의 아이를 가진 게 소문나 자살을 시도한다.
‘이승만이 아닌 김구가 남한을 이끌었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계속 머문다. 사리사욕과 권력욕이 강했던 이승만이 아닌 나라를 먼저 생각했던 인물이 힘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농민봉기가 자주 발생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더 높이 평가했던 이유는 이 지역에선 농업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토지개혁에 대한 희망이 컸고 일제 강점기가 끝나면 모두 공정하게 토지를 분배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반발도 컸다. 이런 지역적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나니 이 지역 사람들이 공산주의 사상을 더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학창 시절 반공교육을 철두철미하게 받았기에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만 머물러 이런 역사적 진실은 전혀 알지 못했었다. 나이가 들어 띄엄띄엄 알게 되던 것을 넘어 이 책을 통해 시간의 흐름대로 역사를 알아갈 수 있는 참 귀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