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는 모두 6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청소년을 대상으로 창작한 작가의 소설들로 엮어져 있다. 나로서는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 까마득하게 느껴지지만, 누구나 10대를 지나면서 지녔던 고민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기성세대가 되면, 그 시절의 문제들은 그리 중요치 않은 고민들로 치부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10대들이 느끼는 심각한 고민들이 지나고 보면, 정작 그냥 스쳐지나갔던 과정으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아무리 사소한 고민일지라도, 당시의 삶에서는 가장 무겁게 다가오는 것이라는 것을 전제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그러한 과정은 더욱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을 잘 극복했기 때문에 기성세대가 되어서도 ‘사소한’ 것처럼 여길 수 있는지도 모른다. 첫 번째에 수록된 <굴려라, 공!>은 남녀공학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같은 반의 여학생들의 미모 순위를 조사해서 남자들의 단톡방에 옮긴 ‘홍모’를 혼내주기 위해 고심하는 ‘하윤’이 작품의 중심에 놓여있다. 여성들의 미모를 평가하는 것이 일반화된 우리 사회의 그릇된 풍조를 다루고 있지만, 정작 같은 반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누군가는 분명 상처를 받고 더 심한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일을 벌인 남학생들은 그것을 공유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 피해자는 존재하는데, 가해자는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처럼 정작 피해를 당한 여학생끼리 그 순위로 인해서 갈등이 벌어지고, 가해자인 남학생들은 그러한 상황을 즐기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역시 여성을 미모로만 평가하는 사회문제, 그리고 남성 중심의 인식이 만들어낸 심각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빠가 불미스런 일에 연루되어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잠시 이모집에서 머물러야 했고, 그곳에서 만난 남자애와의 설레었던 감정을 사랑으로 기억하는 ‘하나’의 독백으로 진행되는 <여름을 깨물다>라는 작품이 이어진다. 세 번째 수록된 <수아가 집으로 가는 시간>은 잠시 자신의 방에서 머물던 ‘수아’라는 아이에게 느꼈던 ‘나연’이의 미묘한 감정들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소설집의 표제작인 <나의 스파링파트너>는 이른바 ‘불량청소년’으로 치부될 수 있는 ‘기주’와 주인공인 ‘현민’이의 갈등을 ‘스파링파트너’라는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다. 주변에서 서성거리면서 일상을 흔드는 존재를 ‘스파링파트너’로 삼아, 상대와는 상관없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현민의 형상은 그래서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어지는 <마이 페이스>와 <발끝을 올리고> 등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모르고 지날 수 있는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숱한 경험들을 하게 되지만, 그래도 아주 오랫동안 각인되는 기억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지나간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는 구절처럼, 그 흔적들은 때로는 우리에게 오랫동안 간직될 추억이 되기도 한다. 다른 이들에게는 사소하게 여겨질지라도, 정작 나에게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여, 10대들이 느끼는 감정의 미묘함을 묘사하는 작가의 필력이 나에게 충분히 전달되었다. 아울러 그들과 공감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겠다.(차니)
소설집을 읽은다는 건, 초콜릿 박스에서 저마다 다른 맛의 초콜릿을 먹는 것과 같다.
한 작가의 다양한 생각과 사상을 보고 느낄 수 있으니까.
박하령 작가의 [나의 스파링 파트너] 도 그런 소설집이다.
그동안 작가의 다양한 장편 소설들을 읽으면서, 첫 소설집은 어떨까? 많이 궁금했었다.
제목이기도 한 '나의 스파링 파트너' 는 요즘 주목하는 사회 문제와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어 섬뜩하기까지 했다.
박하령 작가의 책은 처음에는 키득키득 웃다가 얼굴에 표정이 사라지고 다 읽은 다음에
어지러운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게 한다. 이 소설집에 실린 6편의 작품도 그러했다.
이 여섯편 중 누가 읽어도 "아 이건 내 얘기인데." 싶은 이야기가 꼭 하나쯤은 있을 것 같다.
"내 핸드폰 어디서 주웠어?"
바로 답이 왔다.
"형이 농구장에 두고 갔잖아."
(중략)
덫에 걸린 기분이었다. 그제야 내게 보낸 문자들의 내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때는 단지
엉뚱한 캐릭터라서 뜬금없이 친하게 지내자는 둥, 담배 꽁초를 치웠다는 둥, 하며 문자를 보낸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스파링 파트너 중-
자음과모음 / 나의 스파링 파트너 / 박하령 소설
청소년들의 여섯 이야기를 담은 박하령 작가의 <나의 스파링 파트너>
반 여학생을 미모 순으로 매긴 성적이 남학생들에 의해 공개되고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벌리는 홍모를 향한 하윤의 반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하지만 반감을 겉으로 드러냈다가 오히려 궁지에 몰린 하윤은 심기일전하며 홍모를 골탕먹일 작전을 궁리한다. 그리고 하윤은 홍모가 애지중지 여기는 자전거의 자물쇠를 풀어놓는 방법으로 시원하게 골탕을 먹였다고 생각했지만 다음날 고가의 자전거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학교가 떠들썩하게 된다.
아버지가 미투 사건에 연류되며 보령 이모집으로 가게 된 하나, 겉으론 담담한 척했지만 별로 괜찮지 못했던 하나는 답답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그 곳에서 친해진 친구 희영과 이곳 저곳을 쏘다니며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중 희영이가 마음에 두고 있던 이수란 아이를 보고 첫눈에 반해 친해지게 되면서 희영이에게만 말했던 부모님 일이 동네에 퍼지게 되고 단지 이수를 좋아한 것 뿐인데 아버지처럼 몹쓸 아이인 것처럼 취급받아진 하나는 서글프기만하다.
친척이랄 것도 없는 촌수지만 오래전 수아 할머니의 은혜를 입었던 나연이 부모는 갑작스럽게 벌어진 수아의 부모님 일로 수아를 맡게 되었고 그렇게 수아가 나연의 집에 온 날 무뚝뚝한 나연과는 달리 애교와 귀염성으로 가족의 사랑을 단번에 차지한 수아에게 자신의 물건과 침대를 내주게 되면서 그저 묵묵히 참기만 했던 나연의 생활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굴려라 공, 여름을 깨물다, 수아가 집으로 가는 시간, 나의 스파링 파트너, 마이 페이스, 발 끝을 올리고란 여섯 편이 실린 <나의 스파링 파트너>는 청소년들의 고민을 마주하게 되는 소설이다.
반 안에서 깐죽거리는 아이를 향해 한방을 먹이고 싶어하는 심리와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기억들, 첫째라는 이유로 동생에게 늘 양보만 해야했던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얼굴도 모르는 아이의 출현으로 자신의 감정을 부모님에게 표현할 수 있었던 이야기 등 고등학교 시절 충분히 겪을만한 성적과 첫사랑, 부모님의 기대나 비교의 이야기들이 그 시기 청소년들의 감수성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특히 학원에서 농땡이를 치고 달아나는 하정이를 따라 간 집에서 사고를 당해 몸을 아예 움직일 수 없음에도 슬프고 힘든 표현을 하지 않고 발랄하게 웃던 하정, 연정 자매의 이야기를 보면서 같은 불편함과 같은 죄책감이 교차했던 적이 있기에 다른 이야기들보다 더 공감하면서 읽게 됐던 것 같다. 최근 청소년 소설들을 읽으며 꽤 수준이 높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하는데 처음 만나게 된 박하령 작가의 섬세한 문체가 기억에 많이 남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