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아이를 낳은. 남편과 함께 육아 전쟁 중이지만 오롯이 엄마만의 육아에 지친 친구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이를 위한, 엄마로서의 역할에 대한 고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충분히 하지만, 그로 인해 오는 남편과의 갈등과 관계에 대한 해소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선물은 했지만, 정작 나는 읽지는 않았다. 관계의 기준이 남편과 아내라고 했을 때, 미혼인 나에게는 조금 먼 이야기일 것만 같았다. 그러다 운이 좋게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왔다. 그리고 생각보다는 빠르게 책을 읽는 내가, 조금씩 아껴서 한 문장, 한 문장을 다시 읽고 소화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자는 남편과의 관계를 위해 마음 수련을 했다. 하지만 좁은 관계로 볼 때 남편과 아내라는 말이지, 깊게 들여다 보면 결국 당신과 나, 타인과 나라는 꽤나 넓은 부분을 아우르고 있다. 심지어 아이와 나, 엄마와 나라는 관계, 애착 관계를 통한 인식의 확장까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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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내 손에 들어왔고 내가 꼼꼼하게, 나 그대로의 눈으로 이 책을 만나게 된 건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근래 인간 관계에서 오는 회의감, 내 스스로 만드는 피로감, 그리고 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죄책감에 마음이 괴로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은데 답은 저 멀리에서 그림자만 내밀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 책은 처음부터 술술술 읽히지 않는다. (이 말을 재미없다는 말로 해석하지 않길 바란다!)
저자의 경험이 쉽게 읽히지 않았다. 경험이라니, 앞서 말했던 부부 관계에 대한 말은 아니다. 저자가 경험하고 공부하면서 사람의 성격을 쉽게 정리한 게 있는데,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혈액형의 성격 유형처럼 오랜 시간 봐 온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계속 앞장으로 돌아가 어떤 유형이 어떤 특징이 있는지 계속 살피게 됐다. 하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유형을 읽게 된다. 굳이 앞으로 돌아가고 메모를 하고 중얼중얼 읽으면서 저 유형을 암기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그 때문에 더 좋았다고 느낀다. 자연스럽게 그 유형에 대해 저자가 끊임 없이 말을 해주는 게 좋았다.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 단순하게 설명하는 게 누군가에게 이 책을 읽지 않은 이유가 될까 봐 조심스럽기도 하다.
'아, 이 책은 사람을 성격에 따라 유형으로 나누었구나.'
'이 책은 부부 관계를 바탕으로 쓰인 거구나.'
이런 오해가 생길 것 같아서!
사람을 유형으로 나누고 설명하고 정답을 내놓는 책은 내 성질에 맞지 않다. 게다가 나는 미혼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나를 반성할 수 있는 계기, 즉 나에게서 조금 떨어져서 나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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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 없이 반성했고, 각각의 사례들을 보면서 주변의 누군가를 떠올렸다. 어떤 사례에서는 너무 '나'같은 사람이 있어서 놀라면서도, 나만의 이상한 성격이 아님에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했다. 그러면서 저자의 공부가 정말 깊었구나, 관계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개개인이라는 중심을 놓치지 않았구나. 싶었다.
'나'는 절대 '너'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너'는 절대 '나'가 될 수 없다.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얘기다. 안다는 것은 이성의 기능이고 받아들인다는 것에는 감정이 개입이 있다. 중요한 것은 감정이다. 자신과 상대방의 기질에 대해 아무리 많은 정보를 듣는다 해도 실제로 상대방이 우리를 이해하려는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우리 역시 상대방을 대하는 감정이 누그러지지 않아 어떤 이론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51p
우리는 끊임 없이 요구한다. 너는 나가 되고, 나는 너가 되길. 답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요구는 쉽게 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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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이 우울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와 다른 어떤 상대에게는 늘 아니다를 외친다. 부정이라는 말이 그에게 더 와닿을 거라는 내 착각, 그의 성격이 나의 안 된다는 말을 쉽게 포옹할 거라는 쉬운 오류에 빠진다.
'부정하고 부정당하는 일이 너무도 일반적이고 상시적이라서 하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다.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 감정, 욕구 그리고 행위를 부정한다고 매번 의식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정당하는 느낌이 무의식에 쌓이면 자존감을 약화시켜 자신 있게 말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함을 주저하게 된다. 또 자기를 부정하는 상대방에 대해 불신을 가짐으로써 가까이 가지 않게 된다'.....155p
가끔은 거울을 들고 나를 바라 보면서도 나의 부정이 얼마나 큰지, 내 안의 부정을 남에게 쏟는 게 얼마나 나쁜지도 모른 채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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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럼에도 늘, 내가 피해자인 것만 같았다. 나만 손해보는 기분이 싫었고 독설을 내뱉는 순간에도 상대의 상처보다는 그로인해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자각해야 하는 게 더 깊은 상처였다.
'우리는 자신이 피해자라는 생각만 크지 가해자라는 인식이 부족하다. 자신은 피해자니까 부당한 대우가 억울하고 위로받아야 하고 지지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머문다. 스슷로 가해자일 수도 있다 인정해도 '그럴 수도 있겠지. 내가 불만이 있는데 너라고 없겠냐'라는 정도로 모호하게 인지한다. 자신 또한 가해자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스스로를 피해자라 두둔하기만 해서는 관계 속에서, 세상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처신하는지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289p
이렇게 생각하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 얼마만큼 무서운 사람이었을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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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면서 나는 꽤 많은 반성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누군가에게 반성을 하라고 강요하고, 그로 인해 남들에게 더 잘하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반성은 반성인 채로, 나 자신을 알았다는 신호다. 그리고 남에게 깊은 이해로 다가서라는 게 아니라, 나와 다르다는 그 중심을 결코 놓치지 말라는 말이다. 물론 깊은 이해가 맞기는 하다. 하지만 그게 무조건적인, 당연한 건 아니라는 것.
관계는 늘 어렵다. 그래서 그 많은 '관계 극복 책'이 쏟아져 나오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계는 결코 극복하는 게 아니다. 이것만을 안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중요한 것 중 절반 이상을 얻어가는 건 아닐까 싶다.